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든 꽃
가을이 내리던 날
요양 병원문을 아들의 손을 잡고 들어서는 할머니 한 분이 있었다
"엄마…여기 한 달만 있으면 다시 데리러 올게"
"이 엄마 걱정은 말고 어여가"
"엄마 ,걱정하지 마 딱 한 달만 있으면 돼 알았지?."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욕심이 되어버린 현실 앞에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은
추락하는 눈물에 들어있는 아픔으로 서로를 배웅하고 헤어진 뒤
엄마가 잠들지 않는 바다를 닮아가고 있는 걸 알았는지 아들은 한 달 뒤 겨울의 문턱을 밟으며 병원을 들어서고 있었다
"엄마…. 미안해"
"늙은 이 매미 걱정을 말고 젊은 너 걱정이나 혀"
바람길 숭숭 난 가슴을 애써 숨긴 아들은 병원 앞마당에 핀 들꽃을 한 아름 꺾어와 빈 화병에 꽂아두며
"엄마…. 저 꽃병에 꽃이 시들기 전에 꼭 다시 와서 엄마 데리고 나갈게"
희망 같은 내일을 기다리고 있던 할머니의 귀에 다른 가을이 와도 아들의 발소리는 들려오질 않았지만
꽃이 시들면 아들이 돌아오지 않을까 봐
매일 매일 시든 꽃병에 눈물을 채워 넣으며 아들을 바라보듯 웃음짓기만 하는 할머니를 보며
"할머니…꽃이 다 시들었는데 제가 버려드릴게요"
"안 돼! 손대지 말어"
시든 꽃이라도 아름다워서일까
세월 바람에 꾸덕꾸덕 말라져 가는 꽃들을 매일 매일 눈에 넣으려 간호사의 호의조차 거절한 할머니는
행여나 그 꽃이 사라지면 기다리는 아들이 오지 않을까 봐
만날 순 없어도 느낄 순 있다는 듯 시든 꽃만 온종일 바라보고 있는 걸 보며 병실 안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딱 보면 몰러… 아들이 버리고 간 거지"
"현대판 고려장이 따로 없지"
깎아지른 인생길에 다시 찾아온 가을이 문을 닫고 가버린 자리에
또 다른 얼굴을 내민 가을따라 마디마디 심어놓은 서러움으로 하루를 버티시던 할머니는
바람 한 장보다 가벼웠던 삶을 지우고 기다림이 없는 하늘나라로 떠난 병실에는
시들어버린 꽃만이 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백만 번 시들어도 기다리고픈 엄마의 마음을 말해주려는 듯이….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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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현대 판 고려장....
너무 서글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