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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남진 13회차
언 제 : 2015 . 04. 19 (토요무박)
어디로 : 댓재(1.5km)~황장산(4.7km)~광동댐이주단지(5.5km)~덕항산(8.0km)~건이령(6.4km)~피재
: 도상거리 26.1km
누구랑 : 대간산악회와 함께
시 간 : 8시간 18분
날 씨 : 흐리고 가끔 비 (산행 마무리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비가 내림)
산행지도 :
고도표:
대중교통 :
댓재 : 삼척터미널에서 하장행 버스를 타고 댓재에서 하차 (약 40분 소요)
삼척터미널 → 하장 : 07:10, 08:50, 09:40, 10:50, 11:30, 12:30.......
피재 : 조탄에서 태백터미널가는 버스를 이용한다.
태백터미널 → 피재 : 06:10, 08:50, 09:50, 12:20, 14:45, 17:00, 18:00, 19:00
피재 → 태백터미널 : 07:30, 08:30, 10:10, 11:25, 13:15, 15:00, 18:00, 19:20
산행사진 :
지난 주에 무박 산행을 갔더니 생각보다 일출이 빨라서 야간 산행은 거의 한시간 정도밖에 하지를 않았다.
한시간 정도 야간산행이라면 굳이 전일 산행지로 내려가 자거나 당일 산행을 할 필요가 없기에 앞으로 당분간은 무박 산행을 이어가기로 했다.
다음 구간을 이어가기 위해 안내산악회를 알아보니 마침 "좋은 사람들 산악회"의 일정이 맞기에 신청을 하였다.
24:00경에 사당에서 출발한 버스는 양재와 죽전에서 나머지 인원을 태우고 목적지인 댓재로 출발을 하였다.
버스는 중간에 휴계소를 들려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04:30경에 댓재에 도착을 하였는데 간간히 비가 내리고 있어서 비옷을 챙겨 입고 산행에 나섰다.
댓재(810m) 정상석
두타산과 덕항산을 잇는 백두대간 마루금에 있는 댓재는 삼척시 미로면과 하장면을 연결하는 고개이로 예로부터 삼척지방에서 하장, 정선을 거쳐 서울로 가는 주요 고갯길이었다.
대나무가 많다는 뜻에서 유래된 댓재는 죽현(竹峴) 또는 죽치령(竹峙嶺)이라고도 부른다.
1984년 10월 지금의 도로가 개통되기까지는 영동(강릉지방)과 영서(원주지방)를 넘나들던 옛 고갯길로 보행자들의 수많은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다.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기고....
04:40 댓재 이정표에서 산행 시작
05:00 댓재에서 20여분 오르니 황장산에 도착을 하였다.
황장산 이정표
황장산(黃腸山, 1059m)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과 미로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왕실의 관곽(棺槨)재와 궁궐 건축에 쓰일 황장목(黃腸木)을 확보하기 위해 일체의 벌목과 개간을 금하는 봉산(封山)으로 지정한 황장봉산(黃腸封山)이 ‘황장산’(黃腸山)으로 변화한 것이다.
황장산 삼각점
삼각점 안내문
05:13 자암재 7.1km 이정목
05:17 큰재까지 3.5km
05:27 백두대간 안내문이 있는 무명봉
05:42 1,069봉 전경
1,069봉 표지판
1,069봉 삼각점
05:42 큰재까지 1.9km
05:46 준경묘 갈림길
준경은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5대조이며 목조의 아버지인 양무장군의 묘이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인 목조 이안사는 전주에 살았다가 전주산성 별감과 기생을 사이에 두고 다투어 사이가 나빠 처가인 강원도 삼척으로 피해 왔는데, 삼척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 양무장군이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목조 이안사는 묘 자리를 찾고 있던 중 산 속에서 한 도승이 동자승에게 하는 애기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는데 그 내용인 즉 “이 곳에 장사를 지내면 후손 중 5대 안에 한 나라를 개국하는 그런 인물이 태어날 것이지만, 그럴려면 반드시 개토제(開土祭)때 100마리 소를 제물로 바쳐야 하고, 금으로 만든 관을 사용해야 한다” 이었다.
이에 목조는 궁리 끝에 100마리의 소(百牛)는 흰 소(白牛)로 대신하고, 금으로 만든 관(金棺)은 황금빛이나는 귀릿짚으로 대체하여 도승의 예언대로 백우금관으로 양친을 안장하였다.
그렇게 해서 예언대로 이성계가 태어나게 되었고, 조선을 창업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런데, 백우(百牛)를 흰소(白牛)로 대신하여 천년 갈 조선의 국운이 5백년만 유지 되었다고하며, 또는 준경묘 사방 5봉의 산 수명이 각각 1백년이라 조선왕조의 수명이 500년이 되었다고도 한다.
