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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집에서 그 호흡관찰을 한번 해보셨습니까? 좀 되시던가요?
그 호흡관찰은 이제 잘 되고 잘 안되는 게 없습니다.
특별히 이 방법이라고 정해진 방법이 있어서 그 방법대로 잘 되야지만 잘 되거나, 그런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아마 해보신 분들이 나는 왜 이렇게 안되지?
하는 어떤 생각들을 많이 가지신 분들이 아마 계시지 않을까 싶은데
예를 들어 잡념이 많이 올라오고 생각이 많이 올라와서 호흡을 관찰하다가도
자꾸 다른 생각으로 자꾸 마음이 옮겨간다. 라고 했을 때
그것을 아주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우리는 착각하기 싶거든요.
나는 명상에는 소질이 없나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또는 이게 막 나중에는 막 비참해 지기도 하구요.
난 왜 이모양 이꼴인가? 하고 싶은 생각이 들고
나중에는 막 화가 날 정도로 제가 경험해봐서 아는데, 나중에 화까지 날 정도입니다.
도대체 이놈의 생각이라는 것은 왜 이렇게 끝까지 끝까지
올라와서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는 것일까?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잦아들지 않고 끝까지 그냥 기를 쓰고 올라오는 게
생각과 잡념과 망상들이예요.
그런데 이 명상의 목적은 이 생각과 잡념들을 없애는 데 있지 않습니다.
이걸 효과적으로 없앴을 때 명상이 성공한 것이 아니다.
이 보통 명상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생각과 망상이 안 일어나면 아 오늘은 잘했구나
일어나면 내가 실패했구나 젔구나.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이 명상의 본래의 어떤 모습이 아니다.
뭐냐하면? 생각이 일어났을 때 생각이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문제 삼지 않는 것이 명상입니다. 단지 바라보는 것,
하늘에 하늘이 맑고 화창한 날도 있고 구름이 없는 날도 있지만 구름이 있는 날도 있어요.
구름이 있는 날은 그걸 보고 구름을 향해서 욕을 하지 안잖습니까?
그냥 아 구름이 떠가고 있구나 하고 보고 보고...
또 구름 한점 없는 날은 구름 한점 없이 맑고 화창하구나 하고 볼 뿐이지.
그걸 가지고 우리가 시비 걸거나 욕하지 않듯이,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이라는 어떤 허공에 떠있는
하늘에 떠있는 생각이라는 것이 하나의 구름과 같다. 라고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면 그냥 바라보게 되는 것이지, 그걸 가지고 잘됐느니, 잘못됐느니,
내가 수행이 소질이 있느니 없느니 하고 시비를 걸 필요가 없게 될겁니다.
그래서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이 아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실패가 아니다.
그것을 하나의 어떤 객관적인 하나의 사건으로 어떤 마음의 사건으로 생각을 떨어뜨려놓고
그것이 일어났구나 라고 보는 것, 그것이 이제 공부인 것이지.
그것을 가지고 시비를 거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 아니다 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아셔야 됩니다.
또 혹시 하시면서 뭐 이거 궁금하신거.
꼭 묻고 싶었던 것이 있으시면 지금 한번 물어보셔도 좋습니다.
이 부분이 좀 잘 안된다거나,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라는 거 혹시 있으시면
.... 아이구 뭐 다들~ (하하하) 워낙 놀랍게(하하하) 잘하고 계시지 않을텐데~ 하하하
네 먼저 그러면 잠시 잠시 호흡을 먼저 한번 관찰을 하고
그러고 나서 잠시 잠깐 다시 이야기를 좀 더 하겠습니다.
제가 자세를 몇번 말씀을 드렸지만 자세가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몸이 바르게 앉게 되면 바른 자세가 나오면 정신이 저절로 몸에 따라가져요.
그래서 몸에 이렇게 누워가지고 기우뚱하게 있으면 정신이 이렇게 흐트져질 수 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바로 하시되, 엉덩이를 살짝 높이시면 훨씬 더 좋을실거예요. 보통은
그래서 오른발을 왼발 허벅지 밑으로 넣고 왼발을 허벅지 위로 올려서
반가부좌를 하거나 혹은 그 반대가 편하면 그 반대로 하거나
아니면 왼발 오른발 전부를 상대편 허벅지 위로 올려서 결가부좌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고
혹은 한쪽발을 허벅지 위로 올리고 밑에 있는 발을 허벅지 밑으로 내리지 않고
앞으로 요렇게 조금 빼놔서 평좌처럼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습니다.
