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게 비행하는 정찰기, 땅거죽을 긁어대는 캐터필러소리, 완전군장을 한 경비초소를 지나고부터 나는 새삼 긴장하기 시작한다. 차에서 내려 촉수검색과 차량검색을 받을 때에도 그들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사막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래먼지 사이로 달처럼 떠있는 태양이 딴 세상처럼 낯설게 막아선다. 군데군데 돋아난 사막식물 몇 그루가 포복한 병사처럼 엎드려 있고 그 사이로 길처럼 나있는 지평선이 유일하게 나를 맞아준다. 바람과 모래먼지와 태양을 거느린 지평선. 저런 지평선을 본 지 얼마나 되었나 생각하니 가뭇하기만 하다.
고향 대정읍을 떠나던 날, 억새 오름의 촐(草地)에서 내려다보던 애월 쪽의 지평선을 본 이후로 처음이다. 아마 십 오년은 넘은 듯했다. 아슴한 고향의 기억도 잠시, 따귀 치듯 달려드는 모래바람에 코와 입은 사막의 포로처럼 점령당하고 만다. 국경검색대를 지날 때 벗은 마스크는 먼지 범벅이라 다시 쓰기 싫었고 김 사장이 준 터번만이 무기처럼 겨우 사막을 건너는데 위안이 되었다.
나는 그제야 아랍인들이 히잡과 터번, 부르카를 쓰는 이유를 이해한다. 김 사장이 운전기사와 차를 갖고 나오지 않았다면 온전히 그곳까지 들어갈 수 있을까. 페트병을 두개나 비웠는데도 입안에 침은 좀체 고이지 않고 풀섶에 갈기는 오줌줄기도 시원치 않았다. 두 시간여를 달려온 끝에 맞이한 바그다드 외곽. 먼지 속에 숨어있는 사막식물에 오줌줄기를 뿌리다 말고 나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몸을 떤다.
끝없이 불어대는 바람과 한사코 달라붙는 먼지 속에서 생명을 유지하는 식물을 보며 나는 다가올 시간과 만나게 될 사람들을 얼핏 떠올려본다. 식물도 짐승도 살지 않는 이 광막한 땅에 왜 자청해 들어왔을까 나도 모르게 후회가 인다. 바람 속에 몸체를 감추고 끝없이 모래를 끼얹어 대는 사막바람에 나는 그만 등을 돌리고 만다.
차로 돌아온 나는 압둘라가 건네준 터번을 목에 감는다. 먼지에 몸체를 감추고 살아가는 사막 식물처럼 나는 철저히 현지인처럼 위장한다. 새벽녘 요르단 암만 공항에 내려 호텔에서 눈을 부치고 떠난 뒤 두 시간이 지났지만 사막은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였다.
"고 목사님, 바그다드 쪽은 매우 위험해요. 나자프도 치안이 나쁘긴 하지만 그래도 저희들 숙소를 중심으로 몇 개 마을이 그나마 움직일 만한 정도죠."
미합중국 군대 현지 보급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김 사장은 내 또래쯤 되는 자그마한 체구를 지녔다. 피터 소개로 만난 지 겨우 몇 시간 밖에 안 되지만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그 밖에 없었다. 색도 없고 장식도 없는 군용 짚은 바람 길을 가르며 전진한다. 나는 차벽을 툭툭 두드려 본다.
"여기선 물과 자동차 없인 단 한 시간도 견디지 못해요."
터번 사이로 김 사장이 웃는다. 이 세상에서 믿을 만한 것은 하느님 밖에 없다고 전파해온 나지만 그의 말은 어쩐지 그럴 듯하게 들려온다.
멀리서 밀어닥친 바람은 금세 모래 먼지를 끼얹고 꼬리를 감추며 달아난다. 바람 길을 트며 낙타 떼가 오고 있다. 등이 솟은 짐승이 희끔한 광야에 어른거린다. 눈을 비비자 낙타는 사라지고 터번을 쓴 캐러번이 서 있다. 다시 모래먼지가 휘오리 바람을 일으킨다. 이번에는 터번이 모래와 함께 순식간에 사라진다. 고개를 끄덕이던 나도 바람을 타고 물이랑 위를 떠다닌다. 꽃들이 물이랑 위로 하나 둘 피어난다. 물을 건너 어디론가 떠나가는 조부. 나는 놓칠세라 조부를 따른다. 우리는 꽃밭에 서 있었다. 흰 모시 적삼차림의 늙은 조부는 입술을 달싹인다.
서천의 꽃은 하늘이 키웠단다. 누구도 하늘의 허락 없인 그 서천 꽃밭의 꽃을 가져 갈 수 없었다. 하늘에선 이 서천 꽃밭을 지키는 관리를 두었지. 똑똑하기로 소문난 원강암이의 사랑하는 남편 사로는 꽃감관으로 임명을 받았단다. 그러나 아내 원강암이 임신을 하는 바람에 데리고 갈 수가 없어 재인장자 집에 맡기고 사로 혼자 임지로 떠났단다. 제인장자는 원강암이를 사랑한다며 괴롭혀댔단다. 원강암은 아이를 낳을 때까지 참아달라고 애원했지. 원강암이 드디어 아이를 낳았는데 그가 할락궁이다. 그러나 자신과 아이를 지키기 위해 장자의 비위를 더는 거스를 수가 없었단다. 원강암은 할락궁이라도 살리기 위해 남편 사로에게 아들 할락궁이를 보내고 끝내 재인장자의 손에 죽고 말았지. 훗날 할락궁이는 사로가 내준 꽃을 가지고 다시 돌아와 어미 원강암의 원수를 갚는단다. 그때 사용한 꽃이 바로 수레멸망 악심꽃이란다.
