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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언 문학회 원문보기 글쓴이: 이은서
[소설의 문체3] 오정희 문체의 분석과 연습
오정희 [吳貞姬 ] 1947. 11. 9 서울~. 소설가.
섬세한 내면의 정경묘사를 통해 인간의 존재론적 불안과 내면의 고뇌를 자의식적인 측면에서 예리하게 묘사하는 소설을 썼으며, 특히 여성의 심리 갈등 묘사에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화여자고등학교를 거쳐 1970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대학교 2학년 때인 196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완구점 여인〉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초기에는 다른 사람들과 자연스러운 관계를 맺지 못하고 고립된 삶을 사는 인물들을 주로 다루면서 생활세계적 차원으로서가 아니라, 이미지로 표상된 서정시적 세계로 읽히는 소설을 썼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에는 일상의 단조로움과 무의미함에 대한 허무의식을 기조로 하여 여성만이 포착할 수 있는 야릇한 심리적 갈등을 즐겨 다루면서 사회적으로 규정된 여성이 아닌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여성성을 찾는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산조〉(1970), 〈직녀〉(1970), 〈미명〉(1977), 〈불의 강〉(1977), 〈저녁의 게임〉(1979), 〈중국인 거리〉(1979), 〈유년의 뜰〉(1980), 〈별사〉(1981), 〈동경〉(1983), 〈불망비〉(1983), 〈파로호〉(1989), 〈옛우물〉(1994) 등 중·단편소설들이 대부분이다. 작품집에 〈불의 강〉(1977), 〈유년의 뜰〉(1981), 〈바람의 넋〉(1986), 〈야회〉(1990), 〈불꽃놀이〉(1995), 〈옛우물〉(1996), 〈새〉(1996), 〈돼지꿈〉(2008), 〈가을여자〉(2009) 등이 있고, 산문집 〈내 마음의 무늬〉(2006), 동화 〈송이야 문을 열면 아침이란다〉(1993), 〈목마 타고 날아간 이야기〉(2000), 〈접동새 이야기〉(2006) 등이 있다. 이상문학상(1979), 동인문학상(1982), 오영수문학상(1996), 동서문학상(1996), 한국불교문학상 소설 부문(2008) 등을 수상했다. 2003년에는 독일에서 번역 출간된 〈새〉로 독일의 주요 문학상 중 하나인 리베라투르 상을 수상했는데, 해외에서 한국인이 문학상을 받은 최초의 사례로서 한국문학의 해외진출사에서 매우 의미 깊은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5년에는 〈새〉의 프랑스어 판이 번역, 출간되었다.
* 오정희 소설의 문체 - 절제와 관찰 : 과장과 상황 - 내면의 진술 : 외향적 서사 - 감성과 비일상화 : 객체와 일상적 기술
* 오정희 소설의 구성 - 의식을 중심으로 한 플롯(상상, 회상, 환상) - 정서적 감성의 서술 - 분위기와 효과의 장치
[습작감상]
꿈, 그 알 수 없는 카타르시스 / 임 영 남
아버지는 아직도 은교의 방에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을까. 주방 벽에 파리처럼 납작하게 붙어 있는 시계는 늦은 다섯 시를 가리키고 있다. 난 한 시간정도 잠에 빠져 꿈을 꾸었다. 근엄한 의식을 치룬 것처럼 나의 뇌리는 차분했지만, 온몸 표면의 감각들은 쉼 없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게 단순히 그리고 처절하게도 꿈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깊은 상실감에 아랫배가 쑥 꺼지는 허전함을 썰물처럼 느꼈다. 깊고 습한, 때로는 뜨뜻한 자궁이 어둡고 싸늘한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그곳은 절망 같은 수렁으로 빛이 차단 된 더 이상의 어떤 빛도 파고 들 수 없는 깊은 바닥의 모래속살이거나, 단숨에 빨아버릴 것 같은 끈적끈적한 진흙뻘일까. 오래된 소파에서 머리를 막 들려는 순간, 나의 신경들이 친절하게도 그러나 도저히 반갑지 않은 그 사실들을 비웃듯 전해주었다. 꿈속의 그는 누구란 말인가. 도무지 알 수 없는 겨울 새벽안개처럼 뿌옇고 희미하게 나의 기억들을 점점 훼방 놓고 있었다. 어릴 적, 비가 그친 오후, 친구들의 허방 놀이에 언제나 나는 속아, 감쪽같이 만들어 논 허방에 빠져 놀림감이 되었던 것처럼. 그리하여 풀썩 한발이 빠져 온통 진흙투성이가 되어버린 슬픈 신발과 종아리처럼 섬뜩함을 지금 느끼면서도, 난 그를 만난 황홀감에 오래도록 눈을 감고 있는가. 놓치지 않으려는 듯 안타까운 꿈과의 사투를 왜 벌이는 것일까. 한낱 꿈에 지나지 않은 일인데, 과연 이렇듯 간절히 집착 하는 연유가 있단 말인가. 나는 수많은 발들이 달린 지네처럼 스스슥 빠르게 꿈속을 더듬고 있다. 죽어도 좋을 것 같았다. 어제 만난 사람처럼 그와 나는 너무나 편안하게 연인처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나의 연락처를 알려 달라며, 그는 핸드폰을 꺼내 숫자를 기다란 손가락 끝으로 콕콕 눌렀다. 그 순간, 나는 심한 어지러움이 밀려왔고, 지독한 백합 향이 코끝에 전해지며 스르르 까무러지고 말았다. 난 눈이 감겼고, 외롭고 추위에 떠는 가벼운 나비처럼 파르르 쓰러졌다. 나의 몸은 점점 작아지더니 의식마저 아득해져 갔다. 그는 재빨리 두 팔로 날 감싸 안았다. 바닥에 떨어지는 푸른 꽃잎 같은 나비를 그가 두 손에 고이 안듯이. 그의 품은 양털처럼 부드러웠고, 나는 빈혈 같은 소리로, 아, 포근해, 짧은 외마디를 입속의 사탕처럼 굴리고 있었다. 