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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시집 『바람꽃 해 후』
1 부: 바람꽃 해후(邂逅)
바 다
菊 花
열 매
판도라상자
간월호의 철새
바람이 떨어뜨린 쪽지.1
바람이 떨어뜨린 쪽지.2
바람꽃 해후(邂逅)
가을편지
단 풍
晩 秋
억새꽃
歷 程
겨울 素描
裸 木
TV 속에서
아버지
2 부: 물과 재가 다시 만나
소 라
세상보기
보시 (布 施)
물과 재가 다시 만나
傳說
내가 찾는 사람은
天使
꿈
명퇴 교감 우리 덕배씨의 하루
나는, 오늘
罪와 罰
哭, 쌍둥이 빌딩
삶
우리 夫婦는
눈물이 난다
幼兒, 遺言帳
영자의 削髮 시대
3 부: 솔바람소리 한 줌 빌어다
영월, 동강에는
扶 桑
家 庭
어느 제자에
보문산 소쩍새
우리는 무얼까
새는 날개를 접고
숲 속의 유리벽
안면도
故 鄕
가을 노래
未來地圖
民 譚. 1
民 譚. 2
民 譚. 3
民 譚. 4
民 譚. 5
民 譚. 6
4 부: 봄은 또 다시 오네
내고향 錦菊里
봄은 또 다시 오네
赤裳山의 秘密
人生事
달
江
선운사 동백
가을산
關係의 法則
낙엽
천년의 다리
人間複製
지리산
板 門 店
金剛山
統一을 위하여
삶의 노래
솔바람소리 한줌 빌어다
1 부: 바람꽃 해후(邂逅)
바 다
菊 花
열 매
판도라상자
간월호의 철새
바람이 떨어뜨린 쪽지.1
바람이 떨어뜨린 쪽지.2
바람꽃 해후(邂逅)
가을편지
단 풍
晩 秋
억새꽃
歷 程
겨울 素描
裸 木
TV 속에서
아버지
바 다
삶의 무게에 짖눌려
가슴이 답답하여 올 때
야위여 가는 오늘의 그믐달을
어제의 보름달로 잘못 바라보다가
고향 냄새가 못내 그리워 올 때엔
태초의 태양과 시원한 바람을 잉태한
영혼의 태반, 어머니, 저 바다로 가자
바다 해(海)자에는 어미 모(母)자가
바닷속에는 자비의 손결이 있다
일렁이는 파도를 첫아이처럼
돌보는 바다에는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의 다소곳 여민 가슴속에는
높은 하늘과 깊은 바다가 있다
天地가 하나로 만나는 수평선 위에는
사랑과 은혜가 점선으로 그어져 있다.
菊 花
내 너를 좋아하는 연유는
사라지는 계절의 뜨락에서
삶 자체가 표현이기 때문
눈물겨운 가식과의 전쟁이
그대만의 색깔과 향기만이
마음밭 풀숲의 한 모퉁이에
의미다운 꽃으로 피기 때문.
화려한 보상을 꿈꾸지도
풍성한 열매가 목표이기도
짭은 세상 살아가는 것이
세속적인 잔치도 아닌 것이
마음과 가슴의 텅 빈자리에
고집스런 삶의 향기론 의미로
꽃답게 다가와 피어주기 때문.
열 매
한 알의 꼬마 우주가
손바닥에서 숨쉬고 있다
탄생의 기쁨과 설레임이
욕망의 화려한 용틀림이
폭풍우 속의 천둥소리와
긴 가뭄을 이겨낸 시련이
어떻게 계절의 의미로 피어
작은 우주로 열매 맺었는가
우리에게도 베풀어주는가를
따스한 가슴에서 머리에 받아
고개 숙이게 하는 작은 우주.
판도라 상자
제우스가 판도라에게
건네준 선물상자 속에는
절대로 열어서는 안 되는
인간의 모든 죄악과 재앙이
여직껏 보석처럼 숨겨 있었지
호기심을 참지 못한 채
상자를 열자 그 안에서는
精品으로 포장되어 쌓였던
폭력, 부패, 기아, 전쟁 등이
바람 따라 온 세상을 덮어가고.
맨하탄의 아침
인류의 최고 자존심
쌍둥이 건물이 날아가자
하얀 터번과 콧수염을 찾아
카불의 밤은 반딧불 폭격 먼지만
우리는 이제
열린 판도라상자를 덮고
힘에 눌려 튀어나오지 못한
사랑과 용서, 자유와 평화를
후손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자.
간월호의 철새
겨우내
지친 날개를 풀고
잠시 쉬어 가는
철새들의 천국
간월호의 모래섬
갈대밭엔
매와 말똥가리의
비정한 공습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예전엔 참 좋았었는데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천적
인간들이 찾아온 후
쉼터를 조금씩 빼앗긴
물오리와 기러기 떼들은
찾아온 고향
간월호의 모래섬을
어부가 갯벌을 떠나
도회 불빛 따라 몰려가듯
하나 둘 씩 떠나고 있다.
바람이 떨어뜨린 쪽지.1
캄캄한 밤보다는
대낮이 더 무서워요.
맹수보다는
인간이 더 무서워요.
자연 파괴범이 들어왔어요
못된 인간들이 몰려와
하늘이 내려다보고
가족이 지켜보는 앞에서
어린 풀꽃의 목과
나뭇가지를 비틀어 꺾으며
나의 온몸을 더듬고 있어요
치마폭을 헤집고 있어요.
바람이 떨어뜨린 쪽지.2
내가 인간을 마음 깊히 사랑하고 있을 때에도 그는 자연을 밥상 위에 올려진 먹거리로만 여기고 있어요. 두렵고 무서워요. 가까히 다가올수록 소름이끼처요. 탐욕스러운 눈빛, 무자비한 갈퀴손과 마당발 그리고 고놈의 전천후 쇠말뚝이. 매일 같이 마음에도 허락하지 않는 그와 그 패거리들을 위하여 나는 왜 종근위안부가 되어 있어야 하나요 나의 온몸이 온통 다 뜯기고 할퀴고 잘리어 진물 나 있어야 하나요. 검은 상처로 얼룩진 내 몸 구석구석에는 증오의 녹쓴 눈물로 채워져 있어요. 내 아랫배가 매일같이 조금씩 부풀어오르고 있어요 인간에 버림받은 온갖 잡쓰레기들의 아이가 또 내 몸에서 태어날 때가 되어 오고 있나봐요. 현대 문명으로 얼룩진 인간의 붉은 정액이 녹색 대지의 온몸 구석구석을 꿈틀거리며 헤집고 오는 세월마저 나의 목을 바짝바짝 조르고 있어요. 살려주셔요. 자연이 인간에 보내는 이 쪽지를 보시는 대로. 어서 빨리요 하느님.
바람꽃 해후(邂逅)
사랑의 女神 아프로디테가 애인
아도니스의 상처에 키스를 하자
바람 따라 피었다가 지고 마는
사랑과 이별의 다채색 무늬 결
피고름 헤집고 꽃이 피어났네
결 따라 피고 다시 지는 魂, 꽃.
남과 북, 틈 사이, 반세기만에
찾아내 대어본 따스한 실핏줄
봄 꽃몽올 터 오는가 했더니
새순을 또 흩날려 버렸나
치솟는 눈물 안으로 감추며
또 다른 상처의 바람꽃 邂逅.
장승처럼 굳어버린 사랑과 恨을
이 가슴에 묻고 반 백년 살다가
바람 따라 와 만난 것도 잠시
구름으로 또 흩어져야만 하는가
두 몸통 속에 한 색깔로 녹여놓은
神話보다도 더 찐한 바람꽃의 邂逅.
가을편지
산
아침
골안개
자욱하던
지난 가을밤
어둠이 뚫고 지난
오리 숲 터널 속에는
천상에서 내려온 아침 햇살이
오물오물 불개미처럼 기어다니다
온몸에 붙더니, 가슴속을 토굴로 알고 .
오
단풍
찬이슬로
목욕을 하고 난
그대는 가을 여자
바람결만 살짝 스쳐도
떨리는, 욕망의 푸른 바다
온몸은 파도가 훑어 가는 성감대
마음 밭에 부서져 내리는 하얀 파도
연분홍 단풍잎을 물고 날아온 갈매기.
단 풍
知天命의 텃밭을
튀어나간 불씨 하나
가을 산을 태운다
잎도 태우고
줄기도 태우고
뿌리까지 태운다
夕陽에
추억만, 그대처럼
가슴속에 숨어있다.
