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래(傳來) 우리 전통 거주문화에 규모 있는 집들은 마당이 넓었다. 안채에 딸린 안마당과 바깥마당이 있었고 대문과 중문 사이에 오래뜰이 있는 집도 있었다. 음습함을 몰아내고 따뜻한 햇살을 받아들이기 위해 한옥은 대부분 남쪽을 향하고 자리를 잡았다. 마당도 마찬가지로 북쪽은 막히고 남쪽은 트였다. 마당 넓은 집은 약간 허우룩해 보이나 여유가 느껴진다. 여유란 품는 것이며 받아들이는 것이다. 동(東)으로 햇살이 들어왔다 서(西)로 지나가도 막힘이 없었던 넉넉한 마당은 배려와 소통의 공간이었다. 동서남북이 아니라 다가서고 곁에 선 모든 것들을 품었다. 마당 한 곁 햇살이 건너는 길을 따라 송아지 멀뚱멀뚱 해바라기했다. 모이를 찾는 암탉은 병아리를 누군가 건드리면 어쩌나 조바심치며 그곳을 헤집었다. 이른 봄에 태어난 새끼 염소는 머리를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고샅길과 마당을 구분 짓는 돌담 위에서 재주를 부렸다.
조그만 화단이 있고 몇 그루 나무가 서있는 넓은 마당은 딱히 주인이 없었다. 계절에 따라 가지는 이가 임자였다. 사람과 동물 그리고 자연이 제대로 어울려 살아 숨 쉬는 곳이었다. 마당 한 곁 감꽃이 오종종 벙글기 시작하면 봄이 무르익는다. 감꽃이 한바탕 피고 진 뒤에는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성한 잎들이 한여름 햇살을 탐했다. 땀을 들이듯 청아했던 뻐꾸기 울음소리도 산들이 진초록으로 짙어지면 하루아침에 뚝 그쳤다. 마당에서 사람은 웃었고 자연은 울었다. 는개라도 뿌릴 듯 잠포록한 날이면 속이 텅 빈 감나무에서 청개구리 유난스레 울었다. 마당 가서 우는 청개구리는 누나가 데려다 놓은 줄 알았다.
자연은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게 가까이 다가왔다가 어느 순간 멀어진다. 인간의 시간은 유한하나 자연의 시간은 무한하다. 잴 수 있는 시간과 그렇지 않은 시간이 혼재한다. 마당은 시간이 지나가는 곳이고 스스로 자연을 만드는 장소다. 새싹이 올라오고 꽃이 피는 시간을 재기는 쉽지 않다. 자연의 시간은 신호가 아니라 그림이다. 신호는 계량적이나 그림은 정성적이다. 몇 개 정도 잘 그린 것이 아니라 따뜻하고 편안한 그림이다 만으로 평해도 충분하다. 셈법에 의한 이해와 느낌법에 의한 해석은 수준과 수명이 다르다. 비록 사람이 만든 공간이지만 마당에는 자연의 시간이 흐른다. 인간이 알지 못하는 뭇 생명을 키워내면서 우리도 그 속에서 자연이 베푸는 여유를 즐긴다.
