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장 약속 공개
목 차
강 의 ( 1 - 11 )
크게 외치는 역사(1-3, 사24:14-15, 미6:1-2)
변화성도의 사명(1-11)
선지서를 전하는 바울과 말세 증인(5-7, 행28:23-28)
선지자들에게 전한 복음과 새 시대(5-7, 11:15-19)
작은 책을 먹고 다시 예언할 사명(5-11)
척량의 역사로 하나가 됨(5-11:2)
증인된 자격과 사명(7-11, 행1:21-23)
다시 예언과 교회 문제(10-11)
기독교 통일의 완전성(11-11:2)
강 의
다른 천사가 세 번째 나타난 사실은 8장, 9장과 같이 종말에 환란과 재앙이 올 때에 그 재앙을 피하게 하는 그 역사는 다른 천사가 보여지는 일인데 7장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나온 그 진리를 다시 구체화시켜서 보여 주는 것이다.
몸에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보여진 것은 하나님의 허락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종말의 역사인데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는 것은 약속의 말씀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동시에 그 얼굴이 해 같이 보인 것은 완전한 빛의 역사를 뜻했다.
그런데 그 발은 불기둥 같다는 것은 승리의 역사이다(1).
그 손에 펴놓은 작은 책을 들고 그 오른발은 바다를 밟고 왼발은 땅을 밟고 나타난 것은 세계적인 승리의 역사를 가르쳤다(2).
사자의 부르짖는 것 같이 큰 소리로 외치는 때에 일곱 우뢰가 발한 것은 종말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나서 세계를 각성 줄 때에는 진노의 날이라는 것이다(3).
우뢰소리에 대하여서 아무런 것도 기록하지를 말라고 한 것은 말세의 종은 진노의 날에 재앙이 하등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재앙은 악한 세상을 벌하기 위한 진노이니 말세의 종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될 것을 믿고 심판의 비밀은 과거의 선지들의 전한 복음과 같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증거할 것뿐이라는 것이다(4~7).
이러한 계시를 보는 사도 요한에게 그 작은 책을 먹으라고 한 것은 말세의 종은 완전 계시의 비밀인 다림줄의 진리를 몽땅 가감 없이 완전 무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8~9).
이 작은 책이 입에는 꿀같이 단데 배에서는 쓰게 된다는 것은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를 먹고 그대로 싸우려면 쓴 잔인 십자가가 있다는 것이다.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다림줄의 진리를 누구나 다 듣도록 세계적으로 전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말씀을 정확히 알도록 증거하고야 심판을 하기 때문이다(10~11).
크게 외치는 역사
(사 24:14-15, 계 10:1-3, 미 6:1-2, 요절 계 10:3)
서 론
이 날까지의 전도는 영혼을 살리기 위하여 증거하되 잠잠히 개인 개인을 찾아가서 믿게 하는 것을 중심한 것이다.
은혜의 기간을 두시되 20세기라는 기간을 두었지만 변화성도들이 크게 외치는 기간은 개인적인 구원을 목적하지 않고 대중적인 구원을 목적하되 세계적인 심판과 세계적인 구원이 된다.
이것은 강하고 위대한 역사이므로 하나님의 역사가 칠 배나 강하게 임하게 되어 크게 외치는 강한 역사가 되는 것이다. 이제 크게 외치는 역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성서로 알 수 있다.
1. 여호와의 위엄을 위하여 크게 외치는 역사 (사 24:14-15)
이 날까지는 죄인을 부르는 역사이므로 여호와께서 잠잠히 계셨지만 변화성도가 외치는 것은 여호와 진노하셔서 세계 인류를 불로 살라 버리는 날이 임할 때에 동방 바닷가에서부터 그 위엄을 인하여 크게 외친다고 하였다.
종이라는 사람은 여호와께서 잠잠하시면 같이 잠잠하게 되는 것이요, 여호와께서 강하게 일어나시면 종도 강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진노의 날에 여호와께서 들어 쓰시는 종은 크게 외치되 동방에서부터 먼저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고, 모든 섬들에서도 여호와를 영화롭게 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변화성도의 역사가 동방에서 나올 것을 계7:2에도 말하되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큰 소리로 외친다고 하였다.
이것을 보아도 동방역사라는 것은 진노의 날에 일어나는 역사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다.
2. 땅과 바다를 밟고 크게 외치는 역사 (계 10:1-3)
기독교가 이 날까지는 세계 인류를 다함께 깨우치는 역사가 아니었지만 종말의 역사는 세계 인류가 다 함께 깨우침을 받는 역사이다.
지금 과학이 극도로 발달된 것은 재림의 날에 세계적인 역사가 일어나되 복음의 역사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환난 재앙도 세계적으로 올 준비를 갖춘 것이다.
만일 과학이 발달되지 않았다면 인류적인 큰 역사를 일으킬 수가 없을 것이로되 과학 발전이 왔으므로 세계 인류를 한 시간에 없애는 재앙이 오게 되었고, 세계 인류를 다 함께 깨우칠 역사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인류적인 전멸이라는 전쟁을 앞에 놓고 세계를 깨우치는 역사가 반드시 있어야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계시록에 나타난 다른 천사는 분명히 변화성도의 역사를 보여준 것이다.
3. 여호와의 쟁변을 크게 외치는 역사 (미 6:1-2)
이 날까지에 전한 복음은 죄인을 부르는 것이었지만 종말에 변화성도가 외치는 역사는 여호와의 쟁변인 것이다.