그는 재차 날 일으켜 그의 품에 바짝 닿게 하였고, 조금 더 안정된 자세가 되었을 때 나의 의식은 서서히 회복되고 있었다. 푸르르 떨리며 가늘게 눈을 뜨자 그 무엇인가가 힘 풀린 눈동자에 섬광처럼 꽂혔고, 나는 그만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10년 전 그와 헤어질 때였지. 재회를 언약하며 나는 그에게 가락지매듭의 핸드폰 줄을 만들어 주었다. 그가 아직도 그 매듭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본 순간, 난 온 몸에 퍼붓는 소나기 같은 전율에 휩싸이며 죽어도 좋겠다는 황홀감에 빠져들었고, 이것은 어쩌면 나에게 당연한 감정이었으리라. 그런데 이 모든 게 꿈이라는 것을 알았을 땐, 이상하게도 그의 얼굴이 안개 낀 듯 어른어른 거리고 희미하여져 그 사람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사람인지 통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눈을 뜰 수가 없었고, 궁금증과 답답함에, 헝크러진 명주실타래를 풀려는 듯,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물며 집요하게 떠올리는 것이다. 그는 누구일까. 가락지매듭은 분명 그의 것인데...... 아랫배의 허전함과 외로움은 날아가는 화살촉처럼 빠르게 심한 시장기를 비정상적으로 느끼게 했다. 나는 모든 음식들이 차갑게 저장된 또 하나의 뻘인 냉장고에 깊숙이 손을 넣고, 우울한 식탁을 차렸다. 나의 팔은 얼음을 휘저은 것처럼 차가움에 소름이 오돌오돌 돋았다. 은교의 방으로 아버지를 데리러 갔다. 아이의 방은 시간이 멈춰버린 유령 같은 도시 속, 놀이터처럼 암울하고 스산하다. 창가에 메달아논 색색의 나비매듭들만이 스며드는 햇빛에 나풀거려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지만, 나는 쓰러질 듯 힘겨운 그리움들을 매일 밤마다, 꺼 억 꺽 억 삼키고 있었다. 은교를 남편이 매몰차게 데려간 후론, 이제껏 만나질 못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아이와 떠나버린 그의 부재를 철저하게 인식하며 난 심장이 터질 것 같은 통증과 고독감에 매듭을 꼬며, 실과 실을 얽어 맬 때 마다 시퍼런 고통들을 함께 엮는 것이리라. 결국에 그것들은 검은 강이 되어 밤새 나의 영혼을, 온 사지를 어지럽게 칭칭 감고 나를 조여 오는 고통의 축제였지. 아버지는 역시나 은교침대 한쪽 귀퉁이에 머리를 대고 쪼그려 앉아. 늙고 고약한 얼굴로 미간을 심하게 찡그리며 졸고 있었다. 그도 어쩌면 집을 잃어 방황하는 늙고 추한, 이제는 아무도 다가가지 않는 거리의 유기 견일까. 힘 빠진 허벅지와 종아리는 디스크에 걸려 신경이 눌려 버린 환자처럼 쪼글쪼글해져 볼 상 사나웠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안쓰러운 마음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전에 앓았었던 신경성 노이로제가 도지는 것 처럼 화가 났다. 아버지가 늘그막에 황혼이혼을 당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동안 어머니의 외로움과 고통을 옆에서 지켜 본 나로서는 누구 보다 어머니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으며, 나라도 당연히 그럴 수 있다는 쪽에 무게를 더 두고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선택을 난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었다. 괴팍한 성격에 당신밖에 모르며, 가정을 돌보지도 않고 반평생을 항해를 하며 떠돌이처럼 살았으니 말이다. 그런 아버지와 내가 함께 동거를 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엄청난 양보와 고통을 인내하고 경련이 수반되는 고행 그 이상인 것이었다. 요즘 들어 아버지는 한밤중에 불도 켜지 않고 식탁에 우두커니 앉아 아무런 찬도 없이 꾸역꾸역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자주 목격을 하곤 했다. 그 뿐 아니라 멍한 표정에 초점 없는 눈동자는 상하려는 생물의 그 어떤 것과 닮아있었고, 상태가 매우 심각해 혹시 아버지가 치매를 앓고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 뒤로 난 아버지에게 나의 매듭작업을 돕게 했으며, 간단한 매듭 묶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였다. 아버지를 조심스레 흔들어 깨웠다. 그는 순순히 일어나 식탁의자에 꾸부정한 외로움처럼 앉았다. 정해진 각본처럼 느리지만 정확하게 움직였다. 그리 곤 식탁위에 놓여 진 찬들을 멍하니 살피고는 흐물흐물한 낙지처럼 숟가락을 집었다. “입이 쓰구나.” “국물도 드세요.” “은교는 여태 놀이터에서 오지 않은 거니?” “은행잎이 떨어져요.” 눈으로는 창밖의 은행잎이 자기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그것도 모자라 깡그리 다주려고 쉴 새 없이 오만하게 떨어지는 것을 스산하게 보고 있었고, 귀로는 자동차소리에 온 말초신경을 집중하면서, 흐릿한 불빛처럼 조용히 말했다. 간헐적으로 자동차시동의 켜짐과 꺼짐이 들려오고, 난 편집증 환자처럼 자동차소리에 늘 집요하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은교가 떠난 뒤부터일까. “통 입맛이 없어.” 아버지는 갑자기 식사를 그만 하려는지 젓가락을 식탁에 무뚝뚝하게 탁 놓으며, 갑자기 속울음을 삼킨 것 같은 볼멘 아이처럼 말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울컥, 뒤틀린 심사가 꼬이는 것 같은 심통이 올라왔다. 하지만 부풀어 오르는 마개를 누르듯 꾹 참으며, 꿈속의 그는 누구일까 의도적으로 애를 쓰며 알려했다. 