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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재판본에는 "들머리"글이 없다.
그런데, 초판본에는 "들머리"가 들어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초판본과 재판본의 본문 내용은 같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59NLI)
수학 철학의 여러 단계들(1912),
브륑슈비크(1869-1944), P. 592.
# 수학 철학의 여러 단계들 (Les étapes de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1912)
브륑슈비크(Léon Brunschvicg, 1869-1944), Alcan(PUF), 1912, [1947판] P.592.
들머리 (Avant-propos) v-xi
철학이 오늘날 마주치는 난문제들은 상당한 부분에서 진리의 문제에 연결되어 있다. 이 난제들은 다음 사실에 의해 아마도 설명될 수 있다. [말하자면] 과학의 방법들과 결과들에 관하여 오랫동안 공언되었던 관념들이, 과학자들과 철학자들 사이에 보다 밀접하게 이루어진 접촉의 정도에서, 용도의 바깥에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인류가 흔들리지 않는 확실성의 전형을 끌어냈었던 수학들 속에서 공공연해졌을 때부터 전통적 균형의 단절이 위기의 심각성을 더해 준다. (v)
25년 전에 딴네리(Jules Tannery, 1848-1910)가 중대한 저술인 변항의 함수들의 이론 입문(1886)을 출판했을 때, 근대 수학들을 고려하기 위하여, 완전수의 명석 판명한 용어에 호소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20세기 초 여러 해 동안에 혁명은 상징논리학(la logique symbolique, 기호논리학)의 무대에 입장에서 알려졌다. 분류의 (또는 비례 함수의)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은 고딕 건축물의 천정의 열쇠가 되었다. 그 건물의 광대한 비례관계들은 산술주의의 경계들과 대조를 이루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 건축물은 자기의 견고함을 일반적으로 파악된 담론의 요소들에서 빌려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층위들의 전체성의 층위라 할 수 있는 담론의 세계를 실현하는데 개념이 그 건물 속에 가졌던 모순의 압박 하에서, 그 건축물은 붕괴되었다. 논리 추론(la logistique)은 의심할바 없이 형식적 기술(technique)의 자격으로 존속하면서, 진리의 주인으로서 수학을 정당화하는데 무능함을 자백하였다. 이때부터 피할 수 없는 반작용에 의해 수학 철학은 직관에게 맡기고 포기되었다. 그럼에도 실재론적 형식 이래로 신비적 형식에에 까지 직관의 형식들의 풍부함과 다양함을 통하여 어떤 길을 여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여기서 실재론의 형식은 모든 증명작업의 찰나에서처럼 모든 이론의 기초에서 이미지(une image)를, 즉 자료(un donné)를 요청했을 것이고, [반면에] 신비적 형식은 감각적 재현[표상]뿐만 아니라 추리적 증거를 면제해주었으리라. (vi)
또한 이런 기이한 영고성쇠[부침]들은 문명인의 정신에는 더욱 당황하게 만들었다. 이런 영고성쇠들은, 이것들을 회의주의의 교육과목으로 변형시키는 점에서, 실질적이고 깊이 있는 교육들을 고갈시켰다. 예외적인 과학자들이 이런 교육에 주도적이었다. 그리고 만일 수학이 그것에 속하는 진리의 감정을 보존할 수 있었다면, 적어도 수학이 본질적 성격들 바깥에서 그것을 더 이상 생산할 수 없다면, 전문적 철학자들이 더 이상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고 심히 걱정하였다. 또는 똑 같은 말이 되겠지만, 그들은 한편으로 동일한 기회를 가지고 전문적인 것과 개연적인 것 안에서 스스로 활동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다른 한편 그러나 희망을 가지지 못하고 규정된 해결을 부여하고 고정시킬 수 있는 이유를 만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vi)
