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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요지>
0. 이 글은 정치나 경제에서 주술을 믿지 말고, 합리적 이성과 타고난 양심과 영성을 추구하자는 호소입니다.
0. 가상화폐와 주가지수 선물의 실체를 밝힙니다. 가상화폐와 주가지수 선물은 주식 같이 수익물을 내지도 못하며, 가상화폐는 원금이 커지는 성질도 없습니다. 가상화폐와 주기지수 선물은 100% 주술적 망상이 만들어놓은 가격물입니다. 가상화폐의 이론가격은 0까지 떨어질 수 있는 완전 가짜입니다.
0. 지금의 시국사태보다 더 위험한 것은, 기독교가 정치에 참여하고, 이념 논쟁을 부추겨서 교회의 분열과 복음 전파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0. 이 글은 진보가 추구하는 사회정의와 보수가 추구하는 자유시민국가를 함께 만들어내자는 내용입니다.
시국사태를 보면서 1원을 걸겠습니다.
지금의 시국사태를 두고 100만원 내기를 걸은 분이 있습니다. 저도 여기에 함께 하며 1원을 걸겠습니다. 점쟁이 주술 같은 망상이 이기면 1원을 내고, 인간의 이성과 하나님의 영성이 이겨도 1원을 내겠습니다. 이 내기의 결정 기간은 빠르면 3개월 이전, 늦어지면 3년이 걸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1원 내기는 어린아이 장난 같은 말이거나 누구를 조롱하고, 비하하는 말로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뜻은 아닙니다. 내기를 건 어느 한 쪽이나 양 쪽을 보고 특정지어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성에서 하나님이란 말도 극히 절제해서 사용해야 하는 말입니다. 자칫하면 전능자 하나님의 성호를 망령되게 일컫는 실언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1원 내기'는 전능자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드리는 기도가 들어있는 간절한 염원이며, 사람에게는 애끓는 탄식과 절규와 호소가 들어있습니다.
제가 1원 내기를 거는 것은 이러합니다. 요즈음 소리를 높이는 개인 매체나 영상들을 보면 극단적 발언과 행동을 보여야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보고, 따르고, 행동하기 때문에 저도 '1원'이라는 극적인 표현을 해야 사람들이 제 말에 눈을 돌리지 않을까 하는 뜻을 담아 사용했습니다.
1억원 내기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제가 땅값 가치 찾기 토론에서 1억원 걸기를 한 적이 있고, 그 1억원 내기는 아직도 유효합니다(지금도 검색하면 바로 나옴). 주제는 땅이 내는 샘물은 1원의 가격도 국민소득(GDP)입니다. 그러나 샘물을 내는 땅의 땅값 매매차익은 1경원이라도 그것은 국민소득이 아닙니다. 1원의 물은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지만, 1경원의 땅값은 세월의 흐름에서 두고두고 매매차익을 내어도 그 매매차익은 영원히 물(가치)이 없습니다. 1경원이 커진 값의 비율만큼 물가만 올라갑니다.
매년 솟아내는 1원의 물값을 ∞기간으로 계속하면, 물값 GDP 총액(은행 이율로 계산한 영구연금총액)으로 1경원이 ∞로 커진 값을 0이 되게 하여(수렴하여) 그 가치를 회수(실현)할 수 있습니다. 학자들은 이것을 금융시장에서 발생하는 ‘가치(이익)의 실현’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간이 ∞가 아니면 기한이 없는 영구자본의 금융거래에서 발생하는 매매차익은 영원히 가치가 실현되지 않습니다.
∞ 기간 - 유한 기간(경과 기간) = ∞ 기간
∞ 기간 미실현 가격 - 유한 기간 실현가치 = ∞ 기간 미실현 가겨
1경원의 n 기간의 가격 = 1경원 * (1+성장률)^n/(1+이자율)^n, n이 ∞이면 1경원이 0에 수렴,
단, [성장률 < 이자율]이어야 하고, [성장률 > 이자율]이면 1929년처럼 가격 붕괴로 경제대공황이 와버린다.
그러므로 ∞ 기간 가격인 토지 매매차익과 주식 매매차익을 ‘이익 실현’이라고 하는 말은 사회적으로 가치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허구입니다(필자는 이익 실현이라는 전문용어를 알고 있고, 학생들에게 가르쳐 온 회계학 전공자임).