나는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아 무더운 장마에 진저리치듯, 생각을 흔들자, 귀에 눈물처럼 박힌 18k 이어링이 차갑게 떨렸다. 나는 겨우 허기진 배를 억지로 채우고, 알 수 없는 긴 한숨을 보라색 소털 물든 명주실가닥에 왜 한 올 한 올 꼬고 있는지, 까닭 모를 서글픔에 괜시리 목이매여 아팠다. “자스민차 드릴까요?” 나는 우울한 기분을 허브 향으로 달래고 싶었다. 아버지의 입가에는 마침 하얀 양치 거품이 비누처럼 버글버글 덮여, 구역질이 날 것 같아 못 본 척 외면하였다. 저녁식사를 짐승이 먹고 남은 뼈다귀를 치우듯 역겹게 치웠을 땐, 가을저녁 어둠은 조롱하듯 천천히 내려오고, 서쪽하늘은 도시를 핥고 버린 것처럼, 드문드문 붉고 노오란 치자물로 스며들고 있음을, 나는 매듭의 끈목처럼 담담하게 바라보았다. 자스민차를 투명한 유리잔에 담아 흘릴 듯 달그락거리며 아버지에게 건 냈다. “은교는?” “그 애는 오지 않아요. 오늘은 나비매듭을 만들 거예요.” 나는 매듭을 만들 재료상자를 가져와 식탁에 올려놓았다. 그 안에는 오색명주실로 꼬아 놓은 매듭 끈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작은 구멍으로 실을 뺄 때 쓰는 답비바늘과 노리개를 만들 때 사용하는 칠보와 천연옥, 진주가 친구처럼 다소곳이 들어있었다. 매듭은 한 올이라도 삐뚤어지면 제대로 된 모양이 나오지 않아, 고집 센 기술공처럼 집요한 균형과 질서가 있어야 했다. 미로처럼 얽혀 있는 고리들 사이에서 나는 가끔 길을 잃어버리곤 했다. 더구나 요즘은 남편이 뱀 허물 벗듯 집을 나가버리고, 은교마저 없어, 매듭에 온통 신경을 쓰고 집중하여도 오색의 고리에서 언제나 길을 잃고 헤매는 날이 많다. 나는 수시로 물컹물컹해진 눈가를, 거울에서 외면하듯 훔쳐보곤 하는 것이다. “아버지, 도래매듭부터 만들어야 매듭이 풀리지 않잖아요?” “은교는 언제나 물건을 잃어 버렸어” “병아리 색실 주세요.” “국방 연쑥색이 좋아” 아버지는 매듭을 만들 때마다 내가 쓰는 색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고집스러움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오늘도 나의 신경을 건드린다. 그것은 차가운 겨울날 달빛얼음 같은 칼날을 뾰족이 들고 찌르는 것 같았다. 병아리색 매듭 끈을 손가락에 걸어 감친 후, 또 하나의 도리매듭 고리를 둥글게 만들었다. 이어 나는 매듭이 쉽게 풀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힘을 주어 잡아당겼다. 매듭은 삶과 죽음이 하나이듯 그 모양새 앞뒤가 똑같고, 매듭의 중심에서 시작하여, 결국 매듭의 중심에서 끝나는 작업이었다. 좌우대칭을 이루고 쉽게 맺고 풀 수 있어야 하며, 일부러 풀 땐 절대로 풀리지 않는 영험한 기운이 비밀처럼 숨어 있었다. “실이 빠지지 않아,” “답비바늘로 빼세요......” 아버지의 손은 마르고 투박하였으며 요즘 들어 바짝 사시나무 떨듯 덜덜덜 떨었다. 아버지는 초저녁잠이 몰려 왔는지, 연신 마른 하품을 하고 반쯤 잠긴 눈으로 바늘을 더듬더듬 찾고 있었다. 아버지는 곧 잠이 들것이다. 스산한 상념들이 매듭실에 달라붙었는지 매듭의 고리가 미로처럼 자꾸만 엉켜 답답하였다. 나는 답비바늘을 반대편 고리에 밀어 넣어 실을 걸었다. 더디게 빠져 나오는 매듭실에 습관처럼 무거운 한숨이 묻어 나왔다. 이런 게 시간의 무서움인가. 시간이 흐를수록 은교아버지는 이제 세상 그 어떤 낯선 사람보다, 더 낯설고 무덤처럼 덤덤하게 느껴진다. 본적도 안적도 없는 것처럼 그동안의 모든 시간들이 유령이었나. 살을 맞대고 산 세월이 무색할 정도다. 부부란 헤어지면 이런 것인가. 그와의 상처뿐인 질긴 매듭은 그가 허물을 벗듯 뱀처럼 스르르 집을 나가 던 날, 이미 풀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문득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난 서러운 한숨을 부르르 떨며 내쉬었다. 그가 남긴 허물처럼 껍데기만 붙잡고 산 것인지, 아님 그가 나의 껍데기만 보고 살았는지......어지러웠다. 그렇다고 이제 어쩌잔 말인가. 그것들은 지나가야 할 악몽 같은 바람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와의 복잡한 감정들은 앙금처럼 가라앉아 투명해질 것이다. 분명 그럴 것이다. 나는 주문처럼 애써 되뇌었다. 아, 그래 어쩌면 너무나 간절히 내 스스로 끈을 놓아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제 나는 그에 대한 원망과 고통, 서러움의 실타래를 활활 태우고, 남겨진 하얀 재는 바람에 흩뿌리리라. 하나도 남김없이...... 그는 하얀 꽃잎처럼 날려지리니. 무심히 날려질 그를 생각하니 연민처럼 설움이 밀려와, 정확하게는 내 자신이 그런 것 같아, 난 우울하게 흐느꼈다가 왠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걸어와, 제자리에 내려놓는 짐꾼처럼 자유로워져 휴우, 내뿜는 담배 같은 웃음에 나는 흠칫 놀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늘 풀리지 않는 숙제마냥 나의 매듭은, 섬뜩하게도 내 목의 올가미가 되어 밤마다 옥죄며 울부짖고. 병아리색 나비매듭을 막 끝냈다.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눈꺼풀을 지닌 채 방으로 들어갔다. 외로운 짐승처럼 발걸음은 한없이 무겁고 느렸다. 아버지는 내일 눈을 뜰 것인가.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속으로 우물거렸다. 나는 심한 오한처럼 떨리며 꿈속의 그 알 수 없는 얼굴을 떠올리지만, 도저히 풀리지 않는 미로 앞에 서 있는 어린애처럼 또 헤맸다. 여전히 나의 아랫배는 허전하고, 나의 사랑하는 은교는 돌아오지 못 할 강을 건 넌 것인가. 