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품을 중국 고유의 상표로 둔갑시켜 돈을 번 중국인
역시 십 수 년 전의 일이다. 한국인 한 명이 보따리에 물건을 싸들고 이곳으로 왔다. 그 제품은 다름 아닌 업소용 전기 불판이었다. 자기가 중국 총판권을 갖고 왔다고 하면서 예전부터 알고 있던 중국인에게 지역 총판을 주겠다고 했다. 중국인이 제품을 살펴보니 괜찮은듯했다. 앞으로 이 지역에도 발전이 지속되면 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늘 거라는 예상을 했다. 한국회사에서 만든 제품은 역시 디자인이 세련되고 멋도 있었다. 집에 가져가서 직접 고기를 사다가 구워보니 생각보다 아주 훌륭했다. 연기도 많이 안 나고 고기 맛도 그냥 프라이팬에 굽는 것 보다 맛이 있었다. 드디어 대리점을 하기로 하고 보증금도 걸었다. 문제는 한국 총판에서 물건 공급이 잘 되질 않았다. 망가진 부품을 교체하려고 해도 물건 도착은 늘 지연되었다. 팔리기는 곧 잘 팔리는데 이렇게 부품과 제품의 공급에 애로가 있었다.
또한, 지역 대리점으로 계약을 했기 때문에 총판의 허가 없이는 다른 지역에 팔수가 없었다. 그런데 총판을 운영하는 한국 사람은 예상대로(?) 다른 지역의 판매가 부진했다. 중국 대리점 사장의 입장에서는 물건 공급도 안 되는 총판만 바라보다가는 자기마저도 사업을 접어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른 지역에서 주문이 오는 것을 그냥 바라만 본다거나, 설사 판매를 하더라도 총판에 마진을 주어야 하는 구조로는 이 좋은 아이템을 살려내기가 어렵다는 판단을 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의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역시 짝퉁을 현지화(?) 하는 작업이었다. 말이 현지화지 결국은 우리 제품을 그대로 모방해서 만드는 작업이었다. 더구나 그는 중국의 일류 공과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공학도였고 한 때는 한국 회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조선족 중국인이었다. 한국말이 통하고 중국어가 유창한 그가 중국인의 신분으로 조금만 마음을 바꾸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을 왜 주저하겠는가?
그는 먼저 제품을 뜯어보고 연구하면서 중국 실정에 잘 맞지 않는 전기 용량을 수정했다. 심천의 부품 공장을 오고가면서 디자인도 아주 미세하게 뜯어 고쳤다. 그리고 버젓이 한국 상표를 중국의 상표 등록 법에 의거하여 등록 했다. 제품은 잘 팔려 나갔다. 전국에 한류 바람이 불면서 짝퉁 불고기 식당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불판은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갔다. 이 중국인은 미련하게 공장을 만들고 시설 투자를 할 필요도 없었다. 불판에 소요되는 모든 부품은 이제 중국에서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단지 부품을 주문하고 공급 받아 조그만 공장에서 조립만 하고 포장해서 보내면 되는 일이었다. 더 이상 한국에 비싼 국제전화를 써 가며 부품의 공급을 재촉할 일도 없어졌다. 인건비는 싸고 제품의 판매가도 당연히 저렴했다. 한국에서 수입한 제품이 가격 경쟁에서 이길 방법은 없었다. 그렇다고 한국 품질이 월등히 좋은 것도 아니었다. 그 사람은 드디어 짝퉁의 현지화를 이룩한 것이다. 그러면 한국인이 운영하는 중국 총판은 어찌 되었을까? 처음에는 대리점에 난리를 치고 법적 소송을 운운하다가 결국은 포기하고 문을 닫고 말았다. 중국 대리점 사장은 오히려 총판 사장에게 “이 상표는 내가 중국에서 정식으로 상표등록을 했기 때문에 당신들이 앞으로 같은 상표로 중국에서 판매한다면 거꾸로 상표법 위반으로 나에게 배상을 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기가 찰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초창기 중국 시장에서는 이렇게 빠른 속도로 짝퉁이 생겨났다. 한국의 많은 기업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음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한번 짚어 봐야 할 것은 과연 중국인들이 악의적이고 나쁜 사람들이라 이런 수법을 썼을까? 우리는 과연 중국 시장을 제대로 알고 도전한 것일까? 아니다. 너무나 안일했고 무모했다고 봐야 한다. 거대한 중국 시장을 너무 우습게 본 것이다. 아니, 중국인들을 쉽게 생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제품을 중국 총판을 통해서 팔면 초기 시장 개척 비용도 안 들고 얼마든지 팔아먹을 수 있다. 이 얼마나 편한 발상이고 무식한(?) 생각인가? 중국 사람들이 그렇게 단순한 사람들이 아니다. 한번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자. 우리가 미국에서 들어온 신제품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조금만 연구하면 좀 더 좋은 제품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왜 비싼 수입품을 마냥 팔아야 하는가? 중국의 짝퉁이 생기는 원인도 마찬가지다. 왜 중국 사람들이 언제까지 우리 제품을 별로 마진도 없이 열심히 팔아주어야 하나? 싸게 만들어서 저렴하게 팔면 이익이 몇 배가 올라가는데 왜 미련한 짓을 할까?
그래서 많은 외국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중국 시장에 직접 진출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런 짝퉁의 폐단이 원인일수도 있고, 제대로 중국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의지일 수도 있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우리 기업이 중국에 진출한 초기에는 제품의 경쟁력으로 어느 정도의 기반을 닦고 성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결과는 별로 좋지가 않다. 많은 돈을 투자하고 핵심 인력을 보내서 관리를 하고, 표준화된 시스템을 만들어서 운영하는데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꾸 주춤거린다. 한편으로는 맹렬하게 추격하는 중국 제품에 밀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 종업원들의 인건비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애로가 점점 늘어난다. 언급 한 바와 같이, 중국 시장이 그렇게 녹녹한 곳이 아니다. 거대한 시장이 눈앞에 있지만 도무지 내 손에 들어오질 않는다. 사방 곳곳에 암초가 있고 장애물이 있다. 우리 제품의 제품 경쟁력이 언제까지 중국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아 줄지는 모른다. 어쩌면 “샤오미(小米)”라는 휴대폰도 이런 환경에서 자랐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 숨 가쁘게 치고 박는 틈바구니에서는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지 매년 성공의 가도를 달려가는 것이 중요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을지 모른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제품의 경쟁력과 현지에 맞는 시스템을 갖추었는데 외국 기업은 왜 자꾸 어려워지는 것일까? 왜 진정한 현지화는 이루어지지 않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