대수긴나라왕소문경 제4권
[보살의 법 그릇 서른두 가지]
그때에 천관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은 몇 가지 법을 성취하여 법의 그릇이 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보살의 법 그릇에는 서른두 가지가 있다.
무엇이 서른두 가지인가?
부처님의 보호를 받는 것은 보리 마음의 그릇이요,
오로지 한 경계에만 마음을 쏟아 질박하고 곧은 것은 거짓이 없는 그릇이다.
의지를 더욱 자라게 하는 것은 선근의 그릇이요,
도를 수행하는 것은 보리 기둥의 그릇이다.
바른 뜻으로 생각하는 것은 다문(多聞)의 그릇이요,
지혜로움은 도를 내는 그릇이다.
정진은 이치를 모으는 그릇이며,
보시함은 큰 부(富)의 그릇이다.
계율은 소원을 성취하는 그릇이며,
인욕은 서른두 가지 장부의 그릇이요,
정진은 모든 불법의 그릇이며,
선정은 마음을 단련하는 그릇이요,
지혜는 장애를 건너는 그릇이다.
큰 사랑은 중생을 평등하게 하는 그릇이요,
대비(大悲)는 빈궁을 구제하는 그릇이며,
큰 기쁨은 불법을 기뻐하고 좋아하는 그릇이요,
큰 버림은 애욕과 분노를 버리는 그릇이다.
선지식(善知識)은 모든 선근의 그릇이며,
다문(多聞)을 닦아 익히는 것은 지혜바라밀의 그릇이며,
출가는 결박과 장애를 떠나는 그릇이다.
아란야에 있는 것은 일이 적고 어지러움이 없는 그릇이며,
적정(寂靜)을 즐기는 것은 선정과 신통의 그릇이다.
4섭법(攝法)은 중생을 교화하는 그릇이며,
모든 법을 보호해 지니는 것은 밝게 비추는 그릇이요,
다라니는 듣지 못했던 법을 다 듣는 그릇이다.
변재는 모든 의심을 끊는 그릇이요,
염불(念佛)은 모든 부처님을 볼 수 있는 그릇이요,
괴롭히거나 해치려는 마음이 없는 것은 모든 선근을 보호하는 그릇이다.
공법(空法)은 내가 있다라는 견해를 끊는 그릇이며,
인연(因緣)은 모든 진기한 것을 버리는 그릇이며,
무생법인(無生法忍)은 온갖 장애를 버리고 수기를 받는 그릇이며,
불퇴지(不退地)에 의지하는 것은 두려움이 없는 그릇이다.
남자여, 이런 것이 보살의 서른두 가지 법의 그릇이니라.”
이 법을 말씀하셨을 때 10천(千) 중생들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어 이렇게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중생들이 다 그러한 법그릇을 얻고, 우리도 그 법그릇을 이루게 해 주십시오.”
그때에 부처님께서 대수긴나라왕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대는 돌아가라. 그대 권속들이 혹시 걱정할지도 모르겠구나.”
[근심이 있는 법과 근심이 없는 법]
긴나라왕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로서 근심하는 것이 있으면 그는 보살이라 할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근심을 참는 이가 보살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보살은 어째서 근심이 있고, 어째서 근심이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긴나라왕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로서 네 가지 법이 있으면 그에게는 근심이 있을 것이다.
그 네 가지란 무엇인가?
무량무변한 중생이 있다는 말을 듣고 놀라며 두려워하거나,
무량무변한 생사를 받는다는 말을 듣고 놀라며 두려워하거나,
부처님의 지혜는 무량하다는 말을 듣고 놀라며 두려워하거나,
무량한 복덕의 장엄을 모으고 상호(相好)를 다 갖춘다는 말을 듣고 놀라며 두려워하는 것이니라.
긴나라왕이여, 보살로서 이런 네 가지 법을 성취하면 그에게는 근심이 생긴다.
긴나라왕이여, 보살로서 네 가지 법을 성취하면 그에게는 근심이 없다.
그 네 가지란 무엇인가?
무량무변한 중생이 있다는 말을 듣고 ‘내가 그들을 열반의 도에 편안히 있게 하리라’ 하면 그에게는 근심이 없고,
한량없는 생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선근을 닦으면 그에게는 근심이 없으며,
부처님의 지혜는 한량없다는 말을 듣고 ‘나도 그런 큰 지혜를 성취하리라’ 하면 그에게는 근심이 없고,
무량한 복덕의 장엄을 모으고 상호를 다 갖춘다는 말을 듣고도 근심이 없는 것이니,
이런 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긴나라왕이여, 또 보살로서 네 가지 법이 있으면 그에게는 근심이 있다.
그 네 가지란 무엇인가?
때때로 성문법을 깨달으려 하고,
때때로 연각법을 깨달으려 하며,
법이 멸하려 하여도 그것을 보호하지 않고,
보리에 머물도록 남에게 권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다.
긴나라왕이여, 또 보살로서 네 가지 법을 성취하면 그에게는 근심이 없다.
그 네 가지란 무엇인가?
아무리 심한 고통을 당해도 보리의 마음을 버리지 않고,
성문이나 연각의 마음을 내지 않으며,
목숨을 버릴지언정 바른 법을 버리지 않고,
100유순 밖에 있는 사람이라도 그에게 권해 보리의 마음을 내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긴나라왕이여, 또 보살로서 네 가지 법이 있으면 그에게 근심이 있다.
그 네 가지란 무엇인가?
구걸하러 오는 이를 보고는 성을 내어 꾸짖고
즐겁게 편안히 눕고
많이 배우려 하지 않으며
자기가 들은 법을 대중에 말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긴나라왕이여, 또 보살로서 네 가지 법을 성취하면 그에게는 근심이 없다.
그 네 가지란 무엇인가?
구걸하러 오는 사람을 보면 선지식이라 생각하여 침해하려는 마음이 없고,
자신의 즐거움만 즐기지 않고 항상 남을 즐겁게 하려하며,
많은 지식을 모으되 만족함이 없고,
들어 지닌 법을 대중에게 말하되 이로움을 바라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긴나라왕이여, 또 보살로서 네 가지 법이 있으면 그에게 근심이 있다.
그 네 가지란 무엇인가?
바라밀의 도를 모으지 않고,
4섭법을 닦지 않으며,
부지런히 정진해 중생을 교화하지 않고,
조그만 공덕에 만족하여 보살의 무량한 공덕을 닦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긴나라왕이여, 또 보살로서 네 가지 법을 성취하면 그에게는 근심이 없다.
그 네 가지란 무엇인가?
항상 부지런히 정진하여 갖가지 바라밀을 닦되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하고,
항상 부지런히 정진하여 4섭법을 모으며,
항상 부지런히 정진하여 중생을 교화하고,
부지런히 정진하여 온갖 공덕을 쌓되 보살의 무량한 공덕을 닦아 가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니라.”
부처님께선 이 네 가지 법을 말씀하신 뒤에 긴나라왕을 시켜 아사세왕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당신은 지금 보살의 근심이 없는 이 네 가지 법을 들었는가?”
아사세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들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까닭으로 대왕이여, 만약 보살이 보리를 행한다면 마땅히 근심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