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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우리교회는 성탄절을 지키지 않습니까?
성탄절을 따로 지키지 않는 우리교회는 이상한 교회?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교회는 12월 25일을 성탄절 혹은 크리스마스(Christ-mas) 라고 하여 주일 외에도 따로 모여서 함께 예배하며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이렇게 하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성탄절을 지키지 않습니다. 왜 우리 교회는 이 날을 지키지 않습니까?
사실 기독교 하면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날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평생 교회당에 안 나가는 사람들도 성탄절에는 한 번쯤 나간 기억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교회는 성탄절(12월 25일)에 함께 모여 예배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는 이상한 교회입니까? 우리 교회는 예수님의 탄생을 부인합니까? 예수님의 탄생의 의미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으면서 왜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이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성경의 가르침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성탄과 관련한 우리의 여러 가지 오해들
성탄절 자체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전에 먼저 성탄 사건과 관련하여 우리가 갖고 있는 오해들을 몇 가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성경에 충실하지 않고 그저 풍문이나 전해져 오는 것에만 충실한지를 말입니다.
1) 동방 박사는 몇 명?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에 동방박사들이 멀리서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총 몇 명입니까? 3명입니까? 흔히 그렇게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아닙니다.
정답은 “우리는 몇 명인지 알 수 없다” 입니다. 그런데 왜 일반적으로는 3명이라고 생각합니까? 우리가 잘 아는 통일찬송가 116장의 첫 소절에 나오는 “동방박사 세 사람 귀한 예물 가지고”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그것을 근거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동방박사가 가지고 온 예물이 황금, 유향, 몰약의 3가지 이기에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예물이 셋이니 박사도 셋이라고 주장한 것은 그리스의 유명한 교부인 오리게네스(Origenes. 185-254년경)가 처음이다.)
하지만 성경을 자세히 보면 동방박사가 3명이라는 증거는 전혀 없습니다. 마태복음 2장 1절에는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라고 되어 있고 9절에 “박사들이”라고 되어 있어서 복수(複數)의 사람이라는 것만 암시하고 있을 뿐 몇 명인지는 정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방 박사가 3명이었다는 것은 성탄과 관련한 오해일 뿐입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동방의 박사는 2명 이상의 복수라는 것이지 몇 명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러한 점을 인지하고 21세기 찬송가 116장은 가사를 바꾸어서 “동방에서 박사들 귀한 예물 가지고”이라고 해 두었습니다.
2) 동방 박사들의 방문은 언제?
우리가 자주 보는 성탄관련 그림에 보면 동방의 박사들이 경배하는 뒷 편에 목자들을 배치하여 함께 구유에 누워있는 예수님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그들이 거의 같은 시간에 도착한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과연 동방 박사들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직후에 왔을까요?
목자들이 예수님 탄생 직후에 베들레헴에 가서 구유에 놓인 아기 예수님을 만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눅2:8-20). 하지만 동방 박사들의 경배를 기록하고 있는 마태복음 2장에는 동방박사들이 마굿간에 들어갔다는 기록이 없고, 목자들을 만났다는 언급도 없습니다. 마태복음 2장 11절에 의하면 동방의 박사들은 ‘집’에 들어갔습니다.
게다가 누가복음 2장 22절에 보면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말씀하는 ‘모세의 법’은 레위기 12장 2-6절 말씀으로 그 말씀에 따르면 40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태어나신 40일 정도가 지나서 베들레헴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셨습니다. 더 나아가 누가복음 2장 39절에 보면 “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40일 + 몇 일 뒤에는 나사렛에 계셨습니다.