晩 秋
가을꽃
그대는 갓 시집 온
싱그러운 新婦
滿山의 단풍
그대는 완숙한 女人
아내의 화려한 외출
이들을 가슴에 품고
가을은 잔치를 펼치네
노란 은행잎이 휘날리는
분수대 위에 핀 무지개 꽃
은빛 수를 놓은 억새밭
꽃잎은 바람에 흔들리고
흰 안개는 한 마리의 鶴
들국화, 구절초, 쑥부쟁이
억새꽃
시월의 높푸른 가을하늘 받아
가슴속 깊히 스며드는 갈바람
색깔도, 향기도 탐내지 않은 채
날카로운 줄기, 純白의 지조로
지나온 계절의 화려함을 접으며
산자락 넉넉히 마땅한 자리 잡아
깊은 뿌리를 안으로 내리고서는
한 송이 꽃으로 피지 못한 恨을
온종일 몸짓으로만 부벼대다가
석양으로 색칠해 가는 산허리
노랑, 빨강 단풍 숲 잔치 속에
찬란하지 않게, 어쩜 여유롭게
바람에 머리칼을 쓰다듬어보는
가을꽃, 그대는 初老의 사진첩
나도 때로는 누군가에 저렇게
한번쯤 흔들려 보고 싶음이네.
歷 程
벌레들도 탐내지 않는 뽕잎
찾아낸 녹색의 비밀로 빚은
생명의 근원, 영혼과 육신을
비단으로 뽑아 자신의 전부를
하얀 진실 속에 가두는 누에.
허공에 자신의 체액을 뽑아
본심을 기와집으로 매어단 채
가식과 기만에 걸려든 현실을
노랑나비나 고추잠자리처럼
생존의 수단, 먹이로 삼는 거미.
자신의 뜻으로 이 세상 태어나
순탄하게 주어진 운명의 길을
말달리듯 살다가 죽는 것도 아닌
世態의 거친 파도 위, 배를 타고
양심과 현실의 노를 저어 가고 있는.
겨울 素描
참나무 장작을 한 입 가득
집어삼켜 벌겋게 달아오른
무쇠 난로 입가엔
누가 언제 올려놓은
고구마가 알맞게 익어가고
음악은 잔잔히 흐르는데
인적이 끊긴 길가
잎이 다 진 나뭇가지에
하얀 함박눈 꽃이라도
활짝 피워 주었으면
동양화 한 폭을 감상하듯
얼마나 가슴 따스할까
성애를 입김으로 지우며
바라본 유리창 밖에는
雪花에 겨울나비가
희끗희끗 휘날리는
머리칼을 쓰다듬고 있는
허리 굽은 앞 산자락
裸 木
하려한 외출 후
물기 마르지 않은 채
욕탕에서 방금 나와
온기 휘감고 있는
중년 여인의 알몸.
삼. 사월의 미모
칠. 팔월의 부귀
구. 시월의 영화
외투 벗어 놓듯
추억 속에 묻어놓고
실핏줄 선명히 드러난
투명한 피부와 심장
원줄기와 곁가지들
생명의 본질만이
영혼의 떨림으로
겨울바람에 파문지고.
TV 속에서
이제 와 누가 누구를 탓하랴
잡쓰레기에 보물단지가 언처
흘러가는 화상 속 거센 강줄기
동떨어진 둑, 원심력 밖에서
강 건너 흙탕물만 구경 하다가
우리 모두 범죄자가 된 것을.
하낫 둘 숫자의 춤판 위에서
한 점의 느낌표도 찾지 못하고
따라서 흔들어대는 가슴들
손과 발 대신 입으로만
무비판의 혀끝에 써놓은
빤짝이는 오늘의 언어유희
몸과 마음을 모두 합쳐도
가뜩이나 힘겨운 판국에
뒷짐만 찌고 바라보다가
통폼만 잡고 비난하다가
막판엔 돌멩이나 던지고
마파람처럼 돌아가 버리는.
냉혹한 일제치하에서나
군사독재 시대에서도
정의와 양심을 지키며
목숨과 철창을 두려워하지 않던
피 끓는 투사의 후예들
그들은 지금 다 어디 가고
규격 속에 갇힌 사람들이나
밖에서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
무능과 이기심만 가지고
헌신 없는 안이함으로
손잡고 상자 속으로 들어가
지는 해나 바라보고 있으니.
아버지
도회에서 정년을 넘기신
어른들에 비해 아직까지는
정정하신 시골의 농사꾼
八旬의 우리 아버지는
반백이 되 버린 자식보다
오히려 氣力도 장사이신데
세월이 조금씩 지나갈수록
일제의 전쟁터 징용에서
드물게 겨우 살아남아 평생
돌밭을 일궈 옥토를 가꿔오신
불굴의 의지는 어디 가지셨는지
死後의 걱정을 조금씩 하시더니
몇 해 전부터 성묘 때만 되면
앞이 시원스레 내다보이는
당신의 아버지 산소 옆자리
양지 뜸,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미리 여생을 꽉 찍어 놓으시고
후손들 앞길에 좋은 날을 잡아
저 딴 세상에 가서 살아가실
손바닥만한 방 한 칸이라도
이승에서 미리 마련해 놓아야
마음이 좀 노이겠다 하시기에
이천 일년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시어 더욱 좋은날
흩어 젔던 피붙이들 함께 모여
진짜처럼 봉분도 만들어 놓고
파란 잔디도 그 위에 심으며
온갖 정성 들여 꼭꼭 밟았지
만들어 낸 來世의 축조물이
아무 쓸모 없는 것들이 되게
수십, 수 백년을 現世에서
지금처럼 모두 함께 사실 수만
있다면 하는 자식된 마음으로
열심히 삽질을 하고 계시는
오늘의 주인공이신 아버지를
붉게 물들어 가는 석양 위에
내 나이쯤으로 되돌려 그려본다.
2 부: 물과 재가 다시 만나
소 라
세상보기
보시 (布 施)
물과 재가 다시 만나
傳說
내가 찾는 사람은
天使
꿈
명퇴 교감 우리 덕배씨의 하루
나는, 오늘
罪와 罰
哭, 쌍둥이 빌딩
삶
우리 夫婦는
눈물이 난다
幼兒, 遺言帳
영자의 削髮 시대
소 라
궁둥이가앗뜨거워
깊은 잠에서 깨어 난
대천 앞 바다의 소라는
청계천 굴다리 밑 손수레
포장마차 낡은 가스통 위
양은 냄비 속 끓는 물이
찾아온 밀물인지도 모르고
봄바람에 흔들리는 산과
출렁이는 파도를 그리며
껍질 밖의 세상에 취해
우리는 하늘 아래 한세상
흘러가는 새털구름이요
몰아가는 샛바람이라며
밤새워 긴 목만 움추린다.
세상보기
물구나무를 서서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
매일 보던 땅바닥도 노랗게
딴 색깔로 들어와 채워지고
잠시 세상을 거꾸로
매달려 바라보는 일도
한 세상 살아가다 보면
진실의 잣대가 될 때도 있다
펼친 손을 접으면 안되지
손과 어깨 사이의 공간마저
한가닥 흘러가는 구름 속에
신기루같은 세월로 증발할거야
지난해는 게이트 풍년
보물선 찿기, 덮기 거듭의 해
또 부시 해오는 전쟁의 해라네
아침 밥상에는 무슨 반찬이
내일의 주제로 상 차려지고 있을지.
보시 (布 施)
들판에 떨어진 벼이삭
감나무에 매달린 홍시
고갯마루에 놓인 짚신
고수레로 던져진 음식
노숙자에 베푼 옷가지
과객 맞아 재운 사랑채
목 타는 이에 퍼 준 물
이 해 다시 가기 전에
인색하게 거두지 말고
새해를 맞아 진심으로
베풀 수 있다면 좋겠네.
물과 재가 다시 만나
삶의 표면을 떠돌고 있는
한 개의 점, 부표가 아니라
내면으로 이제 푹 가라앉은
새 삶은 영혼과의 영원한 만남
갠지스는 강이 아니고
이승의 무거운 짐 내려놓고
저승에서 편히 쉬게 하는 어머니
신과의 만남으로 맺은 또 다른 세상.
인간과 신 ,물과 재가 다시 만나
영혼끼리 주고받는 오늘의 오르가즘.
傳 說
-행복의 원천
太初에 인간에게는 이미
幸福이 주어져 있었다네.
인간들은 이를 독식하기 위해
온갖 몹쓸 짓만 골라하게 되고
이를 못내 보다못한 천사들이
회의를 열어 결단을 내렸다지
주어진 행복을 회수해 버리기로.
인간들의 행복은 반납되었지
그런데 그것을 어디에 감춰두느냐
하는 것이 천사들의 고민이었대
천길 海底 속에 감춰두면 어떨지
神山의 정상에 숨겨두면 어떨까
천사들의 제안은 봇물 터지고
바닷속 쯤이야 뒤져서 찾아낼 수도
깊은 산 속에 숨겨두어도 마찬가지.
천사들은 최종 결론을 내리었나봐
인간의 마음속 깊은 속에 숨겨두기로
천지를 뒤집고 다니는 인간이라지만
마음속에 박혀 있는 보물을 캐내기란
아프카니스탄의 동굴 속 흰두건 쓴
「오사마 빈라덴」을 찾아내기보다도
눈 큰 사람은 더 어려울지 모르니까
행복은 바로 우리들 마음 속에 있대
나누어 줄 생각으로 한세상 살다보면
풀어낸 만큼은 마음속에서 불어난다지.
