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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마당_펼침글 7
말의 집짓기 또는 마음 속 곰팡이 실
―갇힘과 가두기에 대하여 다섯―
정현기(문학평론가, 세종대/국문학)
1. 드는 말
말의 울타리는 사람들을 아주 굳게 가둔다. 앞에서 쓴 '믿음에 갇힘'이나 ‘생각에 갇힘’, 또는 ‘권력에 갇힘’, ‘돈에 갇힘’ 따위도 실은 모두 이 말이라는 집짓기로부터 가두기를 시작한다. 그러므로 말의 집짓기를 통한 말로 가두기는 ‘울타리 치기’의 가장 단단한 쇠 못질로부터 시작한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말의 집을 짓는다. ‘말의 집짓기 공리’에 사람들은 움쭉달싹도 못한 채 묶여 살고 있다. 말의 집짓기! 말의 집짓기에서 가장 튼튼한 울타리를 쌓는 이들은 누구일까? 대체로 힘이 세거나 하고 싶은 것(욕망이나 탐욕 따위)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힘을 길러 옆에 자기보다 좀 모자라는 사람들을 세워놓고는 그 모임의 우두머리로 앉아 땅빼앗기와 재물 거두기로부터 상당한 울타리를 친다. 그렇게 울이 쳐지면 그 때부터 그들은 말의 집짓기를 시작한다. 이런 말의 울타리는 대체로 층층다리를 만드는 것으로부터 비롯한다. 사람에게는 높낮이가 있어서 이것이야말로 바뀔 수 없는 참(진실)인 것처럼 든든하고 굳은 말의 집을 짓는다. 하늘이 낸 사람이야말로 따로 이 세상에 온 것처럼 꾸며내어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믿게 만든다. 그런 믿음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왔고 그것이야말로 마땅한 것처럼 사람들 마음속에 이어져 내려와 의심의 여지조차 없게 된 것처럼 보인다. 엄청난 거짓의 시작이다. 우리들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앉은 곰팡이 실의 한 핵이다.
사냥으로 주림을 버티던 시절로부터 힘 센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더 많이 먹고 입으며 편히 지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삶의 원리이다. 정말 그런 것일까? 약육강식의 원리란 다른 짐승들에게 맞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만 참인 것으로 전해 내려온 것이나 아닐까? 이런 사례들은 아주 먼 동양의 예는 말할 것도 없고 서양 고전들 속에도 빠짐 없이 이어져 왔다. 이것이 모두 다 말과 글로 전해져 왔기 때문에 그 굳은 믿음은 더욱 굳어지게 되었다. 중국 고전에서 전해진 요순시절(唐虞)이야기나, 한국의 고전 가운데 하느님의 자손으로 이 땅에 내려와 신시(神市)를 베풀고 나라를 세웠다고 가르치는 단군(檀君)시절 이야기들도 다 이런 말의 집짓기 예이다. 조금 가까운 우리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면 조선조가 당장 눈앞에 나타난다. 조선조에 피워놨던 우리들의 마음 곰팡이 얘기에 앞서 서양의 예 하나를 들어 보이면 이렇다.
“태초에는 ‘카오스(Chaos: 혼돈)’만이 있었다. 카오스는 공허(空虛)가 아니었다. 카오스는 만물의 원천이 되는 모든 물질의 원형과 에너지로 꽉 찬 공간이었다. 물질들과 에너지가 아직 서로 분리되지 않고 모든 것이 서로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는 곤죽과 같은 상태가 바로 카오스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대지의 여신인 ‘가이아(Gaia:대지)가 생겨나고, 곧 이어 모든 물질이 서로 결합. 생성하게 하는 정신적인 힘인 ‘에로스(Eros)’, 곧 사랑이 생겨났다. 이 ‘에로스’는 우주의 원초적 친화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후대 신화에 나타나는 남녀간의 애정을 관장하는 ‘아프로디테(Aphrodite)’의 장난꾸러기 아들 ‘에로스’와는 다른 신격이다. 이리하여 우주를 이룰 모든 원초적인 질료가 갖추어졌다.”
서양역사를 따지는 사람들이 늘 들이대는 그리스 사람들은 신화라고 하는 신 이야기로부터 그들이 밟고 있는 땅과 위로 올려다보는 하늘, 그리고 너와 나를 떼어놓은 바다와 강물, 비와 바람 그리고 있음과 없음의 느낌들을 적바림하고 말함으로써, 그들이 있었던 삶의 샘에 갇히기 시작하였다. 하기야 그들이 믿고 가르치며 갇히는 이런 우주론이나 우주의 생성이론은 그들보다 먼저 살아 있었던 이집트나 까마득히 먼저 산 사람들의 말집은 잘 알려지지 않는 상태를 뒤집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러하니 무엇이라고, 사람됨과 그들이 거기 갇히며 가두는 말의 집, 얘기를 더 보태어 말할 수나 있겠는가. 이 나라 저쪽 어딘가로부터 우리에게 다가서는 또 다른 신화 이야기 하나가 있다. 생생한 강물처럼 지껄이게 만들어 흐르는 유대인들의 신 이야기가 그것이다. 서양 철학사를 쓴 버트란드 러셀 같은 사람은 서양 철학사란 헬레니즘과 히브리즘이라는 두 줄로 꽈배기처럼 꼬여 내려왔다고 썼다. 그런데 이 히브리즘이라고 하는 말의 집 속에 신 이야기는 더욱 엄청나다. 이른바 성경이라 부르는 말의 집이다.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다. 땅은 아직 모양을 갖추지 않고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았는데,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고 그 물 위에 하느님의 기운이 휘돌고 있었다.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겨났다. 그 빛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다.”
앞엣것이 이른바 그리스 투의 우주 생성이라는 물질의 바뀜에 따른 진화론 얘기로 이어져 있다면 뒤의 것은 아예 그런 게 모두 다 하느님의 뜻으로 되었다고 떠들기 시작한다. 이렇게 떠드는 소리가 다들 말이나 글이다. 말의 집 글의 집 역사는 이렇게 아주 길다. 사람들은 말과 글을 씀으로써 옆 사람이나 뒷사람들과 느낌이나 믿음, 생각 따위를 서로 전하면서 뭔가가 모자란 자기를 메워 왔다.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그들은 하느님이나 하나님, 또는 신을 가지고 자기들이 살게 된 내력을 이야기하기를 잘했다. 그래야 자기들의 저 허망하고 텅 빈 있음의 덫으로부터 그나마 스스로를 달랠, 그렇게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 가지면서, 살짝 거기 갇히게 되었던 셈이다. 그리고는 서로 서로를 거기에 가두는 말의 집들을 자꾸 늘려나갔다.
‘돌 칼 줌 빌려주!’ ‘여기 있슈! 가져다 쓰고는 다시 돌려주슈! 그나마 이긋두 잘 비어지지가 않네유. 좀 더 갈아야 쓰겄슈.’ ‘아침엔 무얼 먹었슈?’ ‘어제 뜯다 남긴 늑대 괴기줌 먹었쥬.’ ‘그래두 거근 뭔가를 좀 뱃속에 채웠네유, 우린 빡빡 굶은 채 이러구 있슈. 어어 배구퍼여.’ ‘거그 자던 굴속에는 벌레들이 없습뎌?’ ‘읎기는 왜 읎겠슈. 아덜이 여기저기 물려 벅벅 긁어대고 난린 걸유! 여린 살가죽이 얼마나 근지릅 것슈? 나두 그것들게 물린 자리가 당최 가려워 죽것슈!’
먼 옛날 사람들이 정말 저런 투로 말을 섞었을 지 아닐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아주 멀고 아득히 먼 옛날에 살았던 사람들이 모두 다 뭔가 서로를 알리는 소리와 흔적은 남겼을 터인데, 그것을 나는 사람들이 처음 자기들을 스스로 가둔 말의 집이라 부를 생각이다. 그리고는 가장 가까이 남아 있는 우리 역사 이야기로 넘어가 본다.
말 잘 타고 활 잘 쏘며 힘도 세어, 남들을 잘 다루어서, 많은 사람들을 아우르던 이성계(李成桂)는 이제까지 많은 사람들 위에 왕 노릇으로 가진 깡패 짓거리에 신물이 나 있던 고릿적 깡패(왕)를 물리치고 스스로 조선조라는 왕조를 세우고는 불거지 대장 자리에 앉았다. 동양이나 서양, 이 지상의 모든 모여살이 모임들에서는 왕이나 영웅 따위의 이름을 지닌 불거지들이 있어 왔다. 이들이야말로 그 때나 이때나 모두 다 실제로는 힘 센 깡패집단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이들 불거지 패들은 결코 홀로 서 있지 않다. 자기 밑에 늘 부하들을 거느려서 가진 이권을 주면서 벼슬이라는 이름의 권세 또한 넘겨주어 자기 자리를 보호 받는다. 층층다리 계급은 이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다. 태조 손자뻘 되는 세종 대에 와서 그 부하들은 이런 말글을 지어 조선조라는 말의 집을 짓는다. 백 스물 다섯 장(125장)으로 지어진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가 그것이다. ‘용이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어 하늘을 노래함(?)’이라는 이 거창한 말의 집짓기 첫 노래는 이렇게 되어 있다.