이런 사정에서 유일한 본래자산은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였다. 많은 반대 흐름들에 의해 형성된 소용돌이 속에 참가하는 대신에, 그것은 소용돌이를 그 자체로서 고려하는 것일 것이고, 또한 그것[수학]의 형성작업과 그것을 발전의 조건들을 탐구하는 것이리라. 이때에 철학적 비판의 토대는 수학적 사유의 역사 속에 있을 것이다. (vi)
스피노자(1632-1677)와 파스칼(1623-1662)에 관한우리의 앞선 작업들은 우리를 이미 역사의 국면에 대해 전념하기로 되었다. 이 두 사상가가 데카르트의 기하학에 비추어서 파악한 입장들은, 인간 이성[스피노자]과 주해(l’exégèse, 주석)[파스칼] 자체에 대해 이 입장들 각각의 개념작업들을 부분적으로 우리에게 명령하는 것처럼 나타났다. 이제 연구들의 영역을 넓혀야 했다. 만일 역사로부터 유용한 과목들[수학분과들]을 끌어낸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받아들이기를 원했던 과목들을 선택함으로 시작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적어도 문제가 수학의 특권적 지평 위에서 소개되는 대로, 진리의 문제에서 분명하게 볼 어떤 기회[운수]를 가지기 위하여, 사람들은 사실들의 어떠한 질서[순서]도 무시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증거할 수 있다는 것을 욕망할 수 있었다. 이리하여 사람들이 출발점에서 그러한 철학의 정의를 가정하지 않고서, 또 사람들이 철학이 받아들여야 만 했던 정상적 형식을 미리 예단하지 않고서, 수학 철학에 관한 탐문은 문명의 전 과정을 통하여 이어가야만 했다. 수학에 대해, 즉 인간적 지식의 일체에서 수학의 역할에 대해, 체계적인 개념작업에서 향상되었던 사상가들과 협력하여, 발견의 또는 진술의 방법들에게 도움을 주었던 과학자들에에 질문하는 것이 편하고, 또한 문명화되지 못한 민족들이 계산의 가장 단순한 조작작업을 위하여 사용했던 근본적인 진행들을 고려하는 것이 편하다. (vii)
그것의 결론이 어떤 것이어야 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연구는 내속적인 흥미를 갖는다. 그래서 철학자의 재능과 과학자의 재능을 연합했던 자들에게서, 수학적 진리의 충분한 의식에 이르기 위하여, 여러 번 중단되었다가 또 다시 여러 번 시작했던 노력을 따라가는 것에 대해 수고할 가치가 있다. 그리고 실증적 지식의 어떤 탐문에 관하여, 정신들의 제국을 토론했던 학설들이 기초되어 있는지를, 그리고 어떻게 학설들의 각각이 그것의 시대와 등급(le rang, 서열)에 맞게 오는지를, 보려 하는 것에 대해서도 수고할 만하다. 이리하여 우리 인류의 인식에서 더 많은 질서와 더 많은 빛을 밝히는 데 기여하는 것에 대해서도 수고할 만하다. 서둘러서 다음을 덧붙이자. 최초 수학사가인 모리츠 칸토어(Moritz Cantor, 1829–1920)와 조이텐(Zeuthen, 1839–1920)의 출판들 이래로 수학사는 철학의 반성에 이미 정교하게 협력하는 재료이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기획과 마찬가지로 기획이 얼마나 많은 지지점들을 다루었는지를 상기하기 위하여, 지난 30년 이래로 실증과학과 철학적 사색의 일치를 다시 이루고자한 자들의 몇몇을 언급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보이스-레이몬트(Paul du Bois-Reymond, 1831-1889), 칸토어(Georg Cantor, 1845-1918), 클라인(Felix Klein, 1849-1925), 힐베르트(David Hilbert 1862-1943), 푸앙카레(Henri Poincaré 1854-1912), 뽈 딴느리(Paul Tannery, 1843-1904)와 쥘 딴느리(Jules Tannery, 1848-1910), 밀오(Milhaud, 1858-1918), 라샬라(Lechalas, 1851–1919), 망시옹(Mansion, 1844-1919), 꾸뛰라(Couturat, 1868-1914), 보렐(Borel, 1871-1956), 빈터(Maximilien Winter, 1871–1935), 부뜨루(Pierre Léon Boutroux, 1880-1922). 