준경묘 갈림길에는 억새밭이 있다.
05:55 백두대간 안내문
안내문 옆 이정표
편안한 등로가 이어진다.
1,062봉에서 큰재로 내려가는 등로에서 풍력발전기가 조망된다.
06:04 큰재까지 400m
06:08 큰재 전경
큰재는 삼척시 하장면 속암리 에서 동쪽의 귀네미 골로 넘어 가는 고개로써 대치재 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큰재 이정표
큰재에는 5년전 북진 때는 보이지 않던 풍력발전기 새로 설치되어 있으며, 대간길이 많이 변형되어 있어 예전의 등로는 포기하고 임도를 따라 대간길을 이어간다.
비가 온 뒤라 운무가 피어 오른다.
등산 안내도
새로 설치된 풍력발전기들
고냉지 밭 전경
06:23 물탱크가 있는 봉우리
풍력발전기와 고냉지 밭
귀네미마을과 연결되는 콘크리트 포장도로
자암재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간다.
06:29 도로를 버리고 좌측 숲길로 들어섰다가 다시 도로로 내려선다.
도로 좌우측의 고냉지 채소밭
귀네미 마을 방향에서 택시가 올라오더니 등산객이 내린다.
아마도 지난 산행때 귀네미 마을로 탈출했거나, 알바를 했을 듯 싶다.
06:32 덕항산 정상 5km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능선으로 올라선다.
등로에서 바라본 귀네미(牛耳谷) 마을
태백시 하사미동 귀네미마을의 유래는 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의 형세가 소의 귀를 닮았다하여 우이령(牛耳嶺)이라 부르는 데서 연루한 이름이라고 한다.
귀네미마을은 1985년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에 광동댐이 만들어 지면서 광동리와 조탄리 그리고 숙암리에 살던 37가구 주민들이 이주하여 집단으로 마을을 형성한 곳이다.
주민들 팍팍하고 가파른 산비알을 개간하여 전국 제일의 고랭지 배추밭을 일구는데 성공하였는데, 습기를 함유한 안개 상습지역이고 바람까지 거센 지역이라 고랭지 채소를 경작하기에는 좋은 조건이 그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귀네미마을의 30여만 평(坪)에 조성된 고랭지 배추밭은, 태백시 매봉산 고랭지 배추밭, 강릉 안반덕, 평창 600마지기에 이은 우리나라 4대 고랭지 배추밭으로 해마다 8월이면 이곳에서만 약 230만여 포기의 배추가 출하된다고 한다.
06:55 자암재 전경
자암재 이정표
자암재는 삼척시 하장면 숙암리 귀네미 마을과 환선굴로 유명한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를 연결하는 고개이다.
자암재는 장암재라고도 부르는데 환선굴이 있는 대이리가 있는 곳에 장암목이 마을이 있어 그렇게 부르기도 하지만 고갯마루에 있는 바위들이 철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자색을 띠고 있기 때문에 자암재라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무슨 꽃?
07:22 덕항산 2km 전
07:27 환선봉 전경
환선봉(幻仙峰, 1,180m) 정상석
강원도 태백시 하시미동과 삼척시 신기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일명 `찌걱산' 또는 지각산으로 불리운다.
산 동쪽 깎아지른 절벽에는 설패바위, 촛대바위,금강문 등 수많은 기암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고, 미륵봉 밑에는 천연기념물 178호로 지정된 환선동굴에는 황금색 종유석, 석순 폭포 등의 기묘한 모습이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
幻仙峰은 공식적으로는 지도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한 무명봉으로 이 지역에서는 지각산(地角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 오다가, 1990년대에 이 봉우리 아래의 환선굴(幻仙窟)이 관광명소로 개발되면서 이를 둘러싼 산줄기의 중앙부에 가장 높게 솟구친 점을 감안하여 삼척시에서 임의로 환선봉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은 봉우리이다.
환선봉 이정표
환선봉 정상석 뒷편으로 가면 시계가 탁 트인 전망대가 있어서 몇장 담아 보았다.
귀네미마을 방향
환선굴 입구
환선굴의 유래와 전설
먼 옛날,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마을의 촛대바위 근처에 폭포와 소가 있었는데 아름다운 한 여인이 나타나 멱을 감곤하였다고 한다.
어느날 마을 사람들이 쫓아가자 지금의 환선굴 부근에서 천둥번개와 함께 커다란 바위더미 들이 쏟아져 나오고 여인은 자취를 감추었는데, 사람들은 이 여인이 선녀로 환생한 것이라 하여 바위가 쏟아져 나온 곳을 환선굴이라 이름 짓고 제를 올려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게 되었다.