바람이 분다. 대나무가지가 바람을 타고 요란스럽게 나부낀다. 오색 지화(紙花)가 대나무 잎에 매달린 채 흔들린다. 바다 물굽이가 파란 이랑을 일으키며 달려든다. 바닷가 바위 앞에 굿청이 차려져 있다. 꽃관을 쓴 조부는 너그러운 미소를 머금고 나를 굽어본다. '우리 조근(작은) 놈아. 어여 커라. 한 이도 꺼들고(큰 바위 쳐들고) 아끈 몰(거친 해초)도 끊어라 불쌍한 느그 아베 한도 끊어주라.' 4·3 사건으로 산 속에 숨어 살다 목숨 보전만은 겨우 했던 아버지가 산 속 생활에서 얻은 병으로 죽던 날, 조부는 소미심방(助巫) 둘을 데리고 귀향풀이를 했다. 당신의 자식이 남이 아닌 당신 손에 해원제를 받아 극락천도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조부는 어린 내게 꽃다발을 안겨 주었다. 그것은 꽃다발이라기보다 오색 꽃술로 치장된 푸른 대나무 다발이었다. 봄이면 잎새 없이 돋아나는 왕벚꽃도 아니요, 불타듯 피어오르는 산철쭉도 아닌 파란대나무 지화. 언젠가 나는 조부에게 '심방질 하기 싫어. 이런 게 무슨 꽃이야' 하며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조부는 조상의 뒤를 이어 심방(巫堂)이 되어야 아버지처럼 죽지 않고 오래 살 수 있다며, 세상의 어느 꽃도 서천 꽃의 아름다움과는 견줄 수 없다고 했다. 도대체 서천 꽃밭의 꽃은 얼마나 아름답기에 종이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까.
나는 아버지를 여의고 조부 손에서 지화를 쥐고 무업을 배우며 자랐다. 조부는 유명한 메인심방이어서 문화재로 지정받고 시에서 주는 전수금으로 근근이 살아왔다.
챙, 그때 날카로운 금속음이 귀청을 때린다. 나는 비몽사몽 속에서 깨어난다.
"반군이다. 압둘라, 래프트턴!"
김 사장은 다급하게 외쳤다. 나도 모르게 가슴을 훑어보지만 아픔은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 총탄은 보닛 위를 맞추고 튕겨나간 듯 했다. 모래 웅덩이 어딘가에 숨어 지나가는 차를 습격하는 반군들은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날 것이다. 나는 황망한 중에도 사방을 훑어보지만 반군의 모습은커녕 총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차가 왼쪽 도로로 꺾이자 큰 나무 몇 그루가 경호원처럼 우리를 호위한다. 사막에 저런 큰 나무라니, 생각하자 나자프가 멀지 않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나무들이 드문드문 서있는 곳에 이르자 강으로 짐작되는 모래 수로가 나타난다. 물은 거의 말라붙어 있어 건천이나 다름없었다.
"오아시스, 들어보셨죠? 이곳 도시들은 나무와 샘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해서 마을이 생겨났어요. 오아시스의 규모에 따라 씨족, 부족사회가 형성된 거죠. 나자프는 저 강 때문에 커진 도시에요."
김 사장은 오아시스를 그렇게 설명하지만, 나는 오아시스가 유목민이나 캐러번(隊商)의 휴식처 정도로 생각한다. 신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떠올린다. 광야를 떠돌며 살아가는 아라비아 사람들의 운명은 그들의 선조에게 책임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동생 아벨을 질투심 때문에 살인한 카인이 쫓겨난 곳도 바로 이 광야였고, 야곱의 후처 아들인 이스마엘이 쫓겨난 곳도 이곳 사막이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성에서 나와 두 딸과 교접해 낳은 모압과 암몬의 후손들이 사는 땅 역시 이곳 어디쯤일 것이다. 죄를 지은 자들이 쫓겨나 정착한 사막은 천형의 땅인 셈이다. 나는 성서에 기록된 역사를 배웠고 그 전통을 이어받은 기독교의 정통 종교인 침례파 성직자로서 부여받은 임무와 권위를 매우 흡족히 여겼다. 이곳에 자원한 것도 스스로의 운명을 알지 못하는 그들이 안쓰러워서였다. 이제 사막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누구인지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그들을 전도해야 할 사명이 오롯이 내게 있다고 믿었고 그런 임무를 부여받게 된 것을 운명처럼 기꺼이 받아들였다.
"고 목사! 우리의 목적은 황무지에 꽃을 피우는 일이요. 이런 대역사적 소명은 우리 외에 어느 누구도 실천할 수가 없어요. 단 한 명이라도 좋아요. 꼭 그곳에 피울 꽃씨 하나만이라도 건지세요. 도착하면 교회 건물부터 얻으시고. 교회 이름은 쉴로락(안녕하세요)으로 하세요."
선교회장인 피터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게 이라크 선교사 임명장을 수여했다. 차가 사거리 앞에서 잠시 정차한다. 나는 바깥바람을 쐬려고 차창 문을 내린다.
"안돼요, 고 목사!"
김 사장의 목소리는 의외로 단호했다. 방탄유리로 장착된 짚만이 곧 우리의 안전벨트며, 차의 창문을 여는 것은 곧 자살행위라 했다. 그러고 보니 창문너머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어설픈 표정을 지어 실수에 대한 미안한 감정을 추스른다. 창문이 닫히고 나자 총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다.
"매사에 조심하세요, 비어있는 건물. 접근하는 장사꾼. 지나가는 차 모든 것을요."
나는 김 사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라크 인을 전도하러 온 내가 이라크인을 상대할 때마다 살피고 방어해야 하다니. 그들은 독재자의 노예로서 살아온 불행한 사람이고 석유자원이 풍부한 부국에 살면서도 식량걱정을 해야 하는 불행한 민중이었다. 결혼제도의 모순, 육식과 음주마저 통제되는 종교제도 역시 문제였다. 나는 대다수 이라크인들이 겪는 불행한 삶을 해방시켜주는 새 종교의 씨앗을 뿌려 이 황막한 땅에 반드시 행복의 꽃을 피워 내고 싶었다.
"지난번 한국 목사, 두 번씩이나 선교차 입국 시도를 했지만 모두 실패했어요. 그들은 용기만 충천했지 여기 사정을 너무 모르셨거든요."