이 자세에서 허리를 곧게 펴고 손은 왼손 밑으로 오른손 위로 해서
배꼽밑에 편안하게 내려놓으셔도 좋고 이게 좀 불편하신 분은
손바닥을 위로 해서 이 무릎위로 살짝 가볍게 올려놓으셔도 괜찮습니다.
이 자세를 취하신 다음에 허리를 펴고 턱을 살짝 잡아 당기고 눈을 반쯤 감은 다음에
먼저 바로 호흡을 바라보기 보다 바디스캔 명상을 했던 것처럼
발끝에서부터 머리 끝까지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오면서
천천히 내 몸을 한번 조금 빠른 속도로 전에 했던 것보다는 좀 빠른 속도로 몸을 한번 관찰하시고
그러고 나서 코앞에 호흡으로 돌아가서 호흡을 관찰해 보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탁, 탁, 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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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탁, 탁.
어떻습니까?
그 호흡에 의식이 좀 모아지는가요?
아니면 자꾸 딴 생각을 하게 되고 분산이 됩니까?
주로 어떤 생각이 일어납니까?
온갖 생각들이 들로 자꾸 마음이 가죠? 그죠?
한 어느 정도가 여기에 좀 있던가요?
몸이 지금 여기 이자리에 있는데 마음은 지금 이 시공을 떠나서
다른 시간이나 다른 공간으로 옮겨가거든요.
그런데 어느 정도가 유지 되기도 하고 아마 자주 자주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또 이리저리로 떠돌다가 아 내가 지금 잡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고
다시 호흡으로 오는 경우의 그 빈도수를 조금 더 늘려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이제 호흡을 관찰하는데 이렇게 관찰하게 됐을 때
지금 여러분들 하신 것처럼 생각들이 온갖 생각들이 일어나서 잘 안됩니다.
잘 안되고 또 때로는 내가 잡념을 망상을 한지 조차 모르고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정신차려 보니까 망상을 피우고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아주 미세한 생각들 아주 스쳐가는 생각들이 이렇게 오고 가기도 하고
혹은 아예 그 생각속에 아주 자리 틀고 앉아서 그 속에 뛰어 노는 경우들도 있는데요.
이렇게 제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잡념이 생겼을 때 잡념이 생겼구나하고 알아차리고
다시 호흡으로 돌아오는 이 연습을 이제 좀 오래동안 좀 하셔야됩니다.
그 연습을 하기 위해서 수식관이라고 해서 숫자를 세면서 호흡에 숫자를 붙이면서
그 호흡을 관찰하는 방법을 많이 씁니다.
그것을 쓰게 되었을 때 호흡 들숨과 날숨 한번 쉬고나서 숫자를 하나 붙이고
그 다음에 계속 숫자를 붙여 가다 보니까, 선명해지는 것이죠.
아 내가 호흡을 한번 슀을 때 숫자가 세어지고 어떻게 하냐면?
보통 1부터 올라가면서 쉬기도 할 수 있지만
처음에 시작하겠다 해놓고 나서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쉰 다음에 숫자를 100하고 붙입니다.
거꾸로 100에서부터 1방향으로 내려오는 거예요.
100이라고 붙이고 두번째 숨을 들숨을 쉬고 날숨을 쉰 다음에 99하고 숫자를 붙이는 겁니다.
그다음에 98 97 요렇게 내려오는 거예요.
그러는 와중에 예를 들어 97쯤 했는데 갑자기 딴 생각이 들어왔다.
그러면 그 다음 숨을 쉈는데 어 이게 95였나 96이였나 햇갈려요. 까먹습니다.
그러면서 아 생각이 들어왔구나를 보는 거죠.
생각이 들어왔구나를 보면 그러면 대충 95하자 하고 내려가면 안되고 이게 제일 중요한겁니다.
이 수식관 명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이 들어왔다라는 것은
벌써 숫자를 얼추 까먹는다는 거예요.
숫자를 까먹는다 싶으면 그래서 숫자를 계속 붙이다 보니까.