이 쟁변이라는 것은 용서가 없는 심판을 내린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말기에 선지들이 받은 묵시의 말씀은 용서 없는 심판이 오고 새 시대가 온다는 것을 목적한 심판의 경고의 나팔이 되는 여호와의 쟁변인 것이다.
사3:13과 41:1를 보아도 여호와의 변론이 있고서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든다면 세상의 법도 완전한 변론을 한 후에야 판사의 판결이 내리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변론하는 역사가 있은 후에야 이 땅에 말씀대로 심판을 나리는 것이다.
결 론
기독교가 이 날까지는 잠잠히 역사하다 것을 목적하였지만 변화성도의 역사라는 것은 크게 외치고 크게 부르짖고 크게 싸우는 역사가 된다.
왜냐하면 원수를 갚는 심판의 다림줄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엘리야가 거짓 선지자와 싸우다가 들림을 받았듯이 변화성도도 크게 싸우다가 들림을 받게 되는 것이다.
변화성도의 사명
( 계 10 : 1 - 11 )
서 론
계시록에 보여준 다른 천사의 역사는 변화성도의 사명을 보여주었다고 보게 된다.
왜냐하면 변화성도가 역사할 때는 3대화가 올 때에 그 화를 피하는 역사가 계시록이기 때문이다.
계시록은 진노의 날에 남은 종이 전할 복음이다(계22:6, 18-19).
이날까지 전한 복음은 부활을 증거하는 사명이다. 이 목적은 속죄 구령의 역사다(눅24:44-49).
그러나 변화성도가 전할 때는 재앙의 날에 남은 변화성도의 사명이란 것을 다음과 같이 알 수 있다.
1 대지 : 작은 책을 든 천사의 모양 (1-3)
몸에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광경이 보인 것은 하늘로부터 구름 타고 승천할 역사가 오는 광경인데 그 머리에 무지개는 변화성도를 통하여 약속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며 얼굴이 해 같다는 것은 어두움을 물리치고 나갈 빛의 역사인데 발이 불기둥같이 나타난 것은 원수를 완전히 승리한 역사이다.
그러므로 변화성도로 말미암아 작은 책의 계시록을 가지고 크게 외칠 것을 보여준 것이다. 변화성도의 인격은 사자같이 강하게 역사하다 것이다.
왜냐하면 이 날은 진노의 날이기 때문이다.
2 대지 : 지체하지 않고 지상왕국이 올 때의 역사이다 (4-6)
변화성도가 외치는 때는 죽어서 천당을 목적한 것이 아니고 지체하지 않고 성도의 나라가 온다는 경고다.
그러므로 이 역사는 조물주 하나님을 가르쳐서 맹세하는 일인데 이 맹세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일에 절대 몸을 바쳐 급한 경고를 한다는 것이다.
3 대지 : 선지들에게 전하신 복음을 다시 예언함 (7-11)
이 날까지 사도들은 선지서에서 초림의 주가 온 것을 가르치는 목적에서 예수의 행적을 기록하고 성경을 들어서 편지를 썼던 것이다.
그러나 변화성도는 선지서의 부분적인 말을 할 때가 아니고 지상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은 선지서에 말씀 한대로 지상왕국이 올 것을 증거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계시로 이 책을 받아서 먹으니 입에는 꿀같이 다나 배에는 쓰다는 것은 이 책을 전하는 때는 십자가의 쓴잔이 없이는 전할 수가 없는 때가 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계시록의 말씀대로 붉은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가 합하여 세계적인 큰 세력을 잡고 환난이 일어나는 때이므로 그 세력과 싸우는 자는 순교적인 생활이 없이 전할 수 없을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받은 계시는 변화성도가 역사할 것을 보여준 동시에 변화성도가 역사할 때에 일어나는 원수의 세력을 보여준 것이 계시록이다.
언제나 하나님은 원수의 세력은 어떻게 들어 쓸 것과 종말의 변화성도를 어떻게 쓸것을 목적하고 모든 선지에게 하나같이 묵시를 보여주었고 계시록에도 보여준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성도의 사명은 메시야가 왔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명이라면 변화성도의 사명은 심판주를 영접할 준비를 시키는 사명이다.
준비라는 것은 진노의 날에 쓸 자가 되려면 예언의 말씀을 지켜야만 되기 때문이다.
결 론
오늘 10장에 대한 공부는 변화성도의 사명을 목적하고 말한 것이니 언제나 계시라는 것은 그 시대 사람에게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보여준 것이니 계10장은 9장과 같이 화가 올 때에 그 화를 피하는 자는 변화성도의 사명으로만이 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선지서를 전하는 바울과 말세증인
( 행 28 : 23 - 28, 계 10 : 5 - 7 )
서 론
하나님의 말씀인 선지서는 신약 성서의 원체와 같은 의미를 깊이 알고 우리가 성경을 논해야 될 것이다. 바울도 로마에 가서 이사야서를 들고 강론을 했던 것이다.
말세의 증인도 선지서를 들고 증거할 것을 말했다. 그러면 바울의 강론과 말세 증인의 증거의 차별 점을 분명히 알지 못하면 성서의 혼선을 가져올 염려가 있다.
1. 선지서를 강론하는 바울 (행 28:23-28)
바울은 일생 동안 어디로 가나 선지서를 강론했다.
심지어 로마에 가서 셋방을 얻고 오는 사람마다 선지서를 강론했던 것이다.
그 목적은 예수님 한 분만을 이방인에게 말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기 사명은 여기에 국한된 줄 알므로 선지서 전체를 강론할 자격은 없었다.
왜냐하면 거기에 국한된 계시를 받았기 때문이다(엡3:1-3).
