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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자체가 갖는 특유의 고전과 문화의 향취가 벚꽃과 절묘하게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이런 교토의 정취는 일찍이 마쓰오 바쇼(松尾芭蕉)가 명문의 하이쿠(俳句)로 남겼다. ‘교토에 있어도 교토가 그립구나, 소쩍새 울음(京にても京なつかしや時鳥)’.
교토는 794년부터 1867년까지 무려 1073년 동안 일본의 수도였다. 사찰과 신사가 5000개가 넘고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상점만 무려 3000여 개다. 눈길 주는 곳마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문화재와 보물이 넘쳐난다. 전국시대가 종식되고 에도막부 체제가 들어선 다음부터 교토는 왕의 도시, 에도(도쿄)는 쇼군의 도시였다. 막부의 쇼군들이 에도에서 실질적인 권한을 휘두르는 동안 허수아비 왕들은 교토에서 숨죽이며 지냈다. 그렇다 보니 교토에서는 왕과 귀족들의 우아한 삶을 위한 내면적인 예술과 문화 등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교토는 일본 다도의 성지이자 메카로도 불린다.
고다이지(高台寺)는 임제종(臨濟宗) 겐닌지(建仁寺)파의 대본산이다.
일본 특유의 석정(石庭)과 어울린 조경이 뛰어나다 이 정원은 오랫동안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는 비공개 정원이었으나, 1989년부터 일반인에게도 공개하고 있다.
요시야 오쿠노 니와
요리는 계절에 따라 변경됩니다.
요시야 오쿠노 니와는 일본 요리의 전통을 지켜온 유명한 교토식 레스토랑입니다. 육수를 곁들인 우동과 소바 외에도 덴푸라, 유도후 등 정통 일식 메뉴를 제공합니다.
유바와 두부를 직접 만들어 먹어보며 일본 식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메뉴로 특히 추천하는 메뉴는 '나만의 유바 샤브샤브 두부 전골'입니다. 글루텐 프리 메뉴도 이용 가능합니다.
교토 은각사(銀閣寺)
▲ 은각사와 연못
교토 시내의 헤이안 신궁(平安神宮) 동쪽에 은각사(銀閣寺)가 있다. 무로마치 바쿠후(室町幕府)의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滿:1358~1408)는 남북조로 분열된 나라를 57년 만에 재통일하고, 1378년 교토의 무로마치 거리(室町)에 하나노고쇼(花の御所)라는 바쿠후의 공관을 짓고 무로마치 바쿠후를 확립한 강력한 쇼군이었다.
은각사 동구당
그런데, 1397년 쇼군 요시미쓰는 사이온지 가(西園寺家)로부터 기증받은 저택을 대궐 못지 않게 확장하면서 금박으로 입힌 3층 건물 금각사(金閣寺)를 지어 위세를 과시했다.
대저택을 기타야마도노(北山殿)라고 했는데, 중국의 귀족적인 건축양식과 선사(禪寺)의 조용한 안정감이 융합된 건축미가 정원과도 조화를 이루었다.(자세히는 2022.10.19. 교토 금각사 참조)
은각사 입구 동백나무숲길
1408년 쇼군 요시미쓰가 51세로 병사하자, 4대 쇼군이 된 장남 요시모치(足利義持:1394~1428)는 평소 아버지가 둘째 아들을 사랑했다는 반발심에서 아버지가 이뤄놓은 모든 정책을 되돌렸다.
쇼군 요시미쓰는 고코마쓰 천황(後小松: 1377~1433)도 상황의 예로 대접할 만큼 천황 위에서 군림했지만, 그의 아들 쇼군 요시모치, 5대 쇼군 요시노리 등의 왜곡된 정책으로 전국에서 다이묘들이 잇달아 반기를 들고, 또 쇼군 간의 후계자 분쟁으로 오닌의 난(應人の亂:1467~1477)이 벌어졌다.
이런 혼란기에 즉위한 8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 1449~1473)는 3대 쇼군 요시미쓰인 할아버지가 지었던 금각사를 모방하여 1482년 헤이안 신궁 동쪽 히가시야마에 산장(東山殿)을 지으면서 연못도 만들었다.
요시마사는 금각사를 모방한 건물 전체를 금으로 덮으려 했지만, 동생에게 쇼군직을 물려주는 과정에서 발생한 오닌의 난으로 관음전에만 은박을 입혔다. 이것을 은각(銀閣)이라고 한다.
은각사 입구
요시마사는 정무에는 소홀하고, 이곳에서 회화와 공예품을 수집하고, 동호인과 만나는 것으로 일과를 삼았다. 다이묘들을 중심으로 정원 조경, 꽃꽂이·다도 ·묵화를 보급하였으며, 많은 예술가, 도예가 등도 후원했다.