숫자를 붙이는 그 순간에는 의식이 딱 깨어 있어야지만 숫자를 붙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숫자를 까먹거나 이럴 때는 아 분명히 잡념이 생겼구나
집중이 안되고 있구나 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숫자가 애매할 때 혹은 생각이 들어왔을 때는 바로 다시 100으로 돌아갑니다.
반드시 100으로 반드시 돌아가야 되는 것이 관건입니다.
아마도 아마도 제가 이것을 젊은 친구들 하고 해봤더니
심지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몇가지 가지더라? 1까지 가는 사람 손들어라 했더니
아무도 손을 안드는데 지금 1까지 얘기 하지 마시구요.
20까지 간 사람, 30까지 간 사람 했더니, 그런 거 얘기하지 마시고
95를 넘은 사람을 물어봐 달라고...
이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가 뭐냐면?
97에서 95를 못오겠는 친구들도 의외로 처음에 많아요.
95까지 오기가 힘들다라는 것을 보고 너무 좌절했다고 절망했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이 90을 못내려오는데 80자를 좀 들어갔으면 좋겠는데
80자를 못가고 90자에서만 계속 왔다 갔다 하는게
한번 두번 세번 네번 다섯번 열번 반복되는 것을 보고서는
나는 정말 수행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구나.
나중에 화가 난다는 거예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하면서
여러분 지금 생각했을 때는 코방귀를 끼면서 웃으실 겁니다.
아이 젊은 아이들이라 잘안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실텐데.
그 여러분 자신을 속이면 절대 안됩니다.(하하하)
이거 나도 모르게 나자신을 속이게 되요. 이거 누구랑 경쟁할 것도 아니고,
누구한테 얘기할 것도 아닌데, 내가 뭐 80까지 왔는지, 70까지 왔는지를 누구한테
물어볼 것도 아닌데, 내자신이 나자신을 자꾸 속이게 되요.
그러니까 요정도 미세한 거는 좀 봐줘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이거 내가 애매하면 그냥 넘어가는 거예요. 그러면 안된다.
조금이라도 애매하면 무조건 100으로 돌아와야 됩니다.
이게 이제 우리의 수행이다.
왜냐하면 조금 애매할 때 내가 이게 94인가 93인가 애매할 때
에라 모르겠다하고 93을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냐면은?
나는 숫자를 더 밑으로 끌어 내려야 된다. 더 오래동안 이 숫자를 붙잡고 있어야 된다.
이것이 성공이다라는 착각이 있어서 그래요. 그것이 성공이 아닙니다.
여러분들 80 70 60까지 내려가는 것이 성공이 아니다.
계속해서 90속을 맴도는 것이 성공입니다.
왜냐하면 한 10분을 앉아 있었는데 계속 94 95 97에서 계속 왔다 갔다 했다.
그 말은 그만큼 많이 들여다 봤다는 소리예요.
내 마음의 구조를 그만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소리입니다.
내 마음속에 이렇게 엄청난 번뇌 망상이 드끓고 있구나라는 것을 비로소 보기 시작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90을 못넘기고 계속 돌아가게 될때 계속 100만 하게 될때
그때에 충격 받을 것이 아니라, 아 내가 정말 공부가 되고 있구나.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번뇌 망상이 많은 줄은 모르고 있었는데,
분명히 여러분 마음속에 90밑으로 못 내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좀 충격을 받거나,
왜 이렇게 되지라는 분별심이 일어나요. 첫째는,
또 한가지 분별심이 뭐냐하면? 어 스님 말하고 다른데
아 나는 번뇌 망상 하나도 없이 계속 쭉쭉쭉 내려가서 나는 막 70 60까지 내려가는데
너무 잘 되는데 하고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 생각이 듬과 동시에 100으로 가야 됩니다.(하하하)
나는 좀 되는데 하고 느낄 때 분명히 여러분이 아마 90밑으로 떨어질 때 쯤 되면
나는 80갔다. 이 한생각 일어난다 말이예요.
그 생각이 일어날 때 바로 100으로 아주 냉정하게 바로 그냥 돌아가야 됩니다.
그렇게 그와같이 이제 자꾸 미세한 생각들 조차 보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렇게 스쳐지나 가는 생각 어 80갔구나.
