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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잠언 6강
말씀/ 잠언 12:1-13:25절
요절/ 잠언 12:15절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가을수양회가 한 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경민목자가 답사와 메신저와 실무와 기타 잡다함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언터처블했던 경민 형제가 어떻게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는 섬기는 종 경민 목자가 되었는가? 놀라운 기적입니다. 말씀공부의 권고, 동역자의 권고, 때마다 사건을 통해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권고를 듣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령께서 가을 수양회에서 그 비밀을 온전히 보여주시길 기도합니다.
12:1절을 읽겠습니다.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거니와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 훈계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요? 아들이 가끔씩 상체운동을 가르쳐줄 터이니 헬스장으로 오라고 하는데, 저는 단호히 거절합니다. PT비용을 아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도, 아버지의 건강을 챙기려는 갸륵한 마음을 알면서도 거부합니다. 가르쳐주는 대로 따라가려면 굳은 몸이 고통스럽습니다. 몸도 몸이지만, ‘내가 이 나이에’, 굳어있는 마음이 더 문제입니다. 나이만큼 몸과 마음을 굳게 만드는 것이 사회적 지위입니다. 솔로몬 시대 제일 훈계받기 싫어하는 사람은 왕이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이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찾아와서 토목공사로 지친 백성들의 짐을 덜어주어야 한다고 훈계했습니다.(왕상12장) 훈계이지만 실은 간청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단호히 거부합니다. “내 새끼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다.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리라”(왕상12:10,11) 나라가 둘로 쪼개지고 맙니다. 어느 자리에 있든지 훈계 듣기를 좋아해야 합니다. 올바른 훈계에 대해 ‘훈계질’로 낙인찍지 말아야 합니다. 징계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 발전 없이 살아가는 짐승과 다를 바 없습니다. 사울과 다윗이 좋은 예입니다. 사울은 불순종을 회개하라는 사무엘의 훈계를 듣지 않고 불순종을 반복합니다. 반면 다윗은 나단선지자의 뼈아픈 책망을 받아들이고 간음죄를 회개합니다. 압살롬 반역의 고통을 하나님의 징계로 받아들입니다. 그때 재기할 수 있는 지식을 얻었습니다. 처음부터 악인으로 혹은 선인으로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훈계를 받아들여 선인으로 빚어져 여호와의 은총을 받습니다.(2) 반면 징계를 싫어하여 악을 꾀하는 자들은 정죄 받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악을 꾀하는 사람은 굳게 서지 못합니다. 사울은 백성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불순종했는데, 왕국을 무너뜨리는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훈계를 좋아하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뿌리를 가집니다. 어린 왕자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어... 바람이 그들을 데려갔거든, 사람들은 뿌리가 없어 사는 게 힘들거야” 세상 풍조대로 사는 것은 바람에 날아가는 겨와 같이 굳게 서지 못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의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 ‘지아비’라는 단어는 하늘같이 떠받드는 서방님, 조선시대 이미지를 풍깁니다. 당시 사회적 지위가 낮은 여자의 위치를 상징합니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자라도 ‘어질다면’ 그와 함께 하는 자들의 면류관, 자랑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뼈가 썩음 같다’는 말씀은 외모에 속아 문제 많은 삶을 보지 않는다면 평생 고통할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예쁘기만 하면 다 용서가 된다는 남자들은 새겨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물론 스펙이 좋으면 다 용서가 된다는 여자들도 새겨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생각이나 말을 보면, 면류관이 될 사람인지, 뼈가 썩는 고통을 줄 사람인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생각이 정직해야 의인이며, 속이고 꼼수부리면 악인입니다.(5) 상처주는 말을 잘하면 악인, 구원을 주는 말을 하면 의인입니다.(6) 악인은 외모나 스펙이 아무리 좋아도 손절해야 합니다. 악인의 집은 잘되지 못하고 소멸할 것이며, 의인의 집은 든든히 설 것입니다.(7) 8절을 보십시오. 생각과 말이 지혜로우면 칭찬을 받고 마음이 굽은 자는 멸시를 받습니다. 비천히 여김을 받을지라도 종을 부리는 사람, 실속 있는 사람이 스스로 높은 체하고도 음식이 핍절한 사람, 겉만 번지르르한 사람보다 낫습니다.(9) 자기 가축의 생명을 돌보는 사람, 심정 있는 사람이 의인입니다.(10) 창세기에 나오는 리브가를 떠올리게 합니다. 리브가는 나그네 뿐만 아니라 그의 낙타까지 물을 먹였습니다. 반면 입으로는 긍휼을 말하는데 실제 행동은 잔인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니까 너 잡아먹지 않고 살려둔거야, 고마운 줄 알아!’, 겨우 죽지 않을 만큼 먹이면서 선심 쓰듯 말하지만, 잔인합니다. 우리 청년들이 어떤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해야 하는지, 가이드가 될 수 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자기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지만, 방탕한 것을 따르는 자는 미련한 자입니다. 