게다가, 우리의 작업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 탐구의 몇몇 난해한 부분들을 밝혀주었던 독창적인 연구들의 혜택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리하여 수나열(la numération)의 원시적 양태들에 관련한 코난트(Conant, 1857–1916)의 저술을 우리에게 알려준 레비브륄(Lucien Lévy-Bruhl, 1857-1939)은, 그의 저술 열등 사회들에서 심정적 기능들(1910)의 제4장에서, 계산의 초보흔적들에 관한 예외적인 관심의 문헌들에 기여했다. 로방(Léon Robin, 1866-1947)의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라서 이데아들과 수들에 대한 플라톤의 이론: 역사적 비판적 연구(1908)에서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 기원의 증거들에 대한 소진 분석(une analyse exhaustive)을 발견한다. 이 증거들에 의해 사람들은 고대 아카데미아의 교육에 접근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진술에서 얼마나 중요한 개선책들이 두 과학자들로부터 바랄 수 있었던 가장 값비싼 충고들에게 빚지고 있는지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과학자들의 이름은 위에서 인용했던 맑시밀리언 빈터(1871–1935)와 삐에르 부뜨루(1880-1922)이다. (v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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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역사적 탐문이 우리 작업의 마지막 쪽들에서 바랐던 대로 결론들을 향해 우리를 인도했는지를 이제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viii)
[한편] 일단 수학, 산술학, 기하학, 미분분석학 등의 큰 분과학들 중의 하나가 확정적으로 자기의식을 갖는 경우에, 우리는 이런 분과학 위에 사물들의 보편적 개념작업을 지탱했던 체계가 구성되는 것을 보았다. 그 체계에는 퓌타고라스주의, 스피노자주의, 라이프니츠주의 등이 있다. 시대를 거슬러 오늘날 분간하기를 허락해주는 원인들을 위하여, 어떠한 것(aucun)도 사유의 움직이는 균형을 고정하게 이르지 못했다. 하물며, 수학을 영속적 필연성을 표현하는 형식에, 즉 영원한 진리에 결합시키기 위하여 산술주의 또는 로지스틱[논리추리]의 시도들은 좌초할 운명에 처해있었다. 한편 역사는 철학자들을 퓌타고라스 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에 몰고 가는 사유의 우회로를 고려한다. 그러나 역사는 또한 우리를 학설들의 진화에 참석하게 하면서, 이 학설들이 수학들의 산술의(arithmétiste)의 해석 또는 논리적 해석에서 이것들의 출발점을 가졌는데, 왜 수학들이 이것들의 기초자들의 독단적인 의도에 응답할 수 없었는지를 설명한다. (ix)
다른 한편 19세기 과학의 발달은, 그것의 원리들을 보다 쉽게 정의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수학을 역학과 물리학 연구들의 종속시키는 것을, 즉 수학을 단순한 도구가 되게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칸트(1724-1804)같은 이 또는 꽁뜨(1798-1857) 같은 이의 입장은, 뉴턴(1642-1727)의 계승자들과 더불어 라그랑쥬(Lagrange, 1736-1813)와 라플라스(Laplace, 1749-1827)에까지 넓혀졌던 시대의 특성들을 아마도 반영한다. 이런 입장은 경험과학의 관념 속에서 완수되었던 변형론(transformation, 수학의 변환론)을 마주하여, 또 분석론의 개선에 마주하여, 더 이상 이해될 수 없을 것이다. 꼬쉬(Cauchy, 1789-1857)와 아벨(Abel, 1802-1829) 이래로, 근대 수학은 자치의 증거를 이루었다. 이 자치는 수학에게 자연적 탐구들의 영역에서, 예기치 않은 길들을 내는 수단을 부여했다. (ix)