마당은 쓰임새가 많았다. 웬만한 집안 잔치도 차일을 치고 조촐하게 치렀으며 봄에는 두엄을 준비하는 거름 터로 가을에는 타작마당으로 쓰였다. 여름에는 우묵장성으로 풀이 자라 두꺼비나 뱀도 지나갔지만 못치기 구슬치기에 그만이었다. 겨울에는 장작 지저깨비에 닭들이 목욕을 하느라 소란을 떨었다. 눈이라도 내려 쌓이면 양지바른 곳에는 배고픈 참새들이 날아들었다. 한 해넘이도 못 해본 하릅강아지는 장작불 위 익어가는 생선 냄새에 푼수 없이 흥뚱항뚱 댔다. 부엌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고양이라도 지나가면 강아지는 득달같이 달려왔다. 딴에는 밥값이라도 하려는지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힘들게 살아온 사람들의 황혼 길은 회한이 깊다. 자연으로 돌아가 더 이상 다툼 없이 살고 싶은 소망이 있다. 고향 집 마루에 앉았다. 산곡으로부터 밀려와 온 마을을 씻어갈 듯 내리는 횃대비가 마당을 씻는다. 돌담의 과묵함과 여린 나뭇잎들의 생존본능이 어떻게 어울리는지가 보인다. 서로가 거기에 있음을 인정하고 고마워한다. 성근 돌담은 거센 흙탕물을 막아선다. 복닥거리는 도심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뜰을 가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거대한 시멘트 옹벽은 많은 것들을 밀어낸다. 철옹성이다. 도저히 마음이 섞이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이 눈빛으로 만나고 계절에 따라 변함없이 찾아오는 자연이 공간을 채우는 즐거움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당은 구분이 아니라 품음이다. 한쪽으로는 자연을 품고 또 다른 쪽은 집과 사람을 품는다. 비움과 채움이 공존한다. 경계가 없는 자연이나 사람은 너그럽다 마당 넓은 집에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좁은 길에서도 서로에게 선한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못하는 것 같다. 어떤 침입도 용납하지 않는 철골 시멘트 구조물 세대가 주류인 지금이다. 오로지 자신과 가족만의 넓은 공간 확보에 혈안이다. 높이 솟는 평수 큰 아파트일수록 자연과 멀어진다. 고립되고 단절된 그들만의 세상을 만든다. 넓은 광장에 나와도 좀처럼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분노의 얼굴로 삿대질만 열심이다. 자연을 품지 못하고 이웃을 배척한다면 모든 것은 위험이요 적이 되고 만다. 피곤하고 의미 없는 삶이다.
바야흐로 봄이다. 지금 바로 마당 넓은 집으로 이사해야 한다. 바깥마당 가장자리 대문을 열고 뚝새풀이 자라고 민들레 꽃이 벙그는 햇살을 받아들여야 한다. 오래뜰을 지나 안마당까지 봄볕이 숨을 쉬면 좀 좋을까. 하루아침에 이사가 어려울 것이다. 봄은 쉬이 지나간다. 지구환경 변화로 봄이 왔다 가는지도 모를 수 있다. 봄에 꽃을 피우지 않으면 가을에 열매는 없다. 길에서 광장에서 서로에게 손가락질하는 사이에 봄은 그냥 간다. 지금이라도 마음속에 마당을 만들고 미운 사람도 싫은 이웃도 받아들여야 한다. 비워야 채워진다는 동양적 사고의 시원도 우리 선조들이 즐겼던 마당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아무리 작고 가난한 마을도 공동으로 관리하는 작은 마당이 있었다. 여유와 배려가 그곳에 있었다. 그 작은 마당에서 타작도 하고 놀이도 하며 즐겼다. 동네 마당은 찾아드는 놀이꾼도 장사치에게도 나눔과 배려였다. 하룻밤 터 잡아 밤을 밝혀도 뭐라 하지 않았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리워지는 것 중의 하나가 밤마다 별이 내려앉고 아침마다 산과 구름이 다가드는 마당이다. 도시의 삶이다 보니 심상한 산책길을 매일 바장일 뿐이다. 큰 마당을 찾아 도심으로 나가면 울분에 찬 고성과 저주의 단어들이 나부낀다. 시르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걷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온다. 어디에도 봄이 없다. 하지만 이제는 그냥 이렇게 봄을 맞고 보내기에 너무 시간이 없다. 나이에 걸맞은 내려놓음과 버림의 여유로 마음 마당이라도 만들어야겠다. 삶의 목마름을 풀 수 있는 방법은 마당의 이름 모를 작은 풀, 수수한 꽃들을 만나 눈을 맞추는 것이다. 봄 마당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곳이자 자연과의 어울림 장소다. 아파트 화단에도 봄 보따리가 펼쳐진다. 산수유 노란 꽃봉오리가 봄 햇살을 붙든다. 오솔길 벽돌 틈에는 봄까치꽃이며 꽃다지가 고개를 내민다.