바울은 계시로 받되 선지서를 통하여 예수님의 일을 밝히 증거할 수 있는 영감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일을 정확히 선지서를 들어서 강론을 권위 있게 한 사람은 사도 바울밖에 없다.
그러므로 바울은 친수로 신약 성경 십사권을 쓰게 되었다.
이것만 보더라도 특별한 은혜를 받은 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일 바울의 강론이 없었던들 기독교의 십자가의 복음은 확실한 광명을 이루지 못할 염려가 없지 않는 것이다.
그는 특히 바리새 교인 중의 한 사람으로 성서에 능한 학자의 한 사람이었다.
구약 성서의 학자적인 자격을 가진 바울은 계시를 아울러 받게 될 때 천재적인 강론을 말로도 하고 붓을 들어 쓰기도 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의 일을 분명히 복음적으로 알려면 바울 서신을 볼 필요가 있다.
2. 선지서를 전하는 말세 증인 (계 10:5-11)
사도 요한은 묵시를 볼 때 다른 천사가 몸에 구름을 입고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 그 손에 펴 놓인 작은 책을 들고 오른발은 바다를 밟고 왼발은 땅을 밟고 사자같이 부르짖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큰 소리로 외치기를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일곱째 천사가 소리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고 우렁찬 음성을 듣게 되었다.
이것은 천사가 전한다는 것을 본 것은 아니고 말세의 사명자가 이와 같이 외쳐야 할 광경은 보여준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행한 일이 선지서와 같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제목으로 말했다면 말세 증인은 하나님의 심판의 비밀인 선지서와 같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을 목적한 해석이다.
만일 심판 날에 가서도 바울만 증거하고 그밖엔 증거 못한다면 이 사람은 말세 증인은 못 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는 교회에 가서 예수 믿으시오 하며 전도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바울의 강론인 편지서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분명히 알았다면 완전 계시인 계시록을 통하여 심판기에 될 일을 분명히 알되 선지서를 바로 알게 될 것이다.
세밀히 말하자면 바울이 이사야서를 드는 것은 그리스도 한 분만을 목적하여 들었고 말세 증인이 선지서를 드는 것은 심판기에 남은 종과 남은 백성들에게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는데는 어떻게 된다는 사실을 강론하여야 할 것이다.
바울은 이미 그리스도가 세상에 와서 행한 일을 밝히 증거키 위한 목적이요, 말세 증인은 그리스도를 믿는 백성으로써 당할 환난과 또는 환난가운데 받을 보호와 환난 중에 역사하다 역사와 거짓 선지자의 미혹을 바로 알려주어서 미혹 받지 않도록 하는 동시에 죽음을 맛보지 않고 안식에 들어갈 백성들을 살길로 인도하자는 목적이다.
결 론
우리는 바울의 서신과 계시록을 반대적으로 본다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편지서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했고 계시록은 예언을 지켜야만 구원받는다고 했으니 이것을 합할 수가 없다. 즉 시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만일 말세 증인이 믿음으로 천당 간다고 해도 위험이요, 바울이 증거할 때 예언을 지켜야 한다고 했어도 탈선이 될 것이다.
바울은 예수의 일만 바로 증거했기 때문에 탈선된 교훈은 조금도 강론한 일이 없다.
말세 증인은 심판 날에 재앙을 받지 않도록 하는 사명이 있으니 이 예언의 말씀을 증거해야만 탈선이 없을 것이다.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새 시대
( 계 10 : 5 - 7, 11 : 15 - 19 )
서 론
기독교의 복음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이 있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전하신 복음이 있다.
사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전하신 복음을 기록한 글이며(눅1:1-4), 또 편지서는 복음을 받은 종들이 복음을 변론한 글이다.
그러나 선지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으로 선지들에게 전하신 복음인데 심판과 새 시대를 목적하고 전하신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원수를 갚아 준다는 것을 목적하고 말씀하시었다 (사 1:24-27)
이 복음을 하나님께로 받은 예루살렘이 밟히게 되었고 협상적인 신앙 노선에서 이방 신과 타협을 하는 지도자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자체가 이방화 되어서 오히려 참된 선지들이 도저히 역사할 수가 없는 난관에서 압박을 받게 되고 축출을 받게 되고 억울하게 핍박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에 하나님의 말씀은 강한 이방을 없이하겠다는 것과 부패한 정치와 종교와 사회를 다 불사르고 신령한 당신의 사람으로 완전한 평화왕국을 이루겠다고 하시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은 참된 종들은 얼마든지 기뻐할 수 있는 말씀이로되 그 밖의 사람들은 다 망한다는 말씀이므로 그 시대 사람들이 선지들을 반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복음은 인류 종말에 가서 완전히 전할 복음이 되었다. 왜냐하면 인류적인 심판이요, 인류적인 구원이니 전세계 인류에게 이 복음을 전하고야 심판이기 때문이다.
2. 인류적인 구원을 선포하고야 심판이 온다고 말씀하시었다 (사 9:1-2, 슥 9:10)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어 이방의 빛이 되게 하시어 그 빛을 따라오는 자는 구원하고 따라오지 않는 자는 다 심판하므로 새 시대가 올 것을 말씀하시었다.
그러므로 이날까지는 아들을 통하여 모든 나라 사람이 빛을 따라 하나님께로 돌아올 기회를 주는 때이므로 하나님께서 선지들에게 전하신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이방에게 전하신 복음을 전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교훈이라는 것이다. 주님은 세상에 오셔서 유대인을 책망하고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시었다(마21:31).