수묵화에는 셋슈(雪舟)와 소아미(相阿彌), 금속공예로는 고토 유조(後藤 祐乘), 렌가(連歌)에는 소기(宗祇)와 신케이(心敬), 학문에는 이치조 가네라(一條兼良) 등은 일본문화의 원류가 되었다. 1490년 8대 쇼군 요시마사가 죽은 뒤 그의 유언에 따라서 불교사찰이 됐는데, 정식 명칭은 지쇼지(慈照寺)다.
그러나 사찰이 동쪽에 있어서 히카구시야마 긴카구지(東山 銀閣寺)라고도 한다.
은각사 긴사탄
에도 시대 초기인 1615년 대대적인 보수 후 오늘에 이르고 있는 은각사는 5, 17, 32, 100, 102, 203, 204번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은각사 버스정류장에서 내려서 약 10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
긴카쿠지미치 역에서 내린 뒤 은각사로 들어가는 자갈로 만들어진 문양과 나무와 건물의 조화가 아름다운데, 이 길을 ‘철학의 길’이라고 한다. 철학의 길은 교토대학 교수였던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 1870~1945)가 사색하며 즐겨 걸었다고 하는데, 긴카쿠지 다리까지 약 2㎞ 거리이다.
은각사의 산문에서 중문으로 가는 참배길 약 50m 구간에 나지막한 돌담을 턱으로 삼아 대나무, 동백나무를 알뜰하게 심은 것이 매우 아름답다.
일본의 사찰은 우리네 사찰과 달리 일주문이 요란하지 않고, 여염집 대문처럼 아담한데, 입장료는 500엔이다. 하지만, 주유 패스가 있다면 무료입장 할 수 있다.
은각사 산책길에서 본 전경
경내는 금각사처럼 넓은 호수와 호수 한쪽에 2층 목조 건물인 은각사가 배치되어 있는데, 은각사 1층은 신쿠전이고, 2층은 중국식 미닫이문이 달린 사찰이다. 누각 위에 동쪽을 바라보는 금동 봉황의 모습도 금각사와 비슷하다.
은각사 옆의 목조 건물 동구당(東求堂)은 8대 쇼군 요시마사의 전용 불당이다. 팔작지붕의 동구당은 남쪽으로 툇마루가 있고, 북쪽에는 다다미 6장짜리 방과 4장 반짜리의 방 2개가 있다. 다다미 4장 반짜리 방이 히가시야마(東山)문화를 탄생시킨 초암다실(草庵茶室)이다. 동구당은 현재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은각사에서 가장 독특한 것은 관음전 앞에 무덤만큼 높이 쌓은 모래더미 긴사단(銀沙灘)이다.
후지산을 모방한 모래더미와 쇠갈퀴로 모래밭에 일정한 간격의 골을 만든 것은 무한한 바다의 파도를 상징하여 개여울 탄(灘)을 붙였는데, 사찰 마당에 나무나 풀 한 포기도 심지 않고, 오로지 돌과 하얀 모래로 만든 긴사단은 불경을 통한 교종과 달리 말과 그림으로 설명하는 선종(禪宗)에서 간단명료하게 가르쳐주는 일본인들의 선종 포교방식이다.
8대쇼군 요시미사 약수터
사실 한반도에도 불교가 전래된 초기에는 왕실과 귀족계층만 신봉하고 백성들과는 먼 종교였다가 삼국통일 이후 원효대사에 의하여 민중불교로 확산되었다.
이때 절집 벽면마다 무지한 백성들에게 석가모니불의 행적을 알기 쉽게 그림으로 그렸는데, 일본의 선종은 그림이 아니라 넓은 정원에 모래밭을 바다로 연상시키면서 가르친 것이다.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은각사는 금각사의 찬란함과 대조를 이루어 안정감을 주고 소박한 풍경이 조화를 이룬 것이 금각사보다 아름답다. 사실 이런 모래밭으로 불법을 가르치는 풍경은 용안사(龍安寺)에서도 볼 수 있지만, 은각사에서는 산책 코스도 길어서 볼거리가 많다.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면 은각사의 전체적인 모습과 교토 시내의 풍경도 같이 볼 수 있다. 교토 여행에서 금각사와 은각사, 청수사가 필수코스이지만, 은각사가 가장 고즈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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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미님 4명
김서미 / 최인자님 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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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3 /일 입니다
여행기간이 6/23(일)~26(수) 까지 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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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2명 예약이 가능 한가요?
제가 처음신청하는거라~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4.06.13 09:34
신청하겠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4.06.13 0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