물론 주식도 성경이 허용한 거래법처럼 한시주식으로 하면 이익이 실현됩니다. 한시주식은 같은 회사의 지분, 권리, 이익 배당을 모두 누리면서도 가격은 약 절반 가격으로 투자가 가능합니다(수익은 같은데 투자비용은 반값). 그러면서 투기나 가격의 불안 요소가 시장기능으로 자동 해소되어 지금처럼 금융위기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땅이 내는 샘물은 가치물이지만, 샘물을 내는 땅(땅값)은 가치물이 될 수 없습니다. 기업이 내는 당기 순이익은 가치물이지만, 순이익을 내는 기업의 주식 매매차익은 영원히 1원도 가치물이 들어있지 않습니다(단, 기업의 실물 투자분과 이익 유보분 = 실물 재투자, 축적분 제외). 가상화폐는 영원히 가치 생산도 없으며, 그 매매차익은 영원히 아무것도 없습니다.
가상화폐의 주술과 실체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의 가상화폐 매매차익은 사람의 발을 딛지 않는 무인도를 팔고 사거나 하늘의 달과 별을 팔고 사면서 돈을 벌었다고 하고, 재산을 가졌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땅은 물(가치)을 내고, 기업(주식)은 수익을 냅니다. 그러면서 그 원금 차익은 가치물이 아닙니다.
그런데 가상화폐와 주가지수 선물의 투자가격과 매매차익은 영원히 수익물도 없고, 매매차익은 가치물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블록체인 암호기술은 거래의 결제수단일 뿐입니다. 블록에 가입된 거래자 간의 암호 식별 번호(아이디) 정도의 역할만 합니다. 사용가치는 암호기술 개발에 투입한 개발비(사람을 속이는 용어 채굴비)뿐입니다. 화폐로 말하면 화폐의 재료와 발행비를 뜻합니다.
이 말이 어려우시면, 결제수단에서 사용하는 ㄱ. 실물화폐(금과 은)와 ㄴ. 명목화폐(지폐나 주화)의 차이를 아시면 이해가 쉽습니다. ㄱ은 사용에 불편이 있고 보관에도이 위험이 있습니다. 빵을 하나 사고 결제를 하려고 해도 금과 은은 가격을 쪼개서 지불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ㄴ은 값을 쪼개서 거래하기 편리하며, 보관도 쉽고, 안전합니다.
지금의 가상화폐는 이런 결제방식을 최첨단 과학기기를 이용한 디지털 결제수단입니다. 금속화폐에서 지폐를 사용하는 결제방식의 차이도 이와 같습니다. 블록체인 암호기술은 기술로서 가치는 있지만, 그 기술의 자본가격, 곧 가상화폐 가격은 허구입니다. 암호기술을 개발하는 실물 투자인 개발비뿐입니다. 그래서 가상화폐는 화폐가 될 수 없고, 화폐가 되어도 화폐는 스스로 커지는 성질이 없어서 매매차익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지폐가 금속화폐보다 결제에 편리하고 안전한 기술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지폐에서 무슨 생산이 있거나 매매차익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가상화폐 기술은 금속이 지폐로 바뀐 것과 같은 결제기술의 개량이지 이것이 생산활동을 하는 실체는 아닙니다. 그래서 가상화폐 매매차익은 그 체인에 가입한 사람들이 낸 판돈을 서로서로 따먹기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지금은 가상화폐가 아니라도 일부 은행이나 금융기관에서 블록체인 암호기술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굳이 가상화폐를 고가로 사야 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0. 지폐가 실물화폐보다 결제수단이 편리하다고 1만원권 지폐가 2만원이 되지는 않는다.
0. 암호화폐 결제기술이 안전하고 편리하다고 해도 그 암호화폐가 값이 커지는 성질은 전혀 없다.
0. 그래서 가상화폐는 토지와 주식보다도 달라서 내재가치가 없는 가짜 상품이다.
0. 가상화폐는 ∞ 기간을 소유해도 생산된 실물은 영구 0이다.
0. 발이 닿지 않는 무인도 토지, 심산유곡의 임야, 바다, 달, 별은 미래의 기대가치가 존재하지만, 가상화폐와 주가지수 선물은 실체도 없고 미래 기대가치도 영구 0인 완전 가짜 가격이다 .