밖은 헐벗은 바람과 함께 검푸른 옥물을 물들인 밤이 되었고, 이 밤은 헝크러진 실처럼 나의 혼란을, 처절한 슬픔들을 치이잉 칭 감을 것이다. 나는 은교의 침대에 가난하게 누웠다. 검푸른 옥 물이 드리워진 창밖을 신음처럼 바라보다, 죽음의 긴 잠에 빠져들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이다. 강물은 무섭게 범람하여 건널 수 없고, 나는 강 둔치에 서서, 젖은 풀잎 같은 퍼런 울음을 훔쳐내며, 강을 건너야한다는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거렸고, 그저 강가의 은빛억새처럼 초조하게 흔들리며 바라보았다. 강물은 나의 자궁이 가라앉았다, 올라오기를 반복하며 서글픈 춤을 추듯 거칠게 출렁이고, 금 새 시퍼런 검은 실타래 뭉치들이 서로 엉키어 금방이라도 휘어감아 버릴 기세여서 부들부들 공포에 떨었다. 난, 포로가 된 짐승처럼 한 발짝도 나아갈 수도, 물러 설수도 없었다. 저 강 건너, 누군가 오고 있다. 그는 날 부드럽고 따스하게 안아 너무나 가볍게, 시퍼런 검은 강을 성큼성큼 사내처럼 건넜다. 그의 품은 너무나 포근해서 이 세상 절대자의 것 같은 평강이 진을 쳤으며, 난 슬픈 꽃잎 같은 눈물을 뚜르르 흘렸다. 밤마다 나의 영혼을 그리고 사지를 칭칭 감았던 그 질기고 아픈 실타래는 풀리려는가. 고통스럽게 옥좼던 매듭들이 별처럼 쏟아진다. 잃어버린 나의 자궁은 수줍은 처녀처럼 돌아왔다. 아름다운 오방색깔의 나비매듭은 온갖 보석처럼 빛나고 매듭의 끈들은 한 올, 한 올 풀리어 경건하고 그렇지만 자유로운 축제처럼, 하나씩 하나씩 오색나비가 되어 너무도 찬란하게 쪽빛하늘을, 흰 구름 속을 나는 것이다. 때론 강을 건너오거나, 건너가며 춤을 추었다. 그의 품은 그 어느 치즈보다 부드럽고 황홀하였으며, 가락지매듭은 부풀어 달아오른 나의 가슴에 어지럽게 흔들거렸다. 이대로 죽어도 좋겠다고, 무너지듯 그의 품에 안겨있는 나는 아, 자지러지듯 간지러워, 터질듯 숨이 막힌다. 어쩌면 붉은 울음 같은 햇살을 한 없이 한없이 쏟아내고 있는 것일까. 노을이 탄다.
나박김치 - 조문희
들릴 듯 말듯 아련하게 새벽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소르르- 소르르-밤새 먹이를 쫒아 헤매다 빛을 피해 나무속 제집으로 숨어들어가는 사슴벌레처럼 나도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려 숨었다. 아버지가 출근하려면 이대로 얼마나 버텨야 하지? 2주전 나는 평소엔 아까워서 들지도 않았던, 세계지도가 새겨져 있는 엔틱스타일 보스턴백에 일주일치 속옷과 치솔, 회색츄리닝만 넣어서 이집에 들어섰다. 그때 아버지는 늦은점심인지 이른저녁인지 애매한 식사를 하고 있었다.반찬은 접시에 덜어서 드셔야지요. 그렇게 통째로 꺼내서 먹으면 음식이 금방 상해요. 그말을 하면서 내가 얼굴을 찡그렸었나. 그이도 지금 아버지처럼 반찬통을 통째로 꺼내서 청승맞게 밥을 먹었다. 그모습이 너무 보기싫어서 차라리 못본척 시선을 마주 치지를 않았고, 그이는 철따라 이동하는 철새처럼 미련없이 나를 떠나갔다. 너도 앉아서 같이 먹자. 며칠전 느이 고모가 나박김치를 담가왔는데 맛이 딱 알맞게 들었구나. 아버지는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조용히 수저를 식탁에 올려놓았다. 정말 나박김치는 맛이 딱 알맞았다. 난 여전히 이불속에 숨어서 청각만 예민하게 작동시킨다. 뒷꿈치를 끌면서 걷는 발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화장실 문여는소리, 그리고 힘없는 아버지의 소변누는 끌끌끌 소리. 그 다음엔 수도물 소리가 나야하는데 오늘은 그냥 화장실 문닫는 소리가 난다. 아 그렇구나 오늘은 일요일이구나.커튼사이로 한줄기 은빛 햇살이 날카롭게 나를 찌른다. 거실로 나가보니 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어깨를 늘어뜨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냥 텔레비젼 화면만 응시하고 있다. 어렸을때 아버진 모든지 컸었다. 손과발도 크고 목소리도 크고 키도 크고 가슴, 배, 다리, 심지어 목구멍도 커서 막걸리를 쉬지않고 들이붓곤 했다. 그런날은 아버지눈빛이 달라졋다. 살기가 가득 어린 눈으로 엄마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큰발로 성큼성큼 안방으로 들어가 철컥! 방문을 잠갔다. 그리곤 엄마의 울음섞인 비명소리가 들렸다. 다음날 엄마의 얼굴은 파스텔로 그린 그림같았다.그런 아버지를 무척 이나 무서워했었다. 지금의 아버진 다 작아져 있다. 4년전 아버지의 장갑공장이 무너져 지갑까지 작아지던날 엄마는 당당히 이혼을 외치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아버지는 다시 커지기 위해 근처 아파트 경비일을 시작했지만 더이상 커지지 못할것을 나는 안다. 오랜만에 수제비 끓일까요? 밀가루반죽은 1시간정도 숙성시킨 후에 넣으려무나. 감자도 넣을까요? 요즘 텔레비에선 맨 김정일사망 얘기 뿐 이구나. 아버지와 마주앉아 먹는 식사는 언제나처럼 어색하다. 맛이 딱 알맞은 나박김치하고만 먹는 수제비도 어색하다.나도 나박김치를 숟가락으로 가득 퍼서 먹었다. 입안에 퍼지는 칼칼하면서 시원한 맛. 그리고 눈에 들어온 것은 주황색 꽃, 별, 나무... 엄마는 나박김치를 담글때 항상 당근을 여러가지 모양으로 만들었다.그래서 나도 나박김치를 담그는 날이면 색종이와 가위를 가져와 조용히 옆에서 엄마를 흉내내곤 했었다.아버진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을 나박김치를 열심히 먹음으로서 표현하려하는구나. 아마 고모가 가져온 김치통을 열어본 순간 이미 엄마의 손맛을 알았을 거다. 난 수저를 놓고 나박김치국물을 쭈욱 마신후 냉장고를 열어 다시 먹음직스레 가득 김치를 퍼서 아버지 앞에 밀어 놓았다. 아버지 천천히 많이 드셔요.