나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우리 선교회가 그들의 선교 실패를 전해들은 것은 지난 달이었다. 우리 쪽에서는 벌써부터 아랍지역 선교에 총력을 기울이고 선교사를 모집해 훈련까지 돌입한 상태였다. 특히 강인한 체력훈련을 기본으로 해 사막의 기후 적응훈련과 아랍인들을 상대하는 법, 이슬람의 문화 등을 중점적으로 가르쳤다. 발탁된 세 사람 선교사 가운데 한 사람은 리비아로. 한 사람은 아프간으로 그리고 내가 이라크 임지를 부여받았다. 피터회장은 기대 섞인 눈빛으로 내 손을 굳게 쥐었다. 황색피부를 가진 나는 해풍과, 거친 파도와 벗 삼아 살아온 강인한 체력과 서른다섯의 젊은 나이에다 하나님과 교단을 위해서라면 순교도 마다하지 않을 굳은 신념까지 지니고 있었다. 무릇 인간의 마음은 나뭇잎처럼 수시로 흔들리기 쉽고 풀잎처럼 굽히기를 밥먹듯 하지만 신을 향한 내 마음은 언제나 고향의 용두암처럼 꿋꿋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피터회장은 그런저런 이유로 세 명의 선교사 가운데 나를 가장 위험한 이라크 지역 선교에 파견했던 것이다.
시내는 하얀 포연 속에 잠자듯 누워 있었다. 저녁 해가 아직 기울지 않았는데 거리엔 행인이 뜸했다. 기껏해야 삼사층 높이의 그만그만한 건물들이 들쭉날쭉 머리를 잇대고 있는 도심지와 이삼 백 미터 떨어진 곳에 김 사장의 회사와 숙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두 손을 모으고 여호와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애리조나주 피닉스시로부터 출발해서 삼박사일 만에 무사히 도착했음에 대한 감사였다. 이제 이곳에서 터번을 쓴 아랍인의 마을에 여호와의 꽃을 피우는 대 역사를 이룰 수 있게 해달라 간구한다. 어둠이 사위를 감싸고 고즈너기 이울자 건물에서는 불빛이 하나둘 돋아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불빛들은 가난한 그들의 살림처럼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석유 부국의 도시 꼴이라니, 나는 바깥을 내다보며 혀를 끌끌 찬다.
간헐적인 총성은 전선 없는 전쟁터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따금 포성 같은 울림이 창문을 흔들기도 했다. 나는 다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다. 알라보다 더 강력한 여호와를 무기로 한 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려 애쓴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무슨 일부터 시작해야 하나, 머릿속으로 계획을 실행할 방법을 강구하는데 노크 소리가 들린다.
김 사장의 안내로 식당에 앉은 나는 오랜만에 쌀밥과 된장국을 먹는다. 아련한 향수가 밀려온다. 병원청소, 시장짐꾼, 암자와 굿 당 청소부를 전전하던 어느 날, 무당 선교를 하러 들른 피터목사의 눈에 띄어 굿 당을 떠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크나큰 축복이 아닐 수 없었다.
피터선교회, 그들이 베푸는 대로 새로운 진리의 도움으로 신학교를 다니고 미국으로 넘어가 영주권을 얻기까지 나는 모두 피터목사가 시키는 대로 따라 했으므로 한가롭게 내 개인적 감상에 빠지거나 공상을 할 여유가 없었다. 오히려 조부의 무업을 이어받을 처지에서 만나게 된 피터목사와 여호와께 감사할 따름이었다.
기억이란 고통을 되새김질하게 만드는가.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숱한 기억의 파편들. 나는 그럴 때 마다 기도문을 읊조렸다. 아슴아슴 다가오는 과거의 흔적들을 지우느라 눈을 부비고 식당 창문너머로 시선을 돌리는데 이상한 그림이 먼저 달려든다. 벽화였다. 시안(西安) · 난쪼우 · 우르무치 · 타슈켄트를 거쳐 바그다드 나자프까지 지명을 따라 그려진 비단길 이정표는 세월의 나이테처럼 낡아 있었다. 나는 떠나올 때 들은 대로 아라비아 문명의 찬란한 과거와 독재자의 손에 피폐해진 현재를 머릿속에 함께 떠올렸다.
"낼 낮엔 거리 구경을 하실 텐데. 절대 티를 내시면 안돼요. 그나저나 안전한 건물이 얼마나 될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피터 목사로부터 받은 달러와 개인적으로 준비한 것까지 가져온 돈이 얼마나 되는지 속으로 헤아려본다. 약 만 달러가 조금 넘을 것이다. 선교에 쓸 비용은 김 사장 회사를 통해 송금될 것이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지난번 한국 목사, 실패 원인이 뭔지 아시죠? 너무 서두르면 안 됩니다."
그래도 의사라고 둘러대 목숨만은 건졌지만 무모하기 짝이 없는 시도였다. 언어 소통도 안 되면서 통역이나 가이드조차 대동하지 않았고, 현지 정보도 어두웠다. 나는 목숨을 건진 것이 그나마 천운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럼 뭘 해요. 두 번째 입국을 시도할 땐 국경도 통과하지 못했는데요."
피터목사도 그 점을 염려했다. 미국 정부 고위 관리의 연구재단에서 자금 지원을 받고 있는 우리의 선교본부는 이슬람지역 선교를 주요 목표로 삼고 있었다. 나는 딱딱한 침대에 등을 댄 채 잠을 청한다. 열을 세기 무섭게 잠이 드는 나는 긴 여독에도 불구하고 선잠에 시달린다. 귓가를 맴도는 총성과 장갑차의 캐터필러 소리가 이명처럼 들려오는가 싶으면 어느새 정찰기의 엔진음으로 바뀌곤 했다. 어디선가 사막 바람이 불어오는 듯 벽을 후려치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온다. 나는 어둠 속에서 이따금 고개를 들어 손수건만한 창 너머로 시선을 주다가 쓰러지듯 자리에 눕는다.