이 정도의 생각 정도는 우리가 미쳐 감지 하지 못하는 생각이였는데,
이제 숫자를 붙이면서 관찰하다 보면 호흡이 훨씬 더 잘 관찰이 되고 선명하게 지켜봐 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거 뭐 경쟁하듯이 내가 1까지 내려가는 게 목적이 아니다라는 것을 분명히 아신 다음에
이번에는 숫자를 세면서 100부터 거꾸로 내려오면서 숫자를 세면서 한번 이렇게 해볼테니까,
내가 이렇게 숫자를 붙여가면서 호흡을 관찰하는 것이 어느정도 되는지를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호흡에 이렇게 집중을 하고 있다보면 평소에는 넘어갈 수 있었던 것들이
여러분 침 꼴각하는 소리가 엄청크게 들리고 배에서 때로는 예를들어
이런 저런 소리가 들리거나 혹은 갑자기 소화가 더 되는 느낌이 들 수도 있고
뭐 온갖 다양한 것들이 들리고 있고 할텐데 또는 좀전에처럼 진동소리가 들리 수도 있는데
그걸 가지고 인상을 쓸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수행하는 시간에만 수행하기 위해서 절에 오신 게 아니라,
여기서 연습을 해서 실전에서 써먹을려고 하는 거잖아요?
실전은 어떤 곳이냐 하면? 여러분 삶이라는 실전은 끊임없이 전화벨도 울리고
TV소리도 들리고, 자식의 소리, 남편이 화내는 소리, 옆집 사람 소리, 온갖 소리들이
울리는 곳이 우리가 사는 실전이거든요.
그런데 명상하고 있는데 전화벨 소리가 울리거나 진동이 울린다고
아이 저 보살님은 전화도 안 꺼놓고 하면서 화나는 마음이 일어난다든가
또는 저것 좀 꺼놓지 하는 마음이 일어난다면 그 마음조차 내가 지켜볼 대상이지
그래서 아 이 전화벨 하나에 내가 화가 이렇게 일어나고 있구나. 하는 걸 지켜봐야 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전화벨 소리가 나도 저렇게까지 화내지는 않는데,
나는 왜 이렇게 화를 낼까? 그건 뭘 의미하냐면?
그 작은 것도 내가 허용해 주지 못할 만큼 마음이 지금 닫혀 있구나.
이렇게 내 마음속에는 이 작은 것을 허용하지 못할만큼 이렇게 화가 일어나고 있구나.
그것이 내가 마음을 드려다 볼 수 있는 공부가 됩니다.
그래서 카메라가 찍히는 소리, 전화벨이 울리는 소리, 바람이 부는 소리
옆사람 침 꼴깍 넘어가는 소리, 온갖 소리들이 들리고 방해가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공부하게 만드는 소리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다같이 호흡을 관찰하고 있는데, 전화벨 소리가 울렸어요.
그럼 아마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다시 100을 세야됩니다.(하하하)
어김없이 100으로 다시 올라가야 됩니다.
그래서 거기 인제 마음이 잠시 들릴 뿐 하고 알아차려주고 다시 호흡으로 돌아오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 모든 어떤 경계들이 들렸을 때 그것이 하나 공부 재료구나 라고 생각하고
제일 중요한 거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왜 이러지? 하고 묻지 말란 말이예요.
왜 이러지 라고 해서 자꾸 분별하고 해석하게 됩니다.
이거 왜이럴까? 하고 하면 해석하지 말고 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
내 배속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다시 호흡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100번으로 돌아갑니다. 언제나 100번으로 돌아갑니다.
100번으로 돌아가는 건 아주 아름다운 일입니다.
여러분은 100번으로 돌아갈 때마다 쾌재를 부르면서 성공했구나.
아 내가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렸구나.
우리가 망상을 알아차리는 게 가장 큰 공부예요.
그러니까 100번으로 돌아감과 동시에 여러분은 성공입니다. 언제나.
이건 실패가 아니고,
그래서 100번으로 돌아가는 걸 주저하지 말고 아 또 한번 망상을 알아차렸구나 하고
기쁜 마음으로 100번으로 돌아가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죽비소리와 함께 숫자를 100부터 거꾸로 내려오면서 한번 세 보도록 하겠습니다.
탁, 탁, 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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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탁, 탁.