그런데 동방박사들은 마태복음 2장 2절에 보면 동방에서 예수님의 별을 보고 왔다고 말합니다. 별을 보고 왔으니 예수님이 태어나신 이후에 도착한 것으로 보아야 하고 7절에서 헤롯왕이 박사들에게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물어본 뒤에 16절에서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 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 말씀에 의하면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만난 시점이 탄생 즉시는 아닐 것으로 추측됩니다. 탄생 즉시 만났다면 수개월 이내의 아이만 죽이지 굳이 두 살 아래의 아이까지 다 죽일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확하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 수 없으나 헤롯이 베들레헴에 태어난 두 살 아래의 사내 아이를 다 죽였다면 2년은 넘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탄생 후 2년만이라고 딱 잘라서 단정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이는 헤롯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셨다고 하는 아이를 확실하게 죽일 목적으로 그 범위를 넉넉하게 잡았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만난 예수님은 태어난 직후의 아기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영어 성경을 보면 더욱 분명해 집니다. 우리 성경에서는 목자들이나 동방박사가 모두 ‘아기’에게 경배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영어성경에서는 아기를 구별해 표시합니다. 목자들이 포대기에 싸여 누워있는 아기께 경배할 때는 유아(baby)라고 합니다(KJV, NIV). 그러나 동방박사들이 집에 들어가 어머니와 함께 있는 아기께 경배할 때는 KJV에서는 어린 아기(young child)라고 하였고, NIV에서는 동방박사는 몇 개월 후에 도착 하였다는 그간의 논의에 따라 ‘아이(child)’라고 번역하였습니다.
3) 목자들은 자고 있었다?
통일찬송가 123장에 보면 “저 들 밖에 한 밤 중에 양틈에 자던 목자들”이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그래서 흔히들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즈음에 목자들이 양틈에서 자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2장 8-9절을 보면 “(8)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라고 말씀합니다. 목자들은 자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통일찬송가 123장과 달리 21세기 찬송가 124장은 1절에서 “양 지키는 목자여”라고 노래하고, 통일찬송가 125장은 2절에서 “한 밤 중에 목자들 양떼들을 지킬때”라고 하고 있음은 이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해 줍니다.
통일찬송가 116장의 첫 소절의 가사를 바르게 수정한 21세기 찬송가는 안타깝게도 통일찬송가 123장의 가사는 그대로 두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성탄에 관해 여러 가지 오해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전제에서 12월 25일을 성탄절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뭔가 이상하지 않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 어디에도 12월 25일이 성탄절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12월 25일이 예수님의 생일이라구요?
성경에 의하면 현재 우리에게 성탄절이라고 알려진 12월 25일은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이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탄생 날짜를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대충이라도 우리가 알 수 있을까요? 12월은 맞을까요?
누가복음 2장 8-9절을 보면 예수님 오실 당시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데,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8)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9)”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핵심은 목자들이 한 밤에 밖에 있었다는 것인데 이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놀라게 합니다. 왜냐하면 팔레스타인 지역은 11월부터 3월까지가 우기(雨期)입니다(신11:14). 이 때는 강추위가 있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강우량이 많아서 들에서 밤에 잠을 자기 어렵습니다(렘36:22). 이 기간에 내리는 비는 1년 전체 강우량의 거의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12월 말은 우기가 한참 진행되는 중이기 때문에 맑은 하늘을 보기가 거의 어렵습니다. 12-1월은 연중 기온이 가장 낮은 달로서 고지대에서는 이따금 눈도 내렸다고 합니다. 또한 12월은 풀이 없어서 양을 먹일 꼴이 없습니다. 양을 방목하기 좋은 때가 전혀 아닙니다. 그래서 당시나 지금이나 이 기간에 양을 방목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볼 때 12월 말에 목자들이 양 떼를 데리고 밤에 밖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5월 이후 쯤 되어야 밤에 밖에 있기 편합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2장 8절의 상황은 12월 25일 전후로 있었던 일이 아니라 5월이나 6월쯤으로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중요하게 여기지만 탄생일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말씀의 가르침
그렇다고 이 날도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에 대한 정확한 날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 날짜를 알려주기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 그 어디에도 날짜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쉽게’ 추측할 수 있게 하는 단서도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나 그 후 초대교회 시대에도 성탄절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성경에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생일을 챙겨드린 기록이 없고,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도 초대교회는 그의 탄생일을 기념하지 않았습니다. 신약성경에는 교회가 성탄절을 기념했다는 어떠한 기록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서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날이 특별한 날로 기념되었다는 어떠한 힌트도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탄생하신 날짜는 큰 의미가 없기에 성경에 기록하지 않았으며 예수님 자신이나 사도들도 성탄절을 지키라고 명하였거나 지킨 흔적이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의미를 충실히 전달할 뿐입니다.