아버지의 지분지족 / 정 명 희
꼭 아버지의 작업실은 홍등가를 닮았잖아. 핏빛 그리움을 닮은 장미가 바람에 날려 붉은 철제 기둥으로 툭-툭 서고, 전면창은 통유리로 되어 있어 차에 깔린 고양이 내장 드러내듯 안이 훤히 보이며, 우적우적 물레를 돌린 채 고집스레 앉아 있는 모습은, 어렸을 적 시장 골목 붉은 등 밑에 있던, 영락없는 꽃단장한 여자이다. 아버지는 뭘 팔고 싶은 걸까? 목청 돋우어도 들어 줄 이 하나 없는 남루한 기억들 아님 매번 어긋난 질기디 질긴 욕망의 잔해들, 그것도 아님 늘어진 뱃살을 볼썽사납게 보란듯이 내밀고 있는 테라코타 여인상들, 아니 낮에는 수면 깊숙이 웅크리고 있다 밤이 되면 어그적 어그적 기어나오는 게인지도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칡덩굴 배배 꼬이듯 뒤엉켰을까? 늘그막에 혼자가 된 청승맞은 아버지는 잎사귀를 떨군 나목이며 다시는 생명을 발화시킬 수 없는 줄기 잘린 그루터기다. 후드득 후드득 안채와 아버지의 작업실을 잇는 자주색 캐노피위로 때아닌 겨울비가 궁상스럽게 추적댄다. 비디오의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모든 움직임이 멈춰 버린 외딴 산골의 아버지 처소에서 그나마 현실을 느끼게 해 주는 건 내리치는 빗소리뿐이다. “저녁식사해요.” 아무 감정이 실리지 않은 겉목소리의 내 외침은, 유리창 너머 아버지에게 들리기도 전, 충충한 소나무 위에 깃들었던 까치가 먼저 듣고 후루룩 날았다. 또 다시 문명의 소리도 멈추고 동작도 멈춘 이곳에서 의식만이 명징하게 살아 끝없이 생각의 조각들을 누런 잔디위에 흩뿌린다. 이 웬수야 왜 사니 왜 살아 전생에 무슨 악연이 있어, 내 인생 다 된 밥에 코빠뜨리니, 엄마의 앙다문 입술사이로 옹골차게 세어 나오던 증오는, 방 한구석에 새우처럼 웅크린 채 누워 있는 아버지 등위로, 알량한 몇 푼의 돈과 함께 화살처럼 이리 저리 쏟아졌다. 전기가마를 뒤로 한 채 석고상처럼 굳은 표정으로 물레를 돌리는 아버지를 향하여 다시 한번 메마른 재촉을 한다. 평생 생계에 도움 한번 주지 못한 테라코타 작업이지만 필사코 못들은 척 물레에서 손을 떼지 않는다. 늘 봐오던 풍경이다. 단지 시간이 흘렀고, 엄마에서 나로 바뀌었을 뿐. 당신은 가벼운 맘으로 공원을 나갔다, 빛나는 내 머리에 기습적으로 떨어진, 기분 나쁜 비둘기 똥같은 존재야. 알아.징박은 풋망아지 이리저리 날뛰듯 분을 이기지 못한 엄마는, 기분 나쁜을 말할땐 입에 거품을 물며,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고래고래 악을 썼었다. 응답이 없는 아버지를 마냥 기다리기 지루하여 집안으로 들어서니, 습기로 희부연한 거실창 너머 진입로와 맞닿은 비포장 길에 질척대며 지나가는 차 한 대가 보인다. 아마도 아버지의 무채색 삶에 색을 입혀 줄 수 있는, 누군가가 저 길로 걸어 들어 올 수 있기를 무수한 날 목빼어 기다렸을 것이다. 느지막히 안채로 들어선 아버지는 식탁위에 놓인 당신만큼 오래되고 낡은 오디오를 누르신다. 몽환적이고 신비한 파라다이스로 안내할 듯 엔야의 음악은 침침한 거실 곳곳에 어울리지 않게 스며든다. “흙을 손에 얹히고 이렇게 저렇게 주무르다 보면 아기가 엄마 젖가슴 더듬듯 온기가 느껴진다. 생명이전의 태동이 느껴지고 내가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꿈을 꾸게 되지.” 수저를 맛없게 들며 혼잣말처럼 눈마주침없이 웅얼대고,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 없이 빛의 잔영은 아직도 창밖의 풍경들을 어슴푸레 남기고 있다. “오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양념게장 사왔어요” 게장 발라 먹듯 그렇게 옹골차게 단 한번이라도 돈을 벌라고 아버지에게 소리치던 엄마의 모습이 먹음직스런 양념게장과 오버랩되며 난 탐욕스럽게 게장을 핥는다. 우물쭈물 법정에 들어선 남편과 나를 향해 합의되신거죠 한마디 내뱉더니, 어린 아이 윽박지르듯 짜증스런 목소리로 이혼 선언하던 판사의 모습을 내 입안에서 오물오물 바스러져 버리는 게껍데기와 함께 애써 지웠다. “세상 모든 것이 지나간다. 그리움도 기다림도......” 오래 산 늙은이의 직감은 신내림 무당 이상으로 상대의 헛헛한 심경을 알아채는 지 빈젓가락만 왔다갔다 하는가 싶더니 불쑥 한마디 한다. 인중이 짧은 사람은 매사 재앙이 많고 자손도 불길하다고 언젠가 관상서에서 읽었던 구절이 떠오르며 괜한 아버지의 짧은 인중이 심사를 뒤틀어 게장 핥던 손을 쓱쓱 닦으며 일어선다. 두 손을 깍지 낀 채 번쩍 머리 위로 올리고 오른 쪽 왼 쪽 허리를 돌린다. 풀어졌던 바이올린 줄이 조임새에 의해 당겨지듯 하루 종일 느슨해 있던 근육들이 긴장하며, 같이 살고 싶은 여자가 생겼다고 미안한 얼굴로 말하던 남편에 대한 기억마저도 덩달아 생생히 떠오른다. “ 왠 때 아닌 겨울비람. 눈이 펑펑 왔으면 좋겠어요” 오겡기데쓰카..와따시와겡끼데쓰..를 외치던 러브레터의 히로코가 퍼뜩 떠오른다. 죽은 애인을 잊지 못하는 비루함이, 흙을 놓지 못하는 아버지를 닮았다며 비아냥 대고 싶다. “ 난 흙이 불을 만나 붉게 변하는 게 좋아. 사람들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것처럼 달려 들지만 할만큼만 하고 불의 처분을 가만히 기다릴 수 있는 테라코타 작업이 좋아. 니 엄만 날 혐오스런 송충이 대하듯 했지만 난 이렇게 사는 게 내 지분지족이야” 자기 애 낳고 살던 여자를 예술한다는 미명하에 시퍼렇게 눈 뜬 채 다른 남자에게 빼앗긴 것도 모자라, 아직까지 통장에 넣어 주는 돈으로, 목구멍에 풀칠을 하며 지분지족이라니 난 소리내어 웃었다. 자기 의지론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용서를 빌 것도 용서를 받을 것도 없다고 당당히 말하던 남편의 불륜도 지분지족으로 여기고 쥐 죽은 듯 살았어야 했냐고 난 게장을 요리조리 바르고 있는 아버지를 향해 엄마가 그러했듯 악을 썼다.