꿈만 꾸면 나는 해풍에 날뛰는 파도를 만난다. 고향 바다와 댓가지를 들고 바람 앞에 춤추는 해변 당터의 '좀수'(海女)들이 무리지어 나타난다. 물 허벅 하나씩을 차고 바다 속을 뒤져 소라 전복 오분작을 건져 올리는 무리 속에 어머니가 보인다. 어머니는 조부가 권하는 무업을 잇지 않고 좀수로 살기를 고집하다 그 바다 속 어딘가로 사라진 후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무업을 반대하는 어머니마저 없는 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뭍으로 도망치는 일 뿐이었다. 이따금 내 잠을 방해하며 찾아드는 고향 바다와 조부, 그리고 가족들……. 나는 세차게 도리질친다. 고향이란 대체 무엇이기에 내 마음에 씁쓸한 물기를 돌게 하고 찝찔한 눈물을 흘리게 할까. 아직도 내 믿음이 부족해서 그럴까. 나는 다시 야훼를 부르며 악마 같은 무당과 지화가 날리던 고향 바다를 훠이훠이 내좇는다.
바람이 잔 아침 날씨는 모래 먼지까지 거두어 갔는지 평온해 보인다. 김 사장의 차는 얌전한 나귀처럼 나를 태운다. 햇빛 아래서 건물들은 하얀 속살을 거의 드러낸 채였다. 총탄 자국이 더덕더덕한 건물 앞에서 차가 멎는다. 시가전을 겪은 지 일 년이 지났는데도 복구되지 못한 건물이지만 사람을 맞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나는 김 사장의 주문대로 터번을 깊숙이 둘러쓰고 2층으로 올라간다. 40여 평 남짓 되는 공간은 가운데 시멘트 기둥 네 개에 떠받친 채 텅 비어 있다. 앞의 3분의 1 면적에 제단을 만들고 의자를 들여 놓으면 교회로 쓰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듯했다. 게다가 기둥을 이용해 벽을 치면 기도실과 침실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유리창에 철창을 두르는 게 어떨까 생각하며 다가가보니 건물 아래로 광장이 한 눈에 보인다. 그 앞으로 이슬람 사원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훗훗 회심의 웃음을 토해낸다. 선교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위치였다.
계약은 어렵지 않게 이뤄졌다. 내부 공사는 당연히 현지 업자를 통해 하기로 합의한다. 이방 선교방법의 기본은 현지인에게 일감을 주는 것이다. 간판에다 쓸 교회이름은 <나자프 쉴로락 선교회>로 결정하고 선교본부에 이곳 상황에 대한 진행 사항을 메일로 보낸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어 자부심을 느꼈다. 나는 선교본부에 튼튼한 차도 한 대 구입해 달라고 요청하는 걸 잊지 않는다. 김 사장이 소개한 무하마드는 턱수염이 아주 많은 사람이다. 예전에 보았던 인도인이나 위구르족처럼 얼굴과 머리숱이 검고 몸체도 튼튼해 뵈는 전형적인 아랍인이다. 그가 데려온 인부들에게 나는 비교적 넉넉하게 임금을 책정해 주어 환심을 사려고 노력한다.
"아직 저항세력이 완전히 소탕되지 않은 상태니까 조심하셔야 됩니다. 특히 외진 곳이나 밤길은 철저히 피하시고 현지 사람이 권하더라도 집에 따라 들어가지 마세요."
무하마드도 김 사장과 똑같은 말을 했다. 이곳은 바그다드나 모슬 같은 도시보다 훨씬 안전하긴 하지만 바그다드에서 외국인들이 납치돼 참수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부터 주의경계령이 내려진 곳이었다. 무하마드에게 일을 맡긴 나는 주로 이슬람성전을 배회하면서 그들의 동태를 살핀다. 사이렌이 울리면 천을 펴고 바닥에 꿇어앉아 참배하는 그들의 의식은 내가 드리는 예배보다도 경건해 기분이 상할 정도였다.
마호멧은 619년 메카뒷산 하라산 동굴에서 기도하던 중 홀연히 천사 가브리엘을 만나 계시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주신은 유일신 알라이고 경전은 코란이었다. 코란은 유대교 경전의 하나인 모세오경과 그리스도 전승, 그리고 여러 가지 사회적 관습으로 이루어져있다. 사본은 주로 낙타골편, 목간, 암석에 새겨져 전해졌다. 시나이 산과 알렉산드리아 동굴에서 발견된 양피 · 독피 · 파피루스에 새겨진 두루마리 성서와 비슷한 다른 형태로 전해져 온 것이다.
한때 한국인이었지만 지금은 영주권자로 곧 미국시민이 될 내 국제적 감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그였다. 더구나 마호멧의 교리를 떠받들고 따르는 이곳 사람들의 맹신적 태도에 대한 반감을 억누를 수 없었다. 오랜 독재의 압제 아래 굶주리며 살아온 그들을 해방시켜준 미국의 은인에게 면류관과 월계수를 꽂아주지 못할망정 총칼로 저항하고 납치 · 폭탄테러를 자행하는 데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무지몽매의 극치요 배은망덕의 표본이었다. 납치 · 살해는 자폭테러보다 더욱 잔인한 보복행위였다.
이란 제목으로 미 전역에 방영된 참수장면은 미국인들에게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머리를 잘라 죽이는 참수(behead)는 컷 헤드 옵(Cut head off)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주로 죄인을 처형하는 형 집행 수단이었다. 무역센터가 테러를 당할 때보다 훨씬 자극적인 테러가 아닐 수 없었다. 나는 그 순간 어렸을 때 들었던 신라의 이차돈을 떠올렸고 하얀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는 순교자의 최후를 그려보았다.
이차돈은 법흥왕 15년에 스스로 왕궁 앞뜨락으로 나아갔다. 그곳에는 대소신료 뿐만 아니라 일반 서민들도 다수 포진하고 있었다. '자, 나의 목을 치시오. 나는 결코 새로운 진리를 져버릴 수 없소. 그대들은 어찌하여 서쪽에서 불어오는 도도한 목소리를 듣지 못하시오. 우리의 눈은 새로움에 목말라 있고 우리의 귀는 신비에 애달파하고 있으며 우리의 정신은 불가해한 저 세계를 이해하지 못해 울고 있습니다. 고귀한 왕족의 후예로 태어난 우리가 당의 비단을 몸에 감고 페르시아 유리잔에 술을 채워 마시고 기름진 음식이나 먹는게 삶이라 자족한다면 이 얼마나 비통하고 슬픈 일입니까?
