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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코비(Friedrich Heinrich Jacobi 1743-1819)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143.(P.304)
독일 철학자이다. 야코비는 1743년에 뒤셀도르프(Düsseldorf)에서 태어나 1819년(76살)에 뮌헨(Munich)에서 몰했다.
후작 베르크(Berg)와 후작 율리에(Juliers) 등을 위한 재정담당 고문을 지냈으며, 그리고 나서 문학과 철학에 전념하였다.
그의 철학은 실재성[현실성]에 대한 진실한 인식의 수단으로서 신념(croyance)의 철학이며, 그것은 데이비드 흄과 신념(David Hume et la foi ou Idéalisme et Réalisme, 1787) 속에 나타난다. 또한 스피노자 철학에 관하여(Sur la philosophie de Spinoza, lettres à Mendelssohn, 1785)와 같은 작품에서 범신론이 표현되어 있다.
신념의 철학과 범신론은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1814)의 인간의 운명(Destination de l'homme)의 제3부(la 3e partie)와 1801년의 학문의 이론(Théorie de la science)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이 스피노자에 부여한 해석에도 영향을 주었다.(40UMB)
제임스 (William James, 1842-1910)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143.(P.304)
1842년 미국 뉴욕(New York)출신이며 1910년(68세) 뉴햄프셔(New Hempshire)주 쵸코루나(Chocoruna)에서 죽었다.
1880년(38살)에 그는 노력의 정서에 대해 분석하였고, 여기에 대단한 반향이 있었다. 그리고 멘느 드 비랑(Maine de Biran, 1766-1824))의 이론을 비판하였다.
그는 퍼어스(Charles Sanders Peirce, 1839-1914)와 더불어 실용주의(pragmatisme)의 창설자 중의 한 사람이며, 1907년(65살)에 실용주의(pragmatisme, 1907)를 썼다. 또한 그는 1891년(49살)에 심리학의 원리(Principes de psychologie, 1891)을 썼다.
다른 작품으로는 1902년(60살)에 종교 경험의 다양성(Variétés de l'experience religieuse, 1902), 1910년(68살)에 경험의 철학(Philosophie de l'expérience, 1910)을 썼다. (42QKH)
쟈네 Paul Janet 1823-1899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143.(P.304)
프랑스 유심론 철학자이다. 뽈 쟈네는 1923년 파리에서 태어나 1899년(76살)에 파리에서 죽었다.
그는 특히 행복의 철학(Philosophie du bonheur, 1862)의 저자이며, 형이상학과 심리학의 원리들(Principes de métaphysique et de psychologie, 1896)과 형이상학과 심리학(Métaphysique et de psychologie 1897)도 썼다. 1864년 도덕과학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다. (44LMG)
쟈네 Pierre Janet 1859-1947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143.(P.304)
프랑스 신경생리학자이며 심리학자이다. 1859년에 파리에서 태어나 1947(88살) 파리에서 죽었다.
1889년(30살)에 문학박사, 1893년(34살)에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1890년(31살)부터 살페트리에르(Salpêtrière) 병원의 임상에서 정신병리학적 심리학 실험실의 원장이 되었고, 그리고 1902년(43살)에 리보(Théodule Ribot, 1839-1916)를 이어서 콜레쥬드 프랑스에서 심험심리학과 비교심리학의 교수가 되었다. 그의 심리학과 경향들에 대한 분류와 마찬가지로 인간 활동들이란 주제는 심리학적 “긴장”(tension)의 개념[베르그송의 강도(intension)]을 중심으로 발전되었다. 그의 작품들은 실험심리학의 발전에 왕성한 충력을 불어넣었다.