자기 토지를 경작한다는 것은 정직한 노동을 상징합니다. 방탕한 것은 한탕으로 크게 벌어들이려는 시도를 말합니다. 도박 혹은 주식이나 부동산의 투기성 거래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불의의 이익을 탐하지 말아야 합니다.(12) 식물이 뿌리에서 양분을 끌어올려 열매 맺듯이, 직장에 뿌리 내려 열매를 거두어야 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할 말 못할 말 거침없이 내뱉어 환난을 자초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는 담대한 사람이 아니라 미련한 자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은혜롭고 지혜로운 말로 복을 받아야 합니다.(14) 그것은 방구석에 틀어박혀 연습한다고 되지 않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부지런히 손을 움직여 자기 십자가를 짐으로 준비됩니다.
1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미련한 사람은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한권만 읽는 사람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권만 읽고 자기 확신에 사로잡혀 다른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만 옳다는 생각이 불통을 가져오고 발전을 가로막는 미련에 빠뜨립니다. 미련함은 지능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학력 좋은 사람에게서 자주 발견합니다. 복음서를 보더라도, 예수님의 권고를 끝까지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은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한국 정치의 위기도 여기에 있습니다. 대통령이 한시간 참모회의를 하면 50분 이상을 혼자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참모들이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불같이 화를 낸다고 합니다. 정치, 외교, 경제, 사회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니까 점점 악수를 두고 지지율은 추락합니다. 서울대 법대 졸업하고 젊은 날부터 영감님 소리 들으며 엘리트코스가 밟은 인생여정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아무도 터치할 수 없는 대통령의 자리는 그런 자세에 더욱 기름을 부었을 것입니다. 제가 대통령 한 사람 혹은 서울대 출신을 까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머리 좋은 대통령도 그런 오류에 빠지는데, 보통 사람은 얼마나 쉽게 자기 오류에 빠지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번 가진 확증편향을 고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니 고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권고를 듣고 배우고 분별하여 발전합니다.
미련함을 드러내는 증상이 있는데, ‘당장 분노’입니다.(16) 16절입니다. 상대방의 말에 즉각 분노한다면, 혹시 내 마음이 미련해진 것은 아닌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치욕으로 들리는 말이라도 참고 들을 줄 알아야 슬기로운 사람입니다. 이는 무슨 말이든지 다 받아들이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진리인지, 거짓인지 분별해야 합니다.(17) 칼로 찌르는 것처럼 함부로 말하는 자들을 조심해야 합니다.(18) 지혜로운 사람은 양약처럼 도움 되는 말을 합니다. 그것은 사탕발림같은 말도 아니요 욥의 세 친구처럼 이론적인 말도 아닙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진실한 말은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합니다. 반면 거짓된 말의 효력은 잠시로 끝나고 맙니다. 거짓된 말은 단지 팩트가 틀린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천사의 말이라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고 했습니다. 명품으로 알고 뜯었는데, 포장지만 화려한 빈박스만 있는 것입니다. 자기 유익만을 위해 교묘히 편집하는 것도 거짓입니다. 화평을 담아야 희락을 줍니다.(20) 말하는 사람도 기쁘고 듣는 사람도 기쁘게 합니다. 그런 말을 하는 자는 어떤 재앙도 임하지 않지만, 속이는 말을 하는 자들은 앙화가 가득합니다.(21)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한 입은 여호와의 기뻐하심을 받습니다.(22)
23절을 보십시오. 슬기로운 사람은 많은 것을 알고 있어도 자기 지식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처럼, 지식이 많을수록 겸손합니다. 반면 미련한 사람은 알량한 지식으로 동네방네 떠들다가 자기 미련함을 드러냅니다.(23) 24절을 보십시오. 입이 아닌 손이 부지런해야 리더의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24) 입만 살아있고 손이 게으른 자는 절대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하게 되나 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 근심이 마음을 차지하면 번뇌를 주는 말을 쏟아냅니다. 즐거움과 감사를 주는 선한 말을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있으면서도 빌립보 교회에게 기쁨의 말을 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이는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었기 때문입니다.(빌4:6,7) 근심거리, 걱정거리 없이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근심보다 감사를 담아 부지런히 입을 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켜줍니다. 이웃을 인도할 스피릿을 얻습니다.(26) 27절을 보십시오. 부지런히 근심 대신 선한 생각을 담고 부지런히 선한 말을 하기에 힘써야 합니다.(27)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코메디 프로가 있었는데, 선한 말을 하면 복이 옵니다. 그 길에 생명이 있고 사망이 없습니다.(28) 우리 각 사람이 그 길을 가기를 기도합니다.