이차돈은 왕족으로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사는 자였다. 그런 그가 선택한 길이라면 뭔가가 있으리라. 죽음도 두렵지 않을 만큼 그를 사로잡았던 진리는 무엇일까. 여느 왕족들처럼 고귀한 삶을 살기에도 지칠 터에 고통의 길을 택한 그의 신념은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었다. 나는 이차돈이 택한 신념의 정체가 궁금해 견딜 수 없었다. 그와 나는 출신과 처지와 상황이 전혀 달랐으므로.
"참수된 한국인 말예요. 너무 개죽음 아녜요? 미국 같으면 어떤 대가도 마다하지 않고 자국민 구출에 전력을 다 하잖아요. 거기다 죽어 봐요. 국민적 영웅이 되는 것은 물론 성조기와 조포가 터지는 가운데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엄숙한 의식까지 치르는데 우리나라는 국립묘지에도 묻어주질 않으니, 쳇!"
김 사장은 마치 자기 일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그나 나나 이제는 미국영주권자가 아닌가. 굳이 고국의 일에 '감 놔라 대추 놔라'할 처지는 아니리라. 하지만 친일파 독재자, 공적이 불분명한 자들까지도 묻히는 국립묘지에 외화획득을 위해 일하다 반군에 납치 살해된 청년을 안장하지 못할 것도 없다 싶었다. 나는 짐짓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김 사장을 이윽히 쳐다보았다.
"어허 그런 곳에다 고귀한 우리성도를 눕힌다는 게 말이나 되겠습니까. 어차피 그 사람은 하느님의 나라에 드실 건데……."
그 청년이나 나, 그리고 야훼를 위해 싸우다 죽은 우리 모두는 신의 사람이므로 이 세상의 묘지를 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는 조부가 베푸는 진혼의식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현실의 삶은 누추하고 덧없는 것이다. 슬픔과 애달픔과 그리움과 안타까움만 반복되는 무소유의 삶이 아닌가. 가지려고, 이루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마음만 다치는 고달픈 삶의 연속이 현생 아닌가.
조부는 물에서 죽은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수망굿은 해녀 · 머구리들의 굿이었다. 물에서 건져낸 시신은 퉁퉁 불은 채 포도 빛으로 변해갔다. 조부는 저승 가는 다리를 놓고 그 위에 꽃술이 달린 넋상자를 들고 그들의 죽음을 달랬다. 하얀 베 위에서 넋 상자에 실려 극락왕생의 길로 가는 귀향풀이 굿이었다.
나는 제기를 사기 위해 무하마드를 앞세우고 길을 나선다. 옷 · 식료품 가게가 대부분인 거리는 평온했다. 히잡을 둘러쓴 여인 셋이 내 앞을 가로질러 식료품 가게로 들어선다. 이곳 여자들은 외간 남성 따윈 안중에도 없는 것일까. 가부장제를 지키는 한국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나는 머리에 둘러쓴 히잡 때문이라고 애써 기분을 다스린다. 그 옆으로 골동품을 파는 가게가 하나 있었다. 가게는 문을 연 채 휴업의 잠에 빠져 있다. 나는 무하마드를 앞세우고 가게 문을 밀고 들어선다. 무엇보다 성찬식에 쓸 주전자와 포도주 잔이 필요해서였다. 바깥풍경과 달리 주전자 · 향로 · 유리잔 같은 기명(器皿)들은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여 있었다. '아 페르시아의 향로와 주전자라' 나는 신음처럼 나지막이 감탄을 자아낸다. 지붕위에서 비단 카핏이 날아오고 천년 묵은 알라딘의 향로가 김을 뿜어내고 입에 칼을 물고 춤을 추는 아라비아 여인이 금세라도 나타날 것 같다. 나는 오래 전에 읽었던 아라비안나이트를 생각한다. 거기엔 세헤라자데와 이야기의 왕이 웃고 있었다. 나는 이윽고 천 년 전으로 돌아가 문설주에 새겨진 표지를 찾아 뛰어다니며 '열려라 참깨!'를 외치기 시작한다. 모든 과거는 나를 위해 준비된 것처럼 영화필름이 되어 따라 다닌다. 그것은 천년의 시공을 단번에 뛰어 넘는 세계였다. 신라 왕릉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 페르시아의 주전자와 유리잔이 있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미 천 이백 여 년전 이 유리그릇들이 내가 살던 땅에 있었다니. 나는 손가락을 뻗어 술잔을 만져본다. 매끄러워 떨어뜨릴 것 같은 그것은 내 손안에 수줍게 잡힌다. 술잔 속에 술이 찰랑거리고 거기 비단으로 감싼 아라비아 여인이 웃을 듯 말 듯 오묘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나는 터번을 쓴 왕자가 되어 그녀의 손을 잡는다. 찰랑거리는 술의 파동에 그녀는 마술처럼 술잔 속으로 숨어버린다.
"달러도 괜찮답니다."
값을 매기는 무하마드의 목소리가 꿈결처럼 들려온다. 나는 그가 일러 주는 대로 돈을 내고 주전자와 술잔과 카핏과 촛대를 챙긴다. 천년 유물로 야훼의 제단을 꾸밀 생각에 취해 나는 햇빛 찬란한 도로를 또박또박 걷는다. 모슬렘 사원 앞은 텅 비어 있다. 해의 방향에 따라 기도 시간을 정하는 그들은 지금쯤 마른 빵에 풀과 꽃이 섞인 야채를 그리워하며 저녁 예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야만의 땅, 야만의 사람들은 야만의 신을 향해 무엇을 위해 기도할까. 세상은 이제 카핏을 타고 날 수도 없고. 천 년 전의 낙타를 타고 걸어가던 이야기로 감동시킬 수도 없다. 지난 시간은 의미로만 남아야 한다. 그런데 이들은 아직도 과거의 세상을 얘기하고 꿈꾸며 살아간다. 천 년 전의 신념을 위해 싸우고 죽이고 죽는다. 조부가 그랬다. 조부의 신앙과 신념은 현재와는 너무 먼 세계에 머물러 있었다. 서천 꽃밭의 꽃을 가지고 병을 고치려고 춤을 추었다. 방울과 신 칼과 엽전을 들고 점을 치며 인간사를 해결하려했다. 모두 부질없는 짓이 아닐까. 나는 완강히 고개를 흔든다. 마치 저들의 예배와 조부의 무의식의 환영들을 떨쳐 버리려는 듯.