그는 심리학적 자동주의(L'automatisme psychologique, 1889), 히스테리의 정신적 상태(L'Etat mental des hystériques, 1893), 불안에서 황홀경으로(De l'Angoisse à l'extase: Etudes sur les croyances et les sentiments. 2권, 1926, 1928) 지성의 등단(Les Débuts de l'intelligence, 1935) 등을 썼으며, 뒤마(Georges Dumas, 1866-1946)가 주도한 심리학개론(Le Traité de psychologie, 1923-1924, 6권)의 제4권 유기조직의 일반형식들(Les formes générales d'organisation 속에 제6장 「심리학적 긴장과 동요(La tension psychologique et ses oscillations」(Pierre Janet)를 집필하였다. 그는 1913년(54살) 도덕과학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다. (44LMG)
쟝켈레비치(Vladimir Jankélévitch 1903-1985)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143.(P.304)
프랑스 철학자. 쟝켈레비치는 1903년에 셰르(Cher, 18)주의 주도인 부르쥬(Bourges)에서 태어나서 1985년(82살)에 파리에서 죽었다. [이름을 보면 러시아 이민계 일 것 같은데 말이다.]
소르본 대학에서 교수를 지냈으며, 그는 1931년(28살)에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에 관하여, 1933년(30살)에 셸링(Friedrich Wilhelm Joseph von Schelling, 1775-1854)에 관하여 연구에 열중하였다. 그리고 그의 철학적 반성은 영혼의 실존적 분석에 있다. 그의 철학적 저작으로 양심가책(Mauvaise Conscience, 1933), 아이러니와 양심(L'Ironie ou la Bonne Conscience, 1936), 대안(l'Alternative 1938), 거짓말(Du mensonge, 1943), 악(Mal, 1947), 덕론(Traité de vertus, 1949), 간결함과 도덕 생활(Austérité et la Vie morale, 1956), 순수함과 불순함(Pur et l'Impur, 1960), 죽음(Mort 1966), 용서(Pardon, 1967), 용서해주세요(Pardonnez? 1971), 불가역성과 향수(L'irréversible et la nostalgie, 1974)들이 있다. 그는 또한 음악가이다. 그는 음악에 관한 저술로는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1939), 드뷔시(Debussy et le mystère, 1949), 음악과 표현할 수 없음(Musique et l'ineffable, 1961) 음악에서 침묵으로(De la musique au silence, 1974-1979)들이 있다. (40UMB) [쟝켈레비치의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 1959)은 1931년 판의 증보판이다. 왜냐하면 베르그송의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1932)과 사유와 운동자(1934)가 나중에 나왔기 때문이다.] (-44LMG)
얀세니즘 (le) jansénism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143-144.(P.304)
쟝세니우스(Jansenius, 1585-1638)와 그의 제자들의 학설을 지칭한다. 쟝세니누스는 그의 사후(1640년)에 나온 아우구스티누스(Aigustinus, 1640)의 저자이다.
얀센주의는 몰리나(Luis de Molina 1535-1600) 사상에 반대하여 아우구스티누스 주의의 관점을 다시 취하면서 발전시켰다. 아우구스티누스 주의의 관점에 따르면, 은총은 신의 순수한 선물이며, 이 선물은 인간적 자유의 모든 참여방식과 별개로서 개인 위에 내려오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제들은 생시랑의 수도자이이며, 포르르와얄 수도원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오란느(Jean Duvergier de Hauranne, abbé de Saint-Cyran, 1581-1643)에 의해 프랑스에서 다시 받아들여졌다.
아르노(Antoine Arnauld, 1612-1694)가 공개적으로 참여하면서 불붙은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한 논쟁은 대혁명에까지 지속될 것이다. 먼저 마자랭(Cardinal Jules Mazarin, it. Giulio Raimondo Mazzarino 1602-1661)에 의해 싸움에서 졌다가, 루이 14세(Louis XIV 1638-1715, 재위 1643-1715)가 관용을 베풀었으며, 그리고 1709년에[루이 14세 말기에] 포르 르와얄 수도원이 결정적으로 폐쇄되기에 이른다. 그래도 얀세니즘은 절대 군주제에 대해서 반대의 핵심으로 그리고 의회의 프랑스 교회 독립파의 불화의 원인으로 남아있었다. 얀센주의 교회는 1724년에 설립되어 여전히 유트레히트에 아직도 남아있다. [우르바누스 8세(Urbanus VIII, Maffeo Barberini 1568-1644)는 1642년 얀센주의의 아우구스티누스를 단죄하는 칙령을 발표했다.] (44LMH)
얀세니우스 Jansenius, Corneille Jansen 1585-1638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144.(P.304)
네델란드의 신학자이며 이프르의 주교(l'évêque d'Ypres)였다. 코르넬리우스 얀센(Cornelius Jansen, lat. Jansenius)은 1585년에 네델란드의 레르담(Leerdam)가까이에 있는 아코이(Acquoy)에서 태어나 1638년(53세)에 벨기에 이프르(Ypres)에서 죽었다.