이때부터 우리가 기획했던 탐문이, 진리의 문제에 응답으로 잔존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면, 또한 치료제를 동시대 사색의 혼란에 치료제를 가져오지 않는다면, 이 자체에서 끝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형이상학적 체계들은 지성으로부터 규정된 형식들의 과학 전체를 의존하게 하는데, 이 체계들의 연속이 역사의 절반일 뿐이다. 역사의 다른 절반은 사유의 연속적인 증가이며, 사유의 풍부함이 항상 사유 자체를 더 많이 보장해준다. 역사가 우리에게 실증적 해결의 명백한 정식을 거부하는데, 역사는 자기의 양 옆구리들 속에 실증적 해결책의 정식을 운반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가 [해결책의] 정식을 보편적이고 불변하는 독단의 겉보기[현상]로부터 분간하는 그날로부터, 우리는 심지어, 그 해결의 정식[해결책]이 고전적 학설들의 창조자[발명자]들에게서 [이미] 소개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이 창조자들은 도그마로부터 그것[해결책]을 덮어씌우는데 흡족해 하며, 이들의 계승자들에게 “선천적 형식들”과 “일반적 사실들”의 미신(la supersition)을 넘겨준다. 그런데 이 미신은 19세기에 철학적 비판을 마비시켰다. (ix)
우리는 오늘날 이것을[위의 사실을] 알고 있다. 일종의 점치기(divination, 예상)에 의해서, 근원들을 발견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착각이었다. 이 근원들에서 과학이 스스로 영양을 공급받고, 그리고 이 근원들로부터 물들이 인위적으로 운하 속으로, 즉 물들을 받아들이기 위한 운하 속으로 흘러갈 것이다. 수학의 과정(le cours)은 자발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 과정은 자연적인 큰 강[대하(大河)]의 수 천개의 우발사건들을 제공한다. 무의식의 또는 선역사의 안개가 감추고 있는, 큰 강의 부분들의 기회들을 재구성하는 어떤 기회를 갖기 위하여, 큰 강이 우리 눈 아래 펼쳐지는 것을 보도록 허락되어있는 거기에서 강을 따라가야만 한다. 또한 이에 대한 습관적 리듬을 지각했어야만 한다. 비판적 분석은 역사의 입문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비판적 분석은 역사로부터 실행한다. 비판적 분석은, 과거 속에서 가능한 만큼 그것을 멀리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 탐구를 특징화하는 태도를 이어간다. 그리고 이 탐구는, 이 기본적 용어들을 현실적으로 획득된 지식을, 탐구의 모든 너비 안에서, 덮을 수 있게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기본적 용어들을 개정하기에 애쓴다. 외적 대상들에 의해 제공된 무매개적 자료(un donné)를 확정하는 것보다 과학적 경험에 덜 닮은 것이 없다. 순수 논리적 담론을 전개하는 것보다 과학자들의 효과적인 조작 작업들에 덜 닮은 것이 없다. 사실상 산술학 또는 기하학의 가장 단순한 진행방식으로부터, 연결접속(la connexion)은 경험과 이법 사이에서 확립된다. 이로부터 길이 열린다. 이 길에서 지성이 감각적 표상[재현]들로 제한된 수평으로부터 해방되고, 이 길에서 지성이 실재의 구성적 관계들을 예상 밖의 깊이에 침투하게 하는 능력을 획득한다. (x)
우리가 거쳐 와야만 했던 것이 이 길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이 진리의 개념작업을 정교화하는 것을 보기 위하여 유용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식[정도]에서 이 길이다. 진리의 개념작업은, 그럼에도 지식의 정당성과 정확성을 전혀 희생하지 않고서, 독단주의 또는 실증주의의 단선적인 정식들과 단절 했다. 또한 우리는 이런 개념작업이 역할을 바꾼 것 같다고 지적 해야만 한다. 그 역할이란, 일체의 인간과학들에서도 일반적으로 수학들에게 속성이 부여되었던 것이다. 그것의 진솔한 외모에서 고려된 수학에게, 발명들의 자유를 드러내는[폭로하는] 것이 속한다. 자유의 직관적 자료들(les données)은 오로지 정신이 우주의 조직화를 위하여 축적한 자원들의 기회가, 다양함이, 무한성이 되었다. 