오늘은 바람도, 먼지도 없는 쨍쨍한 날이다. 따가울 만치 파고드는 햇빛의 공격. 나는 물기가 말라버린 물수건으로 얼굴을 문지른다. 꺼끌꺼끌하던 수염이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수천 명을 죽인 빈 라덴이 성자라면, 수천만 너희들을 해방시킨 누구야 말로 성자 죠지 라덴일 거다.' 나는 테러리스트를 감싸고 도는 일부 불순분자들을 향해 그렇게 뇌까린 적이 있었다.
압둘라와 약속한 시간은 아직도 한 시간이 넘게 남아 있었다. 나는 김 사장의 회사차를 기다리는 동안 사원으로 눈길을 돌린다. 좀더 사원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서였다. 무하마드는 사원의 입구를 가리키기만 할 뿐 다가가려 하지 않는다. 나 같은 이방인과는 사원에 들어가기가 싫은 모양이다. 호기심 어린 내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무하마드는 옷자락을 슬쩍 잡아끈다. 나는 하는 수없이 그를 따라 교회 건물 쪽으로 발걸음을 뗀다. 무하마드는 자신의 차에 타라는 시늉을 한다. 회사 숙소로 나를 데려다 줄 생각 같았다. 나는 인부들의 일이 끝날 때까지 교회에 들어가 있고 싶었으나 그냥 그의 차에 오른다. 무하마드는 그때껏 고이 안고 있던 제기들을 차에 올려놓고 나를 자리에 앉힌 다음 차문을 닫고 운전석으로 돌아간다.
어느덧 태양은 요르단 국경 쪽을 향해 조금씩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다. 몇 그루 나무 사이로 내가 왔던 서쪽 사막길이 가없이 펼쳐져 있다. 나는 줄곧 서쪽으로 뻗은 길에 시선을 주고 있었다. 아득한 지평선은 이곳에서 보낸 시간조차 잊게 했다. 애리조나로 향하는 길이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애리조나에서의 시간은 빛살보다 빠르고 시계추처럼 헐떡거리는 삶이었다. 모든 일이 시계의 초침처럼 나를 재촉했고 서두르게 했다. 어떻게 한 달이, 일 년이 흘러가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도시의 시간은 반대로 너무 느려서 아마득한 느낌을 갖게 한다. 나는 마치 오래 전에 나자프에 들어온 정착민처럼 시간을 의식하지 못한다. 차가 쿨렁하고 멎는 바람에 나는 그제야 잠이 덜 깬 우멍한 시선으로 앞을 내다본다. 총을 든 무장세력 셋이 차 앞을 가로 막고 서 있었다.
"압둘라, 레프트 레프트!"
위험을 감지한 나는 엉겁결에 무하마드를 압둘라로 잘못 불렀다. 그러나 무하마드는 차문을 따고 내리고 있었다. 무하마드는 두 손을 쳐든 채 그들에게로 다가가 손가락으로 내 쪽을 가리키며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한다. 무장 세력 중 하나가 내 쪽의 문을 열며 하차를 명한다.
"의사라고 했더니 물건을 보잡니다."
무하마드가 서툰 영어로 상황을 설명했다. 나는 뒷좌석에 실린 짐을 보면 당장에 탄로 날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언론사의 특파원으로 직업을 바꾸기로 한다. 주머니에서 여권과 달러가 든 지갑을 발견한 그들은 휘파람 소리로 숨어 있는 동료들을 불러낸다. 드디어 상황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일행 다섯이 더 뛰어나오자 신이 난 듯 그들은 내 얼굴에 씌워진 터번을 벗겨낸다. 내 얼굴을 본 그들은 값비싼 전리품을 얻은 것처럼 환호한다. 곧 내 두 손은 줄로 묶여진다.
"아유 아메리칸?"
그들 중의 하나가 말했다. 분명 영어였다. 나는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가늠이 서지 않아 쭈뼛거린다. 그들에게 있어 아메리카는 제일의 적, 한국에 있을 때 우리들이 흔히 들을 수 있었던 주적(主敵)이다. 나는 순간 야훼를 떠올렸고 잠시 눈을 감고 기도한다. 나는 당당해야 한다고 내 마음을 다잡으며 사실대로 말해야 옳다고 생각한다.
"노오!"
내 대답은 명료했다. 내 얼굴을 뜯어보던 그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곤 총구를 등에 꽂는다. 나는 한국인이고 미국에 잠시 거주할 자격만 취득한 영주권자가 아닌가.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그러나 그들은 믿어주지 않는다. 무하마드와 나는 따로 분리된다. 이제는 혼자 등을 떠밀리며 걸을 수밖에 없었다. 눈앞이 뽀얗게 변해간다. 사막이 뜨거운 지열을 뽑아 올리고 있었다. 나는 낙타처럼 타박타박 그 사막의 한가운데를 걸어간다. 이윽고 그들은 노란 천을 꺼내 내 눈을 가린다. 눈앞은 순간 노란색이 아니라 검은빛으로 변한다. 차 엔진음과 그들의 낄낄거리는 웃음소리만 들려온다. 나는 내 처지를 설명할 수 없는 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무하마드마저 없는 내가 그들과의 대화를 시도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무장 세력들에게 잡혀가 참수당한 미국인과 한국청년의 영상이 어둠 속에서 필름처럼 돌아간다. 피터목사의 근엄한 미소와 십자가가 나타나고 가시관을 쓴 예수와 성조기에 덮여 웰링턴 묘지에 묻히는 미국 병사의 모습이 차례로 나타난다. 척박한 땅, 바람과 바다만 있는 고향, 조부의 궁상맞은 주문과 깃발들의 펄럭임이 계속 필름처럼 이어진다.
"난 한국인이야, 너희를 도우러 온 서희 · 제마 자이툰 부대의 나라……. 우호적 관계에 있는 한국인이라고!"
