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모님의 눈물 >
그해의 성탄 전야 미사를 저는 어느 대형 성당에서 맞았습니다.
성당 입구는 미리 온 신자들로 가득했고,
저처럼 늦게 온 신자들은 지하 성당으로 내려가 미사를 보라는 거였습니다.
우르르 몰려가 지하 성당에 자리를 잡고 바라보니
앞에는 미사 중계용 대형 TV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이럴 수가!
그 모니터에는 커다랗게 ‘고장’이라고 쓴 A4용지 한 장이 털썩 붙여져 있었습니다.
대림 기간 동안 이 성당은 모니터는 고치지는 않고 ‘고장’이라 쓰고나 있었단 말인가.
미사가 시작되고, 지하 성당의 우리들은 화면도 소리도 먹통인
고장 난 모니터를 바라보며 묵묵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대성당으로 통하는 문옆에 앉아 있던 자매 한 분이
모깃소리처럼 들리는 위층의 성가를 가만가만 따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한 분의 목소리가 둘이 되고 셋이 되면서…
우리 모두는 다 함께 입을 모아 기도했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렇게 미사를 마치며 가슴이 뜨거워져서 생각했습니다.
지금 주님이 오셨다면 어디 계실까.
저 위쪽 대성당이 아니라 이 작은 지하 성당, ‘고장’ 앞으로 찾아오시지 않으셨을까.
며칠 후였습니다.
정릉성당을 찾아갔을 때였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쳐다본 성모님,
희디흰 은혜의 성모님이 울고 계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성모상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검디검은 눈물을 그때 보았습니다.
내가 무슨 잘못이 있기에 성모님은 눈물까지 흘리시는 걸까.
너무 놀라서, 기도를 드려야겠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아서…
도망치듯 들어선 성당 안은 몹시 어두웠습니다.
그 어둠 속에서 두 주먹을 이마에 대고 엎드려 묻고 또 물었습니다.
“무슨 잘못이 있기에 저를 보고 울고 계시나요, 성모님.”
“왜 그걸 하지 않니?”
성모님이 저에게 물으셨지만,
“뭔데요?” 하고 되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길 가야 하지 않니? 중국 취재.”
소설은 중단한 채 몇 년,
최양업 신부님의 자취를 찾아가는 중국 취재를
미루기만 하고 있는 나를 보고 울고 계시다니.
“네, 다녀오겠습니다.”
놀람과 부끄러움 속에 성당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저는 여행사에 연락을 했고
중국 취재 일정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정릉성당을 찾아갔습니다.
눈물의 성모님을 만나 이 기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햇살도 따스하게 새해가 시작되고 있던 그날.
다시 찾은 성모님은 울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때에야 알았습니다.
내가 만난 성모님의 눈물은,
눈물이 아닌 매연으로 찌든 서울의 눈이 머리에 얹혔다 녹아 흐르는 것이었습니다.
한수산 요한 크리소스토모 |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