집에 가서 이제 매일 같이 실천을 한번 해보시고,
여기서는 그냥 잠깐만 이렇게 해보았는데 어떻게 좀 숫자가 세집니까? 어떻게 되나요?
숫자를 세면서도 잡념이 일어나죠. 그죠? 다시 돌아가집니까?
자주 돌아가 집니까? 아니면 잘됩니까?
숫자를 놓치지는 않는데, 잡념은 보이잖아요.
그러면 잡념이 들어온겁니다. 그래서 잡념을 보면 다시 돌아가는 거예요. 잡념을 보면
숫자야 우리 암기력이 아직 그 정도는 아니잖아요?
어느정도 기억은 한단 말이죠.
그런데 좀 더 많이 흐트러지면 이제 숫자조차 잊어버릴 때가 있는데,
주로는 그러지를 않고 숫자를 계속 딱 놓치지 않고 있다 보니까, 잡념이 더 잘 보이죠.
잡념이 오고 있구나라고 보여요.
그런데 잡념이 잠깐 들어왔을 때 그냥 보고나서 다시 100으로 가도 괜찮다.
왜냐하면 제가 이렇게 자꾸 100으로 가라는 얘기는 그게 실패이기 때문에
100으로 가라는 것이 아니라, 봤다라는 신호로 100으로 가라는 거예요.
아 내가 봤구나라는 신호, 그러니까 성공의 신호로 100으로 가는,
그러니까 이것의 목적은 80 70 60으로 낮추는 게 목적이 아니라,
자꾸 미세한 거라도 아 이번에는 아주 미세한 거지만 봤다하면 다시 100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럼으로써 이제 점점 더 예민하게 깨어 있을 수 있게되요.
아주 작고 미세한 것에 조차 내가 이거 봤구나라고 하게 되고
예를 들어 외부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거나 할 때는 이 소리에 내가 끄달려 가고 있는지 아닌지,
그 소리에다 해석을 붙이기 시작하면 그건 끄달려 간거예요.
그런데 아 소리가 일어났다라는 것을 그냥 하나의 사건으로 멀리서 일어나는 것으로
잠시 흘러 지나 가게 내버려뒀다. 잠시 보고 흘러 지나 가게 내버려뒀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냥 내버려도 된다. 그런데 거기에 대부분 우리는 해석을 붙이거든요.
예를 들어 전화벨 소리가 울리면 이거 누구야? 하면서 생각을 하거나,
들어오시는 소리가 들리면 예를 들어 그렇다는 게 아니구요. 좀 일찌 좀 다니지. 예를 들어
이런 생각이 일어났다. 일어났다라고 하면 벌써 그것은 그것을 해석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와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명상을 하게 되면
삶에서 아주 놀라운 어떤 그 뭐랄까 삶의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그 수행력을 기르게 되요.
다시 말해서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전화벨 소리가 울릴 때, 습관적으로 우리는 해석을 붙이거든요.
야 이런 데서는 좀 꺼놓지 이렇게 해석을 한다 말이예요.
그런데 그 해석하는 것을 딱 바라보고 멈출 수 있어요. 그 해석을,
그리고 누가 예를 들어 뭐 다같이 있는 어떤 곳에서
누가 내가 내 상식으로는 이해 안가는 행동을 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해서 안좋은 생각을 하고 안좋은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요.
그런데 그럴 때 딱 멈추는 겁니다. 이거는 나의 비판적인 시각일 뿐이지,
그 사람은 그런 상황에서 그럴 수도 있죠.
그리고 우리도 옛날에 어느 땐가 그럴 수가 있었던 적이 많죠.
그런데 내가 잘못했을 때는 관대하지만, 다른 사람이 잘못했을 때는 비판하기 싶거든요.
그래서 그와같이 우리가 모든 사물을 볼 때 우리 생각이 개입이 되서 그것을 비판합니다.
나쁘다고 비판을 하거나, 좋다고 집착 하거나 이 두가지를 언제나 개입시켜요.
그런데 사건 그 자체는 언제나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사건 그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다.
아이가 성적으르 70점을 받아왔다. 그 성적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예요.
다만 내가 내 마음속에서 90점 100점을 맞아야 된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70점을 문제라고 생각해서 문제라는 반응이 나가는 거죠.
그래서 너 이것밖에 못했어? 하고 예를 들어 한대 때리게 된다.