여인이 사라진후 촛대바위 근처의 폭포는 물이 마르고 환선굴에서 물이 넘쳐 나와 선녀폭포를 이루었다.
쏟아져 나온 바위는 지금의 환선굴 가는 길목에 남아있고 바위더미 위에는 산신당이 지어져 있다.
또 다른 유래는 한 스님이 도를 닦기 위해 환선굴로 들어갔으나 되돌아 나오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사람들은 이 스님 또한 환선하였다고 생각하여 환선굴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스님이 짚고 왔던 지팡이를 산싱당앞에 꽂아 두었는데 지금의 엄나무가 바로 그것이라고 전하며 환선굴내에는 스님이 기거하던 온돌터와 아궁이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한다.
지나온 능선들
07:42~ 08:01 아침식사
08:02 덕항산 1.2km 前
낭떠러지 및 위험한 구간에는 로프를 설치해 놓았다.
08:17 쉼터
쉼터 이정표
08:24 덕항산 정상부 전경
덕항산(德項山, 1,072.5m) 정상석
덕항산은 태백시 하사미동과 삼척시 신기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옛날에는 덕메기산 이라 불렀다고 한다.
삼척쪽에서 부르던 것으로 “저 너머(태백 하사미)에 화전하기 좋은 더기(고원)가 있는 뫼”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덕목이로 변했다가 " 項"(메기→목→項)자를 써서 덕항산으로 표기된 것 같다.
덕항산은 산 전체가 석회암 으로 되여 있고 산 아래 삼척쪽에 유명한 한선굴이 있으며, 그 밖에도 동굴이 54개에 이른다고 한다 산의 동쪽은 험한 벼랑 이며 서쪽은 완만한 경사로 이루워진 산 이다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에 소재한 대이리군립공원에 소재하고 있으며 약 12km 길이의 무릉천이 덕항산에서 동으로 계곡을 따라 흘러 五十川에 합친다.
산세가 수려하고 동남으로 펼쳐지는 병풍암,거대한 암벽,칼로 벤 듯한 암면,우뚝 솟은 촛대봉 등 특이한 절경을 이룬다.
덕항산 삼각점
등산 안내도
덕항산 이정표
덕항산 표지석
덕항산 안내문
무슨 꽃?
08:40 구부시령 직전에 있는 이정표인데 구부시령으로 표기되어 있다.
구부시령 이정표가 있는 봉우리
08:43 구부시령(九夫侍嶺)
태백시 하사미동의(푯대봉 뒤쪽마을) 외나무골에서 삼척시 도계읍 한내리로 이어지는 고개이다.
옛날 한내리 땅에 기구한 팔자를 타고난 박복한 여인이 살았는데 서방만 얻으면 죽고 또 죽어 무려 아홉 서방을 모셨다고 하여 구부시령(九夫侍嶺)이라고 한다.
구부시령 이정표
구부시령 안내문
09:00 1,055봉 전경
1,055봉 표지판
서울에는 만발한 진달래가 이제서 피기 시작한다.
1,055봉을 지나면서 겨우살이가 지천에 널려있다.
09:17 건의령 5.3km 前
참나무 사이에 멋진 소나무
09:24 건의령 5km 前
09:48 1,017봉 (석희봉)
10:01 백두대간 안내문
등로 우측으로 창고같은 건물이 조망된다.
10:07 한내령
삼척시 도계읍 한내리에서 태백시 상사미동 삼밭골로 이어지는 고개이다.
태백쪽에 넓은 목초지가 조성되어 있고 철조망이 처져있으며, 삼척쪽은 등로가 희미한 보이는데 고개의 역할이 끝나 버린 것 같다.
10:38 한의령 1.2km 前
10:43 푯대봉 삼거리
푯대봉은 대간에서 50여m 살짝 벗어나 있어서 갔다가 다시 와야 한다.
푯대봉 삼거리 이정표
푯대봉 정상부 전경
푯대봉(1009.2m) 정상석
삼척시 도계읍과 태백시 상사미동 경계에 있는 봉우리이다.
푯대봉은 전국적으로 상당히 많이 있는데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토지조사를 하면서 토지를 측량을 하기 위해 산봉우리에 삼각기점을 잡은 푯대를 박았다 하여 푯대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푯대봉 삼각점
잣나무숲 사이로 편안한 등로가 이어진다.
11:12 건의령(巾衣嶺, 840m)
강원도 태백시 상사미동에서 삼척시 도계읍을 넘는 고개로 상사미마을 사람들이 백두대간을 넘어 오십천 상류에 있는 도계나 고사리에서 서는 장을 보러갈 때 넘는 지름길로 내륙에서 해안으로 연결하는 고개이다.