저녁의 반란 / 조희덕
낮과 밤이 교차하는 하이파이브를 외치자, 저녁시간이 재빠르게 찾아 왔다. 나는 그런 발랄한 저녁을 맞이할 때, 머릿속의 어지러움과 매스꺼움으로 시달린다. 가족이 가장 아름답게 둘러 앉아 저녁상을 맞이해야 할 황홀한 시간에, 남편은 해넘이 되어 사라졌던 것이다. “나도 이제 마음 맞는 사람과 한번 살아보고 싶다.” 저녁은 친절하게도 얼음처럼 얼어 버린 나를 매일 찾아와 정열을 불사르지만, 곧 어둠이 엄습할 것을 미리 짐작한 나는, 저녁 시간만 되면 노이로제에 걸린 사람처럼 신경이 팔딱거린다. 거기다가 허수아비 같은 나의 몰골과, 친정아버지의 꽉 찬 바위덩어리 같은 몸과 마주 앉아 식사를 해야 하는 나는, 초대받지 않은 저녁이 물먹은 하마처럼 무겁다. 물론 아버지는 나를 끔찍이도 사랑하셨다. 이혼 당한 나를 아버지와 함께 살 수 있도록 이끈, 그 사랑의 흔적이 밑그림처럼 묻어 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만 보면 아버지와 꼭 닮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남의 집 지켜주는 똥개 같은 남편이 떠오르고, 남편에게 빼앗긴 금쪽같은 아들이 눈앞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통에 숨이 막힐 지경인 것이다. 매스꺼움으로 저녁상 차리기가 버거운 나는, 요즘 혼자서도 식사 해결을 거뜬히 해 치우는 젊은 남자들처럼, 아버지가 혼자서 차려 드시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한다. 하지만 허무맹랑한 생각이다. 아버지는 어머니랑 40년을 살면서 한 번도 끼니를 거른 적이 없거니와, 당신 스스로 한 끼라도 차려 드신 적이 없었다. 어머니가 주말 아침에 늦잠을 잘 경우에 한 끼를 놓치면 평생 그 밥은 못 찾아 먹는다고 난리를 치셨다. 어머니가 외출을 할 때에도 항시 밥은 차려 놓아야 했으며, 어쩌다가 차려 놓지 않고 늦게 귀가 하게 될 때에는 주야장창 기다리는 것이었다. 뱅그르르 한 바퀴만 돌면 밥이야 반찬이야 국이야 제각기 자기 자리에서 꼬리를 흔들며 먹어 달라 하소연 하지만, 본 척 만 척하셨다. 아버지의 뱃속에서는 구라파전쟁이 어지간히 심했을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하늘이 노랗도록 참았다가 어머니가 집에 오실 때, 쭈그러진 밥통을 움켜쥐고 여자의 본분을 잊은 것이 아니냐는 듯 다그치며 밥을 달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투덜투덜 거리면서 밤12시가 넘어 밥상 차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어머니가 지금은 얼마나 홀가분하게 잘 살고 계실까를 생각하니, 부럽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다. 그런데 결정적인 황혼이혼으로 가버린 것은, 당신이 어머니의 입장을 단 한 번도 고려하지 않았다는 독선 때문이었다. “얘야, 밥 아직 멀었니?” “저는 어머니가 아니에요.” 꾸물거리며 엉뚱한 생각에 빠져 있는 나를 일깨우 듯, 신문을 읽고 있던 아버지는 힐끔 나를 쳐다보며 한 마디 던졌다. 그런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는 나는, 이미 아버지가 신문을 소 닭쳐다보 듯 하고 밥상 차리는 것에 온통 신경을 쓰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얄미운 생각이 머리를 밟고 지나가며 ‘툭’ 짜증을 던졌다. 더욱 매스꺼움에 목덜미 앞쪽을 누르면서, 몇 가지 반찬으로 차려진 밥상에 부글부글 된장찌개를 올려놓고는, 소파로 걸어가 털썩 주저앉아 텔레비전 리모컨을 들었다. “너는 안 먹니?” “어머니는 언제나 고등어가 되어 드렸죠?” “한 끼라도 굶으면 너만 손해야. 사람은 자고로 밥을 제 때 먹어야 해. 그래야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 된장찌개의 부글부글 끓는 몸서리침과, 풀어 헤친 연기마냥 모락모락 비틀어 올라가는 김을 콧잔등 가득 쐬며, 총각김치를 잘라 우지직우지직 씹어가며 된장찌개를 떠먹는 아버지의 주름진 이마엔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혔다. 건강하게 혼자서 오래 살면 그만인가. 아버지의 식사하는 얼굴을 파먹을 듯이 쳐다보며, 나는 남편의 얼굴을 더듬는다. 더더욱 매스꺼움으로 오장육부가 뒤틀린다. 어머니로부터 버려졌음에도 버림당한 모습이 아닌 저 생생함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마누라 등 빼먹은 세 끼의 힘일까...... 나의 일그러진 눈빛은 텔레비전 속으로 깊숙이 들여 놓고, 까칠한 말로 아버지를 겨냥했다. “어머니 보고 싶지 않으세요?” “......” 밥숟가락을 잡은 아버지의 손이 짐짓 놀라서 후들거렸다. 겨우 입에 넣은 밥을 삼키고는 이마에 맺힌 땀을, 마디 굵은 손으로 쓱쓱 닦으며 상을 밀고 일어섰다. 밥상엔 아버지가 먹다 남겨진 애처로운 반찬들과, 깨끗하게 비워져야 될 밥그릇에 남겨진 밥알들이 웬일이냐는 듯 멀뚱거리며, 주인의 손이 다시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왜 더 안 드시냐고 여쭤 볼 기색도 없이 퉁명스럽게 밥상을 물리는데, 순간 아버지가 흘깃 느껴졌다. 나의 시선 끝에 잡힌 아버지의, 뒷짐을 지고 나지막한 창가에 서 있는 뒷모습은 쓸쓸하기 그지없다. 세상을 다 잡아먹을 듯한 기세는 바람 빠진 풍선마냥 스러지고, 희끗희끗한 머리끝에 느껴지는 외로움은 추운 겨울 속 한 그루 나무 같다. 자기 자신은 마누라 등골 빼어 세 끼 밥만으로 채우고, 그저 남의 아픔만을 어루만지다 늙어버린 아버지! 남들에게 베푼 십분의 일이라도 어머니한테 베풀었더라면 아니, 한번이라도 사랑한다는 말이라도 흘렸더라면 황혼에 저렇게 버림을 당하지는 않았을 터이다. 