가상화폐와 기축통화, 주술인가? 마술인가?
최근 한 나라의 총수가 된 어느 정치인은 가상화폐 시장을 키우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총수 일가는 최근에 각자 가진 가상화폐를 팔아서 1조원(?)의 수익을 올렸다고 하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가상화폐를 키우려면 가지고 있거나 더 매입을 해야 할텐데 왜 팔아버리나요? 취임식 참여에도 돈을 내야 하고, 정치도 약자에게 필요한 긍휼에도, 전쟁의 진행과 종식에도 돈으로 계산하여 머리를 굴립니다. 지도자라기보다 돈벌이 전문가이지요.
ᆢ라는 기축통화는 성전에서 돈놀이했던 세겔화처럼 마술을 부립니다. 기축통화는 이자율을 높이면, 돈값이 올라서 돈을 벌고, 이자율을 내리면 금융가격이 올라서 돈을 법니다. 그래서 기축통화는 성전의 세겔화처럼 세계의 부를 흡입하는 빨대 기능을 합니다. 지금 세계인이 가지고 있는 달러만큼 그 부가 기축통화국으로 빨려 들어간 셈이지요. 나라가 기축통화로 세계의 부를 사들이며 살고 있으니 실물 거래는 늘 적자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실물 적자마저도 이익이 나게 하겠다고 세금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금융시장이 이렇게 시장에서 가치 흡입의 빨대 기능을 하고 있어도 그 사실과 실체를 모릅니다. 경제 학자나 금융의 전문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금융투자가의 투자 안내는 ‘**이 ᆢ을 안내하는 시장'과 비슷합니다. 투자 전문가들의 시장분석과 전망 등은 틀린 말이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니라는 뜻입니다(하늘의 해가 도는 것은 보이니 돈다는 말이 맞기는 하지만, 실제는 땅이 돌고 도는 것이므로 틀린 말이 되는 것과 같다는 의미).
지금도 세계 도처에 나가 있는 기축통화가 본국으로 돌아와서 실물 결제를 요청아면 이 나라는 하루 아침에 붕괴합니다. 이것이 계시록이 말하는 짐승의 표 거래와 바벨론 경제의 최후 양상입니다.
누구든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의 시장이 이렇게 된 이유는 우리가 레위기 25장의 말씀을 무시하였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는 A. 성경 레위기 25:3의 가격, B. 레위기 25:15,16의 가격, C. 레위기 25:23의 가격을 구분하여 거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경전으로 삼고 있는 종교인들도 이를 모르며 가르쳐 주어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인간의 이성과 지성, 영성과 양심이 이를 수용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금융시장에서는 가격 실체의 ABC도 기초에서 식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ABC를 식별하지 못하니 경제 대국이 되어서도 우리의 경제는 늘 불안합니다. 세계 경제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이 3,500년 전에 이미 시장에서 팔고 사는 대상물과 거래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함에도 이를 무시하거나 거역하니 거래를 금지한 가격이 사장을 흔들고 있습니다. 시장이 흔들리니 정치도 흔들리고, 이것이 반복과 지속을 계속하니 실업자가 생기고 물가는 오르기만 하니 백성들의 삶이 고달프고 지칩니다. 탄식과 아우성이 터지지만 그 원인은 잘 모릅니다.
그래서 고질적 문제는 정치의 잘못으로 응집되기 때문에 특이한 일(사건)이 생기면, 이쪽이든, 저쪽이든 참지 못하고 흥분합니다. 그리고 거리로 뛰쳐나옵니다. 이런 인간 반응을 비약하여 표현하면 공산주의도 나오고, 민중혁명도 나오고, 계엄(戒嚴)령, 계몽(啓蒙)령, 심지어 줄탄핵과 내란에 개몽(犬夢)령 소리까지 나오는 것입니다.
1원 내기와 1억원 내기
마지막으로 1원 내기 다시 돌아갑니다. 2004년 제가 내어 걸은 1억원 내기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지금도 컴퓨터에 “땅값 가치 찾기 1억원 내기 토론”으로 검색하면 바로 나옵니다. 그래도 제법 큰 금액이므로 한번 도전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1억원이 걸려있으니 안되면, 금융투자 전문가, 이것도 안되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사람에게 조언을 받아서라도 한번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관련 사이트 : 사상초유 '1억원 내기토론' 성사될까?