1602년(17살)에 루방 대학에 들어갔다. 그 당시에 루방 대학은 제수이트 교단과 아우구스티누스주의 사이에 격렬한 투쟁의 극장이었다. 그는 아우구스티누스 주의 입장에 참여하였다. 1928년(43살)부터 그는 자신의 주요저작인 아우구스티누스(Aigustinus, 1640)를 쓰기 시작했으며, 그 작품은 1640년 사후에 출판되었다. (44LMH) [] ‘의 의 입장에의 가서
야스퍼스 Karl Jaspers, 1883-1969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144.(P.304)
독일 철학자이며 정신과 의사이다.
야스퍼스는 1883년에 니더작센(Niedersachsen)의 올덴부르크(Oldenburg)에서 태어나 1969년(86살)에 스위스 바젤(Basel, fr. Bâle)에서 세상을 떠났다. [부인이 유대인이었다고 1937년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휴직으로 들어갔다가 ]
그는 실존주의(l'existentialisme) 철학자이다. 그는 현존(l'existence)을 세상에서 우리의 현전과 초월(transcendance)에로 우리의 열망 사이에서 균열(déchirement)로서 또한 과학과 종교 사이에서 균열로서 간주했다. [여기서 균열을 베르그송의 인격성의 이중화(dédoublement)과는 다르다.] 모든 문제들 해결하는 데 있어서 과학의 좌초, 행복을 발견하는데 인간의 좌절은 그에 따르면, 신적 계시의 “신호들”(signes)이다. 그의 “현존적”(existentielle) 반성은 합리적 철학들이 무시했던 상황들과 인간적 현존의 축들을 구성하는 상황들(고통, 전투, 잘못, 죽음)을 분석한다. 그는 증오와 사랑 사이에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는 “애정적 전투”(combat amoureux)의 형식들로서 인간들 사이의 관계들을 생각한다. 그의 철학은 “신호들”의 이론과 종교적 감정의 이론에서 정점에 이른다. 그는 어떤 경우에서건, 현대 독일에서 여전히 인본주의적 철학자로 남아있다. 그는 여전히 독일제국의 이념에 대항으로 고취되고 있으며, 특히 역사에서 독일이 완수되었던 각[시대의] 기회로서 보아, 독일 재통일이 독일 인문주의를 매장할 위험에 처하게 할 것이고, 게다가 프러시아 전사를 다시 태어나게 할 위험과 그 민족이 비극적으로 표시했던 폭력과 팽창주의를 다시 태어나게 할 위험에 처해 있다는 생각을 주장한다. 책임 문제(Die Schuldfrage 1946; La Culpabilité allemande, tr,fr. 1948) [프랑스가 야스퍼스의 이 작품을 선전할 말했을 것이다. ]
그의 작품으로는 세계관의 심리학(Psychologie der Weltanschauungen, 1919, 철학(Philosophie, 1932), 실존철학(Existenzphilosophie, 1938; Philosophie de l'existence), 중요철학자들(Die großen Philosophen, 1957), 철학과 세계(Philosophie und Welt, 1958).
(44LMH)
쟝 드 살리스버리 Jean de Salisbury 1115경-1180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144.(P.304)
스콜라 철학자이다. 쟝 드 살리스버리(Jean de Salisbury, Joannis Saresberiensis)는 1115년에 영국 남부의 윌트셔(Wiltshire)영지의 살리스버리(Salisbury)에서 태어나, 1180년(65살)에 프랑스 상트르(Centre)지방의 외르에르와르(Eure-et-Loir 28)주의 샤르트르(Chartres)에서 죽었다.