아버지를 느끼는 순간, 나의 매스꺼움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갑자기 뱃속의 요란한 울림에 다시 밥상을 차렸다. “좀 더 드세요.” “니 어머닌 바로 나였다.” 그랬겠죠. 그러니깐 그렇게 함부로 대하며, 막노동꾼처럼 부렸겠죠. 아버지는 자기 자신에게 자린고비보다도 더 인색했으니까. 그러나 어머니는 어머니죠. 아버지가 아니란 말예요. 어머니의 존재감이 없는, 아버지의 알량한 40년 세월에 얼마나 숨이 막혔을까요. 아버지가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는 든 사람이라 하더라도, 어머니에겐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철벽같은 어둠이었을 거예요. 아버지는 나에게도 얼마나 좋은 분이잖아요! 아버지랑 함께 살 만큼. ‘내 진심을 조금이라도 보여줬어야 했는데......’ 중얼거리듯 혼잣말을 내뱉으며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빛은 아쉬움으로 붉게 물들었다. 어둠이 고요히 내려앉을 무렵, 아버지 자신에 대한 인색함도 서서히 가라앉아 곧 동트는 새벽이 올 듯하다. 하지만, 이미 어머니에겐 그 새벽이 필요치 않다.
아버지의 밥상 / 옥이
‘오늘의 행사 상품’으로 매대에 가지런히 진열된 갈치들은 하나같이 살이 도톰했다. 그 중에도 더 윤기 나는 걸 고르려는 듯 그녀의 손은 바쁘게 움직였지만, 머릿속이 온통 딴 생각으로 가득 찬 걸 감안하면 실은 아무 의미 없는 동작일 뿐이었다. 어머니가 깁스를 풀 때까지는 제가 계속 옆에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당분간은 형님이 아버님 식사를 좀 챙겨 주셔야겠어요. 점심은 경로당에서 해결하니까 저녁밥만 좀 해 주시면....... 사지 멀쩡한 노인네가 밥 굶을까봐 이 야단이냐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치올랐지만, 애꿎은 올케한테 화풀이를 할 수는 없어 그녀는 꾹 눌러 참았다. 엄마는 남동생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이혼을 선언했다. 지난 사십여 년 간 아버지의 그늘에서 죽은 듯이 살아오던 엄마가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낸 순간이었다. 아버지는 콧방귀를 뀌었고, 누구보다 엄마의 독립을 바랐던 그녀 역시 그 일이 실현될 거라고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결연히 가방을 싸서 집을 나갔고 몇 달 후 거짓말처럼 아버지와 남남이 되었다. 졸지에 홀시아버지를 떠맡게 된 올케는 선선히 현실을 받아들였다. 전 친정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그런지 시아버님을 모시는 게 소원이었어요. 그런 예쁜 말까지 했다. 복도 많은 노인네, 그녀는 샘도 나고 화도 났다. 올케의 처신이 아버지 이름으로 된 예금이며 부동산 등을 염두에 둔 것이라 쳐도, 아버지는 운이 좋은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마누라에게 버림받는 순간 선녀 같은 며느리를 맞이하다니 말이다. 그녀는 올케가 일러준 대로 현관문을 따고 들어갔다. 아버지는 안방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저 왔어요.” 아버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주방으로 가서 장 봐 온 것들을 늘어놓았다. “갈치조림 괜찮죠?” 여전히 아버지는 무반응이었다. 그녀는 팩을 뜯어 흐르는 물에 갈치를 씻었다. 엄마는 시장에 갈 때마다 갈치를 사곤 했다. 네 아버지는 이것만 있으면 한 그릇 뚝딱이니까. 매끈매끈한 은빛 갈치를 가리키며 엄마는 흐뭇하게 웃었다. 엄마는 마치 아버지한테 밥상을 대령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굴었다. 어떤 천재지변이 있어도 아버지의 식사가 최우선이었다. 열이 펄펄 끓는 상태에서도 새벽같이 일어나 밥을 지었고, 아버지가 한밤중에 고주망태가 되어 들어와도 밥상부터 차리고 보았다. 먹고 안 먹고는 나중의 일이었다. 아버지는 엄마의 그런 맹목적인 충성이 지겹다는 듯 수시로 밥상을 엎었다. 그녀는 언제 밥상이 날아올지 몰라 매번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밥상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엄마가 정성껏 차린 밥상이 순식간에 처참한 몰골로 변하는 걸 지켜보는 건 끔찍한 일이었다. 엄마는 온몸에 벌건 김치 국물이나 나물 같은 걸 뒤집어쓴 채로 아버지 발 앞에 납작 엎드려 잘못했다고 빌고 또 빌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극심한 모멸감과 분노를 느꼈다. 도대체 엄마는 왜 저렇게 비굴하게 사는 걸까. “사돈은 다 죽게 생겼대?” “네? 아 네에....... 좀 심각한가 봐요.” 어느 틈에 나왔는지 아버지가 뒤에 바짝 다가와 있었다. 무를 깎던 그녀는 소스라칠 듯 놀랐지만 태연하게 받아넘겼다. 속 깊은 올케는 시어머니 간병을 친정엄마로 둘러댔다고 했다. “그래 그 집은 간병할 자식이 출가한 딸밖에 없대?” 그녀는 예리한 칼끝에 찔린 듯 가슴에 통증을 느꼈다. 독기가 철철 넘치는 아버지의 말투는 암만 세월이 흘러도 적응이 안 되었다. “김 서방은 아직 안 잘렸냐?” “예.” “예은이 고것은 여전히 입이 짧고?” “요즘은 잘 먹어요.” “넌 어째 갈수록 뒤룩뒤룩 살만 찌냐? 여편네 게으르고 살찐 것만큼 보기 싫은 게 없는데.” “.......” 인내심이 바닥난 그녀는 대답 대신 도마 위의 무를 쿵쿵 토막 쳤다. 아버지는 혀를 끌끌 차며 거실로 가 또 텔레비전을 켰다. 