이러한 일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성탄의 ‘날짜’보다는 ‘의미’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날짜가 중요하다면 말씀의 저자이신 성령님께서는 날짜를 분명하게 기록해 두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초대교회가 성탄의 날에 모여서 함께 예배했던 일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은 날짜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오신 장소가 어디인지를 룻기 4장 11절과 미가서 5장 2절, 마태복음 2장 5-6절, 누가복음 2장 4절이라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오신 때가 언제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우리가 예배하는 날로서의 ‘주일’은 그 날짜(일요일)가 중요하기 때문에 성경은 분명하게 기록해 두고 있습니다(요20:19; 행20:7; 고전16:2).
그러므로 모든 날이 성탄이고, 매 순간 순간마다 성탄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2월만이 아니라 8월에도 성탄을 기억하고 성탄찬양을 부르며 마태복음 1,2장과 누가복음 1,2장, 룻기 4장, 미가서 5장을 읽고 묵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탄절의 유래
그렇다면 12월 25일이라는 날짜는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성탄절의 유래가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는 여러 가지 설이 있어서 알 수 없지만, 초기에는 1월 6일을 성탄절로 지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아마 아담이 여섯째 날 지음 받은 것에 근거한 듯으로 보입니다. 2세기경에는 5월 20일에 행하였다고 합니다. 243년에는 3월 28일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언급하는 것이 나옵니다.
오늘날과 같이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키게 된 것은 349년 로마 교황 율리어스가 공식적으로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선포하였고, 교황 리베리우스가 서기 354년에 태양신(애굽 숭배 신, 미트라)의 축일을 예수 탄생일로 선포하면서 로마교회(서방교회)가 12월 25일로 정하게 되었고 379년부터는 그리스교회(동방교회)도 이에 따른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6세기에 와서 로마의 신학자 디오니시우스(533)가 확실하게 고정했다고 합니다.
이후에 서방교회 전통은 12월 25일을, 동방교회 전통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와 같은 곳에서는 1월 7일을 성탄일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로마가톨릭은 성탄절을 크리스마스라고 하여 지킵니다. 그런데 이 말 역시 우리가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크리스마스(Christmas)라는 말은 Christ + Mass 에서 온 것으로 “그리스도로 드리는 미사”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교회사의 가르침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우리 장로교 신앙의 선배들은 주일(主日) 이외의 부활절, 성탄절 등의 절기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개혁 교회의 전통 아래서 신앙의 양심을 지켜온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보증하지 않는 교회의 다양한 절기들을 폐지하는 것이 옳다고 여겼으며, 이를 신앙고백과 총회의 기록, 공식 선언문 등을 통해 명문화해 왔습니다. 칼빈도 성탄일을 지키는데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탄일에도 이와 관련된 본문을 찾아 설교하지 않고, 평소에 강해해 오던 성경을 그대로 계속 강해 설교를 했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과 17세기 청교도들은 성탄절을 지키는 것에 대해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미 1556년 에딘버러 대회 이후에 계속 논의되었고, 1574년에 있었던 도르트 총회는 성탄절을 폐지하는 급진적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총회는 사람들이 주일로 만족하기를 원했습니다. 대신 12월 25일 바로 전의 주일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복음이 설교되었습니다. 그리고 동일한 이유로 사람들은 성탄절이라는 특별한 날이 폐지되었음을 권고받아야만 했습니다. 성탄절은 더 이상 기념되지 않았습니다.