사실은 이게 세단계로 이루어 집니다.
처음 아이가 성적 70점 받았다라는 딱 보는 단계입니다. 그때 해석하지 않는 단계예요.
1단계는 해석하지 않고 70점이구나 하고 알아차려요.
그 다음에 내 머리속에서 해석을 합니다.
이녀석이 맨날 놀고 게임만 하더니, 이것밖에 못 받아 왔구나.
너는 한번 혼나야 되겠다라고 해석하기 시작해요. 그 다음 이게 2단계고,
머리속의 해석이 2단계면, 3단계에서 이제 주먹이 나가거나, 욕이 나가거나,
혼내는 직접적인 행동이 일어나는 거예요. 3단계로 일어나는데
보통 우리는 1단계와 3단계만 생각합니다. 2단계를 쏘옥 빼버리고,
즉 그 현실자체를 놓고 70점 맞아 온 거를 보고 바로 때린다 말이죠.
그러니까 우리 생각에는 아 나쁜 성적을 받았으니까, 이거는 너가 잘못한거야 하는
실체라고 생각을 해요. 내가 머리속에서 잘못했다라고 분별을 해서
이건 이러면 안되는 거라고 분별 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그 성적을 보고 바로 혼낸다.말이죠.
그런데 사실 그 성적과 혼내는 사이에 내 머리속의 관념이 두번째 단계가 개입 됐던 겁니다.
그것을 내가 만들었던 거죠. 나는 그 성적을 보고 어 이거 받아왔구나.
아 그래 그래 고생했어. 이렇게 하고 넘어 갈 수도 있고 아니면 혼낼 수도 있는 두가지 상황에서
2단계를 가지고 나쁘다 잘못했다라고 해석을 함으로써 혼내는 단계로 3단계로 넘어가는 거죠.
그런데 이와 같은 것을 이 생각을 명확하게 지켜보게 되면
중간의 2단계를 언제나 지켜보게 되고 그러면 또 다른 반응을 할 수 있다라는 2단계를 바꿈으로써
혹은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것으로써 또다른 반응을 할 수 있구나.
3단계의 반응이 새롭게 새로운 반응으로 내가 나갈 수가 있구나라는 것을
분명하게 명쾌하게 보게 됩니다.
그러면 온갖 화도 많고 짜증도 많고 자식의 말한마디 남편의 말한마디 이 모든들이
짜증이나 화가 많던 사람들이 내가 왜 그 화가 많고 그 짜증나는 반응을 많이 보이고 하는 것들이
왜 그러했는지를 이제 명쾌하게 보게 됩니다.
내 머리속에서 어떤 조작이 일어나가지고 내가 이렇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상습적으로
일으키는지를 알게 되는 거예요.
예를 들어 같은 상황에 어떤 사람은 화를 내는데 어떤 사람은 화를 안내고
평화로운데 나만 화를 낸다. 이건 내 문제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이건 너 문제야 너가 잘못했으니까 내가 화를 내는 거야
너가 핸드폰을 꺼놓고 있지 않으니까, 소리가 울렸고 그러니까 내가 짜증이 나는 거야.
이건 내가 짜증나는 마음을 일으킨 내 문제거든요.
핸드폰을 꺼놓지 않은 그 사람은 문제가 아니고,
엄밀히 따지면 내 수행의 입장에서 봤을 때 내 문제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우리가 나누어서 보게 돼서 내 머리속에서
지금까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를 보다 명쾌하게 보게 되니까,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놀라운 어떤 하나의 수행의 재료, 공부의 재료
삶을 내가 어떻게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놀라운 것을 주게 되는 거예요.
네 이런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아주 많구요.
특히나 아주 저 피곤하신 분들은 더욱 더 그럴텐데 어떨 때는 잠이 오는데
이거 잔건지 안 잔건지 애매 모호한 단계에서 숫자를 세요.
자면서 숫자를 세고 자는 경우도 있고 또 이게 내가 어떨 때는
딱 끝나고 나서 되돌아 봤을 때 내가 이거 잔건가? 명상한건가?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숫자를 세는 게 아주 중요한거예요.
물론 숫자를 세면서 자기도 하지만 숫자를 세지 않고 호흡을 관찰하게 되면
요런 일들이 많이 생겨요. 내가 호흡을 보고 있었던건가? 아님 멍하니 있었던건가?