당신은 장인어른을 그대로 빼다 박았어! 남편은 늘 입버릇처럼 말했다. 삼 개월의 각방 생활 끝에 결론을 먼저 내린 건 남편이었다. 이제 더는 안 되겠어. 예은이는 내가 키울게....... 그녀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자 남편은 싸늘하게 덧붙였다. 설마 예은이가 당신을 닮는 걸 바라진 않겠지? 그녀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갈치가 자작하게 졸아들 때쯤 그녀는 올케가 미리 만들어 둔 밑반찬들을 꺼내 식탁에 차리기 시작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맨 마지막에 푼 다음 그녀는 아버지를 불렀다. 그런데 아버지는 거실에다 밥상을 내 오라고 했다. “미리 말하지 그랬어요? 뻔히 식탁에다 차리는 걸 보시고선.......” “그거 다시 차린다고 손모가지가 부러지냐?” 그녀는 주방 한쪽에 있는 아버지의 전용 밥상을 꺼냈다. 지난 세월 동안 아버지의 손끝에서 죽어 나간 밥상이 몇 개인지는 셀 수도 없었다. 그나마 지금 쓰는 밥상은 꽤 오래 살아남은 셈이었다. 그녀는 밥상을 사이에 두고 아버지와 마주 앉았다. 아버지는 첫술을 뜨기도 전에 젓가락으로 갈치조림을 휘저으며 말했다. “갈치 꼬락서니하고는. 이런 건 살만 많았지 맛대가리는 하나도 없어.” “일단 드셔 보세요. 오늘 들어온 거라던데.” “그놈들 말을 믿어? 하긴 너 같은 멍청이들이 있으니 장사꾼들도 먹고 살겠지만.” 아버지는 한심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는 오래 전부터 다져 왔던 결심을 실행할 순간이 바로 지금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녀는 조용히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런 다음 밥상의 양 끝을 힘주어 잡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밥상이 움직이니까 아버지도 따라 고개를 들었다. 그때를 놓칠세라 그녀는 있는 힘껏 그 얼굴에다 밥상을 패대기쳤다. 아버지의 정수리에서부터 갈치조림 국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제발 좀 그만해요! 지긋지긋해요! 나중에 더 늙어서 쫓겨나고 싶지 않으면 제발 그 입 좀 다물어요!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남의 마음 같은 거 헤아려 본 적 없죠? 아직도 엄마가 왜 집을 나갔는지 모르죠? 그래요. 아버진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그렇게 살다 가세요. 분명히 말하는데 난 이 시간 이후로 아버지 얼굴 안 볼 거예요. 볼 이유가 없으니까요. 이제 내 소원을 이뤘으니까요!” 그녀는 마구 괴성을 내지르면서, 심장이 터질 듯한 두려움과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듯한 통쾌함을 동시에 느꼈다. 그런데 아버지는 여전히 밥을 먹고 있었다. 어라?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 밥상은 처음 그대로 얌전히 놓여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도망쳤다. 단지 상상만 했을 뿐인데도 이렇게 가슴이 떨리고 졸아드는데, 아버지는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그토록 쉽게 밥상을 엎은 것일까. “물 갖고 와라!” 밥을 다 먹은 아버지가 소리쳤다. 그녀가 정수기 물을 받아 가자 아버지는 냉장고 안에 끓인 물이 있을 거라고 했다. “물 정도는 그냥 드시면 좋잖아요. 올케도 번거로울 텐데.” 도무지 아버지의 삶은 이혼 전이나 후나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시중드는 사람이 엄마에서 올케로 바뀌었다는 것 말고는. 그녀는 당장이라도 아버지한테 토해 내고 싶었다. 엄마 지금 병원에 누워 있어요. 식당에서 일하고 밤늦게 돌아오다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참 세상 뭣 같죠? 이렇게 불공평할 수도 있다니. 하지만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돌아올 아버지의 반응이란 안 봐도 훤했다. 것 봐라. 깝죽대더니 그 꼴이나 당하지. 아버지는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빡빡 설거지를 했다. 엄마는 그녀와 남동생 때문에 참고 살았다고 했다. 자식들 다 키워 출가시킬 날만 기다렸다고 했다. 그럼 뭐 고마워할 줄 알았냐고, 그녀는 엄마한테 바락바락 악을 썼다. 그녀가 남편과 헤어지기로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나중에 자신도 예은이한테 그런 원망을 들을까 겁나서였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홀로 설 준비가 안 돼 있었다. 여전히 언제 아버지의 밥상이 날아올지 몰라 벌벌 떠는 어린 여자아이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그걸 깨기 위해선 정말로 꼭 한 번은 아버지한테 복수를 해야 했다. “저 가요.” 그녀는 갈 채비를 한 다음 안방 문 앞에서 말했다. 아버지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아침은 국만 데워서 드시면 돼요. 내일 오후에 다시 올게요.” 안에선 연속극 소리만 들렸다. 그녀는 현관문 잠금 번호를 꾹꾹 누르며 결심했다. 내일은 반드시 실행에 옮기겠다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