내가 찾는 사람은
향기로운
아침 커피향 같은
삶의 意味를
마음 밭에 심어준 사람.
올곶게
뻗어온 하루
실뿌리 줄가지로 365일
꽃몽올 피워준 사람.
활짝 열어 놓은
내 마음
꽃잎 향기로 채워
열매 영글려가는 사람.
天 使
코흘리개
초등학교 2학년 때
읍내로 웅변대회 나갔을 때
천사 여선생님이 사주신
그, 자장면 맛
오늘까지 반백년을
훨쭉 넘게 살아오면서
단맛, 고소한 맛을 다 경험했어도
그때 처음 느껴본 그 맛
천사 여선생님의 멋
나풀나풀
하얀 레이스가 달린 연두빛
드레스를 입고 하늘에서 내려와
꿈속에서나 잠시 쉬어 가는
천사 여선생님의 모습
여태까지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빛 바랜 소년의 일기장에는
오 십년의 세월 속에서도
선명하게 빛나는 붉은 글씨
「착한 어린이 꼭 되셔요」.
꿈
장주(莊周)가 꿈에 나비가 되었다. 나비는 자기가 장주라는 것을 모르고 즐겁게 여기저기를 날아다니다가 꿈에서 깨어나 보니 자기는 분명 장주 이었다. 장주가 꿈에서 나비가 되었나 나비가 꿈에서 장주가 되었나 꿈이 현실인가 현실이 꿈인가 나비는 여름과 겨울도 모른 채 봄만이 전부이고 인생은 봄의 꿈이 전부다.
흙탕물을 바라보던 눈은 맑은 물을 잊어버리고, 바람을 타고 나르던 욕망은 구름 속에 흩어지며 일생을 두고 쫓아다니던 고무풍선도 끝내는 신기루. 사물의 머리만 바라보다 꼬리도 잡지 못한 하루. 우리가 산다는 것이란 무엇인가를 자신에 물으며 수많은 限을 가슴에 묻어둔 채 오늘도 다시 저물어가네.
명퇴 교감 우리 덕배 씨의 하루
샘골 호두나무 집 셋째 아들 덕배씨는 세월 밖에서 간간이 흘러나오는 천둥소리 섞인 거친 숨결을 그믐달빛처럼 몸 안으로 받으며 팽개친 막장에서 갈탄 캐다 나온 늙은 광부의 검푸른 이마 같은 구겨진 몰골로 붉은 껍질 벗겨놓은 오징어 흰 뱃살처럼 세월을 미리 찾아 날아온 바람에 일상의 지폐를 날려본다.
디스 담배 한가치를 안 호주머니에서 꺼내 반쯤은 질겅질근 어금니에 문 채, 눈먼 새앙쥐 찾아 헤매는 암코양이처럼 손바닥만한 안뜨락만 서성이다가 숨소리는 태산준령을 넘어가다 호수 위를 새처럼 낮게 날아가고 진양조, 중모리, 자진모리, 마파람 치다 산파도 멈춘 소나무숲.검은 포장 내리는 동해의 겨울바다로..
봄의 단꿈은 이제서 막 끝났나? 고향의 풀피리 소리가 멈추었다. 꿈의 소리는 떠나가 버린 걸까? 열어 놓고 있던 이 귀가 막힌 걸까? 다시 새로운 탄생의 소리로 스며든 걸까? 푸른 하늘 높이 오늘을 큰소리 치다 우주 밖으로 퇴출기업 약속어음 되어 돌개바람에 황사와 함께 날아갔다.
샘골 호두나무 집 셋째 아들 ,명퇴 교감 우리 덕배씨! 다시 새벽이 되었습니다. 심장 위로 떠오르는 맑은 아침 햇살은 희망이라는 장난감 선물로 오늘을 살맛 돋게 하였지만 유리창 닦듯 가꿔온 세월은 고향으로 회귀하던 남대천의 어미 연어처럼 망각의 늪 속에 분해되어 새끼의 하루 끼니가 겨우 되었을 뿐.
나는 , 오늘
이 시대가 꼭꼭 얽어 놓은
衆生의 쇠사슬을 끊고 나와
참人間으로 환생하고 싶어서
때로는 가슴이 막 울렁이더니
가끔은 머리도 마구 띵하였다가
人間 되는 법도 다 그런 거라네.
그 그제는 닥치는 바람도 재워보다
그제는 밀리는 파도도 다독여보다
어제는 心田刀를 뽑아 뭉텅뭉텅
깎아내고 도려내 보는 오늘
내일은 새처럼 하늘이나 날아볼까?
罪와 罰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事緣
펼쳐 꺼내놓지는 않고
살며시 만져만 보는 것도
우리에겐 크나큰 罪가 될까요
캄캄한 밤
불은 켜지 않고서
꿈을 찾아나선 듯이
오색 무지개 띄워 보는 것도
우리에겐 더 큰 罰이 될 수도 있을까요
哭, 쌍둥이 빌딩
눈을 감아도 보인다
귀를 막아도 들린다
잘생긴 남자의 목줄기에
화살처럼 날아와 꽂히는
여객기 안의 비명소리가
솟구쳐 나오는 피, 피 ,피
무너져 내리는 문명의 탑
용암에 녹아 흐르는 아침
누가 뭐라 변명한다 해도
표적은 단지 인간인데
독침을 적의 동맥에 박고
스스로 죽음을 불러들이는
밀림의 독사나 꿀벌보다도
지독한 짐승으로 변신하는
공포의 인간사냥 핵폭탄
신판 맹수들의 가미가제.
삶
안으로
안으로만 키워
한 촉의 蘭이 되기까지엔
비바람소리도 듣지 않았네
천둥번개소리에 놀라지 않았네.
봄 비
씻고 간 아침
밀알 깨고 나오는 새 생명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
눈서리 맞으며 키워 가겠네.
우리 夫婦는
마주보며 서있거나
살을 맞대고 누워 있어도
영혼을 섞으며 살아간다 해도
내가 아내일 수 없고
아내가 내가 될 수 없고
오직, 하늘과 땅처럼이나.
잠시 떨어져 있거나
생각하면서 가고 있는 길
비록, 똑같지는 않다 해도
나만이 혼자일 수 없고
아내만이 따로 일 수 없는
마치, 나무와 물처럼이나.
눈물이 난다
비바람 부는 언덕에 올라
높푸른 하늘을 바라보거나
산아래 저 너른 들판을
무심코 내려다만 보아도
봄비 내리는 앞산에
봉우리와 맞닿은 산자락이
실안개 비속에 분명히 드러나
보이지 않아, 힘겨울 때
기억의 호수를 헤엄쳐 다니던
희미한 추억의 나룻배 조금씩
세월 속에 눌려 나를 실은 채
재빠르게 진흙 벌로 가라앉을 때
반 백년만에 만난 민족의 피
삼일만에 이념의 물로 바뀔 때
그래서 더 가슴 미어질 때
장미빛 약속도 기약도 없을 때
애지중지 이십 년 키워온 외아들
입대한지 석 달이 지나도록
무릎 깨어지는지, 달리는지 ,기는지
변화된 모습도 ,소식도 모를 때
뛰던 심장에서
눈물이 새어난다.
감은 두 눈자위에서
자꾸만 눈물이 난다.
눈물만이 자꾸만 난다
幼兒, 遺言帳
우리들에겐 눈과 귀도
꼭꼭 틀어막고 살라며
아름다운 미래나 꿈꾸며
유리상자 속의 틀 안에서
인형처럼 누워 있으라며
어른들은 어째서
전쟁, 노동착취. 매춘
아동 학대, 굶주림, 병
구린시대의 유물만을
미끼로 넣어 주시나요.
아이들은 아직 어리고
힘도 어른 정도 쎄저야
돈도 벌고 난 후에야
차지 할 권리가 있다며
어른들만의 세상이라고.
어린이는 어른들의
완상용 장난감이 아니고
돈벌이 상품이 아니예요
사람처럼 살고싶어요
어른이 없는 세상에서.
영자의 削髮 시대
하늘에서 인간 세상에
잠시 놀러 내려온 선녀 하나
소나무 숲으로 잔뿌리 내려
살아온 강원도 두메산골
유년의 고향, 산처녀 영자가
불빛 따라 날아간 문명세계
피어나는 열 아홉 풀꽃송이는
도회의 비릿한 상품이 되고
삶의 울타리이었던 핏줄까지
빼앗기는 이 시대의 아픔
無明草가 무성하길 몇 년
건초더미 태우듯이 모두
영자에 沙彌十戒 묻노니
오뉴월 적막한 산문에서
우짖는 뻐꾹새 소리 듣고
고향의 옛 추억 되살아나면
어짜노, 이를 정녕 어쩔거나
그 울음소리 멈출 때까지
백배 ,천배를 불전에 올릴까
영자들의 전성시대 이제
모개로 削髮에 들어갔다.