따라서 수학은 종속상태( assujettissement)의 물리학을 뛰어 넘을 것이다. 수적관계들과 공간적 관계들에 대해 너무 밀접한 물리학의 해석은 수학은 위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학은 지성의 심리학에 새로운 토대를 제공할 것이며, 포르르와얄의 논리학(1662)이래로 사람들은 담론의 외적인 장치에 모델을 만들고자 고집을 부린다. 결국 수학은 과학적 철학과 필연적 연대성을, 그리고 지식의 다양한 분과들과 변함없는 협업을, 다시 하도록 허용할 것이다. 따라서 과학은 경계들을 제한하기 위한 헛된 노력 속에서 소진하지 않으려하고, 그리고 과학의 모든 중요한 발견이 이런 경계들을 이전하게 하거나 제거하도록 요청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 스스로 제안했던 계획을 채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가장 섬세하고 가장 조심스러운 진리의 탐구를 담당한 분야의 성찰은 철학적 사유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더 이상 증가하게 할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 것이다. 성찰은 철학적 사유를 밝히면서, 인간적 지혜에 대한 우리의 신임을 더욱 단단하게 할 것이다. 꾸르노(Cournot, 1801-1877)가 함수들의 이론과 미분계산의 기본론(Traité élémentaire de la théorie des fonctions et du calcul infinitésimal, 1841)의 명구를 위하여 썼던 말투에 따르면, Sophiae Germana Mathesis[지혜의 게르만 보편학]이다. (xi, ‘들머리’ 끝)
(6:03, 59NKJ) (4:40, 59NLH)
# 인명록 -*-
580 퓌타고라스(Pythagore, Πυθαγόρας, 전580-495, 85 ans) 고대 그리스 철학자. 사모스섬 출생, 이탈리아 남부의 메타폰티온(Métaponte, Μεταπόντιον)에서 세상을 떴다. - 메템프쉬코시스(métempsychose, μετεμψύχωσις) 영혼의 이동, 이전, 윤회 사상을 가졌다.
384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 Ἀριστοτέλης, 전384-322),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제자. 형이상학(La Métaphysique, τὰ μετὰ τὰ φυσικά)
O
1623 파스칼 (Blaise Pascal, 1623-1662)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이다. 그는 공기의 기압을 실험하기도 하였다. 쟝세니스트로서 크리스트 신비주의에 빠졌다. 이상하게도 그의 글은 다른 철학자들의 글과 마찬가지로 로마 교황청의 금서목록에 계속 올랐었다.
1632 스피노자* (Baruch Spinoza, 1632-1677) 리베리아 반도에서 온 유태인 가계의 출신으로 네델란드에서 낸 철학자이다. 그는 그리스트교나 유태교가 지닌 유일신의 불변성과 독자적 고유성에 대해 부정하고, 살아있고 움직이는 자연 즉 신을 주장한다. - [벩송이 “영원의 상하에서”의 철학을 누구라고 칭하지 않았지만, 스피노자가 분명한 것 같다. 그는 (영혼의 두 역량인) 사유(추리)와 운동(변화)을 연역적으로 풀어냈다(ex-plication, 연역적이다). 데카르트 이후의 시대적 한계로서 자연의 자치, 자주, 자율, 나아가 자발성을 깨닫지 못했다. 사실을 벩송이 찝어서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스피노자는 스콜라 신학을 두 계열로 동등하다고 하지는 않더라도 등가적으로 또는 연대적으로 다시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스피노자는 개념주의에 가깝다. 헤겔이 좋아할 만하다. (59MKH)]
1642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2-1727)(85살), 영국 물리학자 수학자. Philosophiæ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 1687(2e éd. 1713, 3e éd. 1726).