“해동(海東) 육룡(六龍)이 나샤
일마다 천복(天福)이시니
고성(古聖)이 동부(同符)하시니.”
―용비어천가 제 1 장―
북쪽으로는 중국이라는 대륙이 펼쳐 있어 그 쪽에 발해(渤海) 제국이 버티고 있었던 때, 발해 동쪽으로 한 나라가 있으니 그곳에 여섯 용(龍)이 내려와 왕으로 되는 길을 터놨는데 그게 모두 다 하느님의 뜻이었다.는 뻔한 거짓말을 이런 거창한 말의 집짓기로 써서 퍼뜨렸다. 일단 힘 센 패들이 이렇게, 말로 못을 박고 나면, 먼저 글자를 아는 사람들이 거기 꼼짝없이 갇힌다. 사람들은 참말이든 거짓말이든 힘이 세어 보이면 거기 곧잘 갇힌다. 그들은 자기가 갇힌 곳, 그들을 가둔 그물에 대해서, 여러 말로 지껄인다. 그런 지껄임을 일삼는, 글자 아는 패들의 말을 통해, 여러 사람들이 또한 거기 갇힌다. 그렇게 말의 집에 갇힌 사람들은 스스로 그 말의 나팔수가 되어, 그 말의 집이 엄청난 값을 지닌 것으로 부풀려, 그것을 남들에게 지껄인다. 말은 말을 낳고 그것은 다시 새끼를 치면서 퍼져나간다. 스스로 만든 말의 울타리가 널리 남을 억누르는 쇠못이 되어 있을 때, 그들의 귀는 저절로 닫혀 있기 쉽다. 그래서 그들은 남의 말은 잘 듣지 않는 차례로 ‘내가 나로 되는 그 스스로’를 낮추거나 죽인다. 조선조 500여 년 동안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왔다. 1930년대 시인 이상(李霜)은 그의 시를 통해 끊임없이 스스로 그 시대에 살지 않았다는 은유를 자주 내 보였다. 그 시대가 하도 끔찍한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를 달래기 위해 그랬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자신의 거기 없음(부재)을 말하거나 쓴다고 해서 그가 거기 없을 수가 있는가? 절대 그렇게 되지 못한다. 마찬가지 논법으로 보아 내가 전 시대의 흉한 왕권 체제를 부정한다고 해서 그 시대가 사라질 것인가?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저 슬픈 우리가 어떻게 그런 나쁜 말들에 갇혀 살아왔는지를 밝혀 보려고 하는 것이 이 글의 뜻일 뿐이다. 우리는 크거나 작건 간에 말의 집에 갇혀 살아왔고 또한 그렇게 살게 될 터이다. 모든 말은 그 말이 지닌 엉뚱한 거짓이 숨겨있기 쉽다. 그래서 이 말의 껍데기는 어느 때나 벗겨봐야 한다. 그것이 이런 글을 쓰게 하는 이유이다.
말에 갇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쇠귀에 경 읽기’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사전적인 뜻풀이로는 ‘둔한 사람에게는 아무리 일러주어도 알아듣지 못한다는 말’이지만 또 다른 뜻으로도 쓰인다. 둔해서가 아니라 아예 귀를 닫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을 일러 ‘쇠귀에 경 읽는다’고도 말한다. 자기가 지닌 말의 집에 갇혀 일체의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을 사람들은 ‘쇠푀수(소를 잡는 백정이라는 말의 사투리)’라고 부른다. 쇠푀수! 경(經)을 읽는다는 말은 그러면 무엇일까? 고려 26대 충선왕 시절에는 중국으로부터 들여다 배워 익힌 4서 3경 가운데는 「시경(詩經)」과 「서경(書經)」 2경만 있고 「주역(周易)」이 없었다. 그래서 늘 한국 지식인들은 중국으로부터 이 경전을 들여오려고 하였지만, 중국의 관리들은, 그걸 들여오는 걸 막았다고 했다. 성리학자 우탁(禹倬)이 사신으로 간 길에 중국 천자 앞에서 이 책을 한번 읽기를 바랬고 그것을 허락하자, 그는 단숨에 다 읽고는, 그걸 다 외워서 이 나라에 들여왔다고 했다. 경 읽기라는 말에는 틀림없이 이 중국의 고전 작품인 삼경(三經)이나 오경(五經)읽기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런 경전들은 모두 다 정치적인 목적이 있는 말의 집 짓기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들여온 저런, 정치적으로 사람들을 길들여 말잘 듣는 백성으로 다루기 위해서, 그나마 머리가 돌아간다는 사람들에게 가르친 말의 집들인 경전 읽기 말고도, 다른 경 읽기가 있다.
소경들이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는 경을 읽어 귀신을 쫓아내는 경 읽기가 있었다. 소경이 이 경 읽기로 불러들인, 여러 중류의 이름을 지닌 무시무시한 귀신장군(神將)들로 하여금, 귀신을 쫓아내도록 며칠 밤을 새워, 무서운 군대를 포진하여 놓고, 백마 탄 어떤 무슨 이름의 대장군들을 선봉으로 하는 군사적전을 통해, 귀신을 내 쫓게 하는 판수 경 읽기가 1960년대 그 이전까지 시골에서는 있었다. 한 마을에는 이상한 병치레로 아파하는 집안이 있곤 하였고, 그것은 곧 귀신의 장난질로 여겨, 그 방면에 이름이 난 판수를 불러 마을 사람들이 다 밤샘하며 지켜보는 가운데 경 읽기가 이루어지곤 하였었다. ‘쇠귀에 경 읽기’라는 말은 그러므로, 어리석거나 막무가내 파 꼴통들을 이르는, 뜻으로만 쓰이지 않았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됨의 길을 가르쳤던 오경(五經)이 담은 경전의 말씀은 물론이고, 무시무시한 장군귀신들이 나쁜 귀신을 쫓는 군사작전의 엄포나 위협조차 아무런 귀 기울임이 없이 듣지 않는다. 그런 사람을 두고 일러 가로되 ‘쇠귀에 경 읽기’라는 말로 그를 탓하였다. 이렇게 우리는 사람의 꼴값을 재고 그 무게를 다는 저울추와 같은 말 쓰기로 ‘쇠귀에 경 읽기’라는 말을 써왔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나름으로 말의 집을 짓는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눈총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게다가 사람들은 말로 삶을 꾸려나간다. ‘뭇 입은 쇠도 녹인다.’(衆口鑠金)는 말은 우리의 고전 작품 삼국유사에 나온다. 쇠붙이조차 녹이는 입의 화를 피할 사람은 없다. 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말이고 맛이며, 사람들의 뜻이나 느낌을 묶는 올무이자 밧줄이다. 여러 사람들이 지껄이는 말과 말, 거기에는 정신이 들어 있고 삶이 들어 있다. 죽은 자는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할 말이 없고 그것을 전할 입에 힘이 없다. 말글은 그것 자체가 삶이다. 말글을 가지고 있는 이들만 이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느낀다. 말의 집이라는 편안한 감옥이 그들을 가두어 놓고는 그들 말의 흐름에 따라 흐느적대기만 되기 때문이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모르는 사람은 결국 그들이 말하는 소리에 맞아 죽는다.
내가 이 글 머리에다 이 이야기를 앞세우는 것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 특히 뭔가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울부짖거나 소리 높여 반대하는 일에 대해 눈을 막은 채 마구다지로, 주어진(?) 권세를 이용하여, 밀어붙이는 정치라는 이름의 부라퀴 짓거리를 일삼는 사람들에 대한 경계의 뜻을 담으려는 뜻이 있다. 어려서 가난하여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여 오늘날 높은 자리에 앉았다는 것을 마치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지도자(?)의 자만심은 ‘성공한 인생’, 또는 ‘민족의 지도자’ 따위의 말에 스스로 갇힌다. 이런 말의 감옥 속에 갇히는 사람들은, 그가 갇혔던 말의 집에서 내는, 엄청난 흐름의 틈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가 갇혔던 말의 집에서 곧 내팽개쳐 쫓겨나는 일을 견뎌야 한다. 성공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갖기 쉬운 자만심이 곧 그를 죽일, 망가져 가는 길에, 들어 서 있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거나 잊기 쉽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아무리 좋은 경전이나 위협의 경을 읽어주어도, 눈을 감은 채 남들이 싫어하는 일을 밀어붙인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참혹한 뒤끝이 기다리고 있다는 진실, 그것이 이 글 앞머리 이야기로 담으려는 나의 뜻이다.