그러나 그 말은 내 입술을 헤치고 그들에게 날아가 주지 않는다. 사실이지만 사실을 전달할 수 없는 내 처지가 너무 안타까워 입술을 앙다문다. 타휘드(唯一神) 사상으로 무장해 세계를 통일시킬 꿈에 젖어 있는 그들은 지금 부시 대신 나를 가지고 지하드(聖戰)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나 같은 카피르(異敎徒) 하나 쯤 죽인다고 해서 거대한 미국을 무너뜨릴 수 있을 터인가. 나는 흥, 하고 콧소리를 내며 고개를 젓는다.
아들 할락궁이는 아버지 꽃감관으로부터 받은 네 개의 꽃을 간직하고 부자인 제인장자네 집으로 갔단다. 첫 번째 꽃을 뿌렸단다. 웃음꽃이었지. 사람들은 순간 웃음판을 벌이며 모여 들었다. 두 번째는 싸움꽃을 뿌렸다. 그러자 그들끼리 치고받고 패싸움이 벌어지게 되었지. 드디어 마지막으로 수레멸망악심꽃을 뿌렸단다. 그들은 꽃향기를 맡고부터 서로 증오심을 불태우며 찌르고 죽였단다. 작은 딸 하나만 살린 할락궁은 어머니 원강암이 묻힌 무덤을 알아냈지. 어머니 원강암은 그들의 손에 죽어 가시덤불 속에 아무렇게나 던져졌단다. 뼈조각만 남은 어머니에게 환생꽃을 뿌리니 어머니가 살아났지. 그 뒤 할락궁이는 어머니를 모시고 서천 꽃밭에 들어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꽃감관이 되었단다.
사방은 벽으로 막혀 있다. 여러 장의 사진이 찍히고 캠코더가 돌아간다. 그들의 우두머리 쯤 되는 자가 다가선다. 무장청년 중 하나가 내 목을 가리키며 킬킬 웃는다. 잘은 알아들을 수 없는 그들의 대화에서 '넌 이제 참수될 거야'란 말을 어렴풋이 알아차린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순간 망망한 바다와 바람소리가 귓가로 날아들고 돌과 억새와 오름으로 이루어진 척박한 고향이 곤두박질치듯 달려든다. 조부와 다르게 살기위해 버린 고향과 미신이라 부르짖으며 떨쳐버린 조부의 주문들…… 댓가지와 지화와 방울 신 칼 엽전들이 딸랑딸랑 울어댄다. 그렇게도 싫었던 고향의 기억은 서울과 미국을 거쳐 이곳 나자프까지 오는 수 천 수만리 길을 단숨에 거슬러와 나를 비웃고 있었다. '나는 행복과 평화를 원했다. 이 땅에서 살 수 있는 시민권과 영주권도 가지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러나 부르짖는 내 목소리는 도대체 성음이 되어 튀어나와 주질 않는다.
그때 환청처럼 비행기 엔진음과 캐터필러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내가 사라진 것을 안 압둘라와 김 사장이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지 않을 것이다. 저 소리는. 나를 살리러 오는 군대의 발자국 소리일지도 모른다. 그 순간 문이 덜컹 열린다. 그러나 문을 밀고 들어선 것은 무장한 반군들이었다. 수시로 장소를 바꾸는 그들의 전략대로 나는 다시 눈이 가려진 채 차에 실린다. 참수 당한 한국 청년처럼 '나는 미국이 싫어요.' 그렇게 말할까. 그러나 그들은 그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무장공비 앞에서 용감하게 부르짖은 산골어린이도 죽었고, '미국은 나빠요.'하고 말했던 청년도 죽었다. 알자르키위는 잔인하다. 내 말이 사실이냐 아니냐로 참수를 결정하는 게 아니고 알라와 반대되기 때문에 죽이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죽는 게 마땅하고 죽어줘야 마땅하다. 내가 한국의 국립묘지에 안장이 될는지 아메리카 땅에 안장이 될는지 이곳 사막 한 가운데 묻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순교자로서 명예로운 생을 마감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름 없이 살다 무당의 자식으로 죽는 것보단 얼마나 값지고 명예로운 일인가.
"유석아, 무병하고 오래오래 살아라. 뭘 하며 살든 그저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 제일이다."
고향을 떠날 때 조부가 나를 굽어보며 한 말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당신보다 먼저 보낸 조부로서는 그 말이 곧 나를 위로해 줄 수 있는 덕담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조부와 헤어져 지구를 빙빙 돌아 이곳 사막까지 온 나는 한 떨기 생명도 구하지 못한 채 지고 말 잡초의 운명에 처해진 것이다. 이윽고 내 머리엔 누런 포대가 씌워진다. 내 몸이 붉은 피를 흘릴까, 하얀 피를 흘릴까. 두려움이 목덜미를 죄며 엄습해온다. 하얀 피는 사막 속에 어떤 흔적도 남길 수 없을 것이다. 의연한 표정으로 찬송가를 힘차게 부르고 여호와를 큰 소리로 외친 후 붉디붉은 피를 흘려 놓으면 그들의 낯빛은 도리어 하얗게 질릴지도 모른다. 담대한 한국인으로, 위대한 미국 시민으로 그들과 맞서자 그렇게 마음을 정하니 두려움이 조금쯤 가라앉는 것 같다.
뜨거운 바람이 불어온다. 내가 내뿜는 숨결은 포대 안에서 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눈앞으로 아지랑이가 밀려오고 터번 쓴 사내들의 비웃음소리가 점점 가깝게 달려든다. 기다리던 우군의 총소리도, 폭격도, 캐터필러도, 그리고 아메리카 군대의 발자국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이윽고 나는 그들의 차에 실려 어디론가 이동되고 있다. 모래 산 하나를 넘을 정도의 시간이 흘렀던가. 문득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귓가로 날아든다.
"꽃을 던져라. 할락궁아, 빨리 수레멜망악심꽃을 찾아 던져!"