1646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von Leibniz 1646-1716)(70살) 독일의 철학자, 수학자, 자연과학자, 법학자, 신학자, 언어학자, 역사가. 수학에서는 미적분법의 창시로, 미분 기호, 적분 기호의 창안 등 해석학 발달에 많은 공헌.
1724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프로이센 철학자.
1736 라그랑쥬(Joseph-Louis Lagrange, it. Giuseppe Lodovico Lagrangia 1736-1813), 이탈리아 출신 프랑스 수학자, 역학자, 천문학자. 1802 프랑스 국적. 분석 역학(Mécanique analytique, 1788)
1749 라플라스(Pierre Simon de Laplace, 1749-1827): 우주란 작은 부분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그 부분들을 추적할 수만 있다면 미래 일은 예측 가능하다. Traité de mécanique céleste, 4권, 1799-1805, Théorie analytique des probabilités, 1812; Essai philosophique sur les probabilités, 1814.
1789 코시(Augustin Cauchy, 1789-1857) 프랑스 수학대가. 허수발견 (1815) 해석학 강좌(Cours d'analyse 1821) 갈르와(Galois)가 기초한 군론(théorie des groupes)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9세기 초반에 복소수 변수함수론으로 유체역학에 활용.
1798 꽁트* (Auguste Comte, 1798-1857) 프랑스 대혁명과 그리고 18세기 혁명의 과정에서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체험하고, 구체적이고 실증적이며 역동적인 조직의 변화를 설명하는 사회학을 창설하였다. 그런데 한 여인에 사랑에 빠져 이 사회학을 종교화하려 했다.
1801 꾸르노(Antoine Augustin Cournot, 1801-1877), 프랑스 경제학자, 수학자, 철학자이다. 함수들의 이론과 미분계산의 기본론(Traité élémentaire de la théorie des fonctions et du calcul infinitésimal (1841), 인식의 토대와 철학적 비판의 특징에 관한 시론(Essai sur les fondements de nos connaissances et sur les caratères de la critique philosophique, 1851), 과학들과 역사 속에서 근본 관념들의 연쇄론(Traité de l'enchaînement des idées fondamentales dans les sciences et dans l'histoire, 1861), 현대에서 관념과 사건의 진행에 대한 고찰(Considérations sur la marche des idées et des événements dans les temps modernes (1872), 유물론, 생기론, 합리론(Matérialisme, vitalisme, rationalisme, 1875); 철학적 비판(Critique philosophique, 1958)(C. Khodoss에 의해 선택된 텍스트)
1802 아벨(Niels Henrik Abel, 1802-1829)(27살) 노르웨이, 수학자 5차 대수방정식 작업, 타원함수. 결핵이었다.
1829 칸토어(Moritz Benedikt Cantor, 1829–1920), 만하임 출생 하이델베르크에서 별세, 독일에서 첫 수학사 교수. Vorlesungen über die Geschichte der Mathematik. 4 Bände. Leipzig: B. G. Teubner, 1880–1908: t. I, 3e édit, 1907, Leibzig (que nous désigneraons par Cantor I3), p. 11. (chap. 1, die Babylonier, p. 19 et suiv.)
1831 보이스-레이몬트 / 브와-레이몽(Paul David Gustav du Bois-Reymond, 1831-1889), 베를린 태생, 프라이부르크에서 사망한 독일 수학자. 그의 논문은 유체의 기계적 평형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함수 이론과 수리 물리학 분야에서 일했습니다.
1837 엘류떼르 마스카르(Éleuthère Élie Nicolas Mascart, 1837-1908) 프랑스 물리학자. 역학과 광학 전문 및 전자학와 자기학 관심. / 쟝 마스카르(Jean Mascart, 1872-1935), 프랑스 천문학자, 수학자. 엘류떼르의 아들. 쟝이 조이텐(Zeuthen)의 논문 번역자일 것이다.]
