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는 장수촌이다. 세계에서 첫손에 꼽히는 오래 사는 동네다. 그들은 무엇을 먹으며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것이 궁금했다. 풍문에 들리기로는 돼지고기를 푹 삶아 기름을 완전히 뺀 걸 먹으며 해초를 비롯한 채소류를 주로 먹는다고 했다. 언젠가 오키나와에 가면 물썽하게 삶은 돼지고기를 고구마 소주와 함께 먹어봐야겠다고 별렀지만 그곳은 너무 멀리 있었다.
어쭙잖게 오키나와에 갈 일이 생겼다. 아이들이 여름방학을 맞아 갈 곳을 정하는데 오키나와가 당첨돼서 무작정 따라나서게 되었다. ‘오키나와 돼지고기를 먹어봐야지’란 생각은 희망 사항일 뿐 주인공인 아이들의 동선에 맞추다 보니 돼지고기는커녕 살아있는 돼지 한 마리도 보지 못하고 3박 4일 일정을 겉돌고 말았다.
오키나와는 인구 10만 명당 100세 이상 노인이 28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심장병이나 암, 전립선 질환이 없는 것도 특이하다. 그들은 하루 18가지 음식을 먹는데 78%가 풀이며 심황, 여주, 쑥, 칡, 곤약, 해초, 재스민 차가 주류를 이룬다. 그것보다는 ‘하라하치부’라는 말대로 배가 80% 정도 찼을 때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하나 더 보탠다면 그들은 어릴 때부터 운동과 명상을 실천하고 낙천적 사고를 장수의 또 다른 비결로 꼽고 있다. 그건 너무나 간단하다. ‘논어’ 술이 편에 나오는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구부려 베개 삼아도 거기에도 즐거움은 있다’(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는 공자의 말씀을 실천한다면 오키나와의 장수 비결을 간단하게 제압할 수 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장수촌 몇 개 마을을 좀 더 섭렵해 보자. 구 소련의 변방 코카서스의 압하지아와 네팔 북쪽 파키스탄의 훈자 마을, 그리고 중미 에콰도르의 빌카빔바 마을도 오래 사는 마을로 손꼽히고 있다. 이탈리아의 사르데냐와 캄포디멜레도 장수촌에서 빼면 섭섭하게 생각한다.
장수 마을의 공통점은 맑은 물과 좋은 공기, 채식, 운동을 겸한 일, 낙천적 사고, 스트레스 안 받기, 그리고 소박한 밥상 등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장수 요건을 갖춘 생활을 한다고 하더라도 삶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와 이웃을 도와주는 호혜주의, 즉 ‘유이마루 정신’에서 비롯되는 건강한 세계관을 갖지 못한다면 오래 사는 기간 자체가 돼지우리 속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호의호식하며 골프장을 드나들 일이 아니라 오키나와 같은 장수촌에 들러 쓰다 남은 29만원으로 돼지고기나 한 접시 시켜 먹으면서 그곳 노인들의 무욕의 삶을 배워 볼 일이다.
이번 여행에서 별러오던 오키나와 돼지고기는 먹어보지 못했지만 바다 포도(우미 부도)를 만난 건 행운이다. 바다 포도는 오키나와 미야코지마 지역에서 생산되는 특산물인 해조류다. 이름에 걸맞게 청포도 빛깔에 아주 작은 포도송이가 알알이 박혀 주저리주저리 매달려 있다. 모양이나 식감은 캐비어를 닮아 오키나와 사람들은 우미 부도를 ‘그린 캐비어’라고 부른다.
옛날에는 해조류를 바다의 잡초란 뜻으로 시 위드(sea weed)라 불렀지만 요즘은 인체에 유익한 게 많아 바다 채소(sea vegetable)라고 부른다. 한 술 더 떠 바다 포도(sea grape)는 최상급 과일로 대접하고 있다. 가격은 오키나와산은 250g당 2천엔(한화 2만3천원)이지만 구매지마산은 4천엔으로 소고기 최고 등급보다 배 이상 비싼 편이다.
바다 포도는 알칼리식품으로 미네랄과 비타민, 그리고 식이섬유와 알긴산의 보고여서 피를 맑게 하고 노폐물을 배출시키는 한편 배변을 도와준다. 일반적으로 몸에 좋은 음식들이 먹기에 부담스러운 것이 더러 있으나 바다 포도는 전혀 그렇지 않다. 입안에 넣고 씹으면 포도 알갱이들이 톡톡 튀면서 해조류 특유의 바다내음이 난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바다 포도를 자신이 좋아하는 간장 초장 향료에 섞어 무쳐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음식깨나 먹을 줄 아는 고수들은 초밥 위에 바다 포도 한 올씩을 얹어 먹으며 쟝 콕토 시인이 ‘내 귀는 소라껍질 바다 소리를 그리워한다’는 시구처럼 혀끝으로 바다를 희롱한다. 오키나와 여행 중에 처음 만난 바다 포도 맛에 반해 버렸다. 귀국 하루 전 저녁을 먹으면서 “이 식당에서 가장 자신 있게 권하고 싶은 요리를 주세요”라고 했더니 예순을 넘은 주인이 “그건 우미 부도지요”라고 대답했다. 쟁반은 큰데 포도송이는 겨우 두어 젓가락 될락말락했다. 오리온 생맥주 겨우 두 잔 마셨는데 접시 위의 가을걷이는 이미 끝나버려 찍어 먹을 게 없었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