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죽장리 오층석탑, 왜 신라는 3층탑을 버리고 5층탑을 선택했나?
Dragon ・ 2026. 3. 21. 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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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 선산읍, 옛 죽장사(竹杖寺) 터에 들어서면 높이 10m에 달하는 거대한 석탑 하나가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다. 국보로 지정된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이다. 흔히 보던 단아한 3층 석탑과는 궤를 달리하는 이 웅장한 거탑(巨塔) 앞에서는 누구나 압도당하기 마련이다. 오늘은 이 탑이 왜 3층이 아닌 5층을 선택했는지, 그리고 왜 돌을 가지고 굳이 벽돌탑의 형상을 흉내 냈는지, 그 속에 담긴 신라의 인문학적 열망을 추적해 보기로 하겠다.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 (국보)
■ 우리나라 5층 석탑의 시원(始原)을 찾아서
한국 석탑의 역사는 목탑의 형식을 돌로 번안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그 시원은 백제의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목조 건축의 부드러운 곡선과 비례를 유지하면서도 5층이라는 높이를 통해 하늘에 닿고자 하는 염원을 정립했다.
이후 통일신라로 넘어오며 3층 석탑이 전형적인 양식으로 굳어졌으나, 9세기경부터 다시 5층 석탑이 유행하기 시작한다. 죽장리 오층석탑은 바로 그 흐름의 정점에서 탄생한, 신라 석조 건축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 3층과 5층, 숫자에 담긴 불교적 세계관의 근거
왜 어떤 탑은 3층이고, 어떤 탑은 5층일까? 이는 단순한 미적 선택이 아니라 철저한 불교 교리와 동양적 세계관의 산물이다.
3층의 상징: 완결과 수행의 요체
불교에서 3은 가장 완결된 숫자입니다. 불교의 세 가지 보물인 삼보(三寶: 불·법·승)와 수행의 세 가지 길인 삼학(三學: 계·정·혜)을 의미한다. 또한 시간적으로는 삼세(三世: 과거·현재·미래)의 부처님을 한곳에 모신다는 신앙적 결합을 뜻한다.
8세기 신라 전성기에 3층 석탑(석가탑 등)이 주류를 이룬 것은, 불교 교리가 체계화되면서 '가장 안정적인 비례' 속에 법력을 가두고자 했기 때문이다.
5층의 상징: 우주의 확장과 숭고함
반면 5층은 우주적인 확장을 의미한다. 밀교적 해석과 《불설조탑공덕경》 등에 근거하면, 5는 우주를 구성하는 다섯 요소인 오행(지·수·화·풍·공)과 동서남북 및 중앙을 다스리는 오방불(五方佛), 그리고 부처의 다섯 가지 지혜인 오지(五智)를 상징한다.
9세기 이후 선종의 유행과 함께 지방 호족 세력이 성장하면서, 중앙의 정형화된 3층 양식을 넘어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하고 우주적 권위를 세우기 위해 더 높고 웅장한 5층 석탑을 건립하기 시작한 것이다.
■ 왜 경북 북부 지역에서 '모전탑'이 유행했는가?
죽장리 오층석탑의 가장 큰 특징은 돌을 벽돌처럼 깎아 쌓은 '모전석탑(模塼石塔)' 계열이라는 점이다. 특히 안동, 의성, 구미를 잇는 경북 북부 지역에 이런 양식이 집중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지질학적 환경의 산물
이 지역은 질 좋은 통화강암보다는 층리(層理)가 발달하여 결대로 잘 깨지는 수성암(이암, 셰일) 계열의 암석이 흔했다. 큰 덩어리로 조각하기 힘든 재료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돌을 작게 잘라 벽돌처럼 쌓아 올리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발달한 것이다.
둘째, 당대 '하이테크' 디자인에 대한 동경
당시 중국(당나라)에서는 벽돌을 구워 만든 전탑(塼塔)이 최첨단 유행이었다. 경주의 중앙 귀족들이 전통적인 화강암 석탑을 고수했다면, 중국과의 교류가 활발했던 이 지역 세력가들은 외국의 세련된 전탑 양식을 들여와 주변의 돌로 구현하고자 했다. 즉, 모전석탑은 당대 최고의 디자인을 구현하려 했던 신라판 '하이브리드 건축'인 셈이다.
■ 죽장리 오층석탑: 왜 전탑을 흉내 내었는가?
죽장리 오층석탑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지붕돌(옥개석)의 윗면과 아랫면을 모두 계단식으로 깎아 전탑의 형상을 완벽히 재현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인문학적 의도가 숨어 있다.
위엄의 시각화: 전탑 양식의 계단식 지붕은 일반 석탑의 밋밋한 지붕보다 빛과 그림자의 대비가 강렬하다. 10m 높이의 탑에 이 디테일이 가미되면서, 탑은 더욱 거대하고 입체적으로 보인다.
조립의 미학: 이 탑은 통째로 깎은 것이 아니라 무려 100여 개가 넘는 석재를 정교하게 짜 맞춘 '조립식'이다. 전탑의 제작 방식을 석탑에 도입함으로써, 부재 하나하나에 정성을 담는 수행의 과정을 시각화한 것이다.
신성한 공간의 강조: 1층 몸돌 남쪽에 뚫린 감실(龕室)은 이 탑이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부처님이 실제로 거주하는 집(목조건축)임을 상징한다. 감실 주변에 문을 달았던 구멍 흔적은 이곳이 열려 있는 신성한 공간이었음을 증명한다.
■ 석탑 진화의 정점에서 마주하는 웅장한 존재감
사라진 죽장사 터에 홀로 남은 이 거대한 탑은, 정형화된 3층의 틀을 깨고 우주적 확장(5층)을 꿈꿨던 신라인들의 과감한 선언과도 같았다.
화강암의 견고함 위에 전탑의 세련미를 덧입힌 석공들의 집요한 장인정신은, 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10m의 높이를 거뜬히 버텨내는 숭고한 생명력이 되었다.
그 옛날 이 땅을 지켰을 수많은 기와집은 먼지가 되어 사라졌지만, 돌 하나하나에 새겨진 그들의 열망만큼은 이 푸른 잔디밭 위에서 영원히 늙지 않을 모양이다.
[출처]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 왜 신라는 3층탑을 버리고 5층탑을 선택했나?|작성자 Drag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