1577년 4월에 열린 총회에서 공식적으로 부활절, 크리스마스 날과 그 이외의 다른 미신적인 절기 때에 성찬을 집례하는 목회자에게와 강독하는 강독자에게 성직을 박탈하겠다는 조건으로 그러한 것을 시행하지 말 것을 경고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였고, 이러한 근거로 제 1 권징조례 제 9항에 부활절에 성찬식을 행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성탄절을 지키지 말아야 한다고 강변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날이 지나치게 우상화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1638년 글라스고우 총회(스코틀랜드)의 경우도 교회의 다양한 절기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보증되지 않음으로 완전히 폐지되는 것을 좋다고 여기고 그것들을 지키는 목회자들은 관원들에 의해서 징벌을 받는 것이 좋다고 명문화 하였습니다. 17세기 영국의 청교도들은 성탄절을 거부했으며, 영국의회에서는 1643년 공식적으로 성탄절, 부활절 또한 기타 미신적 절기들을 지키지 못하도록 법령으로 제정했습니다. 미국으로 이주해 간 청교도들 역시 성탄절을 지키지 않았으며, 1659년에 제정된 마사추세츠 법령은 12월 25일을 성탄절로 경축하는 사람들에게 벌금을 내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절기에 대한 로마교의 미신적 이해에 대한 반발과 신자들을 이런 미신 세계로부터 격리시키고자 하는 선한 뜻에서 였습니다. 정통적인 개혁주의 교회는 언제나 성탄일의 속화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고 살아 왔습니다. 오늘날도 개혁주의 교회는 교회나 집안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고, 그 위에 흰 솜을 뿌리는 것 같은 일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원래 이교적 관습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집집을 다니며 새벽송을 하는 일도 없습니다.
19세기 중반까지도 청교도들은 성탄절을 드리는게 없었습니다. 부흥주의 영향과 상업주의가 교회와 세상 안에 들어오면서 성탄절이 교회에 차츰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성탄절을 지키지 않는 교회는?
한국에도 성탄절에 예배를 따로 드리지 않는 교회가 없잖아 있습니다. 우리교회와 같은 신앙고백을 가진 실로암교회(이광호 목사 시무)나 언약교회(예장 합신; 이승구, 최현진 목사 시무)와 같은 교회들은 성탄절에 따로 모이지 않습니다. 우리교회가 속한 고신 교단의 교회 중에는 고신대학교 안에 있는 대학교회(홍성수 목사 시무)가 성탄절을 지키지 않습니다. 대학교회의 경우 그 교회의 설립 목회자였던 고신대학교 전 총장 황창기 목사가 이를 중요하게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독특하게도 소위 ‘안상홍 증인회’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라는 이단의 경우는 성탄절이 성경에 근거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따라 성탄절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은 “성탄절을 지키는 교회는 이단이다.”라는 식으로 지나친 방향으로 나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비록 우리 교회가 성탄절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도 그런 식으로까지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겠습니다.
성탄절을 잘 보내려면
그렇다면, 성탄절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좋습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성탄절 노래를 부르고 감사예배를 드리고 트리를 장식하는 것이 마치 하나님을 더 사랑하며 아기 예수의 탄생하심을 경배하는 경건한 신앙인의 자세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무지의 결과일 수 있지만, 그러나 그 기저에는 인간의 쾌락과 상상, 성경을 떠난 오만함이 깔려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육신을 입고 오신 성자 예수님의 성육신(incarnation) 사건은 구속사의 정점으로 마땅히 교회가 기념하고 그 의미를 깊이 새겨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근거도 없는 성탄절 때의 온갖 기념 행사로 성육신 사건을 기념할 수 있다거나 그 의미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평소에 즉 1년 12달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비록 우리 교회가 성탄절에 모여서 예배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 교회는 성탄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 좀 더 분명하게 표현하면 ‘성육신’의 비밀스러운 일에 대하여 잘 기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떤 행사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뜻을 다하여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탄 찬송을 꼭 12월에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4월이나 5월에도 부르고 그러면서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의미를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12월 25일이라는 날이 그리스도의 오심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이 날을 그저 공휴일로서 가족과 함께 혹은 교회의 성도들과 함께 즐겁게 보내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유익하리라 생각됩니다. 가능하다면 우리보다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삼는 것도 유익할 것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은 굉장히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는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교회들이 성탄절에 모여서 성탄 기념 예배라는 이름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 성경적이고 개혁신앙적인 정신이 많이 전파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하여 우리 교회는 함께 모이되 성탄기념예배를 드리지는 않고 주일 오전과 오후에 배운 내용으로 시험을 치르거나, 기도회를 갖거나, 성도의 교제의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성탄트리와 장식에 대해서
성탄절을 지키지 않는 교회, 그렇다면 성탄 트리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보여야 합니까? 앞서 언급하였듯이 화란의 개혁주의 교회에서는 교회나 집안에 성탄 트리를 세우고, 그 위에 흰 솜을 뿌리는 것 같은 일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원래 이교적 관습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 사실은 성탄 트리와 장식의 유래에 대해서 생각해 봄으로써 더욱 분명히 해야 하겠습니다.