3 부: 솔바람소리 한 줌 빌어다
영월, 동강에는
扶 桑
家 庭
어느 제자에
보문산 소쩍새
우리는 무얼까
새는 날개를 접고
숲 속의 유리벽
안면도
故 鄕
가을 노래
未來地圖
民 譚. 1
民 譚. 2
民 譚. 3
民 譚. 4
民 譚. 5
民 譚. 6
영월, 동강에는
협곡을 따라 긴 강줄기
기암절벽 삼 백 리 원앙과
까막딱다구리가 다람쥐처럼
살아가고 있는 천년 ,솔숲.
아직도 그믐달빛 그 아래에는
수달의 발자국이 은모래 밭에
찍혀 빛나고 유리 거울 속에
뛰노는 쏘가리, 쉬리, 어름치.
쪼꼬렡과 코카콜라, 잡세상
냄새 짙게 배인 사람들의 숨소리가
쪼꼬만치도 묻어나지 않은 채
태고의 자연만 오직 허락되는.
마을을 아내로 안고 도는 강
잔잔하고 평화로운 풍경화로
그림처럼 그려놓은 강가의
조그마한 나룻배들.
세월과 시대는 물처럼 흘러 가고
역사는 흙 속에 돌처럼 묻혔어도
흙 담벽을 타며 오르고 있는
노을 아래 저녁 저 연기
신라의 남은 마지막 아이들은
태고와 오늘의 먼 거리를
고구려와 백제의 험난한 국경을
힘겹게, 숨바쁘게, 숨바꼭질 하고.
扶 桑
만삭이 된 우주
아름다운 진통을
가누고 삭이며
어둠깡을 가르며
튀어 오르는
빠알간 핏덩이
동 터 오는 하늘
얼마고, 얼마고
바위와 나무도
토끼와 사자도
한 식구가 되어
바라다만 보았습니다.
한마음이 되어 있었습니다.
家 庭
家庭은
삶의 바다
밀물처럼
아침마다 우주로
서서히 풀려 나갔다가
썰물 되어 한꺼번에
가슴속으로 묻어드는 하루.
現存을
확인하기 위해
현관문을 나서고
現實로 묶기 위해
방문으로 들어서는.
어느 제자에
일벌 한 마리
달콤한 꿀을 찾아
가파른 언덕을 날며
숲속의 풀꽃을 뒤진다
밀랍과 양식을 찾아서
그대는 오늘도 어김없이
내일의 꿈과 아름다움을
찾아, 구르는 돌언덕을
찬바람 세차게 부는 광야를
거침없이 달려가고 있지
살아가고 있음은
아름다운 것, 그보다도
젊음은 더욱 축복 받은 일
생명의 싱싱한 가지 뻗어
물오르는 희망의 봄맞이.
보문산 소쩍새
칠월 밤
불빛도 꺼지고
별과 달도 지쳐버린.
잠 못 이루며
가슴 깊이 맺힌 限
부수워 가는 몸부림
풀고 풀어도
숲속의 메아리는
제자리에서만 머물고.
우리는 무얼까
벌레들도 탐내지 않는 이파리
뽕잎에서 찾아낸 녹색의 비밀
생명의 근원인 영혼과 육신을
비단으로 뽑아 자신의 전부를
하얀 진실 속에 가두는 누에.
거미는 허공에 체액을 뽑아
집을 짓고 본심을 매어 단 채
노랑나비나 고추잠자리처럼
가식과 기만에 걸려든 현실을
생존의 수단인 먹이로 삼는다.
자신의 뜻으로 이 세상 태어나
순탄하게 주어진 운명의 길을
말달리듯 살다가 죽는 것도 아닌
험한 世波에 양심의 배를 띄워
진실과 현실의 노를 젓고 있는
오늘의 우리는 한낱 무얼까.
새는 날개를 접고
마음 속 가장 깊고
제일 아름다운 곳에
간직하다 숨겨놓은
영원한 보석 같은 것
가슴 벽에 부딛치는
순정의 파도 같은 것
수치도 아닌 것이
정확하고 확실한 것
아름다운 마음만을
진실한 언어로 담아
사라지는 노을처럼
펼첬다 흔적은 남기지 않고
인간사 모든 것을 사랑하다보면
그 속에 파고들어 빠져들고 싶고
우주 만물 ,자연을 좋아하다 보면
그 안에 파고들어 빠져들고 싶고.
숲 속의 유리벽
나무들은 아침부터 서성이고
산새와 다람쥐 나와 함께 했네
골짜기 물도 골바람도 다 모였네.
都心 속의 심장
북한산의 칠월
아카데미하우스 212호실
유리벽 너머 저편에는
넓푸른 바다
하루종일 항해 하다가
어쩌다 걸려들어 올린
잡고기 한 마리 머리판에 놓고
난도질하고 있지
고추장도 바르며, 초도 쳐보며.
안 면 도
섬
바다
안면도
붉은 소나무
참으로 반갑다
친구가 많아서 좋다
양지. 음지 선택하지 않고
눈과 비. 바람 피하지 않고
화려한 저 쪽 세상 부러워하지 않고
삼 백 예순 다섯 날 늘 하루 한날 같이
바닷내, 산바람 가리지 않으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푸른 하늘빛
땅에 받아서
뱉지 않는
사철 푸른
소나무가
있어서 좋다.
故 鄕
내
故鄕은
한 권의 흑백 사진첩
성장을 멈춘 유년의 꿈이
빛 바랜 추억의 갈피 속에서
천연색으로 꿈틀거리고 있는.
내
故鄕은
時時刻刻, 四時長春
기쁘거나, 슬프거나
맥없이 목이 메이다가
가슴속에 칠해 놓은 색깔.
가을 노래
출발이
잘못이었다면
결과는 진실이 아니다
진실은
가두려 할수록
몸밖으로 삐져 나온다
가을밤
영혼의 깃발을
펄럭이는 계절풍
사색은
삶의 원동력
삶은 사색의 열매
기다림은
시간이 길수록
아픔이 깊을수록
그 가치의 농도가 짙다
마음 아파 본 이는
거짓 사랑에도
가슴을 열고
자선을 베푼다
추억은
유년의 텃밭에
未來地圖
현재의 연속선에 살고 있던 삶
우리는 미지의 세계로 향한다.
남은 것은 예약돤 속도 전쟁뿐.
출산의 고통을 겪지 않은 엄마
사랑과 혈육은 미래지도에 없다.
실험실에서 아기만 홀로 자란다
돼지의 몸에서 기른 인공 심장은
고깃덩이인가 인간의 몸체일까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재치문답.
작은 지도안, 피로 그어놓은 국경은
지워지고 지구촌 곳곳엔 다국적의
피부색 다른 사람들이 이웃되어 살고
스테이크에 된장 소스를 바르고
만두피에 피자재료를 넣은 밥상
섞고, 엮고, 덧붙여서 길들인 혀
토산재료를 바탕으로 꿈을 펼치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산다는 자체보다는 놀기 위한 수단.
낮에는 치과의사고, 밤에는 복서로
남자이다가도 때론 여자이고 싶은
남과 여, 낮과 밤의 정체가 하나인.
民 譚 .1
-옹기장수 이야기
태조 왕건은 후백제를 찾아가고 견훤이 서라벌로 말고삐를 조이던 삼국시대 봉사 어르신 한 분이 느티나무 밑에서 중얼거리는 말을 짐을 지고 가던 옹기장수는 지게를 그늘 아래 받쳐놓은 채 귀동냥했지
달걀을 하나 사다가 이 알을 이웃집 닭장 병아리 까는 데 살짝 넣었다가 암평아리 까거들랑 다시 알을 내서 병아리로 부화하고 씨암탉으로 키워 알을 낳으면 또 알도 팔고 닭도 팔고 그 돈으로 도야지를 사고 또 황소도 사 소가 몇 마리 불면 팔아서 기와집을 짓고 춘향이 같은 예쁜 각시를 얻어들여야지 부자가 되거들랑 첩도 얻고 첩을 얻으면 본부인하고 싸우게도 될 것이란 말이야 싸우기만 해봐라 요것들을 이 작대기로 요렇게 하며 들고 있던 닥나무 지팡이로 허공을 내리 후려치니 바지게에 맞아서 옹기 그릇이 박살나 싸움이 시작된다.
봉사는 내일 자기 살림 이야기 하다가 옹기장수는 지금 남의 살림 엿듣다가 현실을 처 허공에 과녁 딱 맞혔으니 세상 살아가는 일 알다가도 모를 일
共助, 獨自, D이거나 J이거나 금이 난 밥 사발에 맹물이.
民 譚 .2
-거울 이야기
옛날옛적 한 선비가 과거를 보러 한양에 갔다가 신비로운 거울을 사 가지고 돌아왔다. 선비는 그 요물을 장롱 속에 감추어 두고 조석으로 꺼내어 자기 얼굴을 비추어 보았다. 의심이 많은 아내는 남편이 출타한 사이에 농 속에서 그 요술 거울을 꺼내 들여다보았다. 깜짝 놀랐다. 어떤 다른 젊은 여자가 거울 속에 숨어 살아오고 있지 않았는가 시어머니한테 남편이 한양에서 젊은 첩을 데려와 농속에 몰래 감추어 두었다고 말했다.