아님 자고 있었던건가?
뭐 예를 들어 방황가?라고 해서 그러한 애매모호한 상태 내가 깨어있는 것도 아니고
잠잔 것도 아닌 쉽게 말해서 멍때리고 있는 상태 이건 깨어 있는 건 아니예요.
분명히 보고 있지는 아닌거예요. 그런데 얇게 잠 비슷하게 오다 보니까,
잠시 그게 그 시간이 그냥 떨어져 나가 버린거예요. 그러니까 멍하고 있는 상태
그런 상태를 놓고 아 내가 생각이 안 일어났구나.
이렇게 좋아하는 착각을 일으킬 수도 있는 거예요.
그래서 호흡에 숫자를 매겨서 세다 보면 얇은 잠들 같은 경우에는 애매모호 할 때 있지만
그것도 딱 보게 되면 100으로 다시 돌아오면 되겠다. 잠에 빠졌다 할 때에는
그런데 잠에 조금 깊히 빠질려고 할 때 어김없이 숫자를 햇갈리기 시작해요.
숫자를 놓치기 시작하고 그러면 다시 100으로 돌아오는 거예요.
그래서 잠에 계속 빠진다 이러면 계속 100 100 100하고 계속 세면서
내가 잠을 이렇게 자고 있다라는 걸 하면 되는데 그러다가 보면
습관적으로 잠자면서 100 100 하면서 잠을 자게 되기도 하는데
너무 과도하게 졸릴 때는 어지간할 때는 잠깐 정신을 차리고 눈을 딱 뜨고
그럴때 졸리고 그럴때는 눈을 딱 감고 하면 졸리고 하기가 아주 쉬어집니다.
그래서 반만 뜨고 하라고 하는데 너무 졸리다 싶을 때는 눈을 이제 좀 뜨는 게 좋아요.
눈을 뜨고도 분명히 호흡을 관찰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나중에는 눈을 뜨고도 호흡을 관찰할 수 있고 마음을 관찰할 수 있게 되야되요.
그래서 계속해서 감고만 하면 안됩니다. 처음에 앉아서 할 때는 어느정도 감고 해야
처음에 집중이 잘되니까 그렇게 시작은 하지만 어느정도 되면 반쯤 뜨고 있고
그러다가 너무 졸리거나 그럴때는 탁 뜨고 있으면 잠이 조금 덜 오게 되게 되구요.
너무 심각하게 졸리면 잠깐 일어나서 왔다갔다 하던가 아니면 누워서 자든가. 해야되고
그래서 잠잘 때 그런 분들은 잠잘 때 잠시 앉아서 이렇게 호흡을 관찰하면 아주 잘 졸립니다.
뭐 그렇게 하다가 누워서 딱 주무시면 명상을 하다가 잠 드는 것 아주 이상적이예요.
그래서 눈을 감고 있을 때는 아주 졸리게 되요. 좀전에도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인사를 계속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런 것들도 그것이 전혀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가 아니다.
잠자고 딱 개운 했을 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뭐 잠 하나까지 이렇게 치열하게 없애가면서 정진하고 뭐
그런 우리가 그 정도까지는 아직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잠에 너무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도 마시고 내가 이렇게 졸리면 잠깐 또 한번 정신차려서
잠자고 있구나 졸고 있구나라는 걸 알아차려 보기도 하고
또 잠깐 명상중에 잠깐 조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습니다.
될 수 있으면 안조는 게 좋지만 뭐 그렇게 나쁘지 않을 수가 있다.
반만 뜰 때 정확히 지적하셨는데, 반만 뜨라고 하면 사람들이
반만 떠도 보일 건 다 보이거든요. 이게 집중이 안되는 겁니다. 반만 뜨니까,
집중이 잘안되니까 집중을 하려면 약간 뭔가 희미하고 희뽀얗야지만
우리는 집중이 잘된다고 느껴요. 그리고 실제가 어느정도 좀 그래요.
그러다 보니까, 반만 뜨면 희뽀얗게 보여야 되는데 반만 떠도 잘보이거든요
그러니까 나도 모르게 사팔뜨기 비슷하게 하면 앞에 흐릿해져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렇게 눈이 사팔뜨기 비슷하게 되는 경우가 실제 있어요.