마당이 없다고 그들이 만드는 봄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다. 내 편 네 편 가리지 않는 넓은 탄문(炭文) 마당에서 나른한 봄꿈을 꾼다. 일장춘몽(一場春夢)이 아니라 봄 마당 사는 이들에게 만복(萬福)이 깃들기를 꿈꾼다. 건강하고 해바른 마당에 쓰레기가 쌓일 일은 없다.
첫댓글와우 아프고 답답했던 마음을 한방에 치료해주셨습니다. 이선생님...//마음속에 마당을 만들고 미운 사람도 싫은 이웃도 받아들여야 한다. 이 한마디에 황사도 미세먼지도 다 날아가 버렸습니다. / 저는 수필 80여꼭지를 썼지만, 에고 부끄럽습니다. 많이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요즘 선생님의 수필을 하나하나 찾아 읽고 있는 무늬만 탄천문학 회원인 명종숙 입니다 선생님의 팬이 되었습니다^^ 수필 한 권 세상에 내놓는게 제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 이기도 합니다 선생님의 글을 통해 많이 배웁니다 부족한 제 글 한편 공유합니다 https://youtu.be/k6H3yirErR8?si=K7gxc1OjEWL__Za0
첫댓글 와우 아프고 답답했던 마음을 한방에 치료해주셨습니다. 이선생님...//마음속에 마당을 만들고 미운 사람도 싫은 이웃도 받아들여야 한다. 이 한마디에 황사도 미세먼지도 다 날아가 버렸습니다. / 저는 수필 80여꼭지를 썼지만, 에고 부끄럽습니다. 많이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오선생님
혹시 한국시치료연구소가 있다는 말 들어보셨나요?
시치료사 과정을 개설해 운영한 적이 있더군요.
한번 도전해보시지요.
감정 하나 상하게 하거나 심지어 건드리지 않고
감동을 선사하는 사람이 시치료사~~!!
봄 마당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발로 밟고 그리고 마음으로 그리는 그리움의 세상이다... 율동공원 호수가 울엄마 치맛자락 끄는 소리처럼 들리면 봄이다. 눈물 부풀어 개나리 진달래 벚꽃... 다투어 피는 마당 넓은 봄...//감사합니다.
저의 졸작에 시 한편을 올리셨군요.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요즘 선생님의 수필을 하나하나 찾아 읽고 있는 무늬만 탄천문학 회원인 명종숙 입니다
선생님의 팬이 되었습니다^^
수필 한 권 세상에 내놓는게 제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 이기도 합니다
선생님의 글을 통해 많이 배웁니다
부족한 제 글 한편 공유합니다
https://youtu.be/k6H3yirErR8?si=K7gxc1OjEWL__Za0
PLAY
선생님이 올리신 유투브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소설가시군요.
감동적이었습니다.
혹 선생님이 실제로 통역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미국 체류시
경험을 소재로 쓴 실화 바탕 소설인가요?
선생님의 버킷리스트
수필집 탄생을 응원합니다!!!!
@이덕대 아ᆢ 다른분과 착각하신것 같습니다^^
저 글은 소설이 아닌 실제 제 이야기를 수필로 담아봤습니다
@명 종숙 별에서 온 편지
유나와 엄마 이야기군요.
별이 된 엄마를 대신해 편지와 선물을 보낸
가슴 뭉클한 이야기가 선생님의 글이었네요.
봉사하면서 실 경험을 바탕으로 쓰신 아름다운 글
이모가 되셨군요.
벚꽃이 화사한 날 유나를 만나셨는지......
유나의 천진한 여정에 지금도 발걸음 같이 하시겠네요.
진정 감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