시어머니가 받아든 거울 속에는 늙은 여인의 모습만이 황당히 비치고 있었다. 어디에 예쁜 첩이 숨어 있느냐 앞집 할머니가 마실 와서 아직 안가고 있구만. 다음에는 시아버지가 거울을 빼앗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아버지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시아버지는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아버님, 무순 일로 불원처리 불효자를 찾아 오셨습니까?
맹선비는 자신을, 며느리는 분명히 젊은 첩의 모습을 보았고 시어머니는 이웃집 윤씨 할멈을 시아버지는 십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았다니 이게 도대체 무순 요사스러운 일인가 거울을 다시 들여다보며 화가 치민 며느리는 첩에게 요술을 부리지 말라고 야단을 쳤더니 첩도 흉내를 내며 입을 마구 놀리는 것이 아닌가 며느리가 야단을 치면 첩도 지지 않고.
남편이 쌀 백 가마는 넉넉히 주고 삿을 법한 고놈의 요물, 손거울을 아내는 깨어 버리고 집에서 쫓겨나 도회지 한복판의 길거리로 밀려 나왔다.
民 譚. 3
-7형제 별, 북두칠성
옛날에 아들을 일곱이나 둔 한 과부가 살았는데 글쎄 그 아들들이 효심이 얼마나 두터웠던지 자기 어머니를 위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고 일곱 명 모두가 제 몸을 아끼지 안았다지. 추운 겨울에는 어머니가 따뜻한 방에서 지내시도록 나무를 해다 방에 불을 뜨근뜨근하게 지폈지. 그런데도 어머니는 항시 춥다고만 입버릇처럼 말했대. 방바닥이 타도록 불을 지펴대도 춥다고만 말했다나. 일곱 아들들은 그 까닭을 전혀 알 수가 없었고.
어느날 밤, 큰아들이 잠에서 깨어나 잠자리를 보니 주무시던 어머니가 안보였지. 새벽이 다되어서야 자식들 몰래 어머니가 살짝 들어와 자리를 펴는 것을 보고 그 다음 날 밤에 아들들은 거짓으로 자는 척 지켰다가 어머니 뒤를 따라 나섰지. 어머니가 건넛마을 신발장수 홀아비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지 .아들들은 하나같이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고.
신발장수 집에 가려면 개울이 하나 있는데 어머니는 버선을 벗어들고 겨울의 차거운 물 속을 걸어 건너는 것이었고. 맏형은 여섯 동생들을 전부 데리고 가서 밤사이에 돌다리를 놓았지. 이튿날 새벽 집으로 돌아오던 어머니는 저녁까지도 없었던 다리가 있어 신을 벗지 않고서 개울을 건널 수가 있었으니 얼마나 고마웠던지. 달을 보며 손바닥이 닳도록 빌었대.
이 다리를 놓은 사람 마음씨가 저 달보다도 더 밝을 것이니 북두칠성이 되게 해주십시오. 하늘도 칠 형제를 둔 과부의 간절한 소원을 받아들여 7형제가 북두칠성이 되, 어두운 시대의 별빛으로 한 세상 비추게 하였다나
民 譚. 4
-진짜로 가짜 거짓말 대회
옛날 어느 한 고을에, 목이 없는 사람이 목발 없는 지게를 지고 자루 없는 도끼를 메고 뿌리 없는 나무 등걸을 캐려고 모래강변으로 갔었다나. 자루 없는 도끼로 등걸을 캔다는 것이 그만 잘못 되어 발톱 없는 발가락을 찍어 하얀 피가 주르륵 흘러 내렸다지. 의사를 찾아가는 도중 태평동 네거리 육교 위에서 땡초 스님과 고자가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대.
고자는 스님의 상투를 쥐고, 스님은 고자의 거시기를 움켜쥐고 싸웠다나 이 싸움을 가까스로 떼어 말리고 의사를 찾아갔더니 의사는 칼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어. 썩어 들어가는 부위를 도려낼 날 시퍼런 회칼을. 다시 검은 모래강변으로 갔더니, 푸른 하늘에서 소나기가 쏟아져 검푸른 강물이 되어 흐르는데 그만 그 위에 노랗고, 큰 보따리 하나가 떠내려 오더라나.
자루 없는 쇠스랑으로 그 보따리를 겨우 건져내어 펴보니 그 속에는 요즘 세상 돌아가는 정치야그와도 바꿀 수 없는 새빨간 거짓말만 가득가득.
民 譚.5
-소백산 청다리
학문과 덕이 아무리 소중하다 하더라도 예나 지금이나 넘치는 젊은 혈기에
음과 양의 이치를 그 누가 거스를까 영주 부석사, 소수서원에서 공부하는
학자들과 기생들이 짬짬이 그믐밤에 남 몰래 만나 만들어진 아이가
두려워 다리 밑에 내다 버렸더니 엄마, 나 어디서 태어났어요
다리 밑에서 너를 주워왔지, 소백산 자락 소수서원 청다리 밑에서
民 譚.6
-뱀사골의 비밀
삼사월의 진달래, 오뉴월의 철쭉꽃, 칠팔월의 폭포수, 구시월의 단풍길 휘휘감긴
뱀사골에 묻혀 내려오는 전설이 있었는데 칠월칠석날 바위에서 염불을 하면 신선이 되어 훨훨 천상으로 날아간다는 헛소문을 믿은 스님이 밤에 몰래 아래에 있는 연못에서 나온 이무기에 번번히 채여 죽어가자 한 고승이 독을 묻힌 비단가사를 스님에 입히고 바위 뒤에 숨어서 엿보았더니 스님을 잡아먹던 이무기가 독을 먹고 죽었다나. 이는 成佛을 빙자한 人身供養이었는데 半神仙이 되었다해서 半仙里. 계곡이 뱀사골. 스님의 恨과 절규가 진달래, 철쭉, 폭포수, 단풍으로.
4 부: 봄은 또 다시 오네
내고향 錦菊里
봄은 또 다시 오네
赤裳山의 秘密
人生事
달
江
선운사 동백
가을산
關係의 法則
낙엽
천년의 다리
人間複製
지리산
板 門 店
金剛山
統一을 위하여
삶의 노래
솔바람소리 한줌 빌어다
내 고향 錦菊里
중년으로 접어든
초등학교 동창생
몇 명만이 남아서
반 백년 추억을 지키며
곧은 뿌리를 내려온 곳
마을 이장이 된 친구
교회 집사이신 어머니
노인회장이셨던 아버지의
하루하루 삶이 땀으로 배어
곳곳에 스며 흐르고 있는 곳
올망졸망 논두렁길 지나
눈을 감고도 건널 수 있는
마을 앞 실개천하며
솔숲 향기 그윽한 학교 길
동네 안쪽 아름드리 느티나무
사이다병에는 산 메뚜기
양은 다라 가득 미꾸라지
송아지 냇둑에 풀어놓고
풀밭에 누워 바라보던 하늘
별빛처럼 빛나는 유년의 추억
다시 고향에 와봐도
낯익은 얼굴보다는
모르는 사람들만 날 쳐다보고
오솔길을 가로질러 제비처럼
날아가는 새로 난 서해고속도로
시간은 잠시 멈춰 오십 년 전으로
역 주행하며 상륙하여 오고 있는데.
봄은 또 다시 오네
감춰둔 이 마음을 다시
설레이게 하고 하는
새벽까치가 또 운다.
차가운 물이라도 한 잔
들이키며 ,닫쳐 있는 창문을
확, 커틴처럼 열어제쳐야지
기다리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에까지도
가리어 사귀지 않고
어김없이 찾아와 주는
봄은 고마운 손님
엄마는 시장에서
노란 병아리와 오리 새끼를
사다가 풀어놓으실 것이고
고 조그만 놈들이
온 마당을 그림으로 가득가득
채워 색칠해 놓을 터이고
밖으로 뛰쳐나가
양지 뜸의 쑥도 뜯고
마른나무 가지 위에 내비친
보드라운 솜털 버들강아지의
싹눈과 눈맞춤도 즐기며.
赤裳山의 秘密
분홍 갑사치마 폭 속 깊이
숨겨진 비밀을 그대는 아시나요.
풀과 나무 안에
차돌 벽이 있고
속마다 솟구치는 물
찬물은 타는 불이 되고
기나긴 밤을 태우며
심장을 울린다는 비밀을.
아는 것은 아는 대로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아셔도 좋고
모르신다해도 허물은 아니죠
남의 마음 알려고 하지 말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요.
잘하면 사는 맛이.
잘못하면 害가 될 수도.
人 生 事
天上에서
내리는 빗물은
낮은 곳만을 찾아 흐르다
드디어 너른 바다에 이르고
地上에서
불붙기 시작한 불은
높은 곳만을 찾아 오르다
하늘 아래 구름으로 사라지고
하늘과 땅
물과 불의
誕生과 死滅
인생의 삶과 죽음.
