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익범천소문경 제3권
8. 논적품(論寂品)[1]
[중생과 보살과 부처님의 행]
이때 사익범천이 등행보살에게 물었다.
“선남자여, 당신은 지금 무슨 행으로써 행을 삼습니까?”
등행보살이 대답하였다.
“나는 일체의 유위법(有爲法)을 따르는 중생의 행으로 행을 삼습니다.”
사익범천이 또 물었다.
“일체의 유위법을 따르는 중생들은 무엇으로 행을 삼습니까?”
등행보살이 대답하였다.
“모든 부처님께서 행하시는 바도 이 일체의 유위법을 따르는 중생의 행입니다.”
사익범천이 또 물었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무엇으로 행을 삼습니까?”
등행보살이 대답하였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제일의공(第一義空)으로 행을 삼습니다.”
또 물었다.
“범부가 행하는 것을 모든 부처님 역시 이것을 행하신다면, 무슨 차별이 있습니까?”
등행이 말했다.
“당신은 허공으로 하여금 차별이 있도록 할 수 있습니까?”
사익범천이 대답하였다.
“없습니다.”
등행보살이 말했다.
“여래께서 일체의 법이 비었다고 말하지 않으셨습니까?”
사익범천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등행보살이 대답하였다.
“그러므로 범천이여, 일체의 법은 차별이 없으며, 이 모든 행의 모양[行相]도 역시 그와 같다.
왜냐하면 여래께서는 모든 법은 차별이 있다고 말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네 가지의 범행]
이때 사익범천이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말한 바의 행처(行處)에서 행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모든 행 가운데 네 가지의 범행(梵行)이 있으니, 이것을 이름하여 행처에서 행한다고 합니다.
만약 사람이 네 가지의 범행을 떠나면 행처에서 행한다고 말하지 않으니, 능히 네 가지의 범행을 행하여야 이것을 이름하여 행처에서 행한다고 합니다.
범천이여, 만약 사람이 네 가지의 범행을 성취한다면 비록 텅 비어 한적한 곳이나 광야 가운데서 행한다 해도 이것을 이름하여 행처에서 행한다고 하지만,
만약 이러한 네 가지의 범행을 성취하지 못했다면 비록 누각[樓]ㆍ궁전[殿]ㆍ당(堂)ㆍ각(閣)이나 금은(金銀)으로 된 침상[牀榻]이나, 매우 좋은 이불이나 요 가운데서 행한다 하더라도 행처에서 행한다고 말하지 않으며, 또한 행처상(行處相)을 잘 알지 못한 것입니다.”
[바른 행]
사익범천이 또 물었다.
“보살은 어떤 행으로써 청정(淸淨)함을 보고 압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모든 행 가운데서 아견(我見)을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
또 물었다.
“만약 나의 참다운 성품을 얻으면 곧 참다운 지견(知見)을 얻을 수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만약 나의 참다운 성품을 본다면 곧 이것이 참다운 지견(知見)입니다.
비유하면 국왕의 금고(金庫)를 맡은 사람은 이미 꺼내어 쓴 것으로 인하여 남아 있는 것을 아는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이 나의 참다운 성품을 아는 것으로 인하여 참다운 지견을 얻습니다.”
또 물었다.
“어떻게 해야 나의 참다운 성품을 얻습니까?”
대답하였다.
“무아(無我)의 법을 얻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라는 것은 끝내 근본이 없고 결정됨[決定]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능히 이와 같이 안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나의 참다운 성품을 얻었다고 합니다.”
또 물었다.
“제가 문수사리께서 말한 바의 뜻을 이해한 것과 같다면, 나를 보기 때문에 곧 부처를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성품이 곧 바로 부처의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문수사리여, 누가 부처를 볼 수 있습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아견(我見)을 무너뜨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아견이 곧 법견(法見)이며, 법견으로써 능히 부처를 보기 때문입니다.”
사익범천이 또 물었다.
“행하는 바가 없는 것을 이름하여 바른 행[正行]이라고 합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만약 일체의 유위법을 행하지 않는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바른 행이라고 합니다.”
사익범천이 또 물었다.
“어떤 행을 바른 행이라고 합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보려고 하지 않으면서 행하는 것, 끊으려고 하지 않고 증득하려고도 하지 않고 닦으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행하는 것을 바른 행이라고 합니다.”
사익범천이 또 물었다.
“혜안(慧眼)으로 어떤 법을 봅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보는 바가 있으면 혜안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혜안은 유위법도 보지 않고 무위법도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유위법은 다 허망하게 분별하기 때문이니, 허망하게 분별함이 없는 것을 혜안이라고 합니다.
무위법은 비어서 소유할 것이 없으며, 모든 봄의 길[眼道]을 초월했으니, 그러므로 혜안은 역시 무위법을 보지 않는 것입니다.”
사익범천이 또 물었다.
“인연이 있고 바르게 행하는 비구는 도의 과보[道果]를 얻지 못합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바른 행 가운데는 도(道)도 없고, 과보[果]도 없고, 행(行)도 없고, 얻음[得]도 없고, 과보를 얻는 차별도 없습니다.