그럴 때 이걸 눈을 막 사팔뜨기로 이렇게 막 할 필요는 뭐 고개를 끄덕이시네요.(하하하)
다 이상한 표정을 지셨나 보네요. 사팔뜨기를 애써 할 필요는 없고
살짝 눈을 너무 크게 뜨게 되면 보이는 게 많으니까,
선명하게 많은 것이 보일 때 집중이 분산이 되거든요. 인식이
그래서 약간 반을 떠라는 것이고 눈앞에 보이는 부분을 어느정도 보여도 괜찮구요.
그래서 만약에 정 안되면 눈을 3~4m 앞을 보는 게 가장 좋고
앞사람 등이 보일 때는 등 어떤 이런 게 좋습니다.
그 지점의 어느 한 부분을 내가 의식으로 찍어서 그 부분을 딱 주시하는 거예요.
약간 너무 높이가 아니라 약간 밑부분에 있는 그 부분을 딱 집중을 하고
그래서 때로는 촛불을 켜놓고 하기도 하고 그래요.
촛불을 이렇게 보면서 집중을 하면서 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그 어떤 한 특정 부분을 시선을 고정한 채로 보고 있는 거죠.
그런데 여러분들이 조금 더 관찰을 하시다 보면 눈을 뜨고 있어도 보여요.
몸을 관찰할 때도 바디스캔 할 때도 몸이 눈을 감아야지만 다리가 어떤 느낌인지
손이 어떤 느낌인지 이렇게 보이기 시작하는데 눈을 뜨고 있어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 볼이 어떤 느낌인지를 가만히 관찰해 보세요. 눈을 뜨고
여러분 입꼬리가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지 여러분 가만히 관찰해 보세요. 보이죠? 보입니다.
마음으로 보여요. 그래서 꼭 눈을 감아야지만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살짝 뜬 상태에서 약간 의식이 분산되면 분산된다는 것을 또 알아차릴 수 있어요.
그래서 눈을 반쯤 뜬다는 게 약간 보일 듯 말 듯인데
주로 많이 감으면 빛이 살짝 들어오지만
앞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그런 정도로 살짝 뜰 수가 있어요.
그런 정도가 처음에는 아주 좋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정도 좀 반만 떠도 많이 보이니까 반만 떠도 집중이 덜 되거든요.
눈을 살짝 감은 상태에서 살짝 떠서 작은 빛이 들어오는 정도
그 상태에서 앞의 어떤 특정 부분을 관찰하면서 호흡을 관찰할 수가 있을 겁니다.
그거 뭐 사실 이게 답이다 저게 답이다 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우리가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는 소리가 들어온다는 자체가 문제인 거는 아니잖아요.
소리 들어온 것을 내가 하늘의 떠가는 그냥 구름처럼 어떤 정신적 사건으로
나와 떨어진 별개의 어떤 사건으로 볼 수는 있잖습니까?
그렇게 보고 지나 간다면 거기에 개입되지 않는다면
거기에 내가 해석을 붙이지 않는다면 그냥 호흡을 그냥 숫자 계속 넘어가도 괜찮다는 말이죠.
그것은 내가 끌려가지 않은 거니까,
다만 바깥에서 들려온 소리에 내가 조금이래도 반응을 했다면
생각으로 판단으로 반응을 한 모습이 보인다 그러면 다시 100으로 돌아가야 되는 겁니다.
그렇게 하셔서 조금 더 연습을 집에서 하셔서 숫자를 세는 것을
집에서 연습을 해가지고 이렇게 오시기를 바라고
잠시 쉬었다가 11시에 또 금강경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첫댓글 귀로 듣고 또 눈으로 읽으니 참 좋네요
법우님 덕분에 편안하게 공부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구름이 있는 날은 그걸 보고 구름을 향해서 욕을 하지 않잖습니까?
그것은 그냥 내버려도 된다. 그런데 거기에 대부분 우리는 해석을 붙이거든요.
이건 너 문제야 너가 잘못했으니까 내가 화를 내는 거야
마음으로 보여요. 그래서 꼭 눈을 감아야지만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많은도움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부처님의 눈빛과
부처님의 말씀과
부처님의 행동을 배워
부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기를...... _()_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