그리고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이스라엘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하셨다(마8:11-12).
또는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말씀하시었다(마24:14).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그의 교훈을 모든 섬들이 앙망하리라고 하시었다(사42:4).
이 모든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가르친 교훈은 유대를 중심한 것이 아니고 전부 이방 사람이 구원받게 될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런데 여호와의 말씀에 이방 세력이 전부 망하고 야곱의 자손이 세계를 통일한다고 한 것은 이방 사람이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은혜 시대가 지나서 심판이 오고 새 시대가 올 것을 가르친 말씀이다.
다시 말하면 이방을 심판하고 성도의 나라가 온다고 한 것은 구약 시대의 이방을 가르친 것이 아니고 인류 종말의 이방을 가르친 것이다.
3. 말씀을 지키는 자로 새 시대를 이룰 것을 말씀하시었다 (사 66:1-2, 5, 계 22:6-7)
이 말씀은 여호와께서 심판과 새 시대를 가르친 말씀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교훈으로 말미암아 천하에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얻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자녀의 권세를 얻은 자들이 이방을 이기고 성도의 나라를 이루게 되는 역사를 하나님께서 선지들에게 가르친 교훈이라고 한다.
첫째아담이 간교한 뱀에게 미혹을 받아 말씀을 지키지 못하므로 그 후손이 저주를 받게 되었고 말세의 성도들이 옛 뱀인 용의 미혹을 이기고 말씀을 지키므로 그 자손이 지상에서 큰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을 새 시대라 하는 것이다(사66:22, 계20:9).
그러므로 가장 복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선지들에게 전하신 복음을 순종하는 자라고 보게 된다.
4. 상을 주시며 멸망시키는 때를 말씀하시었다 (계 11:15-18)
선지들에게 전하신 복음은 선지와 같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복음을 전하던 종들은 구약 때로부터 심판 때까지 다 왕권의 상급을 받게 되고 왕권 받은 종들을 망케 하려던 자들은 멸망시키는 심판을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선지 시대에나 사도 시대에나 지금이나 남을 살리기 위하여 충성을 다하던 종들은 왕노릇을 하게 되고 참된 종들을 대적하던 무리들은 영원히 멸망하는 것을 심판과 새 시대라 하는 것이다.
선지에게 전하신 복음은 선지 시대에 가르친 말씀이로되 이것이 인류 종말의 심판의 다림줄이 된다.
결 론
하나님은 질투의 신이요 보복의 신이시다.
사랑하는 자에게 축복을 주기 위하여 질투하시고 사랑하는 자의 원한을 풀어 주기 위하여 보복을 하시는 것이니 여호와께서 선지에게 가르친 말씀은 전부가 하나님의 말씀만 순종하라는 것과 원수를 갚아 주고 새 시대를 이루겠다는 것이 중점인 것이다.
작은 책을 먹고 다시 예언할 사명
( 계 10 : 5 - 11 )
서 론
기독교는 작은 책을 꿀같이 먹고 다시 예언함으로써 완전한 역사가 일어나게 되고 재림의 주를 맞이할 것을 보여준 것이 계시록의 중점이 되는 것이다.
금일에 기독교가 작은 책을 꿀같이 먹고 다시 예언하는 사명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면 무서운 거짓 선지의 미혹을 이길 수가 없을 것이다.
이제 작은 책을 다시 예언하는 사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작은 책을 꿀같이 먹을 일 (5-9)
계시록의 다른 천사의 역사는 작은 책을 꿀같이 먹고 다시 예언할 사명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것을 목적한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천사가 몸에 구름을 입고 내려오는 광경이 나타났다. 이것은 변화성도의 역사가 무엇인 것을 보여주는 광경이다.
변화성도라는 것은 그 몸이 흙으로 돌아가지 않고 구름을 타고 승천하신 예수님의 몸과 같이될 것을 뜻한 것이니 이와 같이 된 자라면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는 것은 완전한 약속의 말씀이 영감으로 머리 위에 임하는 뜻이요 얼굴이 해같이 되는 것은 능히 어두움의 세력을 물리칠 빛의 권세를 뜻한 것이요 발이 불기둥 같다는 것은 원수를 짓밟고 나갈 승리의 용사를 뜻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역사를 하는 종은 사자같이 외치되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진다는 종말의 경고이다.
그러므로 작은 책을 꿀같이 먹어야만 하나님이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이 무엇인 것을 예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은 책이라는 것은 다시 예언할 수 있는 완전 계시의 말씀인 책이니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을 가르친 것이다(계5:1).
이날까지의 전한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전한 천국 복음이요 이제 기독교 종말에 다시 예언할 종은 작은 책을 꿀같이 먹어야만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은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의 비밀을 기록한 계시록이 된다.
그러므로 이것은 계시록을 완전히 먹은 종은 대표적인 종이 나타날 것을 뜻한 것이다. 먹는다는 것은 자기가 연구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 받아서 먹을 때가 올 것을 보여준 것이다.
2. 쓴 것을 통과함 (10)
쓴 것이라는 것은 그 말씀이 쓰다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완전히 깨달은 종으로서 사단의 피해를 당하는 과정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쓴잔을 통과했고 말세의 종은 작은 책을 꿀같이 먹었으므로 쓴잔을 통과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는 것이 사명이니 그것이 쓴잔이 되었고 말세의 종은 작은 책을 완전히 먹고 그것을 전할 수 있는 인격에 도달하기 위해서 쓴잔이 있다는 것이다.