경전(經典)은 대체로 성인들의 바른 가르침이라고 풀이되면서 마치 그것은 영원히 바꾸지 않을 어떤 ‘참’의 잣대인 것처럼 믿기 쉽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들 삶의 너무나 뻔한 길-거리의 잣대일 뿐이다. 너와 나의 눈-팔의 길이, 그 사이에 가로놓인 마음 써야 할 긴장이나 서로 함부로 해서는 안 될 말의 집짓기를 이야기로 한 것들을 우리는 경전이라고 또는 성인의 가르침이라고들 불러왔다. 이런 남들의 바른 말이나 소리, 웅얼거림 따위를 못들은 척 한다거나 듣고도 아예 딴청이나 쓰는 패라면 일단 그는 싫은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가 어떤 자리에 앉아 거들먹거리거나 얼마나 많은 돈이나 땅 따 문서를 지니고 남을 부려먹든지 쇠귀에 경 읽기 식의 사람이라면 그의 인격에는 이미 구멍이 뻥 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한 두 명은 일단 옆으로 미루고 우리가 근세에 맞닥뜨린 대통령 몇 명이 다 이렇다. 그런 사실은 그들만의 불행이 아니고, 그런 자들을 보면서 속수무책으로 살아왔던 우리의 불행이었으며, 지금도 그 불행의 끈에 매달려 있는 셈인데. 오늘날 우리가 여러 일을 보고 듣고 있는 현직 이명박 대통령 또한 이런 사람 무리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나아가고 있어 보인다. 그의 불행은 곧 우리들 모두의 불행이 되어 재난으로 닥칠지도 모른다. 오늘날 4대 강물을 마구 파헤치면서 사람들 말에 귀를 닫은 이명박 대통령과 그를 밀어가고 있는 여러 이익집단들이 두렵다. 그들이 저지르는 4대강 파헤치기라는 개발 짓들이 행여 그들의 이름을 더럽힐 짓이라면, 그것은 그 일을 막지 못한 우리를 또한 곧 망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2. 가두는 사람들과 갇힌 사람 꼴
모든 사람들은 말의 집에 갇힌다. 말은 모든 사람들을 가둔다. 그 말이라고 하는 쇠 울타리! 그런데 이 말의 쇠 울타리야말로 한 모여살이 사람들을 그럭저럭 살아가게 하는 길을 밝혀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것을 통해서만 뭔가 자기가 살았던 슬픔과 외로움을 밝힐 수도 있다. 내가 아는 글자가 있다는 것, 그것은 저주이면서 동시에 축복이기도 하다. 그것을 기록하는 수단인 글자가 그 나라의 큰 문화자산이라는 것은 축복에 속한다. 모든 문화는이 세대에서 저 세대로 전하여 남길 앎의 터전과 자리가 그것을 통해서만 뒷사람들에게 전달되니까!
그래서 몹쓸 짓을 일삼던 이름난 깡패들(예컨대; 진시황이니 교황이니 로마의 황제, 중국이나 왜국의 천자 따위 황자(皇字)나 천자(天字) 들어간 독재자들과 조선의 역대 왕들이 다 이들 패에 든다)이 자기들의 못된 짓을 적바림하거나 자기들 짓거리와는 아예 다른 믿음을 지고 사는 사람들의 짓을 참지 못하여, 그들의 글이 실린 책을 불태우고, 그것을 쓴 사람들은 잡아다가 죽이거나 옥에 가두는 따위 악행을 저질러왔다. 꼭 코미디 배우들의 어리석은 몸짓들을 닮은 꼴 새이다. 왕이나 임금, 그들 옆에 기생하는 층층다리 벼슬 꾀수들이 부리는 행패는 사람들로 하여금 공포를 일으키게 한다. 그래서 그들은 늘 자기들에게 두려운 마음을 갖도록 몽둥이 그림자를 여기저기 걸어두며,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만든다.왜 그들이 그렇게 호랑이라도 되는 것처럼 무섭고 두려운 것들일까? 전두환 깡패짓거리에서 쫓겨나 있던 내게 이종 사촌 형님이 물었다. 그는 이름 난 신문사의 대기자였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세 가지만 대봐라!’ 내가 어물거리자 그는 말했다. ‘첫째가 호랑이, 둘째는 무식한 놈 돈 가진 것, 셋째, 칼 든 미친놈!’ 그게 다 남을 돌아보지 않는 꼴통들의 꼴 새이다. 다음과 같은 정약용(丁若鏞)의 글이 있다. 이들, 왕권 층층다리의 권세를 등에 짊어진 부라퀴들이나, 왕이라는 패들이 얼마나 못된 짐승으로 불리는 지는 아래 글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이 아래 시는 물론 왕의 힘을 등에 진 못난 부라퀴 패들의 못된 짓거리이다.
“승냥이여 이리여 !
벌써 우리 송아지 채갔으니
우리 양일랑은 물어가지 마렴.
장롱엔 저고리도 없고
시렁엔 소금 한 톨 남아있지 않고
뒤주에도 쌀 한 톨 안 남았단다.
큰 솥 작은 솥 다 뺏어가고
숟가락 젓가락 다 털어갔지.
도적도 아니고 원수도 아닌데
어째서 이처럼 몹쓸 짓 하나.
살인자는 모두 자살했으니
이제는 또 누구를 죽이려느냐?
―「승냥이와 이리」(豺狼 三章)―”
사람의 역사는 대체로 남을 가두고 그렇게 그들 갇힌 사람들이 애쓴 일의 열매를 따먹으면서 거들먹거리는 사람들과, 그들에게 속절없이 부림당함으로써, 그것을 마땅히 겪어야 할 자기 삶이라고 믿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남을 가둔 패들이란, 대부분 각 나라 역사에 따라 다르지만, ‘왕권(王權-Rex=rich)’이라는 층층다리(階級)를 만든 부라퀴(깡패)들이다. 그들은 그런 믿음을 만들기 위해 별의별 관념과 귀신 이야기(신화)를 다 만들어 뿌렸다. 앞에서 예로 든, 조선조를 만들어 정권을 잡은 이성계(李成桂)의 가계를 신화로 만든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는 그 가운데 작은 한 예에 속한다. 그 이야기에 끌어들인 여러 신기하고도 특별한 이야기들은 모두 다 왕권을 만든 사람들이 말로 지은 귀신이나 그에 맞먹는 영웅 이야기(신화)에 해당한다. 뿐만이 아니다. 19세기 들어 독일의 저 유명한 히틀러가 만들어 낸, ‘순수 게르만 민족 신화’와 그것을 빌미로 하여 처참하게 사람들을 죽인 엄청난 숫자의 유대 사람들의 넋은 지금 어디에 가 있을까? 그런 짓을 한 패와 거기 꼼짝없이 당한 억눌림과 죽임들은 모두 다 사람살이의 이런 안타깝고 더러운 꼴값들의 예이다.
1) 말의 집짓기
1952년께 여름, 열 한 살짜리 초등학생들은 담임선생들의 구령에 따라 삽과 곡괭이를 들고 학교 교정에 장맛비로 사태가 난 뒤꼍의 흙과 돌을 퍼내는 일에 들어간다. 떠들썩한 아이들의 외침 소리와 서투른 삽질 소리가 뒤섞인 일터에 늙수그레한 교장이 나타났다. 담임의 눈이 반짝 긴장한다. 가스러지고 쬐죄죄한 이 정 교장 선생은 선생들에게는 물론이고 학생들에게도 잔소리가 아주 심해서 모두들 마주 대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왜정시대부터 선생노릇을 한 단작스런 왜식 교육 버릇을 버리지 못해 때론 까치새끼처럼 짹짹거리고 또 때론 고양이에게 습격 받아 내몰리는 오리들처럼 꽥꽥대는 소리가 여간 소란스럽지 않았던 시골 초등학교 한 교장 선생을 나는 기억한다. 꼬마아이들이 학교 텃밭을 가꾸던 일터에 와서 깐깐하게 살피던 이 교장 나부랭이가 드디어 먹잇감을 찾았다.
‘정현기, 저거! 소리나 잘하는 저게 일은 아예 엉터리로 못하고 비실비실 어물쩍거리고 있구나. 너 이리 와봐! 네 애빈 잘 있냐? 너 저쪽에 가서 손들고 서있어!’