범천이여, 얻는 바가 없기 때문에 이에 얻었다고 이름하는 것이니, 만약 얻은 것이 있다면 마땅히 이는 증상만인(增上慢人)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바른 행은 증상만이 없으며, 증상만이 없다면 행도 없고 얻음도 없습니다.”
[도를 얻었다는 것]
사익범천이 또 물었다.
“어떤 법을 얻었기에 도를 얻었다[得道]고 하는 것입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했다.
“법은 저절로 생기지도 않고, 남에 의해 생기지도 않고, 또한 중연(衆緣)으로 생기지도 않으니, 본래부터 항상 생겨남이 없습니다. 이런 법을 얻었기 때문에 도를 얻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익범천이 또 물었다.
“만약 법이 생겨남이 없다면, 무엇을 얻는다는 것입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만약 법이 생겨나지 않음을 안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얻었다’고 하니,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만약 모든 유위법의 생겨남이 없는 상(相)을 본다면 곧 바른 지위[正位]에 들어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른 지위]
사익범천이 또 물었다.
“무엇을 이름하여 바른 지위라고 합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나[我]와 열반이 평등하여 둘로 만들지 않으면 이것을 바른 지위라고 하며,
또 평등을 행하기 때문에 바른 지위라고 합니다.
이 평등으로써 모든 고뇌를 벗어나기 때문에 바른 지위라고 하며,
요의(了義) 가운데 들어가기 때문에 바른 지위라고 하며,
일체의 기억과 생각을 없애기 때문에 바른 지위라고 합니다.”
이때 세존께서 문수사리를 칭찬하시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통쾌하게 이 말을 설하였으니, 진실로 말한 것과 같도다.”
이 법을 설하였을 때 7천의 비구들은 모든 법을 받지 않고도 번뇌가 다하여 마음에 해탈을 얻었으며,
3만 2천의 모든 하늘[天]들은 티끌을 멀리하고 더러움을 여의어서 법안(法眼)이 청정해짐을 얻었으며,
십천(十千)의 사람들은 애욕을 떠나 선정(禪定)을 얻었으며,
2백의 사람들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으며,
5백의 보살들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문수사리]
이때 사익범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문수사리법왕자는 능히 불사(佛事)를 짓고, 중생들을 풍요롭고 이익되게 하였습니다.”
문수사리가 말했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신 것은 법을 더하기 위해서 나오신 것이 아니며, 법을 덜기 위해서 나오신 것도 아닙니다.”
범천이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어찌하여 한량없는 중생들을 멸도(滅度)하게 하지 않으시며, 그대 역시 한량없는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지 않습니까?”
문수사리가 물었다.
“당신은 중생이 없는 가운데서 중생을 얻고자 합니까?”
범천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문수사리가 물었다.
“범천이여, 당신은 중생의 결정된 모습[決定相]을 얻고자 합니까?”
범천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문수사리가 물었다.
“범천이여, 당신은 모든 부처님께서 세간(世間)에 출생하신 상(相)을 얻고자 합니까?”
범천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문수사리가 물었다.
“범천이여, 무엇을 부처님께서 중생을 멸도(滅度)하게 하신다고 합니까?”
범천이 대답하였다.
“그대가 말씀하신 뜻과 같이 생사도 없고 열반도 없습니다.”
문수사리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모든 불세존께서는 생사도 얻지 않으시고 열반도 얻지 않으시며, 부처님의 여러 제자들 가운데 해탈을 얻은 이도 역시 생사도 얻지 않고 열반도 얻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열반이나 생사는 단지 이름[名字]을 빌려서 말한 것일 뿐 실제로는 생사의 오고 감이나 멸하여 사라져서 열반을 얻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범천이 또 물었다.
“누가 이러한 법을 믿습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모든 법에 대해 탐착함이 없는 자입니다.”
범천이 또 물었다.
“만약 탐착한다면 무엇에 탐착합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탐착은 허망한 것입니다.
범천이여, 만약 탐착이 참된 것이라면 끝내 증상만인(增上慢人)은 없을 것이나, 탐착은 허망하기 때문에 수행자는 그것을 알고 탐착하지 않습니다.
만약 탐착하지 않는다면 번뇌[有流]가 없고,
만약 번뇌가 없다면 생사에 오고 감이 없으며,
만약 생사에 오고 감이 없으면 이것이 곧 멸도(滅度)입니다.”
범천이 또 물었다.
“무슨 까닭에 멸도라고 말합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멸도라는 것은 모든 인연이 화합하지 않음을 말합니다.
만약 무명(無明)이 모든 행(行)의 인연과 화합하지 않는다면 모든 행은 일어나지 않으니, 만약 모든 행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를 멸(滅)이라고 합니다.
서로 일어나지 않으면 필경에는 소멸하며, 이 도(道)를 얻기 때문에 생겨나는 곳이 없으니, 이러한 것을 4성제(聖諦)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