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국사 수심결] ③
거짓 인연 떠나면 곧 변함없는 부처
만약 불성이 이 몸에 있다고 한다면 이미 몸 안에 있어서 범부를 떠나지 않았는데 무엇 때문에 저는 지금 불성을 보지 못합니까? 다시 분명하게 해석하여 깨닫게 해 주소서. 그대 몸에 있건만 그대 스스로 보지 못할 뿐이다. 네가 하루 동안에도 배고프고 목마른 줄 알며 춥고 더운 줄 알며 혹은 성내고 기뻐하는 것이 어떤 물건인가?
세상의 욕망과 부모 형제를 버리고 출가한 수행자는 연밭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과 같이 허허롭게 길을 떠나야 한다. 그러면 처처에서 깨달음의 기연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순백의 향기를 해풍에 실어 멀리 육지로 보내는 찔레꽃에서 그를 만나고 산모퉁이 돌아서면 티 없는 동심으로 빨갛게 익은 산딸기에 빙그레 미소 짓는 너를 만난다.
마음이 부처라는 사실에 더 이상 의혹이 사라지고 확실한 믿음이 결정되고 나면 이 몸은 인형처럼 보이고 세상에서 재미있는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로지 꿈속에서도 보고 싶은 사람처럼 의심이 샘솟게 되는데 이것을 활구라고 한다.
내가 나를 모르면서 웃고 울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답답하구나. 도대체 나의 주인공은 어떻게 생겼는가, 하늘을 보고 땅을 보아도 온통 부끄러울 뿐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구나. 한없이 무상하고 티끌 같은 세상에 어쩌다 운이 좋아 망망한 바다의 눈먼 거북이처럼 사람 몸을 받았는데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못하면 어찌 다음 생을 기약할 수 있겠는가.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편하게 잠을 잘 수 없다.
생로병사의 성난 파도가 휘몰아치는 인생고해에서 침몰하는 배의 닻줄을 거머쥐고 죽기 살기로 힘차게 당기듯이 급하게 한바탕 화두를 챙겨야 한다. 오로지 화두를 섬으로 삼고 생명줄로 삼아야 한다. 화두가 없는 사람은 죽은 시체와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해태심이 일어나고 공부에 진전이 없다고 하더라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마치 보배 구슬을 바다에 빠뜨린 사람이 바닷물을 다 퍼서라도 기필코 건지고야 말겠다는 용맹심으로 끝까지 밀어부처야 한다.
화두는 바로 마음을 가리키는 조사의 말씀이다. 그래서 어떤 숨은 뜻은 없다. 다만 화두를 드는 순간 마음을 보면 된다. 아무런 조작이 없고 사량할 수 없는 것이 화두이기에 어떠한 업력과 습기도 붙지 못한 것이 마치 파리가 온갖 것에는 다 옮겨 다니지만 오직 불꽃에는 붙지 못한 것과 같다. 이러한 화두는 마침내 칠흑 같은 어둠인 깊은 잠을 통과하여 만고에 광명을 놓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으로 통하는 가장 쉽고 빠른 지름길이 화두법인 것이다.
흔히 운전할 때 화두를 들면 공부가 잘 안된다고 하는 데 이것은 바른 공부가 아니다. 운전 할 때는 운전하는 놈이 화두인데 다만 졸음이 오거나 일어나는 망상에 따라가다 보면 운전을 놓치게 되므로 바로 알아차리고 돌이켜 화두를 들면 운전과 화두가 둘이 아니어서 운전삼매를 이루게 된다. 이처럼 지금 하고 있는 일과 화두가 둘이 아니어서 일마다 삼매를 이루어 점점 업력은 녹아지고 지혜가 드러난다.
화두 드는 법이 이렇게 간단하고 쉬워서 오히려 복잡한 세상에서는 최상의 공부법인데도 어렵다고 제3의 길을 택하여 몸과 마음을 버려 아까운 세월을 낭비한다.
공부가 점점 순조롭고 힘을 얻게 되면 자칫 방심하여 나타나는 경계나 알음알이를 공부로 착각하여 화두를 놓치게 되면 금방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다시 한 번 백척간두에서 갱진일보하여 허공 속으로 몸을 던지면 곧 시절인연을 만날 것이다.
육조스님께 남악 회양선사가 찾아왔다.
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
꽉 막혀 팔년을 참구 하였다. 은산철벽처럼 꽉 막히는 것이 참으로 귀한 일이다.
깊은 밤
홀로 깨어 있는
소쩍새 울음소리
이ㅡ뭣고
거금선원장 일선 스님
[출처 :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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