달
비운 자리 채웠다가
어느새 기울고, 다시
生成되는 神秘의 탄생
촉촉한 물기 머금은
그리움의 달을 바라보면
人生이 다시 그려진다.
캄캄한 숲 속에 숨었다가
앞산에 살며시 내민 얼굴
불타는 총각, 물오른 처녀.
온갖 豊饒와 崇拜를
한 몸에 받고 나들이 나온
女王이라도 된 듯 환한 미소.
누군가에 끌려가는
가슴 저리듯 가련한
孤獨과 情恨의 여인
초승달. 보름달. 그믐달.
江
江은 역사 속에 세월을 묻고
江은 세월 속에 역사를 싣고
江은 현재 속에 과거를 묻고
江은 과거 속에 현재를 싣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자연은 자연, 인간은 인간
그대로 감싸안고 포용하며
거꾸로 돌지 않는 純理.
그대의 진리는 언제나
자신을 낮추는데 있고
그대의 진실은 언제나
사랑을 심어놓는데 있지.
그대에겐 과거가 없는 만큼
배신과 가슴저린 이별이 없지
그대에겐 끝이 주어지지 않고
흐르는 현재만 허락될 뿐이지
태고에서 오늘, 내일까지
원시에서 문명세계까지도
내민 손 다시 넣지 않고
등돌리며 뿌리치지 않고
버림받은 실개천 수증기
남몰래 흘려버린 눈물자죽
팽개쳐 버리지 않고 한데 묶어
혼탁한 세상 안고 도는 그대.
내가 그대 곁에 다가서면
江은 봄내음 짙은 新婦가 되고
내가 그대 품에 들어서면
江은 가을빛 배인 어머니가 되고.
선운사 동백
봄을 온몸에 휘감고
도회지로 뛰쳐나온
촌색시들 모양
선운사의 해질녘
옹기종기 모여드는
동백 숲 갈래머리
希願과 憧憬의
선을 넘어서기 전
햇살에 제 몸 부벼
절반은 떨어져 내리고
반쯤은 밤에 시달려
色을 다 쓰고 있네.
가을 산
천길 낭떠러지 위에서
연분홍 핏방울이 뚝뚝
이 내 가슴 또 물들라
불타는 知天命의 가을 산
보낸 세월 예쯤서 잡아
차거워진 가슴 더웁히며
해후의 눈물 맘껏 흘리며
길손을 맞은 유년의 추억
흰머리 억새밭 사이사이
짙어 가는 晩秋의 리듬.
關係의 法則
북극의 빙산 위에
불곰과 남극의
설산 위에 살아온
펭긴은 아무 관계도
성립된다 할 수 없지만
체구만 컷지
말수도 적고
우직하기만한
林壯士와 成處女는
하늘과 땅이지만
關係를 맺어주면
純粹도 될 수 있고
志士와 烈女도 되고
戀人과 夫婦도 되어
세상사는 맛 나는걸.
낙 엽
삶의 묵직한 의미를 가득 싣고
계절의 철책을 넘어온 나뭇잎이
시의 가슴에 사뿐히 내려 안는다
살점 떨어져 나간 빈 가지마다엔
비, 구름, 바람, 태양이 빚어놓은
아쉬움의 긴 그림자로 채워 있다.
우리는 여직껏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를
그렇게 사랑하며 그리워하였지만
왜 이 자리엔 나 혼자만 있는가를
낙엽, 우주의 맥백이 뛰고 있음을
가을, 이제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한 나뭇잎이 대지에 떨어질 때
달과 별의 운행과 계절의 순환도
새 생명의 탄생과 죽음의 공포도
세상은 살맛과 희망으로 넘치고
망각의 가지에는 바람도 멈춘 채
새로운 질서에 싹눈만 꿈틀댄다.
봄의 꿈을 꾸면서 잎은 떨어져
색채가 바랜 어둠 속에 묻힌다
세월 속에 묻혀야 하는 이유를
가을은 거부하지 말아야 한다
잎이 시의 가슴속에 떨어질 때
우주는 파란 봄의 깃발이 된다.
천년의 다리
천구백년대의 마지막 晩秋
부패와 거짓말, 서로 물고 뜯는
언론 장악 문씨 문건에다
恨풀이, 날치기, 꼭꼭 묻어두기
고문기술자 이 누구 혐의
有權無罪, 無權有罪
메꿔치나, 바꿔치나
국민의 정부도, 한나라 세상도
천년의 다리는 비좁기만 하고
惡習의 고리만 이어지는 시대
질척한 시대는 이제 가고
천년의 다리 건너 저쪽에는
눈물나게 너무나 인간적인
마음의 꽃밭에 채워줄 향기
백지 위에 그려놓은 수채화
진실과 사랑, 자유와 문화가
새아침을 목놓아 기다리며
쓸쓸하고 속 쓰린 마음 다독여
오색 단풍으로 수를 놓아가며
한 세대를 한땀한땀 채워가고.
人間 複製
우린 무엇 때문에 태어났나
복제 인간이 세상에 탄생되면
질서는 와르르 삼풍백화점
집 떠났던 주인이 와보니
자기와 똑같은 가짜가 이미
진짜 주인노릇을 하고 있었다
주인을 알아보지 못한 식구들
자식과 아내까지도 진짜 주인을
몰라, 진짜를 확인 하려하지만
가짜의 주인행세 앞에는 어쩔수
중국의 복제 미녀 세 명이
건달들을 후려 궁중에 들어가
나라를 말아먹은 이야기가 있고
공상 과학 소설에서는 과학자가
백 명의 같은 아기를 낳게 해
가정과 엄마 아빠도 없는
베이비 대량 생산 주식회사.
아인슈타인이나 마릴린먼로
마이클 조던을 다시 복제하고
클레오파트라, 양귀비 같은
미녀들만 만들면 좋겠지만
많은 후세인이 만들어지면
불바다 중동은 어떻게 될까
독재자 히틀러나 스탈린이
자신의 복제품을 만들어내고
죽은 애인과 자식을 되살려
뼈아픈 슬픔을 이겨낼 수도
있을 수 있다고들 말하지만
인간복제 실험을 막는 일이
인간에 있어 최후의 선택.
지리산
전라 남북과
경남 3 개 도의
남원 장수 곡성 구례
하동 산청 함양 7개 시 군이
하나의 하늘 ,나라 ,지붕 아래서
한솥밥 먹으며 함께 살아온
이름하여 方丈산, 頭流山
전설 속의 三神山
화엄사 , 쌍계사
연곡사 , 천은사, 대원사
법계사 , 벽송사 ,칠불사
합장하며 빌어온 간절한 소망
수천 년을 두고두고 한민족이
아끼며 가꿔온 불심의 발원지.
최남단은 1560 높이 노고단
노고단 위는 춤추는 구름바다
최북단은 1915 미터 천왕봉
천황 일출의 눈부신 나래
솟구치는 힘, 오늘의 희망
반야봉의 장미 다발 낙조
봉우리 골짜기마다는 승경
우레같은 계곡의 물소리
끝없이 내리치는 은하폭포
이 세상 둘도 없는 장관은
불일폭포, 피아골의 핏빛 단풍
희귀 동물들의 낙원
여기는 국립공원 제 1 호
역시 성산 중 聖山이지
후덕한 어머니의 젖무덤
어머니 품에는 우리 형제가
자라나며 성숙해 왔고
신라, 백제. 경상, 전라의 한 지붕
지붕 아래에는 한가족이 오손도손
길 잃고 헤매던 사람도 이곳에만 오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마냥 머물고 싶은 곳
그래서 사람들이 찾아드는 곳
아주 이곳에서 숨어사는 곳.
板 門 店
한양에서 개성 가는 길목 널다리께
쉬어 가는 한 주점이 있어 '板門店
漢字의 세 글자 모두가 여덟 획씩
숙명적 상징일까, 38선의 예언인가
실상보다는 사진첩에서 더 낯익은
유엔군 헌병과 인민군 보초병들이
마네킹보다도 더 굳어버린 자세로
빈집을 이념으로 지켜온 지난 세월
동네 마실 허물없이 다니던 이웃집
피붙이간에 철벽을 쌓은 지 오십 년
민족에 때아닌 구경거리만 만들어 놓고.