지금도 실물 없는 금융시장은 금융조달 수단이 아니고 가짜를 팔고 사는 시장입니다. 이 가짜의 극치가 주가지수 선물거래나 가상화폐 거래입니다. 가격은 숫자 외 존재하는 것(원금과 원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경제적으로만 보면 이것이야말로 말세적 징조인 “가증(완전 가짜)한 것이 거룩(진짜)한 곳에 서 있는” 꼴입니다. 이것이 레위기 25장 거래법 위반에서 시작하여, 예수님 앞에서 세겔화를 팔고 사다 청소를 당한 환전상으로 옮겨졌고, 지금은 천문학적 숫자로 커진 거대한 허구가격이 금융거래라는 가면을 쓰고 지구촌 사람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시국 사태에 대한 1원 내기도 비슷합니다. 점쟁이 주술 같은 생각이 이기면 1원을 내고, 인간의 이성이나 하나님의 영성이 이겨도 1원을 내겠습니다.
주술 같은 망상 : 인간의 이성과 영성, 어느 것이 이길까?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수1:7)
사람은 자기 정서나 특정 이념에 빠져들면, 객관적 사고를 하지 못하게 됩니다. 자기 정서를 고집하기 때문에, 과학과 미신도 기초 단계에서 식별하지 못합니다. 천동설 신봉 사회는 지구가 돈다고 하면 그것이 사회 불안을 조성하는 말로 오해합니다. 법을 배운 사람이 좌든 우든 그 법을 자기가 가진 이념의 도구로 사용합니다. 경제학자의 경제 지식과 정보, 논리와 정책마저도 자신과 자기 집단의 이념적 도구로 사용합니다.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이 역사를 자기 이념의 유지와 전파 수단으로 삼습니다. 역사 선생님이 군중들 높은 자리에서 소리 소리 지르는데 끝까지 들어보아도 역사는 없습니나. 역사는 '과거'를 되짚어서'현재'를 말하는 것인데, 시간 내내 들어보아도 과거는 없고 '지금의 상태'만 말하고 있습니다. 범위도 종합적 분석보다 단편적 분석입니다. 이런 안목에 자기에 정서나 이념이 접목되면, '우물 안에 개구리' 처럼 어느 한 쪽만 보여서 그 쪽으로 기울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립이 격할 때는 이 쪽이든, 저 쪽이든 끝(극단)에 서 있기를 선택합니다. 인터뷰를 하는 것을 보면, 아는 것도 좀 있기는 한데, 정상적인 신앙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분인데, 시국관은 단순하고, 우직한 이분법적 논리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영의 가르침을 받아서 시대를 앞질러 내다본다는 자칭 타칭 듣게 되는 예언자의 역할자도, 소리 소리 들어보면 이웃과 자비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없습니다. 오직 정치나 이념만 있습니다. 그래서 이웃 사랑과 자비를 가르친 성경 말씀과 예수님에 비교하면 너무 다른 ...입니다.
법을 어긴 범법자는 이쪽 저쭉 구분 없이 합당한 조치가 있어야지 그 자리에 남아 있으면 되겠습니까? 그리고 나라는 진정한 정의 사회(진보)와 자유 민주 시민국가(보수)가 되도록 새 판을 짜야지요. 새집을 지어야지, 왜 허물어져 가는 헌집을 리모델링 하려고 합니까? 필자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이조시대에 정치는 당파 싸움에 빠져서, 그 당파 싸움을 그치고, 토지제도를 개혁하여, 실사구시로 살자는 실학자들의 호소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외세에게 이 나라 국권을 약 40년간이나 빠앗겼습니다. 이것도 부족하여 동족상잔의 참극을 뼈저리게 겪어야 했습니다. 이때 발생한 정서 대립과 이념 갈등이, 지금은 정치에서 진영논리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지금 당리당략을 앞세우는 진영논리와 정쟁은 이조시대의 정치와 같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해묵은 갈등에 시국사태를 맞은 당파적 대립에는 실학자의 호소가 이념 투쟁에 묻혀버립니다.
저는 지금 이런 시국사태가 어느 쪽이든 구분 없이 그들의 주장에는 점쟁이 주술 같은 생각, 언어, 행동이 들어있다고 봅니다. 이런 주술 같은 망상이 중세의 '마녀사냥' 같은여론 재판을 지금도 할 수 있습니다.