정말로 이 꼬마, 그게 바로 지금의 여기 있는, 나였다. 속으로 부글대는 토악질을 참으면서 그 때 나는 비실비실 옆으로 나가 손을 들고 서 있다. 여기저기 손가락질로 일을 시키던 이 늙다리 정 교장이 사라지가 젊고 아름답게 생겼던 남자 담임선생이 이 불쌍한 꼬마를 불러 손을 내리게 하고는 묶였던 말의 덫에서 풀어준다. 말의 집에 묶인 첫째 기억! 다음은 일곱 명의 총각들이 졸업하는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 소재 점동공업고등학교 졸업식장의 한 장면이다. 나를 욕했던 그 사람은 아닌, 초등학교 교장 선생이 이웃 고등학교 졸업식장에 와서, 축사를 하는 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젊은 청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큰 뜻을 품에 품고 마음속에 꿈틀대는 큰 호랑이를 그려라! 산천초목을 떨게 하는 호랑이, 이 호랑이의 기개를 가져라!”
그의 뒤를 이어 그 지역에서 목회를 하는 한 목사가 올라왔다. 여러 축복의 말집과 함께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앞에서 여러분들을 위해 말씀해 주신 교장 선생님 말을 뒤집어서 다음과 같이 말 하겠다. 호랑이를 그리기 위해서 여러분들은 이제부터 고양이를 그리는 일부터 시작하라! 정교하게 고양이를 그릴 수 있어야 호랑이를 그릴 수가 있는 것이라!”
말의 집에 묶인 둘째 기억! 내가 여주 점동면에서 초등학교와 중 ·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말의 집’에 갇히게 된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그들은 입만 열면 ‘여러분들은 앞으로 나라의 기둥!’이 되라고도 하였다. 기둥? 나라의 기둥? 이 말의 뜻은 정말 무엇일까? 눈깔사탕 하나 얻어먹으려고 아버지의 눈치를 있는 대로 부려야 하였던 내 신세가 기둥이라고? 그것도 나라의 기둥이라! 그들은 정말로 마음에 들어 있던 축복의 말로 우리들에게 보낸 말의 집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런 말의 집은 모두 다 꺼벙한 거짓말이거나 헛소리일 뿐이다. 나라의 기둥 따위의 헛된 말의 집들은 그렇게 어딘가 층층다리에 묶여 앉아 스스로 뭔가가 되어 있다는 착각 속에 빠진 사람들, 똑같은 일에 진이 빠진 관료나 가르치는 것을 지겨워하는 낡은 교사, 늘 빤한 남의 나라 사람 학설을 들고 아는 척 하기에 진이 빠진 교수, 돈을 잔뜩 훔쳐 마음 놓고 사람들을 부리는 능구렁이 같은 돈놀이 업체의 사장, 어디든지 빠지지 않고 무슨 큰 일이 벌어질 때마다 행사에 끼는 깍두기 저명인사, 이런 패들은 스스로 모두다 나라의 큰 기둥이라고 착각하고 있기 쉽다. 거기 무슨 일마다, 숨겨져 있거나 굴러다니곤 하는, 뒷돈 챙기는 일에 아주 열성을 다하는 나라의 썩은 기둥들!
웃기는 이런 따위 관제교육에 묶여 꼼짝달싹도 못하는, 마음껏 속화된, 속물들이 바로 다 그런 패들이다. 나라의 기둥이란 어떤 인물을 일러 부른 은유일까? 나라를 세워 왕으로 앉아 많은 사람들을 묶거나 죽이고, 또는 이미 있는 권력 세력을 총칼이나 위협으로 꺾어 그 자리에 앉은 채 사람들을 억눌러 거들먹거리는 사람을 기둥이라 부를까? 모든 사람의 뜻을 하나로 묶는답시고 투표소에다 비밀 포장을 두르고 몇 몇 인쇄 된 이름에 붉은 빛 도장을 찍어 거기서 많은 표를 얻은 사람들을 시장이나 도지사 또는 대통령이라 불러 그들이 결정하는 일에 그저 그러려니 하고 따라 나선다. 그런 사람들을 기둥이라 부르나? 국무총리나 각부 장관, 예전 같으면 영의정이나 좌의정 우의정, 따위를 기둥이라 불러야 할까? 코미디로밖에는 이해할 수가 없다. 말의 집짓기란 따지고 보면 한 바람에 지나가버려 자주 잊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이 날카로운 칼날로 된 말로 된 집이란 한 파람에 지나가는 말이라 해도 아주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있게 마련이다. 내 머릿속에는 이런 말의 헛된 집들이 자리 잡고 앉아 있다. 그리고 나서 얼마나 지났는가?
5.16쿠데타로 정권을 빼앗아 움켜쥔 사람이 지껄이던 다음과 같은 쇳소리 방송 소리를 나는 양평의 한 시냇가에서 들었다. 셋째로 내게 기억되어 내세울만한 말의 집짓기 소리였다. 방송으로 들렸던 이 말의 집짓기는 한국 역사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군사 불뚝 패들이 민권을 움켜쥔 뚜렷한 하나의 사건이었다. 이름 하여 5.16 쿠데타였다. 나는 분명 이 공식 떠벌이 소리를 말로 들었다. 여기는 전에 내가 방송으로 들었던 말을 글로 옮겼지만 실제로 나는 말로 들었던 것이다. 말과 글은 이렇게 서로 섞이거나 엮이어 서로를 가두게 되어 있다.
“5.16 혁명 공약;
친애하는 애국 동포 여러분!
은인 자중하던 군부는 드디어 오늘 아침 미명을 기해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여 국가의 행정, 입법, 사법의 3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어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군부가 궐기한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현정권과 기성 정치인들에게 이 이상 더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맡겨 둘 수 없다고 단정하고 백척간두에서 방황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군사 혁명위원회는, 첫째,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체제를 재정비 강화할 것입니다. 둘째, 유엔 헌장을 준수하고 국제 협약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며 미국을 위시한 자유우방과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할 것입니다. 셋째, 이 나라 사회의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퇴폐한 국민도의와 민족 정기를 다시 바로 잡기 위하여 청신한 기풍을 진작할 것입니다. 넷째,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자주 경제재건에 총력을 경주할 것입니다. 다섯째, 민족적 숙원인 국토통일을 위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의 배양에 전력을 집중할 것입니다. 여섯째,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추겠습니다. 애국 동포 여러분!
여러분은 본 군사혁명위원회를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동요 없이 각인의 직장과 생업을 평상과 다름없이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조국은 이 순간부터 우리들의 희망에 의한 새롭고 힘찬 역사가 창조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조국은 우리들의 단결과 인내와 용기와 전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만세! 궐기군 만세!”
이들은 총과 대포로 무장하여 4.19 학생혁명으로 이루어진 장면(張勉) 정권을 찍어 눌러 빼앗은 다음, 그 빼앗은 이유를 혁명이라 부르고, 「5.16 혁명공약」이라는 구호를 박정희 중령이 직접 방송하였다. 나는 한 떼의 깡패들이 다시 이 나라의 민권을 움켜쥐면서 내는 소리, 곧 몇몇 깡패들이 짓는 말의 집짓기 소리를 이렇게 방송으로 들었던 것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나는 광화문 네거리에 몰려가 목이 터져라 하고 이승만 대통령을 물러가라고 외치던 4.19 학생혁명 때, 대학교 1학년 학생이었다. 이승만은 아예 미국에 기대어 그들의 정책적 하수인으로써, 미국이 한국을 뒤에서 움직이는데 잘 써먹혔었던, 기막힌 불거지였다. 그는 미국의 조지워싱턴 대학교에서 학사, 하버드 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그리고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철학박사를 한 미국을 모국으로 여길 만큼 끔찍한 미국 시민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는 조선왕조 핏줄을 타고 났다는 꼴값에 아주 으쓱해 있었던 천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당대에 자기를 넘어설만한 고귀한 자가 한국에는 없다고 스스로 믿었다. 그러니 그런 인생이야말로 미국이 보기에 아주 귀여운 꾀수였고 그는 그것을 즐겁게 받아들인 꼴이었다. 이미 한국의 남한 정부는 미국이 조정하는 그런 힘 몰이에 휩쓸려 있었다. 1960년도 4월에 불을 지폈던 이런 4.19 학생혁명은 이승만 정권을 물러가라고 외친 겉 꼴 속에 미국의 검은 속셈을 파악한 젊은이들이 낸 거부의 몸짓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미국정부조차 거기서 돈을 빌려다 쓴다는 국제은행 재벌들의 손아귀에서 한국 정부가 벗어난다는 것은, 아주 불가능한 일로 보는, 그런 곰팡이 실도 우리 머릿속에는 살아 있다.