1839 조이텐(Hieronymus Georg Zeuthen, 1839–1920), 덴마크 수학자. 코펜하겐 대학 교수. 열거 기하학(the enumerative geometry of conic sections, algebraic surfaces, and history of mathematics.)
1843 딴느리(Paul Tannery, 1843-1904), 프랑스 과학사가, 수학사가. 딴느리(Jules Tannery, 1848-1910)의 맏형. L’Education platonicienne, III, Digression sur un passage du l’Epinomis, Revue Philosophique, 1880, t. II, p. 529. La Géometrie grecque, 1887, p. 111.
1844 망시옹(Paul Mansion, 1844-1919), 벨기에 수학자, 과학사가. 조셉과 오귀스트(Joseph Mansion et Augustin Mansion)의 아버지
1845 칸토어(Georg Cantor, 1845-1918), 셍페테스부르그 태생 할레에서 별세. 독일 수학자, 집합론 탄생에 큰 역할. “실수들(les nombres réels)은 자연수 전체보다 더 많다.” 기수와 서수를 정의하였다.
1848 딴느리(Jules Tannery, 1848-1910), 프랑스 수학자. 박사학위논문: 변항의 함수들의 이론 입문(Introduction à la théorie des fonctions d’une variables, 1886) <Propriétés des intégrales des équations différentielles linéaires à coefficients variables, 1874>. (Notions historiques à la suite des Notions de Mathématiques de Jules Tannery, 1903)
1849 클라인(Christian Felix Klein, 1849-1925) 독일의 수학자. 함수론과 군론(群論) 연구에 새 영역을 개척하였으며, 수학사(數學史), 수학 교육 분야에도 업적을 남겼다. 변환군(變換群)의 종류에 따라 기하학을 분류하여 에를랑겐(Erlangen) 목록을 남겼다.
1851 라샬라(Georges Lechalas, 1851–1919), 프랑스 기술자. 수학자. 교량 도로 기술자.
1854 푸앙카레(Jules-Henri Poincaré 1854-1912) 프랑스의 수학자․이론천문학자․과학철학자. 우주진화론, 상대성이론, 그리고 위상수학에 영향을 미쳤고 일반대중에게 과학을 해석해주는 탁월한 재능을 가졌다.
1857 레비브륄(Lucien Lévy-Bruhl, 1857-1939), 프랑스 철학자, 인종학자.
1857 코난트(Levi L. Conant, 1857–1916), 미국 수학자, 삼각함수 전문가. 수 개념: 수의 기원과 발전(The Number Concept: Its Origin and Development, 1896).
1858 밀오(Samuel Milhaud, Gaston Milhaud, 1858-1918), 프랑스 철학자, 과학사가. 수학자. Leçons sur les origines de la science grecque, 1893. Les philosophes géomètres de la Grèce. Platon et ses prédécesseurs, 1900[Vrin, 1934.] - La Géometrie d’Apastamba, Revue generale des Sciences, 1910,
1862 다비트 힐베르트(David Hilbert 1862-1943) 독일 수학자, 쾨니히스베르크대학교. 1900년 파리의 수학대회의 강연 (수학 공리주의 방향) 1900년 수학적 문제들로 구성된 23개 목록 제시, 1895년 괴팅겐대학 교수, 1895년-1945년 대수적 정수론, 공리주의 수학기초론 등 연구.
1866 로방(Léon Robin, 1866-1947), 프랑스 철학자, 고대 그리스철학 전문가, 소르본대학의 고대철학사 교수(1924-1936). La Théorie platonicienne des idées et des nombres d'après Aristote: étude historique et critique, Paris, Félix Alcan, 1908, 702 p.
1868 꾸뛰라(Louis Couturat, 1868-1914) 프랑스 철학자, 논리학자, 수학자.