언제나 쓴 것을 통과한 후에 그 사명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말세의 종은 천국을 위한 사명이 아니요 일곱째 나팔을 부는 때에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 나라가 되는 이 역사에 대표적인 종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대표도 언약의 대표가 있고 율법의 대표도 있고 구원의 대표도 있고 다시 예언의 대표도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아브라함, 모세, 그리스도, 말세의 다시 예언자 이것으로써 다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천하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는다는 그 언약은 모세의 받은 율법으로써 예언적인 선지 국가가 이루어지므로 민족적인 종교가 되었고 그리스도께서 구원을 완성하므로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고 말세의 종이 다시 예언하므로 써 완전한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표적인 종에게는 쓴잔을 통과해야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3. 다시 예언 (11)
다시 예언이라는 것은 세계적인 심판의 경고를 뜻한 것이니 모든 선지들이 심판과 새 시대를 목적하고 묵시를 본 말씀을 말세의 대표적인 종을 통하여 선지들의 받은 묵시를 다시 예언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가 있으려면 작은 책의 비밀을 꿀같이 먹고 마귀와 싸우는 시련에서 승리를 이루는 인격이 됨으로써 세계적인 역사가 있을 것을 뜻한 것이다.
사도 요한은 계시를 보았지만 이것은 사도 요한의 사명적인 뢰자의 영감의 역사를 할 때가 올 것을 보여준 것뿐이다.
많은 제자가 있지만 베드로에게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라는 사명을 주었으므로 이름대로 역사했고 요한은 보아너게라는 이름을 주었는데 우뢰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심판의 역사를 뜻한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예언이라는 것은 용서 없는 심판의 다림줄을 뜻한 것이다.
결 론
제일 큰 것은 다시 예언의 사명이니 하나님께서 모든 선지에게 제일 큰 문제를 놓고 말한 것은 심판과 새 시대를 중점 했음으로써 종말의 종은 일점 일획도 가감할 수 없고 여호와의 말씀을 다시 예언하는 것만으로 세계 통일의 역사를 가져올 것이다.
척량의 역사로 하나가 됨
( 계 10 : 5 - 11 : 2. 요절 11 : 1 )
서 론
주님께서 시몬에 맡긴 사명은 교회를 세우라는 것이므로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주셨다. 이것은 반석이라는 뜻인데 교회는 설 적에 바로 서야 된다는 것이다.
교회를 세우는 사명을 맡은 베드로가 죄를 정하면 정하여지고 사하면 사하여진다고 하였다.
이것은 어느 민족이나 할 것 없이 베드로가 전하는 복음을 믿으면 죄가 사하여지고, 믿지 않으면 정죄함을 받는다는 것이다.
지금 아무리 교파가 많이 생겼지만, 죄를 사함 받고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다 하나이다. 만일 그리스도의 속죄를 참으로 믿지 않는다면 교회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 죄사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떻게 하여야 되겠느냐 하는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닥쳐 온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인간 종말에 교회를 통일시키는 역사는 어떠한 것이냐 하는 것을 계시로 보았던 것이다.
1. 다시 예언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하는 일 (10:5-11)
기독교는 다시 예언하는 역사로 끝을 맺게 된다.
그러므로 기독교 종말에 작은 책을 꿀같이 받아먹어서 쓴 시련이 온다 하여도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라는 것을 사도 요한은 계시로 보았다.
계시록의 말씀은 재림의 주를 맞이할 성도들의 전할 복음인 것이다.
사도 요한이 받은 계시록을 꿀같이 먹고 다시 예언할 때가 인간 종말이다.
인간 종말이라는 것은 붉은 용의 일곱째 머리가 되는 짐승의 세력이 세계를 침투하되 거짓 선지를 앞에 놓고 활동할 때라고 하였다.
계17:10을 보면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깐동안 계속하리라 하였다.
하나는 있고 한 것이 분명히 로마를 가르쳤다면 기독교를 없애려고 정치를 하던 로마 황제인 네로와 같은 정치가 심판기에 다시 나오게 될 것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기독교를 없애는 반 기독적인 정책을 하고 있는 공산국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때를 인간 종말로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일곱째 머리가 망하고 새 시대가 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때는 다시 예언하는 종이 나와야 할 것이다.
모든 선지들은 하나같이 인류 종말에 북방으로부터 배도적인 정치가 강하게 나오지만 다시 예언하는 종의 말대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므로 반드시 북방 세력이 망하고 새 시대가 올 것을 말했다.
선지서의 목적은 심판과 새 시대이다.
심판이라는 것은 예언의 말씀대로 북방 세력이 망하는 동시에 북방을 하나님보다도 더 두려워하고 타협한 자들도 함께 망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도의 나라가 오는데 있어서 여호와께서 친히 북방을 치시는 것을 인류 종말의 심판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선지서를 비롯하여 계시록을 전하게 되는 다시 예언의 역사가 있되 완전한 영감으로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이 없이 전하는 종을 통하여 하나가 될 것을 가르쳤다
2. 성전과 제단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이 하나같이 척량을 받는 일 (11:1)
척량이라는 것은 세계 통일의 법이다. 누구든지 교파를 막론하고 하나님 앞에 상달되는 제사를 올리는 자라면 하나님께 인정을 받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대표적인 사람을 들어 쓰시되 인정하는 종들을 하나같이 깨닫게 하시는 것이다.
척량을 할 때에 정확한 것이 드러나듯이 대표적인 종을 통하여 예언의 법의 확실성을 알게 되므로 하나같이 깨닫고 하나가 되는 역사가 일어난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면 정확한 진리가 합법적으로 나타날 때에 신앙 양심에서 하나같이 아멘으로 척량함을 받게 되는 역사가 있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다시 예언의 말씀인 다림줄의 법 안에서 사상적으로 뭉쳐지는 단체가 나오므로 하나를 이루게 된다.