일본 군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항일연군 민족전사들을 잡으러 다닌 왜군 부대에 있었던, 그 친일파 박정희는 위와 같은 말의 집을 지어 크게 퍼뜨리면서,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수사적 거짓말을 내세웠다. 도대체 그 ‘사명’이라는 걸 누가 주었는가? 그게 거짓말인 것이다. 스스로 꾸민 말로 누군가가 주었다고 지껄였다. 학생들이 쫓아낸, 이승만과 그 옆에 섰던 친미 두눈박이들, 그들을 어렵게 쫓아낸 자리에 앉아 뭔가를 새롭게 세워보려던 젊은 학생들이 지지하려던 정권을 박정희는 총과 대포로 쫓아내어 깔아뭉갰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제국주의의 왕초로 행세하던 미국대통령을 만나러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에 가서 어떻게 허리를 굽혔는지에 대한 이야기들도 수군수군 이 나라에서는 귓속말 집들로 이루어졌었지만 모두들 그 문제에는 입을 닫았다. 요즈음 사팔뜨기 이명박 패 아래서 벌어졌던 촛불 시위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그게 다 그거고 이게 또 이거라는 사실을 잘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나라를 집어삼키면서 저질렀던 일들은 이렇게 사람들이 말의 집짓기로 스스로의 말에 갇힌다. 이 혁명공약이 드러낸 사실은, 그의 죽음 뒤에 모든 게 밝혀졌지만, 미국 자본주의 세력에 완벽하게 이 나라를 묶어버림으로써, 국제 은행재벌 이름의 날강도 패들의 돈놀이와 무기 장사꾼들의 종으로 떨어지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 한국 농촌이 얼마나 많은 빚을 지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면, 이런 빚 놀이꾼, 국제 깡패들의 어리석은 장난질들이 무엇인지를 잘 보게 한다. 박정희의 위와 같은 「혁명공약」이나 「국민교육헌장」따위 말의 집짓기는 그처럼 박정희가 스스로를 가둔 가장 뚜렷한 감옥이었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거기에는 그가 스스로 묶어 갇힌 올무가 모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민족중흥’이니 ‘반공’ 이념은 이미 미국이 오래전부터 써먹어왔던 조자룡의 낡은 칼이었다. 툭하면 써먹던 이런 두 눈 뜨기 왈짜패들의, 속이 뻔한 음모와 코미디 대본들일 뿐인 이런 말의 집짓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 온 자기 틀에 가두는 말 본새였다.
2) 글의 집짓기
1443년에 완성하여 3년 여 동안 이 글자를 가지고 여러 차례 써보는 실험을 거치고 나서, 1446년에 널리 펼쳐 보인,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우리는 오늘날 엄청난 민족 자산으로 물려받았다. 이 글자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우리는 중국에서 만들어졌다고 알려진 한자 또는 한문(漢文)이라는 글 발자취를 가지고 자기 말을 옮겨 적어왔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온 840여 년 전 사람인 고릿적 이규보(李奎報)나 18세기의 빼어난 문장가로 일컬음 받는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같은 사람들의 글을, 한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통 알 수가 없었다. 한자 글의 집에 갇힌 사람들만 이 글자 읽는 실력을 가지고 남들 앞에서 에헴이나 커험! 따위로 거드름을 피우는 가진 자로 행세하였다. 1975년도에 첫 판을 찍어낸 인문학자 이정호(李正浩)의 「훈민정음의 구조원리 그 역학적 연구」는 본래 이런 글자로 찍혀 나왔다. 「訓民正音의 構造原理 그 易學的 硏究」가 그것이다.
그러니까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학문의 말 쓰기는 한자를 섞어 써야 하는 것으로, 자기 말집에 갇혀 있던 학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1446도에 세종임금이 만들어 펼쳤던 「훈민정음」을 풀이하고 그것을 만들 때의 여러 이야기를 하면서조차 한자를 그 뼈대로 하여 썼던 것이다.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 창조자 세종 임금의 외로움은 이렇게 컸다. 그를 기리는 책에서조차 순 우리말로 기록하지 못하고 한자말을 누더기로 걸쳐야 비로소 제 할 일을 다 하는 것처럼 스스로도 제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으니, 그것을 깨우치려고, 한글을 만들었던 사람의 답답함이야 일러 무엇 하겠는가? 이 책 첫 장에는 이런 제목의 글이 이렇게 되어 있다. 이 첫 이야기 투를 보이기로 한다.
第一章 世宗大王의 憂患.
“世宗大王이라 하면 대개 世宗文化의 創造者요, 太平聖代의 君主임을 믿어 疑心치 않는다. 그러나 조용히 그 實錄을 살펴보면, 世宗一代는 實로 苦難의 歷史이며 憂患의 持續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거의 每年 같이 겪는 가믐, 이로 因한 東西南北 및 中央에 있어서의 祈雨祭, 民心의 不安, 日月蝕의 出現, 그 一代를 通하여 무려 五十餘回에 걸쳐 나타난 白晝의 太白星……等 天災와 異變에 대하여 恐懼戒慎하는 自省과 北方 野人의 頻繁한 侵虜, 南方倭人의 끈덕지고도 威脅的인 大藏經板의 强要, 政敎의 陵夷로 因한 官民의 姦盜와 不正 等에 對하여 끊임없이 刻苦腐心하고 이에 대한 適切한 措置를 講究하는 苦心 等”
이 글 또한 조선 왕조 세종임금을 신비화하고 왕권의 조건 없는 인정을 밑바탕에 깔고 쓴 글이다. 조선왕조를 통틀어 볼 때 이 세종임금이야말로, 한국의 나라 됨에 거의 누구도 해내기 어려운 글자를 창조함으로써 존경받아 마땅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야말로 고민깨나 하였던 깡패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권이나 지도자 영웅 따위의 존재문제 자체를 따지려고 할 때면 이런 훌륭한 왕이나 불거지, 지도자 이야기는 뒷전으로 물려놓을 수밖에 없다. 위에 옮겨 온 글은, 거의 한자에다가 한글로 토씨나 꾸밈씨, 풀이씨 몇 개만 섞어 놓은, 이 1970년대 글투에 대한 이야기를 따져 보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세종임금에 대하여 다룬 당대 나라 안팎의 돌아가던 판세 이야기는 그냥 넘어갈 생각이다. 놀랍게도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런 글쓰기 투는 의례히 그렇거니 하고 모든 한국 앎 패들이 받아들였던 그런 글쓰기 버릇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런 글투는 이미 여러 흐름에 따라서 더는 버텨내기 어려운 글 판이 되었다.
