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협
여러분께 한 말씀 올립니다.
전국에
계신 도둑 연합회 회원 여러분!
여러분들을
좀 처럼 뵙기 어렵기 때문에 이런 글을 통해 한 말씀 드리오니 부디 경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간 쯤 이면 오늘밤 털 준비하고 계시거나 어젯밤 수입금으로 오늘밤을 즐기기 위한 계획을 짜고 계시겠죠?
간단하게
한 가지만 부탁 할께요.
제발
서민들 집은 털지 말아 주세요.
도둑질은
좋은 직업이 아니죠?
직업을
바꾸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일이겠지만 태어나길
천부적인
도둑으로 태어났다면
지나치게
잘사는 사람, 혹은 큰 도둑들을 혼 내 달라는 겁니다.
우리
주변에는 괘씸한 큰 도둑도 많잖아요?
허가
받은 도둑들도 많고요.
그들은
떳떳치 못한 짓으로 뭉칫돈을 끌어 모으고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면 오리발 내밀기 일쑤죠?
그들은
현금은 물론이고 온갖 보물이며 고서화 골동품 등 그야말로 부가가치 높은 고객일겝니다요.
그뿐인가요
뒤가 구린 사람들이라 도둑을 맞고도 신고는커녕 나중에 발각이 되어도 자기 물건이 아니라고 우겨주니 얼마나 좋습네까?
돈의
가치는 사람에 따라 천차 만별이지요.
있는
자들의 하룻밤 술값으로도 모자라는 100만원이 서민들에게는 서너 식구의 한 달 생활비이며 소년소녀 가장이나 결식아동에게는 몇 개월을 먹고사는
생존의 돈이 되죠.
이점을
꼭 참고 해 주세요.
실감이
나게 해 드리기 위해 제가 그간 겪은 일을 소개합니다.
이번에
저는 세 번째 도둑을 맞았습니다.
네
식구의 생계가 걸려있는 고등학교 주변의 매점인데 은행에서 마이너스 통장으로 어렵사리 구입해 놓은 버스표를 몽땅 털렸고 잔돈으로 준비한 9천원
4천원 뭉치며 500원 100원 주화 등을 알뜰히 가져 갔더군요.
버스표
팔면 얼마나 남는 줄 아십니까?
350원짜리
한 장에 3원50전이 남아요.
그런데
짧은 휴식시간에 한꺼번에 학생들이 몰려 북새통을 치다보면 한 두장 잘못 건넬 수가 있죠.
그러면
이익은커녕 그냥 손해 보는 거예요.
라면을
급하게 끓이다보면 불에 데이기 일쑤고 좁은 가게에서 바삐 움직이다 보면 냉장고
모서리에
부딪히고 진열대 칸막이에 다치는 등, 온몸에 멍이 가실 날이 없어요.
우리는
그렇게 온몸을 다쳐가며 생계를 이어가는 서민 이예요.
이즈음엔
학생 숫자도 해마다 줄고 있고 IMF 이후로는 매상도 전과 같이 않아요.
울먹이는
아내를 “어떤 놈인지 되게 가난했던 모양이지?
잘
먹고 잘살라고 그래”하며 위로했지만 그 돈을 과연 유익한데 쓸까요?
돈은
그렇다하고 도둑맞은 사람의 놀란 가슴을 아나요?
도둑을
맞고 나면 온갖 주위사람들을 의심하게 되고
도둑이
어딘가 숨어 있는 듯 해서 몇날 며칠을 가슴앓이 해야 하는 것도 고통스럽습니다.
처음
도둑을 맞은 것은 어처구니 없게도 돈을 꾸러 간 사이였어요.
부질없는
결과론이지만 도둑맞은 패물을 팔았던들 얼마간의 돈이 남았을거예요.
제
어미는 급전을 꾸러 친척집을 가는데 철없는 어린 아들이 나들이 하는 것만 좋아서
“나
큰 아빠네 간다”하며 큰소리로 외치고 다닌 것이 그만 회근이었던 것 같습니다.
퇴근시간이
가까운 무렵 좀 처럼 직장으로는 전화를 하지 않던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여보!”
하길래 반가와서 “샥시 왠일이여? 전화를 다하게”라고 농담을 하려는데 수화기 저편에서 울컥 울음이 터지질 않겠어요?