1원 내기는 점쟁이 주술 같은 이념, 1억원 내기는 Baal 제도의 타파에 걸린 주제입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엡 2:14)
부족한 제가 이런 시국사태를 보면서 1원을 겁니다. 1원 내기는 상징성을 갖습니다. 내면을 파고 들면 1원보다 큰 1억원이 걸려있습니다. 이 1원 내기의 주제는 어느 쪽도 편을 들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 나라는 양극화 상태입니다. 어느 분은 현재 기독교의 시국관은 진보와 보수가 50:50으로 갈라져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누구도 시국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저는 지금의 시국사태보다 더 위험한 것은, 지금의 기독교가 시국사태로 나타나는 갈등이라고 봅니다. 시국사태는 머지 않아서 일단락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시국사태를 두고 생겨난 서로의 불신이 공동체의 분열을 일으키고, 이 분열은 복음 전파의 길이 방해를 받거나 막힐 위험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세상 사람들에게 시국사태에 개입을 해도 욕을 얻어먹고, 가만히 있어도 시대적 방관자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습니다.
기독인은 교회 안에서도 분쟁이 생기면 파국이 날 때까지 양보가 없습니다. 특히 교회 분쟁의 원인이 목사님 때문이면, 절대로 양보하지 않습니다. 목사의 신분은 하늘이 정한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늘이 준 권위에 도전하면 그것은 마귀가 하는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시국사태도 이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이것은 단적으로 보면, 자기 생각이 신앙이나 집단의 신념이 되어서 그러합니다. 신념이 굳어지면 기독인은 복음을 전파하기보다는 신념을 수호하는 종교인이 됩니다. 그래서 신념과 종교는 정치 이념이 되어서 갈등과 분열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양보가 없습니다. 이런 연유로 기독인이 정치에 개입하면, 득보다 실이 큽니다. 기독교가 사회에서 신용을 잃어서 복음 전파의 길이 막힌다는 뜻입니다.
지금의 시국사태는 인간의 이성이나 하나님의 영성이 작용한 것이기보다 이성과는 크게 빗나가 있는 “점쟁이 주술”과 같은 시대적 상황을 맞고 있다고 봅니다. 저는 이런 시국을 보면서 '1원'을 내걸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입니다. 기독인은 종교나 이념 위에 있어야지 종교나 이념의 틀(프레임) 속에 갇히면 큰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편을 갈라서 싸우기려고만 하지 대화와 타협의 요청은, 그 자체가 굴종이고, 회색분자가 됩니다. 이념 대립에서 생각이 다른 상대는 적이므로 제거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생각이 다른 사람과는 포용과 협력이 불가능합니다. 저는 이런 이념을 점쟁이 주술 같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이념과 이권이 대립하면 객관성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반칙과 범법을 해도 이념이 맞으면 문제가 없으며, 잘 한 일도 이념이 다르면 트집을 잡게 됩니다. 경기에서는 페어 플레이 진행이 어렵고, 경기의 결과에도 불안을 계속되고, 위험한 상황을 주기적으로 반복합니다.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는 기독인이 정서만 맞으면, Baal 제도를 거침 없이 따르며, 야훼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희년법 제도는 강하고 끈질기게 부정합니다. 기독인이 점쟁이 주술 같은 정치적 발언이라도, 그것이 자기 이념에 맞으면 적극적으로 옹립하며 지지합니다. 아니면 그 반대입니다.
진보와 보수가 서로 연합할 수는 없는가? 상대는 싸워서 이겨야 할 적인가? 희년법과 Baal법이 공존할 수 있을까? 1원 내기와 1억원 내기는 이런 정서와 이념에 대하여 걸어 놓은 것입니다. 기독인은 싸움을 걸기보다 이미 벌어진 싸움을 말리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진보에는 성경 말씀으로 사회정의를 알려야 하고, 보수에는 종교 아닌 복음으로 자유시민국가를 이룩해야 합니다. 그래서 너와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승패를 가르는 시국사태를 만들지 말고, 모두 상생하여 미래로 나아가는 새나라를 열어야 합니다.
시편 85편
10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11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
12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
13 의가 주의 앞에 앞서 가며 주의 길을 닦으리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