그러니까 이 1970년대 까지만 해도 학자들의 머릿속에는 한자로 써야만 뭔가 그럴듯한 자기 말을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말의 나쁜 집 곰팡이 균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6백여 년 전에 세종임금이 깊은 마음을 써서 만들어 낸 훈민정음 만듦의 정신은 60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렇게 뜻을 실은 말을 듣지 않거나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것은 아마도 틀림없이 어떤 믿음이라는 그들 깜냥의 자기감옥에 갇혀 있기 때문일 터이다. 그런 믿음이란 어떤 것일까? 한반도 이 쪽에서 600여 년 동안 믿고 살도록 곰팡이 균 씨(바이러스)를 주입받은 것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틀일 터이다. 15세기 그 때까지만 해도 한반도는 글자가 없어 남의 나라 글자인 한자와 한문을 빌어다 써왔다. 이유야 두 말할 필요도 없겠다. 그 때는 우리 글자가 없었으니까. 한자를 빌어다 쓴 이유는 대략 이렇지 않았을까? 첫째는 당대에 가장 큰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여 이웃 나라에게 눈을 부라리거나 힘으로 겁을 주었던 그런 깡패 닮은 힘의 균형이 그 쪽 중국에 실려 있었기 때문일 터! 약삭빠른 한국 지식인들은 모두 거기 매달려 자기됨을 만들어 갔다. 꽤 섬세한 글쟁이였던 18세기 박지원은 아예 한글을 몰랐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의 열하일기(熱河日記)가 중국을 돌아보면서, 그렇게 호들갑스럽게 놀라고 놀라는 그곳 풍물 꼴 새를 자세하게 그려내었겠지! 둘째는 정말로 한자야말로 가장 밝은(문명)글자이고 그 밖의 것들은 못난이패들이나 써먹은 글자라고 믿고 있었던 때문이었을 터! 셋째는 우리 스스로 만든 이 글을 읽고 쓰려는 스스로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기를 못 믿고 사는 인생! 그런데 한 영향력을 지닌 사람이 드디어 글자를 만들어 펴놓은 것이다. 이것을 펼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던졌다. 한국 사람들의 ‘말의 집짓기’는 처음 이런 이유들을 겉옷으로 입고 나타났다. 지금으로부터 560여 년 전의 일이었다. 그런데 드디어 오늘날에 와서 이런 한자를 꼭 써야한다고 주장하는 앎 패들의 주장은 모두 헛소리가 되어가고 있다. 국한문 혼용주의자들이 내던 시끄러운 말소리조차 이제는 저절로 사라져 간다. 과학기술에 기대어 힘을 기르는 이런 시대에 와서야, 560여 년 전에 조심스럽게 내세웠던 훈민정음, 그 한글이 아주 정교하게도 과학적이라는 사실이 증명되었기 때문일 터이다. 다시 처음 이 글자를 만들던 때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나랏 말싸미 중국에 달아 문자와로 서로 사맛디 아니할 쌔 이런 전차로 어린 백성이 니르고저 할 ㅣ 이셔도 마침내 제 뜻을 시려펴디 못할 놈이 하니라 내 이를 어여삐 녀겨 새로 스물 여덟 자를 만드노니 사람마다 해여 수비 니겨 날로 쓰메 편안키 따름이니라”
(國之語音異乎中國 與文子不相流通 故愚民有所欲言而 終不得伸其情者多矣
予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 欲使人人易習便於日用耳)
1446년에 이 새 글자를 퍼뜨리고 나서 정말 임금의 자리에 앉았던 세종은 무척 마음 조리는 나날들을 보냈을 것으로 생각된다. 수많은 아래 쪽 눈치꾸러기 관리 사람들조차 마음으로는 따라나서지를 않았고, 그래서 왕조실록이나 모든 공식문서는 모두 다 한자로 적는 일이, 그들 이 씨 깡패들이 잡았던 왕조가 끝날 때까지 이루어졌다. 이런 한자에 갇혔던 앎 패들은 1970-80년대 까지, 아니 2010년 오늘날까지도, 거기 갇힌 앎 꾼들이 많다. 그만큼 말의 집에 한 차례 묶이고 나면 거기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이렇게 갇힌 꼴 새는 말 그것만은 아닐 터이다. 여러 힘들이 밀고 당기며 보이는 눈 부라림에 따라 돌 머리들을 굴리던 사람들이 사팔뜨기로 눈깔들을 떴기 때문일 터이다. 오늘날 영어 제국주의 힘에 눈치를 살피는 사람들의 꼴 새를 보면 조선조 초기 사람들의 사팔뜨기 눈깔 뜨기 꼴이 저절로 보인다.
훈민정음, 訓民正音,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이것은 말의 집짓기이면서 동시의 글의 집짓기이다. 말은 소리기호이고 글은 글자기호라는 아주 뻔한 말은 달리 말하면 세종 임금과 그의 동조자 앎 패들은 조선조 왕패 나라를 세운다는 말의 집 용비어천가로 한 기둥으로 세웠던 것이다. 조선왕조를 위한 새로운 말의 집 하나! 새로운 글자 만들기, 훈민정음이 그것이다. ‘백성들에게 가르쳐 바른 말 쓰기’를 하겠다는 정치적인 뜻이 여기에는 들어 있다. 그 첫째 말은 나라 말씀이 중국과 다르다는 눈 밝힘이다. 말을 글로 옮긴다는 것은 여기서 저기로 또는 오늘을 뒷날로 이어 전하겠다는 뜻이 들어 있다. 그런데 1443년까지 한국 사람들은 말은 있으되 글자가 없어 중국 글자인 한자를 빌어다가 써왔다. 이것은 중국 사람들과 우리가 다르다는 말, 더구나 쓰는 말길이 달라 그의 글자로는 서로 우리말을 전할 수가 없었다는 선언이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이 선언을 통해 세종 임금은 한국 사람의 한국 사람됨의 길을 새로운 글자로 찾아내겠다는 뚜렷한 자기 주장이 들어 있었다. 한 민족의 민족 됨! 이 문제는 한 민족의 민족 됨의 문제에 걸린다. 민족이란 영원한 실체인가? 재일 동포 작가 가운데 이회성(李恢成, 1935년 2월 26일 태어남, 그는 일본의 소설가로 당시 일본이 지배하던 남사할린 섬에서 태어났다. 1945년 전쟁 뒤에 가족들과 함께 사할린 섬에서 탈출했다. 조선으로의 귀환을 원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1972년에 아쿠타가와 상을 받았고, 1995년에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이 아쿠다가와 상을 받고 나서 겨우 남한에 왔던 적이 있었다. 그는 1973년(?) 어느 날 <한국일보> 대강당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민족이란 영원한 실체’라는 말을 하였다. 왜국에 사는 조선 사람들의 사람됨은 언제나 변두리 사람이거나 격이 낮은 사람으로 업신여김 받는다. 일본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늘 조선과 조선 사람에 대한 열등감과 우월감이 왔다 갔다 한다. 틈틈이 나라를 침략하여 사람 죽이기와 도둑질을 일삼았던 짓거리(1592-98년에 두 번에 걸쳐 쳐들어온 임진왜란, 정유재란)나 아예 미국을 등에 업고 통째로 삼켜 36년 동안 이 나라에 와서 분탕질을 쳤던 식민지 맛들임 따위가 입맛에 남아 있는 왜국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스스로 못났다는 생각과 잘났다는 생각으로 범벅이 된 곰팡이 균이 득실거린다. 사람들의 모여살이는 이처럼 잘 난 맛과 못난 맛들임 곰팡이 실로 번져 너무나 뻔한 자기 치켜세우기와 낮추는 말 묶임에 엮이어 있다.
‘나랏말씀이 중국과 다르다’는 말 속에는 이런 사람들의 치우침과 부풀린 허위의식에 사로잡혔던 앎 패들에게 던진 뚜렷한 우리 주장이 들어 있다. 남의 것을 빌려 쓴다거나 남에게 기대는 삶은 언제나 무릎을 굽힐 수밖에 없는 관계거리가 가로놓여 있다. 중국말이나 중국 글자를 빌려다가 자기 삶을 적바림한다는 일은 사람끼리 매기는 변두리 자리에 언제나 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그렇게 스스로 서겠다는 뜻이 들어 있다. 이런 꼴들이 보기 싫었던 세종 임금이 훈민정음을 만들어 널리 펼쳐놓으려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공문이나 왕조실록 모두 다 한문으로 적혀 전해 왔다는 사실은, 깊이 새겨두어야 한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이어져 왔던 정치적 굴레로 된 말의 집 속에 갇힌 꼴 새였다.