그는 아벨라르두스(Abelard, 1079-1142)의 제자이며, 1176년(61살)에 샤르트르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칸터베리 대주교였고 살해당했던] 베케트((Thomas Becket 1118-1170)와 안셀무스(Anselme, 1033-1109)에 대한 생애에 대한 글을 썼으며, 시대의 풍자로서 Policraticus, 1156)[일종의 도덕 백과사전], 거짓 철학자들을 풍자하는 Metalogicus 1175경와 Entheticus를 썼고, 또한 Historia Pontificalis, 1148-1152)도 썼다. (44LMH)
놀이(유희) (le) jeu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144-145.(P.304)
유용한 목적을 갖지 않는 활동.
교육학의 문제로서, 놀이는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심리학적 관찰의 도식에서 놀이는 성격분석의 본질적 방법들로서 고려되었다. 인격은 노동에서 보다 놀이에서 더 자유롭게 표현된다. [조직에서 권력의 쟁취과정보다 권력의 향유에서 더 잘 드러난다] 그러나 놀이는 활동의 부재로서 간주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가의 활동”(l'activité de loisir)으로 간주된다는 의미에서 원기 회복을 의미하며, 일상 노동에서 자기 실현이 안 되고 있는 인격을 가능하게 표현하는 것으로써 무용한 것이라기보다 무상(gratuite)이다. 긴장 완화로서 놀이는 모든 강도있는 활동에 필수적이기도 하고, 연이은 “과도한 심적 부담”(sursollicitation)의 결과로 일어나는 심리학적 몇몇 혼란들을, 즉 과민성 또는 과도한 감화에 따른 혼란을 치유할 수 있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소위 말하는 어린이 활동(학교공부 등)은 몇가지 경우에서 어린이의 주의를 자극하기 위하여 “계획된 놀이”(jeu dirigé)의 형식을 취하는 경향이 있다. 참조: 여가. (44LMH)
환희 (la) joi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145.(P.304)
실재적이거나 상상적인 [도덕적] 선(le bien)을 가지게 되는 결과로서 만족의 감정.
환희(la joie)는 단순하고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즉 식도락(plaisir de manger)과 같은 쾌락(le plaisir)으로부터 구별된다. 환희는 보다 큰 충만을 특성을 지니고, 일반적으로 인격적 노동의 결과로 이루어진다. 환희는 어떤 사물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희는 행복(le bonheur)과 구별된다. 왜나하면, 환희는 행복의 영속과 연속성을 지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환희를 희열(délice)로 번역하지 않는다. 희열을 신비적 참여에 의해 황홀경(extase)에 가깝다고 보기 때문이다.](44LMH)
주프르와 Théodore Jouffroy 1796-1842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145.(P.304)
프랑스 철학자. 주프르와는 1796년 프랑쉬꽁떼(Franche-Comté) 지역의 두브(Doubs 25)의 레퐁떼(Les Pontets)에서 태어나, 1842년(46살) 파리에서 죽었다. []
그는 스튜어트(Dugald Stewart, 1753-1828)와 리드(Thomas Reid, 1710-1796)의 스코틀랜드 철학을 프랑스에 소개했다. 그의 주요 작품은 철학 잡문록(Mélanges philosophiques, 1833), 그리고 유고작품인 철학 신잡문록(Nouveaux melanges philosophiques, 1842)과 미학강의(Cours d'esthétique, 1843)가 있다. 미학강의에서 그는 미의 관념을 숭고의 관념에 대립시켰다. “어떤 특성이 투쟁할 아름답지 않지만, 승리할 때 아름답다. 특성이 승리할 때 숭고하지 않지만, 투쟁할 때 숭고하다.” (44LMH)
판단 (le) jugement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145.(P.304)
관념들 사이의 연결을 의미한다.