3. 이방인들에게 밟힘을 당하는 자들이 있게 되는 일 (2)
환난이 올 때에 악한 이방 세력에게 먹힘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게 되므로 자동적으로 남은자가 하나를 이루게 된다.
예를 든다면 타작마당에서 쭉정이는 버림을 당하고 알곡만 한곳에 거두어들이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하면 예언의 말씀을 믿는 자는 이방의 세력을 이길 수 있는 역사를 받게 되고 믿지 않는 자는 종말의 역사를 받지 못하므로 원수에게 먹힘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타작마당에서 알곡은 알곡끼리 모이게 되고 쭉정이는 쭉정이끼리 모이게 되듯이 인간 종말에는 완전히 갈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방 세력을 들어 교회를 짓밟게 하시므로 교회는 이 환난에서 완전히 둘로 갈라지게 된다.
짐승의 표를 받는 교회와 타협하지 않고 이기는 교회로 갈라지게 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결 론
교회 통일이라는 것은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역사가 내리므로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종말에는 말씀을 순종하는 자와 순종치 않는 자로 갈라지게 된다.
예언의 말씀의 척량을 받은 자는 승리하는 용사로 한 단체를 이루게 되고 척량을 받지 못한 자는 이방 세력과 타협을 하게 되므로 밟히게 된다.
증인된 자격과 사명
( 행 1 : 21 - 22, 계 10 : 7 - 11 )
서 론
하나님께서 독생 성자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하나님의 종들이 증거할 신앙의 대상자로 세우기 위한 목적이므로 친히 제자를 불러서 항상 같이하게 하는 동시에 우리 주님께서 3년간 함께 하던 종들을 증인으로 세우시고 주님은 승천하신 것이다.
먼저 제자를 택하여 세울 때에 완전한 종으로 쓴 것이 아니고 완전한 종이 될 수 있는 증인을 삼아서 그들이 보고 듣고 만진 바를 증거하므로 누구든지 그 증거를 믿으므로 만이 구원을 받도록 한 것이다.
이제 증인된 자격과 사명에 대해서 본문을 들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부활을 증거하기 위한 자격과 사명 (행 1:21-22)
아무리 사명을 맡은 자라도 그 사명을 옮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사명을 맡기고 그 즉시에 들어 쓰는 것이 아니고 그 사명을 할 수 있는 인격을 먼저 이루어 놓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룟 유다는 사명을 맡았으나 그 사명을 할 수 없는 자이므로 타인에게 옮겨 갈 때 요한의 세례로부터 주 예수께서 승천할 때까지 항상 같이 한 자를 택하여 가룟 유다를 대신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 : 세례요한의 증거를 받은 자라야 12 사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열 두 사도는 세례요한의 증거를 받고 예수는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라는 것을 먼저 믿었고 율법 시대의 선지 사명은 세례 요한으로 끝을 맺고 그의 제자로서 예수를 증거하게 된 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란 사람들은 선지 사명이 아니요, 선지자의 증거를 듣고 이루어진 것을 본대로 나가 증거하는 자들이다.
세례요한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을 보라 할 때에 그 증거를 믿고 따라가서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는 것을 친히 보았으므로 그들은 세례요한의 증거가 참으로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더욱 깨닫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인줄 믿기는 했으나 분명히 만민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고 부활한 후에야 증거할 자격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요10:40-41).
둘째 : 끝까지 따라왔다는 것이 증거할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세례 요한의 증거를 받고 예수를 따라가던 자라도 끝까지 남아 따라가던 자는 예수의 부활을 증거할 수 있는 증인의 자격을 가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완전히 보고 친히 들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도의 증거는 이루어진 것을 증거하는 사명이기 때문에 항상 예수와 같이한 자라야 될 수가 있다.
셋째 : 승천할 때에 친히 본 자라야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활 승천하는 것을 본 자들은 주께서 친히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권능을 받아 가지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사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대표적인 종을 세울 때는 친히 보고 듣고 체험한 자로서 선구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
만일 선구자가 완전한 증인 자격이 없다면 이것은 아무런 열매를 이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
넷째 :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는 사명은 죽은 영을 살려서 천국으로 인도하는 사명이다.
누구든지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의 말을 듣고 의심 없이 믿는 자는 즉시에 중생을 받는 체험을 받게 되므로 써 중생을 받는 자로 사도의 사명을 계대하는 자가 된 것은 그들은 친히 예수를 따라가며 보고 듣고 만져 본 사람들은 아니지만 대표적인 사도들의 증거를 의심 없이 믿을 때에 자기가 받은 체험이 있기 때문에 사도의 증거를 자기가 다시 증거하는 증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이날까지 증거한 목적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온 천하 사람이 다 믿으므로 중생을 받도록 하는 것뿐이었다. 이것은 중생과 천국이라는 것이다.
2. 다시 예언자의 자격과 사명 (계 10:7-11)
사도 요한이 기독교 종말에 끝을 맺는 말씀인 계시록을 받을 때에 십자가에서 만민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서 안팎으로 가득히 기록한 책을 하나님께로 받는 광경을 계5장에서 보았고 그 책에 봉한 인을 뗄 때 백마 탄 자가 나타나서 두 번째 이기려고 하는 광경이 나타났고 다음에 붉은말, 검은말, 얼룩말, 세 말이 나타났는데 이것은 심판기에 심판의 대상자는 붉은말, 검은말, 얼룩말인데 심판자는 백마란 뜻이다.