13장 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 12장1절과 비슷하지요? 굳이 비교하자면 12장은 훈계의 유익, 13장은 훈계받는 자세에 좀 더 집중합니다. 사람은 입의 열매로 좋은 것을 받기도 하고 마음에 품은 궤사로 강포한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2) 층간소음으로 심한 말을 했는데 칼부림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사기를 쳤는데 폭력으로 응징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입을 지켜야합니다. 3절입니다. “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을 실수 정도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생명이냐, 멸망이냐, 생사가 걸린 문제처럼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입술을 크게 벌리는 것은 이 말, 저 말, 아무 말이나 내뱉는 것입니다. 몇 년 전 UBF 홍보포스터 ‘아무 말 대잔치’가 의미하는 것과 다릅니다. ‘아무 말 대잔치’는 ‘어떤 질문이라도 할 수 있다. 진솔하고 자유로운 성경공부’를 의미합니다. 본문에서의 ‘아무 말’은 기분 내키는 대로 뱉는 말입니다. 상대방에게, 공동체에게 어떻게 전달될까?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말은 의심이 심고 신뢰를 깨뜨리고 심지어 어떤 말은 상처를 남깁니다. 말로 인해 분열과 다툼이 시작되고 돌이킬 수 없는 원수로 갈라서는 모습들도 종종 봅니다. 입에 보초를 세우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혈기가 끓어오를 때에는 일정 기간 침묵 훈련 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면 화가 가라앉고 이전에 몰랐던 자기발견을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기도하기에 힘쓰는 것입니다. 다윗은 간구했습니다.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141:3), 성령 충만할 때 감정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게으른 자는 입술을 지킬 수 없습니다.(4) 한 두번 시도해보고 포기합니다. 부지런히 노력하면 언어습관이 달라지고 열매를 거둡니다. 거짓말을 미워하는 사람이 의인입니다.(5) 유익이 된다면 거짓말이라도 괜찮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언젠가는 부끄러움으로 되돌려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행실이 정직한 자를 보호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을 패망케 하는 것입니다.(6) 7절을 보십시오. “스스로 부한 체하여도 아무 것도 없는 자가 있고 스스로 가난한 체하여도 재물이 많은 자가 있느니라” 여기에서는 누가 의인이며 누가 악인인가?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요! 외모에 속지 말자? 열등감을 숨기려고 명품을 걸치고 부자인척 한다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반면 재물이 많은데도 없는 사람 코스프레하며 구두쇠로 사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비판적인 메시지로 해석하면 그렇습니다. 긍정하는 메시지로 들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 것 없더라도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산다면, 재물이 많아도 아무 것도 없는 자처럼 겸손히 산다면 좋다는 것입니다. 보여주기 위해 혹은 물질을 의지하는 마음이라면, 경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4:12) 재물이 생명을 구하는 속전이 될 때가 있습니다.(8) 돈으로 불치병을 고칠 수 있고 누군가에게 평생의 은인으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역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재물이 많기에 협박당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핏줄을 나눈 형제와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재물 자체가 행복이라는 거짓 환상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가난하든지 부하든지 의인으로 살아야 빛을 봅니다.(9) 악인이 많은 재물을 가진 것은 불 꺼진 커다란 집에 사는 것과 같습니다. 부가 주는 교만에 빠지면 다툼이 일어납니다.(10) 성공할수록 겸손히 권면을 들어야 합니다.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쉽게 사라지지만, 수고롭게 일하여 쌓은 부는 그 사람을 점점 성장하게 합니다.(11)