판단은 개념들 또는 관념들 사이에 연관을 사유하는 것이다. 판단은 판단들 사이의 연결로서 정의되는 추론(le raisonnement)과 다르다. 사람들은 판단과 인식(la connaissence)을 구별한다. 판단은 추상적 인식들을 실행하게 하는 기술이다. 라블레(François Rabelais, 1483-1553)가 바랬듯이, “잘 갖춘 지성”(tête bien pleine)은 많은 인식을 소유할 수 있지만, 삶에서 [잘] “판단할”(juger) 줄 아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 1533-1592)가 서원에 따르면, “잘 만들어진 머리”(tête bien faite)를 만들 수 있다.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판단이란 개별적 경우를 일반적 개념 하에 연관시키는 즉 포섭시키는(subsumer) 것이라고 매우 잘 정의했다. 그것은 마찬가지로 일반적 개념을 개별적 “직관”에 적용하는 것이기도 한다. (44LMH)
융 Carl Gustav Jung 1875-1961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145.(P.304)
스위스 심리학자 정신분석학자.
융은 1875년 스위스 투르고비(Thurgovie)의 케스빌(Kesswil)에서 태어나서 1961년(86살) 쮜리히(Zurich)가까이 있는 퀴스나하트(Küsnacht)에서 죽었다.
그는 발(Bâle, 독어로 Basel)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였고, 쮜리히 대학에서 정신의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쟈네(Pierre Janet, 1859-1947) 블뢰러(Eugène Bleuler, 1857-1938)와 함께, 나중에 1907년(32살)에서 1912년(47살)까지는 프로이트(S. Freud, 1856-1939)와 함께 작업하였다.
그는 프로이트의 “개인적 무의식”개념에 “집단 무의식”(l'inconscient collectif)의 개념을 첨가하였다. 그는 집단무의식의 내용을 분석하고, 내향성(introversion)과 외향성(extraversion) 등의 개념과 더불어 개인과 연관을 분석하였다. 그는 “원형들”(archétypes, Archetypen)의 개념을 분명히 밝히고, 이 개념이 인간의 상상력의 근본적 핵들이라 하며, 이 원형들 주위에 신화와 종교가 형성된다고 한다. 자신의 정신분석학에 대한 논의들의 특성 때문에, 그것을 “심층들의 심리학”(psychologie des profondeurs)이라 이름지었다. 이 특성은 종교적 의식 즉 인간이 신에 마주하는 태도를 심층 무의식으로 해석한데 기인한다. 그의 작품으로는 관념연합의 임상적 연구(Etudes cliniques des associations 1906), 리비도의 변신과 상징(Métamorphoses et symboles de la libido, 1912), 심리학적 전형들(Types psychologiques, 1920), 심리학과 종교(Psychologie et religion, 1939), 심리학과 연금술(Psychologie et alchimie, 1944), 정신의 상징물(Symbolique de l'esprit, 1948) 등이 있다.
1958년(83살)에 분석심리학의 국제 학회를 만들었다. 여기에는 융의 방법을 실천하는 이들로 모였다. (44LMH)
정의 (la) justic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145.(P.304)
권리 일반들에 대한 엄격한 존중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평균적 정의(justice comutative)와 분배적 정의(justice distributive)를 구별한다. 전자는 바뵈프(François-Noël Babeuf, dit Gracchus, 1760-1797)의 정식에 따라서 각자에게 동일할 것을 부여하는 것이고, 후자는 맑스(Karl Marx, 1818-1883)에 의해 옹호되었던 원리로서 각자에게 재능에 따라서 부여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정의를 자비(la charité)와 분리한다. 자비는 타인의 엄격한 권리에 대한 존경보다 더 멀리 나아가서, 타인의 요구에 대한 개인적 이해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정의 가치는 사회적 상황도 개인의 인격도 고려하지 않고도 인간들 사이에 진실하고 익명적인 평등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44LMH)
[참조: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 이 특수한 정의는 새로이 두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는 개인들 사이의 타협이고 또한 평등원리에 부합하는 것으로 교정하는 정의(la justice corrective)이고 다른 하나는 각각의 장점을 고려하여 이익과 존중의 분배에서 비례적인 원리를 적용하는 것으로 분배적 정의(la justice distributive)이다. [「정의 La justice」( Elisabeth Clément et aut., Pratique de la philosophie de A à Z, pp. 186-187.)에서]
(57QM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