그러므로 다시 예언이란 뜻은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가 된다.
이 진리를 증거하려면 하나님의 비밀이 옛날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진다는 진리를 먼저 꿀같이 받아먹되 사람에게 받아먹는 것이 아니고 직접 하나님께로 받아먹은 자로서 아무리 쓴 시련이 와도 달게 먹은 책을 토하지 않고 끝까지 이기고 나간 자라야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이것을 계시로 받았지만 기독교 종말에 가서는 보고 기록한 계시록의 비밀을 꿀같이 하나님께 직접 받아먹고 시련을 이기고 나간 자가 나올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제 작은 책을 꿀같이 먹고 다시 예언하는 자의 자격이 이루어지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첫째 :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은혜 시대의 종은 중생을 받은 자라면 자기가 받은 체험이 있으므로 누구든지 예수만 믿으면 죄사함 받고 구원받는다는 것을 말하게 된다.
그러나 다시 예언자는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를 책에 기록한 대로 몽땅 먹는 자가 되려면 하나님께서 그 종을 인정하기 때문에 그 한 사람에게 기독교 종말의 비밀을 다 알려주므로 꿀같이 먹게 된다는 것이다.
이날까지 십자가를 믿으므로 중생 받은 사람은 많이 있지만 기독교 종말의 진리를 하나님께로 받아서 꿀같이 먹은 자는 전혀 없었다.
이것은 심판기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비밀을 종들에게 꿀같이 먹도록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심판기에는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종에게 꿀같이 먹도록 알려줄 것을 보여준 것이다.
둘째 :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서 쓴 것을 통과시키는 것은 꿀같이 먹은 말씀으로 마귀를 이기나 시험해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말씀을 완전히 변론하여 다시 예언하려면 그만한 영계에 도달하도록 쓴 시련을 통과시킨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다시 용서할 기회가 없는 때이니만큼 미리 시험을 통과시킨다는 것이다.
셋째 : 세계적인 대표의 사람이 되어야만 되는 것이다.
왜냐 할 때에 심판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구원 문제가 아니요 세계 인류가 전멸되는 그날에 받는 구원은 인류적인 큰 구원이 되는 문제이므로 세계 통일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영계에 올라가야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주님께서 말씀대로 죽기까지 순종했으므로 세계 인류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 열매로 나타났고 말세에 다시 예언자가 나옴으로써 환난과 재앙 속에서 세계 인류가 그 예언을 듣고 지키므로 남은자가 되어 새 시대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그 사람을 믿으므로 가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다시 예언하는 말을 순종해야만 재앙을 면하고 천년왕국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계 11:1에 성전과 제단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라 한 것은 세계적인 대표의 사람의 예언을 통하여 하나님의 종들이 통일될 것을 뜻한 것이다.
지금 기독교 지도자들의 영계 혼란과 진리 말씀에 혼선을 바로 잡는 것은 다시 예언자가 나오므로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은 언제나 대표적인 사람을 먼저 세우고야 역사하다 것이니 할례 언약에 아브라함, 율법과 계명에 모세, 부활을 증거하는 일에 열두 사도, 예언을 다시 증거하는 일에 두 증인, 이렇게 되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언약이 다 이루어지므로 지상 평화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시 예언과 교회 문제
( 계 10 : 10 - 11, 11 : 1 - 5 )
서 론
하나님께서는 예언대로 이루어진 십자가 부활, 승천, 성신, 강림으로서 세계 만방에 교회를 세운 것이 기독교 이 천년이 거의 다 차도록 내려온 역사이다.
그러나 기독교 종말의 심판기는 예언의 말씀대로 환난과 재앙과 심판이 올 것이다.
1. 예언을 다시 할 종 (계 10:10-11)
예언을 다시 해야 할 필요성은 다음과 같다. 예언을 다시 할 종은 직접 하나님께로부터 작은 책을 받아먹고 쓴 것이 와도 참고 나가서 세계적인 역사가 일어날 때는 권세를 받게 되는 것이다.
2. 권세역사가 일어남으로 (계 11:1-5상)
어느 교파를 막론하고 마음 성전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종들은 다 하나같이 예언의 말씀을 척량 받고 하나가 되니 이 종들을 통하여 촛대교회가 나오게 된다.
3. 권세 받은 자의 예언을 반대하는 자 (계 11:5하)
이 때에 권세 받은 종의 예언을 반대하고 이방의 세력과 타협하는 자는 바벨 적인 음녀 교회가 되므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은 말씀 통합으로 세계 교회를 하나가 되게 하시되 양심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종들로만이 한 감람나무같이 결합시킬 것이다.
기독교 통일의 완전성
( 계 10 : 11 - 11 : 2 )
서 론
금일에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대 확장을 본 것은 생명의 진리가 그 속에 있는 증거이다.
그러나 생명의 진리를 가진 종교가 통일이 못되고 여러 가지로 교파가 분열된 것은 유감인 동시에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이냐에 대하여 본문을 가지고 통일의 완전성을 말하게 된다.
오늘에 많은 교파가 십자가를 신앙하는 것만은 공통성을 가졌다는 것이 세계적인 승리를 가져 올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를 신앙하는 자로써 무엇을 가지고 통일된 세계 평화의 왕국을 이루느냐에 대하여 깊이 알아야 할 일이라고 보게 된다.