1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생명나무니라” 소망을 속히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많은 청년들이 내 집 마련을 소망하지만, 그림의 떡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심하면 죽음같은 절망의 골짜기에 빠뜨립니다. 소원이 이루어져야 생명나무 같은 활력을 얻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소원을 이루면, 다음 소망을 향해 전진할 수 있는 열정을 얻습니다. 좀 더 강한 의지가 생기고 이전보다 단단한 인내심도 생깁니다. 현실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도 이와 같은데, 하나님 나라의 소망이 이루어지면 어떠하겠습니까! 한 영혼을 구원하는 목자의 소망이 이루어지면, 심정이 새로워지고 열정에 불이 붙습니다. 소망이 이루어지려면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멸시하면 위기를 넘어서지 못하고, 계명을 경외해야 아브라함처럼 상을 받습니다.(13) 지혜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 샘이 되어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합니다.(14) 선한 지혜는 은혜를 얻고 사악한 자의 가르침은 험한 길로 끌고갑니다.(15) 슬기로운 사람은 배운 지식대로 행하지만, 미련한 자는 아무리 가르쳐주어도 배운대로 하지 않아 그 자리를 반복할 뿐입니다.
1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악한 사자는 재앙에 빠져도 충성된 사신은 양약이 되느니라” 사자, 사신은 전달자입니다.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재앙에 빠지게 하기도 하고 양약이 되기도 합니다. 악한 사자는 말을 옮기면서 다툼과 분열을 일으킵니다. 충성된 사신은 사람 사이의 오해를 풀고 관계성을 회복시켜 줍니다. 악한 사자는 들은 그대로 전하지 않고 자기나름대로 편집하여 전했다가 궁핍과 수욕에 이릅니다. 경계 받은 그대로 전하는 자는 존귀와 영광을 받습니다.(18) 보냄 받은 자가 보낸 자의 소원을 성취하면 달콤한 즐거움을 누립니다. 그렇지 않은 사자는 궁핍과 수욕에 빠집니다.(19) ‘자꾸 실패하다보면 깨닫는 것이 있겠지?’, 이는 지혜로운 사자에게만 적용되는 말입니다. 미련한 사자는 실패를 반복할지라도 발전함이 없습니다.
20절입니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누구와 동행하며 누구와 사귀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맹모삼천지교’라는 고사성어가 그러합니다.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지혜로운 자는 성적이 좋은 자가 아니라 인격이 올바른 자입니다. 많은 이들이 강남으로 이사하는 것을 교육의 지혜처럼 여기는데, 강남에 살아도 악한 자와 사귀면 재앙입니다.(21) 의인과 함께 해야 선한 보응이 따라옵니다. 신앙 공동체, 의로운 공동체가 중요합니다. 신앙의 세계에 적용한다면, 예수님과의 동행 - 구원의 은혜와 부르심 그리고 사명과 내적 성숙을 붙들고 부단히 예수님을 알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인의 산업은 자자손손에 영향을 끼치지만, 죄인의 재물은 타인을 위한 수고로 끝나고 맙니다.
23절을 보십시오. 가난한 사람이 열심히 밭을 일굴지라도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면 모든 가산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전세사기가 그러합니다.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개인의 노력과 함께 공정 사회를 구축해야 합니다. 구약시대 안식년이나 희년 제도를 말씀하신 목적도 그러합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자식을 사랑할지라도 매를 아끼면 안됩니다. 이는 가정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말씀이 아닙니다. 방식에 대해서는 시대마다 고민해야겠지만, 자녀가 악을 행하면 반드시 징계해야 합니다. 의인의 길을 가면 풍성함을 맛보고, 악인의 길을 가면 주린 영혼으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25) 의인의 길을 가며 그 길에 숨어있는 비밀을 풍성히 체험하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