천근만근의 적막감만 감도는 산자락
빛 바랜 과거, 유리왕조의 유물처럼
허물어버린 베를린 장벽의 벽돌처럼
녹슨 마음속 철사줄을 한 뼘씩 잘라내
예쁜 액자에 관광상품을 만들어 팔자
눈길만 마주쳐도 실속 없는 설전으로
미루나무 한 그루 때문에 도끼 싸움도
이제는 아픈 과거 이야기로 접어두고
2744 미터 백두산 상상봉 그 위에다
선전마을 인공기 게양대 백 60미터
대성동 마을의 태극기 높이 백 미터
남북통일 깃발 높이 지상 이백 육십
한반도의 미래를 그 위에다 높이자
統一을 위하여
우리 민족은 여직껏
하나가 반쪽이 된 줄도
둘로 굳은 줄도 몰랐다
시간은 逆으로 흘러
일년, 십 년 ,그 다섯 번
변화는 역사의 진리다
순백의 진리 위에다
소망의 푸른 다리를 놓자
반 백년 회한의 절벽을
베르린 장벽처럼 헐어버리고
마음속에 천년다리를 놓아야 한다
자식과 부모의 마음에
남편과 아내의 가슴에
대동강에서 한강까지
서해 하나의 바닷물이 되는
두 강물의 힘찬 만남을 생각하며
서울과 평양과의 사이에
핏줄로 이어진 다리를 놓자
갈라진 두 쪽의 일부가
한민족으로, 한나라 식구로
진정 하나가 될 날을 위하여
다리는 하나로 이어준다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는.
金 剛 山
그대 맞은 후
마음 아파 못 참으면
가슴 쓰려 뜯고싶거든
오늘 훨씬 지난 내일
백지 위에 보물로만
가슴속의 깊은 은유로
소중히 감춰 놓으마.
그대 보낸 후
할 말 다해선 안되지
모습이 아름답다고만
마음 열면 되는 것이고
하고싶은 말 좀 있어도
가슴에 깊이 묻어 놓고
좋은 색깔만 칠하마.
삶의 노래
오늘도
우리의 삶은
파도치는 겨울바다
고요와 안위를 보장받지 못한.
집착은
마음의 그림자
상실은 소유가 되고
소유는 상실이 되는 것
파도를
헤쳐 나가며
가진 것 버린다는 용기
얼마나 홀가분한 삶인가
흘러간
시간을 원망도
찾아 올 시간을 기대도
우리에겐 부질없는 일
시간을
괴롭히지 말자
순간을 耕作의 의미로
꽃씨처럼 뿌리며 살자
버리자
상처와 좌절을
마음속의 찌꺼기는
세파 속에 묻어 보내고
가지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상실한다 해도 사랑만
따스한 우리들의 가슴만 있다면.
솔바람소리 한 줌 빌어다
세월은 강물 흐르듯 하고
저기, 높은 언덕과 바윗돌도
바람에 깎이어 자갈이 되고
다시 부서지어 모래알, 황토흙
한줌의 시간 속에 묻히는데
오직 나만은 천년, 만년을
이 세상 다 차지해 영원히
왕이 되어 살아 갈 것처럼
위치를 높이며 권력을 쌓고
권리를 뺏고 재물을 모으며
오늘도 바쁘게들 살아가지.
가슴이 따스한 사람들 중에
백년 뒤 이 땅에 다시 만나
소주잔이나 나눌 이 그 몇 명
가슴에 새겨 논 세월의 흔적을
마음속에서 종종 쓰다듬어보며
나만은 영원할 거라는 단꿈도
얼마 후면 땅에 떨어지는 낙엽
아픔과 갈등. 사랑과 미움을
세월 속에 묻으면서 찾은 것은
내 앞의 믿음마저도 허상이요
한쪽의 낮달 이었다는 확신을.
늙고 병들고 죽어 가는 모습을
바로 보고 긍정할 수 있을 때
현실의 허상도 사랑할 수 있고
애증에 눈멀지 안아도 되는 삶
욕망의 늪을 헹궈 내는 시간
이 세상을 좀 더 진실 된 것
닫힌 가슴을 창으로 열어놓고
무상한 것들에 매달리지 않고
자유롭고 여유 있게 살아가세
우리 솔바람소리 한 줌 빌어다
떠도는 뭉게구름 속에 올려놓고
세상 찾아 하늘 한번 날아보세.
비극의 땅에 세우는 희망의 기둥
-『바람꽃 해후』의 시세계
金 容 材
<시인․대전대 영문과 교수>
어느날 갑자기 이메일로 원고뭉치가 들어왔다. 전 민 시인의 시집 원고였다. 시집의 제목도 마음대로 정하고, 편집도 알아서 해주고, 시 작품 중 잘못된 것이 있으면 빼도 좋고, 그리고 시집 평설도 붙여주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글이 서두를 장식하고 있었다.
조금은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반가웠다. 믿고 맡겨주는 고마움을 새기며 그와의 인연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1985년 월간《시문학》을 통해 그가 문단에 데뷔한 이후, 그저 출신이 같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와 나는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대하면 대할수록 언제나 따뜻하고 너그럽고 선후배를 잘 알아보고 자신의 일에 충실한 그런 시인이었다. 주변에서 듣는 이야기도 나의 생각과 착오가 없었다. 그러던 중 1991년이던가, 급기야 그와 나는 한국문인협회 대전지회의 일을 맡아 하게 되었다. 연간 2회의《대전문학》발행으로부터 계간회보 발행, 시화전시집 발행, 세미나 개최, 대전EXPO‘93 기념문집 발행(국․영문판), 그리고 문학축전, 문학기행 등 많은 일들을 하였다. 연임 기간의 이 모든 것은 그의 세심한 기획력과 열렬한 성취의욕 및 추진력에 힘입은 것이었다. 그 후로도 그와 나는 호서문학회에서 더욱 가깝게 만나고《시문학》출신들의 한국시문학회 행사에도대부분 같이 참여하고 있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인연도 빼 놓을 수 없는 일이다.
화사첨족(畵蛇添足)이 앞을 가린다고 누군가 말할 것만 같다. 그래도 좋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시보다 사람에 먼저 취했다. 적어도 그와의 관계에선 그렇다. 그러나 생각나는 다른 말이 있다. 프랑스 뷔퐁(Georges Louis Leclerc, Comte de Buffon 1707-1788)의 말이다. ‘글은 곧 그 사람’이라고.
『바람꽃 해후』는 전민 시인의 다섯 번 째 시집이 된다.『주민등록증을 갱신하며』(1990),『가을비 곱게 내리는 저녁나절에는』(1992),『그대 마음 훔쳐싣고』(1995),『가슴꽃 이야기』(1999)에 이어진 것이다. 바람 따라 피었다가 쉽게 지고 마는 사랑과 이별의 다채색 무늬를 드러내는 바람꽃을 혼(魂)의 꽃으로 파악하며 이 꽃에 비유하여 남북 이산가족 문제를 조명하여 사랑과 한(恨)의 정서를 심고 있다. 우리들 현실의 아픔을 다룬 <바람꽃 해후>가 그대로 시집 표제가 된 것이다.
앞에 나온 시집들과 큰 변화를 보인 것이 없는 듯 하면서도 전민 시인은 이렇게 현실 문제를 더 많이 포용하고 문명추구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상실기능의 인간성 문제, 환경문제 등 현대적 맥락의 주제들을 밀착해서 다루고 있다. 물론 그의 시는 서정성의 근원적 힘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사물을 보는 상상력과 자신에 대한 통찰력이 상승기류를 타고 있다는 것을 또한 기쁘게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바다>를 보자.
삶의 무게에 짓눌려
가슴이 답답하여 올 때
야위여 가는 오늘의 그믐달을
어제의 보름달로 잘못 바라보다가
고향 냄새가 못내 그리워 올 때엔
태초의 태양과 시원한 바람을 잉태한
영혼의 태반, 어머니, 저 바다로 가자
바다 해(海)자에는 어미 모(母)자가
바닷속에는 자비의 손결이 있다
일렁이는 파도를 첫아이처럼
돌보는 바다에는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의 다소곳 여민 가슴속에는
높은 하늘과 깊은 바다가 있다
天地가 하나로 만나는 수평선 위에는
사랑과 은혜가 점선으로 그어져 있다.
-<바다> 전문
바다는 전민 시인의 시심의 안식처이다. 삶의 무게를 의식할 때, 그래서 가슴이 답답할 때, 또는 현실을 보는 착각의 눈을 의식할 때, 그는 바다로 간다. 바다에는 고향냄새가 있고 시원한 바람이 있고 원시성의 순수가 있다. 바다는 곧 영혼의 태반이며 어머니인 것이다. 시인은 마침내 바다(海)속에 어머니(母)가 있음을 설파한다. 어머니는 곧 일렁이는 파도를 첫아이처럼 돌보는 자비의 손결로 상징된다. 이제는 어머니의 가슴속에 하늘과 바다가 들어와 있게 된다. 어머니의 가슴속에 들어온 그 하늘과 바다는 사랑과 은혜로 점철된다. 끝없는 연모의 세계이지만 그러나 시인은 그 세계를 현실로 맞이하고 있다.
<바다>에서 어머니의 가슴을 찾은 시인은 <菊花>에서 자신의 마음을 인지한다.
내 너를 좋아하는 연유는
사라지는 계절의 뜨락에서
삶 자체가 표현이기 때문
눈물겨운 가식과의 전쟁이
그대만의 색깔과 향기만이
마음밭 풀숲의 한 모퉁이에
의미다운 꽃으로 피기 때문.