성탄 트리의 기원은 고대 유럽의 겨울과 관련이 있습니다. 고대의 영국과 로마에서는 한 겨울 동짓날을 기념하기 위해 푸른 상록수 가지를 집에 장식했다고 합니다. 춥고 어두운 한겨울에 푸른 나뭇가지를 장식함으로써 다가올 봄을 기다린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가면서 16세기 즈음부터 이 관습은 독일의 기독교인들에 의해 성탄절 날에 트리를 장식하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1570년 독일 북쪽 브레멘에서 수공업에 종사는 사람들이 성탄절에 전나무를 공장 안에 세워 놓고, 그 나무에 종이 꽃이며 각종 과일과 과자를 매달아 장식했던 것입니다. 이 풍습은 프랑스와 스칸디나비아로 확산되었고, 북유럽(스칸디나비아) 튜튼족의 성수(聖樹)사상과 고대 로마 풍습의 영향을 받아 전파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700년대 후반에 미국 펜실베니아주에 사는 독일인 이민자들로부터 성탄 트리가 처음 미국에 소개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884년까지는 그다지 유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영국 빅토리아 왕의 남편이었던 독일인 Albert왕자에 의해 영국 왕실에 최초로 성탄 트리가 세워졌습니다. 당시에는 영국 왕실과 왕실가문이 모든 사람들의 동경의 대상이었는데, 그때부터 사람들은 영국왕실에 세워진 성탄 트리를 너도나도 따라서 자신들의 집에 장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성탄 트리는 유행하게 된 것입니다.
성탄 트리로는 주로 전나무나 소나무를 쓰는데, 여기에도 얽힌 유래가 있습니다. 7세기경 영국의 선교사였던 성 보나파이스가 독일의 어느 마을에서 설교를 전하고 있었습니다. 떡갈나무를 신성시하던 그 마을사람들에게 우상숭배를 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하면서 그 떡갈나무를 쓰러뜨렸습니다. 그러자 그 떡갈나무가 쓰러지면서 다른 나무들을 모두 쓰러뜨려버렸다고 합니다. 그때 오로지 넘어지지 않았던 나무가 전나무의 묘목이었습니다. 성 보나파이스는 이를 기적이라 칭하면서, 전나무를 하나님의 나무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본 것처럼 성탄 트리는 성경적 가르침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방식으로 소개되었고 확산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개혁신앙을 받아들이는 교회와 그 교회에 속한 이들은 성탄 트리를 굳이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와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탄 장식을 하는 것 자체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각 가정에서 인테리어를 한다고 해서 무조건 나쁘다고 하지는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냥 가족끼리 집안 풍경을 이쁘게 하기 위해서 하는 정도라면 무조건 정죄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굳이 일부러 성탄 장식을 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예배당의 경우에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교회가 성탄절 자체를 12월 25일로 보지 않으면서 장식을 그렇게 하면 가르침의 의미가 상실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배당은 가급적 화려한 장식을 피하는 것이 좋기 때문입니다. 예배당은 말 그대로 예배를 위한 장소입니다. 그래서 예배 이외에 다른 것이 강조되지 않도록 예배당을 간소화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배에서 말씀과 고백, 찬송과 기도 이외에 다른 것이 강조되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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