기독교는 개인 영혼이 구원받는 것으로서 끝을 맺는 것이 아니고 단체적인 한 무리가 되어 새로운 시대에 지상 축복을 받는 것으로서 끝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으로서 한 단체가 되어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한 무리가 될 것이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을 증거하고자 한다.
1. 세계적인 다시 예언이 있어야 한다 (10:11)
다시 예언이라는 것은 이미 선지들에게 하나님께서 묵시로 보여준 예언서를 가지고 계10:7과 같이 외치게 되는 것인데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다는 종말의 역사를 선지서와 계시록을 짝을 맞춰 본문대로 증거하는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인 선지서는 목적이 지상 평화왕국을 목적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때는 모든 선지의 예언서를 그대로 읽어서 증거할 시기가 왔다고 본다.
예언서에 기록된 종말의 경고는 부패된 종교 지도자를 책망하는 일, 경제권의 세력에서 교만한 인간들을 책망하는 일, 백성의 뇌물을 받는 정치인을 책망하는 일, 극도로 악화된 사회에 대하여 경고한 말씀인데 무서운 환난이 북방으로부터 내려올 것을 가르쳤고 이 환난에서 남을 자는 이리저리도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용기 있게 나가는 자라야 필연코 하나님의 보호로 남게 될 일을 말할 때에 주께서 심판자로 올 것을 가르쳤고 가난하고 멸시받고 압박 받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갈 때에 하나님의 응답이 내려 남은 백성이 될 것과 하나님의 종도 시련 가운데 부르짖던 종들이 새로운 역사를 받고 동방에서부터 일어난다고 가르쳤다.
이런 때에는 세계가 불탈 때라고 했으니 금일에 와서 누구든지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교적인 정신을 가지고 나가는 자라면 다 하나같이 적그리스도의 나라인 북방과 타협할 수 없고 하나님의 정한 때의 묵시를 하나같이 깨닫고 환난과 재앙이 와도 교파를 초월하여 진리 안에서 하나가 되는 동시에 하나같이 증거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는 데는 사도 요한은 계시로써 작은 책을 꿀같이 먹고 쓴 것이 있어도 다시 예언을 하라는 사명을 받았지만 이것은 종말의 사도 요한의 사명적인 영감을 받고 성경 전체의 예언을 다시 예언하는 대표적인 사람이 나타날 것을 뜻했다.
언제나 역사라는 것은 대표의 사람이 있으므로 일어난다는 것을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2. 척량을 받게 되는 일로 완전 통일이 됨 (계 11:1)
언제나 척량이라는 것은 세계적으로 변치 못할 법이 있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척량의 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사회적으로도 큰 벌에 처하게 된다는 것은 일반이 아는 상식일 것이다.
그렇다면 말씀이라는 것은 아무렇게나 해석해도 좋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어떤 방법으로 행하시겠다는 법이니 이 법을 어떠한 자나 변경할 수는 없다.
이미 이루어진 십자가, 부활, 승천, 성신 강림도 선지의 예언이 일점 일획도 가감이 없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 기독교의 사도적인 사명이라면 이루어질 예언을 증거하는 일도 반드시 법적 측량인 해석이 있어야 할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예언의 말씀이 법적으로 되어 있지 않다면 기독교는 도저히 종말의 끝을 완전히 하나로 이룰 수 없는 열매 없는 종교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전과 제단 안에서 경배하는 자라면 다 하나같이 척량을 받는다고 본서는 가르쳤다.
왜냐 할 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양심으로는 이루어진 말씀이나 이루어질 말씀을 조금도 가감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종말에 완전한 영감으로 진리를 바로 증거하는 대표 종이 나타날 때에 교파를 초월한 완전 통일의 진리 통합을 이루게 될 것이다.
3. 척량을 받은 자 외에는 다 이방인에게 밟히는 환난에 떨어진다 (11:2)
하나님께서 이방 세력을 들어서 환난이 오게 하되 계시록의 붉은 짐승이 거짓 선지와 합세하여 나올 때에 용의 권세를 받은 짐승이 42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고 나오는 것을 대 환난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인류 역사의 마지막 환난이다.
이 환난에서 교회는 완전히 둘로 갈린다.
지금은 많은 교파가 있지만 그 때는 환난에서 교회가 없어지느냐 남느냐에서 끝을 맺는 것이니 자동적으로 밟히는 교회가 나오고 주의 재림을 영접하고 새 시대에 들어가는 남은 종, 남은 교회가 나올 것이니 이것이 다시 예언의 사명을 가진 종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열매가 될 것이다.
예언의 말씀을 합심하여 증거하던 종은 신랑의 주를 맞이하여 변화 승천할 것이요, 증거하던 말을 순종하던 교회는 12장과 같이 예비처에 양육을 받고 15장과 같이 구원을 받게 된다.
세밀히 말하자면 예언의 말씀을 하나같이 증거하던 종들은 권세의 종이 될 것이고 그 말을 듣고 회개하고 따라오던 무리들은 백성 된 자격으로 계16:15절과 같이 지상강림하는 주님을 백성 된 자격으로 영접하게 된다.
결 론
기독교 통일의 완전성이란 것은 자동적으로 통일을 가져올 시기가 올 것이니 예언의 말씀을 바로 증거하는 종을 통하여 재앙으로 땅을 치고 나가는 역사가 있으므로 기독교의 역사는 끝을 맺게 되므로 예언의 말씀으로만이 완전 통일을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은 예언대로 종 된 자에게 승리의 역사가 내리고 예언대로 백성 된 자에게 보호가 있고 예언대로 온 세계가 한시간 동안에 불탈 때에 남은 자가 새 시대에 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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