1871 보렐(Émile Borel, 1871-1956) 프랑스 수학자. 함수이론과 확률론 전문가.
1871 빈터(Maximilien Winter, 1871–1935), 프랑스 철학자, 법률가. 인식론자.
1880 부뜨루(Pierre Léon Boutroux, 1880-1922) 프랑스 수학자, 과학사가.
1888 장 발(Jean Wahl, 1888-1974), 유대계 프랑스 철학자. 1910년 교수자격 통과. 철학사가. fr.Wiki는 벩송 제자라고 하는데, 벩송에게 무엇을 배웠을까? 벩송은 1901년부터 이미 꼴레쥬드 프랑스 강의를 했는데.. 후설(유대인)과 하이데거 계보에 가깝다.
1889? 뽈 발(Paul Wahl, ?-?) 프랑스 (교량과 도로) 기술자 (장발의 동생일까?) 브룅슈비끄가 수학사를 쓸 때 아마도 에콜 폴리테크니끄를 졸업했겠지?
Sophiae Germana Mathesis.
Anti-Lucret., lib. iv. v. 1088.
- Traité élémentaire de la théorie des fonctions et du calcul infinitésimal (초 1841), 수정 재판(1857)의 표지의 제목 바로 밑에 쓰여진 제사(題詞); 두 줄로 되어 있다.
[ 소피아의 독일의 보편학(Sophiae Germana Mathesis) [줄바꾸어]
[Anti-Lucret., lib. iv. v. 1088. - 반(反) 유크레티우스 작품은 폴리냑의 것이라 한다.]
[류크레티우스의 4권 1088행에는 사랑과 성적 욕망을 다루고 있다고 한다.]
- The phrase "Anti-Lucret lib, iv. v. 1088" refers to a potential citation within Cardinal Melchior de Polignac(1661-1741)'s Anti-Lucretius, sive de Deo et Natura (1747, 유고 출판)
- Context in Lucretius (DRN Book IV, 1088): In the original De Rerum Natura, Book IV, lines 1088-1089 discuss the intensity of passionate love, noting how a lover, even when separated, is still haunted by the "simulacra" (images) of the beloved and "sweet name“
- 루크레티우스(Lucretius)의 《만물의 본성에 관하여(De Rerum Natura, DRN)》 제4권 1088행 부근은 사랑과 성적 욕망에 대한 에피쿠로스학파의 해부학적이고 심리학적인 분석을 다루는 섹션(약 1058~1287행)에 해당합니다.
- Sophie Germain(1776–1831), 프랑스 여성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겉표지의 제사(題詞, Sophiae Germana Mathesis)의 이름과 연관이 없다.] (59NKJ)
(9:13, 59NKJ) (9:15, 59NLA) (8:03, 59NLH)

첫댓글 <이법(la raison)에 찬성하거나 또는 반대하는 방편을 취한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반대로 사람들이 보편 연역법의 스콜라적 이상을 거부했던 이후에야, 또한 사람들이 완전한 방법의 이상을 실현하기에는 인간의 무능을 제시했던 이후에야, ... [반대로 사람들이 보편 연역법의 스콜라적 이상을 거부했던 이후에야[중세 이후], 또한 사람들이 완전한 방법의 이상을 실현하기에는 인간의 무능을 제시했던 이후에야[1859년이후], 모든 용어들이 정의되고, 또한 모든 원리들이 증명된다[증명을 시작해보았으나 다 된 것은 아니다]. 이런[용어들과 원리들] 것들에, 사람들은 자신들이 선택했던 지평 자체 위에서, “강한[오만한] 정신”의 오해로 그리고 아이러니[파라독사]로 부딪혔던 것이다.] - 수학 철학의 여러 단계들(1912), 브륑슈비크(1869-1944), p. 169. (59NMD)>
이글 속에 데카르트가 등장하지 않는가? 저자의 견해를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