힘 센 자들은 언제나 힘이 약한 사람들을 부리거나 억눌러 그들이 지닌 것들을 빼앗거나 가로채곤 한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자연법칙이나 사회법칙에 맞는다고 그들은 뻔뻔스럽게 믿고 사람들을 길들이거나 가두어 왔다. 알게 모르게 우리들 머릿속에 옮겨 앉아 슬고 있는 이런 왕(왕)이나 영웅, 지도자 따위 깡패 곰팡이 균은 반드시 말의 빛을 쏘여야 한다. 쇠붙이에 스는 녹이나 곰팡이 균은 늘 빛을 싫어한다. 곰팡이 실로 이어져 내리는 왕이나 영웅, 지도자라는 따위 곰팡이 균을 몸에 지닌 사람들 머릿속은 늘 어지럽고 맑지가 못하다. 그런 곰팡이 균에 중독된 사람들은 눈도 멀고 귀도 먹은 상태로 똑같은 말로만 지껄인다. 게다가 그것은 남에게 옮기는 독한 촉수가 날카로워 그런 놈들이 앉은 자리에는 모든 사람들이 다 거기 물든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옮겨 붙어 앉곤 하는 악성 곰팡이 균들을 꼭 지워 없애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들, 그러니까 왕이니 지도자니 영웅이니 하는 것들은 그냥 말로 된 가짜 그림자일 뿐, 탐욕이 크고 머리가 굳어 썩어빠진, 아주 빤한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말의 집짓기나 글의 집짓기로 사람들을 가두거나 묶는 꾀부림에 능하고 거짓말을 정말처럼 하는 사람들일 뿐이라는 것 또한 알려야 한다. 이런 말 부림에는 제국주의라는 깡패 행적 알리기와도 맞물려 있다. ‘나쁜 놈들’로 불리는 이들은 제 나라에서 나쁜 짓을 일삼다가는 남의 나라로 그 힘을 뻗어 나간다. 지금으로부터 꼭 백 1년 전 왜국에 이등박문이라는 악성 곰팡이 균이 있었고 그것을 하얼빈에서 우리의 빛 안중근은 쏘아 없앴다. 푸르둥둥 하던 이등 곰팡이 균을 맑게 닦았던 맑은 기운의 안중근! 그리고 나서 꼭 백년 전에 그는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왜놈들이 죽인 것이다. 때때로 사람 죽이는 훈련을 쌓아, 사람 죽이는 일에 익숙한 떼거리가 곧 군대(軍隊)이다. 악성 부라퀴들은 그런 살인 기술자들을 꾀어 몰아 남의 나라를 쳐들어간 다음, 어린 아이나 여인들을 찌르거나 총을 쏘아 죽이는 나쁜 짓을 마음 놓고 하도록 풀어 놓는다. 미친 개떼들을 마을에 풀어 놓고 그들이 날뛰며 부리는 나쁜 짓을 즐기면서 거들먹거리는 짓을 제국주의라는 또는 임페리얼리즘(imperialism) 또는 식민주의, 자본주의 따위로 불러 이들이 가까이 오는 것을 꺼린다. 가깝게는 왜국 부라퀴들이 중국에 들어가 부녀자들을 마음대로 찔러 죽여도 그냥 내버려 두었던, 그래서 어린아이를 밴 젊은 여인의 배를 칼로 찔러 죽이는 만행 따위를 벌였다는 소문으로 낭자한 말의 집 이야기나, 미국이 지금 그들이 모두 빼앗아 차지한 땅에 들어가, 새 나라 개척이라는 이름으로 거기 누대로 내려 살았던 인디언 족들을 도륙 낸 이야기 집들은 그저 기가 막힐 뿐이다. 이런 나쁜 힘으로 자란 제국들인, 유럽전역을 떨게 하였던 칭기스칸의 몽골제국, 영국연방제국, 팍스 로마나, 팍스 아메리카나 따위 나쁜 나라들의 예들은 지금도 우리들 머릿속에서 자라는 마음 곰팡이 실로 무성하게 뻗어 있다. 악의 축으로 자라면서 세계를 위협하는 미국이라는 곰팡이 핵, 이 나라는 오늘날 이 나라 안팎에서 너도 나도 거기 유학하거나 그들의 행튀를 본받기 위한 떠나는 젊은이들이 많다. 1890년대 말부터 1900년대 초 왜국에 너도 나도 달려가 왜식을 배워보겠다고 떠났던 동경 유학패들의 발걸음이 지금은 미국으로 방향이 바뀐 것이다. 어리석음이 더는 고쳐볼 수조차 없는, 정말 볼만한, 꼴 새이다. 그들에게서 좋은 것은 배워다가 이 나라에 쓸모 있게 쓰면 좋지 않겠나? 늘 들어 왔던 소리가 그것이거나 그것이었다. 한단지보(邯鄲之步) 꼴 새!
먼 옛날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가, 밤중에 해골바가지의 물을 맛나게 마시고 다음날 밝은 아침, 그것을 알고는 뭔가를 깨우쳤다는 신라 때 생각 큰 원효(元曉)는 뭔가 우리가 본받을만한 발자취를 남겼다.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 바로 자기 나라에서 스스로의 길을 찾아 크게 깨우친다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지금부터 떠나야 할 길 찾는 발걸음이다. 이때나 아주 옛날 그 때나 앎 패들 사이에는 나라 안패와 나라 바깥패로 갈려, 서로 으르렁대면서, 잘난 잣대를 들이대는 어리석음에 빠져 허우적댄다.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평범해 보이는 세계읽기는 그제나 이제나 똑 같은 물음에 답할 뚜렷한 잣대이다. 내가 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는 것과 남이 그렇다고 믿는 것 사이에는 아주 다른 것이 있다. 무엇보다 우리가 먼저 믿어야 할 것은 오직 자아 ‘나’의 있음 꼴이야말로 이 세상의 오직 하나뿐인 중심 축이라는 생각이다. 이 잣대로만 세상에 가득 찬 몬이나 일들은 제대로 읽힌다. 세상읽기의 바른 잣대란 오직 내 몸속 눈에만 달려있다. 그것을 믿어야만 내 앞에 선 그대인 ‘너’의 있음 꼴 새가 뚜렷하게 보인다. 나와 너, 그리고 그를 재는 잣대란 무엇이었나? 남의 눈인가? 정말 그 게 아니다! 그런 눈 너비는 반드시 ‘나의 나’로부터 만들어지고 그렇게 만들어진 잣대를 따라야 비로소 너와 그 또한 같은 값으로 매겨지는 ‘나’와 ‘너’가 ‘됨’의 바른 길로 나아간다. 이렇게 나와 너와 그가 만들어 지닌 말의 집으로부터 우리는 서로를 기두거나 묶는 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을 수가 있다. 그 말의 집이 서로를 비추는 슬기로 빛날 때, 우리는 제대로 묶인 삶의 나란히 앉은 참 꼴이 된다.
3. 마치는 글
오랜 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굳게 믿어왔거나, 모두 그것이 옳고 맞는 것으로 쓰여 왔던, 말집과 글 집들을 이 글에서 나는 뭉개버렸다. 이유는 많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 머릿속에 지닌 채 알게 모르게 자기를 억압하거나 강도질로 나아간, 깡패들에게 복종하는 곰팡이 균을 지니고 있다. 정말 이런 굳은 ‘사람들의 갇힘’을 으레 그렇거니 하고 내버려둬도 되는 것인가? 뭔가를 깨우쳐 안다고 믿고 있는 앎 패(지식인-지성인?)들이 이런 문제를 그냥 내버려둬도 되는 것인가?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아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참됨을 깨우쳐 아는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란 없는 것인가? 모든 사람들이 종살이로 나아가는 그런 종질 사실을 그냥 못 본 척 해도 되는 것인가? 눈 먼 척 하면서 아는 것으로 자기 이익이나 챙기는 앎 꾼이란 또 다른 강도일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말이나 믿음, 생각들을 때때로 뒤집어엎거나 거꾸로 세워봐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특히 우리들 마음속에 독버섯처럼 알게 모르게 자라나고 있는 우스운 곰팡이 균들은 햇볕 아래 반드시 펼쳐 내어 말려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를 가두고 있는 엉뚱한 믿음의 감옥이나 생각의 감옥, 그리고 돈의 감옥 따위로부터 우리는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나는 닥치는 대로 글을 읽었다. 시골 장터에서 펼쳐놓고 파는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이라든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따위를, 엉터리 개똥번역 판들이었지만, 돈이 되는대로 구해다 읽곤 하였다. 그렇게 마구잡이로 읽어대던 꼬마 때 나는 이종사촌 형님이 가지고 있던 책 궤짝 하나를 나는 찾아내었다. 거기서 나는 슬금슬금 선반 위로 기어 올라가 거기 고이 모셔있던 이광수나 홍명희, 김동인 등의 작품들을 가져다 읽곤 하였다. 어느 날 문득 나는 형님 앞에서 그들 작가들 가운데, 특히 이광수야말로, 엉터리 아니냐고 구시렁대며 중얼거렸는데, 두말할 필요도 없이, 나는 그 형님으로부터 퍽 크게 꾸중을 들었다.
‘네 까짓 게 뭔데 이 나라에서 크게 이름이 나 있고 휼륭한 작가인 이광수를 비판하냐 임마! 너 같은 꼬마가 뭘 안다고 말여!’
‘내가 왜 몰라? 그리고 형은 내가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자랄 지 알기나 해? 그 사람보다도 내가 더 훌륭한 사람으로 자랄 지 형이 어떻게 알아!, 그는 웃기는 통속 작가임에 틀림이 없어!’
‘꼴에! 그래도 잘난 척은!’