지명의 유래를 보면 고려말 때 삼척 육배산으로 유배 온 공양왕이 근덕 궁촌에서 살해되자 고려의 충신들이 건의령을 넘으면서 다시는 벼슬길에 나서지 않겠다고 하며, 고갯마루에 관모와 관복을 걸어 놓고 고개를 넘어 태백산 속으로 몸을 숨겼다고 한다.
이 고개에서 관모와 관복을 벗어 걸었다고 하여 관모를 뜻하는 건(巾)과 의복을 뜻하는 의(衣)를 합쳐 건의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건의령 전경 : 예전에 보지 못했던 목책이 설치되어 있다.
전의령 좌측에는 임도가 보인다.
등산 안내도
뒤 돌아 본 건의령 전경
임도 쪽에 작은 창고같은 건물이 보이는데 당집인 듯 하다.
11:39 안테나가 있는 봉우리
11:48 표기가 특이한 이정목
12:00 새목이재(鳥項:1850m)
새목이재는 넘나드는 고개가 아닌 능선의 V선을 이루는 곳으로 풍수지리에서 새의 목과 닮은 산세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삼수령까지 3.5km 이정표가 있다.
야생화가 지천인데 무슨 꽃인지......
12:28 960봉 전경
960봉 삼각점
12:29 성철봉
12:46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만나고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진행한다.
능선을 따라 도로가 이어진다.
12:51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다시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12:56 피재에 조성돠어 있는 공원에 도착
삼수령 조형탑
三水亭
공원 전경
삼수령(피재) 전경
12:58 삼수령 정상석에서 산행 종료
점심식사 후 황지를 관람하였다.
황지연못은 낙동강 1300리의 발원지로 태백시내 중심부에 위치해 있고 이 못에서 솟아나는 물은 드넓은 영남평야를 도도히 흘러가게 된다.
연못의 둘레가 100m인 상지, 중지, 하지로 구분되며 1일 5,000 톤의 물이 용출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황부자 집터가 연못이 되었다하여 황지(黃池)라고 부르는데 훨씬 이전에는 하늘 못이란 뜻으로 천황(天潢)이라고도 하였다 한다. 황부자 전설은 이곳에 시주를 요하는 노승에게 시주 대신 쇠똥을 퍼 주었는데 이것을 며느리가 보고 놀라 시아버지의 잘못을 빌며 쇠똥을 털어내고 쌀을 한 바가지 시주하니 "이 집의 운이 다하여 곧 큰 변고가 있을 터이니 살려거든 날 따라 오시오. 절대로 뒤를 돌아다 봐서는 안된다" 라는 노승의 말을 듣고 뒤따라 가는데 도계읍 구사리 산등에 이르렀을 때 자기 집 쪽에서 갑자기 뇌성벽력이 치며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나기에 놀라서 노승의 당부를 잊고 돌아다 보았다. 이 때 황부자 집은 땅 밑으로 꺼져 내려가 큰 연못이 되어버렸고 황부자는 큰이무기가 되어 연못 속에 살게 되었다. 며느리는 돌이되어 있는데 흡사 아이를 등에 업은 듯이 보인다. 집터는 세 개의 연못으로 변했는데 큰 연못이 집터, 중지가 방앗간터, 하지가 화장실 자리라 한다. (태백시청 홈페이지에서 인용)
산행 시작할 때 간간히 뿌리던 비는 산행 중간에 멈추어서 산행을 하는데 지장을 느끼지 않았는데 마지막 1시간정도를 남겨두고 제법 많은 비가 내렸지만 산행 마무리에는 큰 지장을 받지 않았다.
산행이 끝나고 태백시에 있는 식당으로 이동을 하여 물닭갈비를 먹었는데 맛이 니맛도내맛도 아니라 몇점 먹지도 않고 소맥만 들이키고 말았다.
식사 후 태백시내에 있는 황지를 구경하고 16:00가 다되어서 서울로 귀경하는데 비가 와서 그런데 많이 막혔다.
귀경 도중 줄기차게 내리던 비때문에 집에 갈 걱정이 많았는데 서울에 도착하니 비가 거의 그치고 있었다.
버스는 선바위역에서 정차를 하였고 4호선 지하철을 이용해서 집으로...
일기예보에 비가 온다고 하여 산행을 걱정했는데 무시히 한 구간을 마칠수 있어서 다행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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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닭갈비는 무조건 춘천에서
드셔야 된다니까요~ㅎ
글이 긴걸보니 산행도
멋지셨을것같아요
이러다 대장님
이북 까정 가실것같은 예감 ㅡㅋㅋ
비오는데 수고 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