가슴이
철렁하더라고요.
“도
도둑이 들었어요....”
“그래?
다치진 않았어? 내 곧 갈게 응?”
심약한
아내가 걱정되어 허둥지둥 집에 가보니 집안이 온통 난리였어요.
장롱이며
서랍이며 책장이며 할 것 없이 세간을 전부 끄집어내서 엎어놓은 꼴이 꼭 폭격
맞은
것 같더라고요.
베란다
창으로부터 시작된 흙 묻은 발자국은 새로 시쳐놓은 요, 이부자리까지 짓뭉겠더라고요.
“칼!
저 칼 좀 치워줘요”
한
구석에 웅크리고 하염없이 흐느끼던 아내가 가리키는 곳에는 금방이라도 찌를 듯이 식칼이 노려보고 있데요.
순간
머리털이 쭈볏 서며 정말 가족이 다치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죠.
만약
도둑과 맞닥뜨렸다면 어땠겠어요?
도둑질은
하더라도 사람은 다치게 하지 마세요.
당신네
식구가 남에게 다쳤다고 생각해 보세요.
3살
박이 우리 아들은 그 와중에도 “나쁜 도둑놈이 내 저금통에 돈을 다 가져 갖쪄” 하며 찢어진 돼지 저금통을 끌어 안고 앙앙 우는 거예요.
세뱃돈이며,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아빠 구두 닦고 받은 고린 동전이며, 친척들로부터 과자 값이라고 한푼 두푼 받아 모은 우리아들의 전 재산까지 ‘그 나쁜
도둑놈’이 알뜰히 가져 간거죠.
“그래
그래 울지 마라 아빠가 다시 사줄게”
근처
구멍가게에서 새 저금통을 사다가 주머니를 털어 넣어주는데 참 치사한 도둑이라고 생각 되데요.
다해봐야
몇 푼 되겠어요?
어머님이
“어려운 형편에 좋은 것 못해줘서 미안하다”시며 결혼 예물로 주셨던 한 냥짜리 금팔찌며 아기들 백일 돐 반지며 결혼일주년 기념이라며 아내에게
사주었던 한 돈짜리 금반지를 몽땅 털어갔어요.
있는
자들에게는 코웃음꺼리가 될 물건들이지만 하나하나 사연이 있는 소중한 것 들이었는데...
팔찌는
결혼식 날 후에는 단 한번도 끼어 보지 못했고,
매년
결혼기념일마다 사주겠다며 1주년 기념이라고 아라비아 숫자로 1자를 새겼던 그 반지도 그 후에는 2자도 3자도 못해주어 유일한
정표였어요.
두
번째 도둑이 가져 간 것은 비디오비젼 이었어요.
정말
벼르고 별러서 산 것이었는데 사온 바로 다음날 도둑에게 털렸죠.
없는
살림에 텔레비젼 따로 비디오 따로 살 형편이 못되기에 온갖 매장을 다 헤매며 비교하다가 대전에서 서울 용산 전자상가에까지 가서 낑낑거리며 메고
온 비디오비젼을 사랑땜도 하기 전에 메고 간 도둑.
정말
이런 짜잘한 도둑은 되지 맙시다.
당신이
다녀가고 나면 꽤 오랫동안을 당신이 어디엔가 숨어 있을 것 같아서 화장실도 맘 편히 못가요.
좋은
일만 하고 살아도 백년을 못 채우고 가야하는 짧은 인생을 그렇게 남들을 괴롭히며 살아가야 하나요?
밤잠
못자고 일해야 하며 온갖 지혜를 동원하여 남의 집을 털 궁리를 해야 하며
늘상
쫒기는 스트레스를 받으시는 전국의 도둑 여러분!
도둑질하는
정도의 수고를 다른 일을 하신다면 최소한의 생계는 보장될 겁니다.
밝은
태양아래 어깨를 쫘악 벌리고 당당하게 살아갈 방법을 제발 찾아봐 주세요.
부탁합니다.
끝으로
우리 집은 이제 더 털릴게 없어요.
선배들이
돈 될 것은 다 털어갔으니 헛수고 않으려면 알아서 하십시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