화려한 보상을 꿈꾸지도 않고
픙성한 열매를 목표하지도 않고
짧은 세상 살아가는 것이
세속적인 잔치도 아닌 것이
마음과 가슴의 텅 빈 자리에
고집스런 삶의 향기론 의미로
꽃답게 다가와 피어주기 때문.
-<菊花> 전문
시인이 국화를 좋아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는 이 시는 곧 시인의 마음이라 해도 좋을법하다. 소박한 삶을 가식 없이 그 자체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은 풀숲의 한 모퉁이에서 자신만의 색깔과 향기를 의미있게 지니고 있다는 점, 화려한 보상 풍성한 열매 세속적인 잔치에 아랑곳하지 않고 외곬로 품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 이런 점이 곧 시인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이다.
전민 시인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무엇보다 국화가 곧 그 시인의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시를 소리 내어 읽는다면 전민 시인이 곧 옆에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의 시를 보도록 하자.
知天命의 텃밭을
튀어나간 불씨 하나
가을 산을 태운다
잎도 태우고
줄기도 태우고
뿌리까지 태운다
夕陽에
추억만, 그대처럼
가슴속에 숨어있다.
-<단풍> 전문
知天命은 나이 50을 가리키고 텃밭은 집터에 딸린 밭이다. 따지고 보면 知天命의 텃밭은 50대 시인의 마음밭인 셈이다. 그 마음밭을 튀어나간 불씨 하나가 불이 붙어 들어가는 듯이 가을 산을 태운다고 했다. 잎도 태우고 줄기도 태우고 뿌리까지 태운다고 했으니 온 몸을 온통 다 태우고 있는 것이다. 결국 불타는 듯한 가을 산의 짙은 단풍은 시인의 가슴을 튀어나간 불씨 하나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곧 시인의 마음과 불타는 듯한 단풍은 동일시(identification)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단풍은 다시 시인의 가슴으로 회귀(回歸)한다. 석양에, 추억으로 말이다. 모든 부끄러움과 미망(迷妄)의 세월을 다 태우는 듯한 가을산 축제의 교향악이 시인의 마음을 더욱 휘젓고 있는 것이다. 자기응시의 공간을 넓히고 자신에 대한 통찰력을 심화해가는 시인의 마음이 잘 배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찾는 사람은>, <꿈>, <삶>, <나는, 오늘> 등도같은 계열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제우스가 판도라에게
건네준 선물상자 속에는
절대로 열어서는 안 되는
인간의 모든 죄악과 재앙이
여직껏 보석처럼 숨겨 있었지
호기심을 참지 못한 채
상자를 열자 그 안에서는
精品으로 포장되어 쌓였던
폭력, 부패, 기아, 전쟁 등이
바람 따라 온 세상을 덮어가고.
맨하탄의 아침
인류의 최고 자존심
쌍둥이 건물이 날아가자
하얀 터번과 콧수염을 찾아
카불의 밤은 반딧불 폭격 먼지만 일었지
우리는 이제
열린 판도라 상자를 덮고
힘에 눌려 튀어나오지 못한
사랑과 용서, 자유와 평화를
후손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을까.
-<판도라 상자> 전문
<판도라 상자>는 현대의 극단적 테러에 대한 비유적 고발이며 자유와 평화를 갈구하는 화해의 메시지와 같은 것이다. 전 세계 인류를 경악케 했던 2001년 9월의 110층 쌍둥이 건물의 증발, 그 건물은 미국의 부와 번영의 상징이요 여기 시인이 말하고 있는 대로 ‘인류의 최고 자존심’을 세워 놓은 것이었지만 고속 제트기가 그 건물을 들이받는 비극 속에 세상은 충격의 늪에 빠져 들었다. 하얀 터번과 콧수염의
오사마 빈 라덴 이라고 하던가, 근원적 원흉을 찾아 카불의 밤은 정말 반딧불 폭격 먼지만, 일은 것이 되었다. 보복이나 응징의 전과에 대한 효력을 따질만큼 시인의 마음은 편안한 것이 아니었다.
인류의 불행을 초래한 판도라 상자의 현대판 죄고(罪苦)는 곧‘폭격, 부패, 기아, 전쟁, 등이고 이것들이 바람따라 온 세상을 덮어가고 있는 것을 한탄하지만, 그러나 시인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 희망은 판도라 상자를 급히 닫는 통에 튀어나오지 못하고 남아있던 것이며 곧 이 시에서 나타난‘사랑과 용서, 자유와 평화인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그러나 긍정적인 답을 확인할 수 없는 것이 또한 안타까움일 것이다.
하늘나라의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와 상자를 열은 에피메테우스는 형제간이었고, 에피메테우스는 판도라의 남편이었다. 오늘날에는 이런 사람들이 더 많이 연결고리를 이루고 있을 것이다. 판도라 상자의 비극속에 묻혀있는 희망의 끈을 잡고 시인의 사유세계는 깊어가고 있다.
신판 맹수들의 가미가제로 파악한 같은 내용의 <哭, 쌍둥이 빌딩> 언론장악 문건, 고문 기술자 등 악습의 시대를 꼬집은 <천년의 다리>, <TV 속에서>, <세상보기>등 현실 문제를 포착한 작품들이 현저하게 눈에 띤다.
이 시집의 표제로 뽑은 <바람꽃 해후>를 비롯해서 <판문점>, <금강산>, <통일을 위하여>등은 남북분단문제로 이어지는 아픔과 소망이 엉키어 있어 역시 현실적 주제의 울림으로 와 닿는다.
환경문제와 연관된 작품을 더 살펴보기로 하자.
캄캄한 밤보다는
대낮이 더 무서워요.
맹수보다는
인간이 더 무서워요.
자연 파괴범이 들어왔어요
못된 인간들이 몰려와
하늘이 내려다보고
가족이 지켜보는 앞에서
어린 풀꽃의 목과
나뭇가지를 비틀어 꺾으며
나의 온몸을 더듬고 있어요
치마폭을 헤집고 있어요.
-<바람이 떨어뜨린 쪽지․1> 전문
현대 문명으로 얼룩진 인간의 붉은 정액이 녹색 대지의 온몸 구석구석을 꿈틀거리며 헤집고 오는 세월마저 나의 목을 바짝바짝 조르고 있어요. 살려주셔요. 자연이 인간에 보내는 이 쪽지를 보시는 대로. 어서 빨리요 하느님.
-<바람이 떨어뜨린 쪽지․2> 후반부
자연이 인간에게 보내는 편지를 시인이 먼저 보고 있다. 편지내용이 곧, 못된 인간을 고발하는 것이다. 인간은 남성으로 자연은 여성으로 나타나 있으며, 인간은 맹수보다 더 무섭고 벌건 대낮에 목꺽기, 비틀기, 강간행위를 일삼는다.
인간의 붉은 정액은 현대문명의 산물이다. 역시 자연 파괴범이며 살상범에 속한다. 결국은 하느님에 호소하며 절대의 힘을 요구한다. 하느님이 인간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전하는 아무런 메시지도 없지만, 우리는 그 메시지를 읽고 있어야 할 것이다.
<간월도의 철새>나 <영월 동강에는>등 환경으로서의 현실문제를 다룬 작품도 같은 입장에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 간략히 일부만의 시를 살펴보았다.
자기성찰의 세계를 추구하면서 건강한 이상향을 그려내는 시인은 무욕과 관조의 폭을 확장해가고 있다. 그러나 문명에 오염된 현대의 길을 가면서 헤쳐야 할 가시숲을 외면할 수는 없다. 폭력, 부패, 기아, 전쟁, 분단, 환경문제, 그리고 악습의 사회문제 등 시인의 시적 에스프리는 변용의 터널을 거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향토적 순수성이나 건강한 인간성을 심어내는 온후한 힘은 시를 읽는 맛을 더해주고 있다 할 것이다. 많은 시편들이 비극의 땅에 세우는 희망의 기둥 같아서 시 읽는 마음이 미더울 것이다.
큰 기둥으로 서시길 빈다.
평자 : 김 용 재 / 시인 , 대전대학교 영문과 교수
글의 제목 : 비극의 땅에 세우는 희망의 기둥
수록 책 명: 시집 『바람꽃 해후』
연도: 2002년
전 민 (田 玟)
*1948년 충청남도 홍성군 출생
*1985년 시문학 추천 등단
*홍성고등학교(1968 ) 공주교육대학( 1970 )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1989년 석사)
* 한국문협대전지회 사무국장, 이사, 감사 역임 (1991- 2004 )
현재 한국시문학문인회 이사, 호서문학회 부회장, 한국현대시인협회 중앙위원, 대전 서구문화원 이사 , 새여울 동인, 충남고등학교 교사
*시집 :『주민등록증을 갱신하며』.
『가을비 곱게 내리는 저녁나절에는』
『그대마음 훔쳐 싣고』.
『가슴꽃 이야기』
『바람꽃 해후』
『그리움에 불타는 마음밭』
*대전문학상 (1993) 대일비호대상 문화부문 (2000)
대전시인상 (2003) 대전시문화상 문학부문(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