지금 그 형님은 살아계시다. 여든 살이 넘었다. 얼마 전 내가 예전에 형과 나누었던 이 이야기를 하였다. 형은 픽 웃었다. 이광수는 이미 죽어 입이 없다. 문제는 내 입이다. 언제인가 나도 사라져 입을 닫을 지금의 이 입! 그의 글은 이미 모든 뒷사람들 입에서 녹고 씹혀 별로 남은 게 없다. 살아 당시에 그렇게나 잘난 것으로 떠들썩했다던 그였지만 그가 떠나고 나자 친일작가, 그것도 아주 던적스러운 친일 행적이야기가 책으로 묶여 뒷 사람들의 눈을 괴롭힌다. 이경훈 교수가 옮겨 놓은 「친일문학전집Ⅱ」(평민사 판, 1995년 판)과 「춘원 이광수 친일문학-동포에 고함」(철학과 현실사, 1997년 판)을 읽으면, 그 뻔뻔스러움에 토악질을 참을 수가 없다. 그와 동시대에 살았던 앎 패들 가운데는 죽음을 무릅쓰고 친일을 거부하였던 문인들이 아주 많았다. 문제는 그들이다. 그들이야말로 먼 뒷날 올 뒷사람들에게 전해지는 삶의 잣대일 수 있기 때문이다. 행여 못된 놈들이 네 영혼을 걸고 자기 스스로를 배신하도록 총칼로 위협할 때에라도 결코 굽혀서는 안 된다는 그런 자기결정의 잣대가 우리 앞에는 여럿 휘날리며 서 있다. 이상화도, 이육사도, 윤동주 또 채만식이나 염상섭, 백석이나 이상도 모두 다 그런 잣대들이다. 이런 작가들은, 빛나는 한옥지붕 위의 가지런한 기와처럼, 그들이 쓴 글의 집으로 반짝이며 늘어서 있다. 눈이 부시다.
우리는 우리가 믿고 있는 믿음이나 생각, 말을 벗기고 허물며, 흩으며 모든 굳어진 마음 감옥이나 생각의 집, 믿음의 시커먼 굴속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것도 아주 주기적으로 그래야 한다. 작가됨의 엄격한 잣대는 그가 작품으로 이야기한 내용에 맞아떨어지는 삶의 발자취로 남긴 삶이다. 작가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등에 짊어진 채 가시밭길을 걷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가 정말로 만들어 내세운 인물이 까마득한 높이로 사람됨의 깃발 위에 놓여 있다면 그것을 만든 작가에게 독자들은 그런 사람됨의 모습이나 태깔을 보고자 한다. 이광수는 자기가 쓴 이야기들(소설)이 걸어간 발자취 고대로 뚜벅뚜벅 걸어갔던 사람이었다. 그가 죽은 다음에 짊어진 불행은 고스란히 우리 독자들에게 남아 이어지고 있다.
누구든 작가에게 그런 가시밭길을 걷도록 부추기거나 밀칠 권리는 없다. 단지 그들 작가 시인들은 스스로 가려 선 길을 걸어가면서 자기가 만든 말의 집에 갇힌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에게 씌워지는 모든 칭찬이나 욕됨은, 오직 그 스스로 짐 질 수밖에 없다. 본명이 김해경(金海卿)이었던 이상(李霜)이 왜정 식민지 시대를 살면서 겪은 치욕을 우리는 그의 작품이라는 말의 집들에서 알고 있다. 그의 대표작인 소설 「날개」가 있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로 시작되는 이 소설의 속 이야기는 무엇이었나?
자본주의라는 몹쓸 강도질 생각 틀은 모든 사람들의 살아 있음을 팔고 사는 물건으로 바꾸어 놓았다. 제국주의, 식민주의, 세계화, 글로벌주의 따위의 던적스런 말의 집은 모두 다 가진 자, 특히 많이 도둑질한 상인 계급이 벌이는, 돈놀이 장난질과 이어져 있다. 이 돈놀이에 의해 일단 돈이 크게 모이면 그것은 곧 사람들을 부리는 커다란 갈퀴가 된다. 그래서 이런 갈퀴손은 대체로 가진 몇몇 가진 자들만의 놀이일 뿐이다. 지금 우리는 1930년대에 벌어졌던 ‘자본=돈’의 부라퀴 짓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지만, 당대 왜놈들이 여기 와서 한 짓거리 못잖게, 지금 이 나라 꼴 새 또한 그때와 별반 다르지가 않다. 지금 이 나라(북한도 한데 묶어서)는 모두 다 미국과 일본에 둥지를 튼 돈놀이꾼들이 저질러 놓고, 돈놀이 장사를 벌인, ‘자본 분탕질’의 흙탕 속 싸움판으로 꼴도 보기 싫은 나라 몸통이다. 근 60여 년 동안 이 나라를 두 쪽으로 갈라놓고 돈놀이 장사질로 재미를 보는 미국이나 일본, 또는 한국에 둥지를 튼 큰 손들이 저질러놓은, 이 나라 꼴 본새에 대해서 한 지식인은 이렇게 분석하여 읽고 있다.
“남북정권 모두 국민의 인권과 행복은커녕 정권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허울 좋은 명분을 끊임없이 재생산해냄으로써 북에는 김씨 일가, 남에는 강대국에 붙어 친일과 친미를 외치며 호의호식해온 자들의 권력과 자본의 세습이 이루어진다. 이처럼 남북한 모두 동일한 세습권력이 이어지고 있으며, 기득권 유지를 위해 서로 상대방을 팔아가며 국민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행태다.”
돈놀이, 그것은 사람의 영혼이나 정신 양심 지성 모두를 다 물질로 바꾸어 상품이 되게 하는 더러운, 덫이다. 자본주의는 쉽게 말해 놀아 남는 돈놀이로 돈 새끼를 치게 만드는 가진 자들의 돈을 불려가는 장난질 물기둥이다. 이런 장난질이 일반화되어 있는 세상에서는 모든 가치가 다 돈으로 바뀌어 헤아려진다. 양심이나 지성 따위 모두가 다 그렇다. 이상은 그것을 꿰뚫어 읽었다. 그의 작품 「날개」가 들이대는 말 칼질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 작품 속에 서 그는 심지어 아내조차 돈을 주어야 안아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창녀인 아내! 자본주의 세상에서 창녀나 돈의 노예 아닌 자가 정말 있는가? 이런 자본주의, 제국주의, 식민주의 따위 강도질 속셈과 속 모습을 이 작품 「날개」는 끔찍한 꼴 새로 아주 잘 보여주었다. 1930년대, 왜놈들이 한국에 와서 더러운 장사치 돈놀이로 퍽 재미를 보던, 그런 시커먼 시대의 한복판에서였다. 「날개」는 1936년에 「지주회시」(‘지주회시’란 돼지와 거미라는 뜻을 지닌 한자말이다. 자본가로 살진 돼지와 그 돼지 밑에서 일하다가 떠밀려 굴러 떨어진 바싹 마른 아내를 거미로 비유한 이야기.)와 같이 발표된 작품이다. 한국의 남자들은 아예 창녀들의 등신 남편으로 아무런 할 일조차 없는 방콕으로, 병신으로 구겨 처박힌 신세로 지내던 시대에, 그들은 모두 입에 재갈을 문 채 밑 없는 지옥의 골짜기로 빠져 들어갔다. 이것이 이상이 읽었던 당대 한국 사람들 삶의 피할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1937년 8월 18일 자로 쓴 윤동주의 이런 시가 있다.
호젓한 세기의 달을 따라
알 듯 모를 듯한 데로 거닐과저!
아닌 밤중에 튀기듯이
잠자리를 뛰쳐
끝없는 광야를 홀로 거니는
사람의 심사는 외로우리니
아―이 젊은이는
피라미드처럼 슬프구나.
―「비애」 전문―
앞날에 대한 어떤 바람도 꿈도 꿀 수 없는 한국 젊은이의 삶은 위와 같았다. ‘피리미드’, 드높이 쌓아올림 돌무더기의 엄청난 무게에 갇혀 어두운 세계를 읽어야 하는 젊은 이, 그들은 누구였나? 윤동주는 1937년 당대의 슬픈 벌판에 서 있는 사람들을 읽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렇게 ‘끝없는 광야’를 홀로, 오직 혼자, ‘나의 나’를 결정하면서 걸어가야 한다. 빚지는 사람들 숫자에 맞게 돈을 찍어내어 그 돈이 새끼를 치게 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을 거기 묶어 지배하는 돈놀이꾼들의 세상! 새끼 치는 돈의 생리를 마땅한 어떤 것으로 뿌려대는 피 빨이 심부름꾼들이 뿌려대는 여러 말의 집들, 그들이 날이면 날마다 뿌리는 말의 집들은 모두 이 피 빨이들의 장난질에 이어진 기둥, 서까래와 흙벽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묶임과 갇힘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어디로 나 있을까? 이 물음이 곧 이 글로 뭔가를 찾아 나선 내 발걸음의 끝이다. 누군가는 나서서 이렇게 빚 곰팡이 나라 말의 집에 갇힌 사람들 살림을 벗겨내는 일로 커다란 빛을 뿌려내야 한다. 많은 앎 꾼들이 있어 보이지만 이것을 알고 그것을 풀어내라는 앎 꾼은 이 나라 어느 학교에서도 키워내려 하지 않는다. 빤하게도 이 나라에는 삶의 무서운 코미디 연극 무대가 펼쳐져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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