눈이 감겨오는데 눈앞으로 조부가 서천 꽃을 흔들며 나타난다. 웬 꽃일까. 저건 조부가 굿을 할 때 쓰던 무화도 무구도 아니잖은가. 푸른 댓가지와 하얀 지화 그리고 오색 깃발과 초롱등 꽃등도 아니었다. 조부는 이 세상의 어떤 꽃도 무화보다는 아름답지 않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꽃이라 달리 표현할 수 없어서 하얗게 만든 것이라 했다. 그런데 조부는 이 세상 어떤 꽃보다 아름다운 꽃을 젖혀두고 서천 꽃밭의 꽃을 들고 나타난 것이었다. 조부는 안타깝게 나를 향해 서천 꽃을 흔들며 가지라고 명했다.
"저 꽃이 과연 현실의 나를 구해줄 수 있다고?"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 고개만 절레절레 흔든다. 아버지가 죽던 날, 푸른 대나무 다발을 흔들어 댔던 조부는 그때처럼 목이 터지게 나를 불러대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꽃이 아닌가.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일은 아름다운 것이고 아름다운 행위는 꽃이다. 나는 한 송이 꽃으로 여기 왔고 꽃으로 그들의 제단에 바쳐져도 기꺼이 응할 수 있다. 이교의 제단에 뿌려지는 한 송이 하늘의 꽃으로 내 임무를 완성하고 싶다. 조부가 평생을 받들고 모셔온 꽃은 한낱 설화속의 꽃이지만 내가 이들의 제단에 불살라 바치려 하는 꽃은 거룩한 꽃이다. 조부의 서천 꽃보다 이차돈의 하얀 꽃보다 더 아름다운 꽃. 그런데 이들은 마호멧의 제단에 내 꽃을 꺾어 바치려 한다. 이교 제단에 내 꽃이 바쳐지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알 수 없는 혼란을 느낀다.
"나는 꽃이 아니야. 나는 살아남아 미국 시민으로 행복한 일생을 누려야만 해."
그때 내 본능의 목소리가 또렷이 부르짖었다. 그러나 사막은 메아리조차 돌려보내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조부가 흔드는 깃발 소리를 자장가 삼아 이대로 잠들어 버릴지도 모르겠다. 만약 조부가 서천 꽃밭 꽃감관이라면 환생 꽃을 뿌려 살려 줄 수도 있을 터이지만 현실 속의 나는 막막한 사막에 갇혀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윽고 그들은 내 짐과 옷을 거칠게 끌어내린다.
"윗 이스 디스."
그들은 서툰 영어로 짐짝을 가리킨다. 나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시늉을 한다. 그 그릇들은 의식에 쓸 거룩한 기명들이다. 그들은 알고 있을까. 알라를 위해 드리는 예배의 제기처럼 내게 있어서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성찬의 제기라는 것을. 그들은 위험한 무기라도 대하듯 조심스럽게 내 짐을 풀기 시작한다. 주전자와 포도주 잔, 그리고 촛대 두개가 삐죽 몸을 드러낸다.
나는 다시 벽에 갇힌다. 지하 감옥이다. 기적을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는데 나는 벽 속에서 계속 얼마쯤을 버틸 수 있을까. 제기들은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나는 주전자에 가득 물을 담고 싶었다. 오아시스가 그리운 대상들처럼. 물 한 모금, 상큼한 바람 한 점, 빛나는 태양과 아리따운 아리비안 여인의 미소가 그리워진다. 쿵 문소리가 거칠게 나자 무장청년들이 나를 끌어당긴다. 한 청년이 내 얼굴의 터번을 벗겨낸다. 주변에는 그들이 던져놓은 제기가 놓여 있다.
나는 담 벽 앞으로 끌려가 선다. 곁에 선 흰옷의 사내가 내 머리에 물을 뿌리고 잎사귀가 달린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어댄다. 이쯤해서 누군가가 나타나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사위는 고요할 뿐이다. 의식을 베푸는 그들도 끝내 말을 하지 않는다. 목이 말라 왔고 혀끝이 모래를 문 것처럼 까끌까끌했다. 무장 청년이 주전자와 술잔을 건드리는가, 찰랑찰랑 설쇠 소리가 들려온다. 놋그릇이 내는 맑고 높은 소리였다. 나는 흠 하고 가쁜 숨을 토해낸다. 향로에 불을 붙여 주었으면 싶지만 그들은 내 바람과는 달리 날카로운 칼을 흔들어댄다. 조부의 신 칼이 기억의 갈피를 헤치고 선연히 나타난다.
조부는 굿을 할 때나 점을 칠 때면 어김없이 신 칼과 방울과 엽전 네 개를 꺼내 들었다. 일명 명도삼형제라 불리는 그 무구는 조부가 가장 신비한 순간을 표현해낼 때 쓰였다. 제주의 무속은 명도삼형제 속에 모두 담겨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일만 팔천 신들이 관할하는 제주는 육지와는 전혀 다른 무의식을 갖고 있었다. 바다 일을 하는 잠수해녀, 말을 키우는 목장, 밭 경작을 하는 농경에도 무의식은 뿌리 깊게 숨어있었다. 제주인에게 조부의 명도삼형제는 하늘이고 땅이고 칠성신이고 조상이었다.
나는 먼 땅 이곳까지 조부의 명도가 날아와 나를 구원해 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고개를 가로젓고 만다.
이윽고 무장청년들의 입에서 '카피르 카피르' 소리가 흘러나온다. 이제는 피할 곳 없는 궁지에 몰려 있는 것이다.
"향이라도 피어주면 좋으련만."
이차돈의 발치에 푸른 연기를 피어 올리던 신라의 향, 서역의 향, 아라비아의 향을. 그러나 모래 먼지로 가려진 사막에서 그런 향은 기대할 수 없다. 오롯이 그들의 땅, 사막의 제단에서 내가 바라는 꿈은 백일몽에 불과한 것이다. 아무것도 가질 수 없고 그 누구도 찾아 올 수 없는 사막은 감옥보다 높고 지옥보다 무서울 뿐이다. 살아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 누구라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간절한 바람으로 나는 소리 나게 무릎을 꿇는다.
"야훼! 나를 사막의 꽃으로 피어나게 하지 마시고 세상의 꽃으로 빛나게 하소서!"
목마름 때문인가, 어지럼증 때문인가, 내 입에서는 이상스런 기도문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래선 안 되는데, 안되는데……."
그러나 그 생각조차 가늠할 수 없이 내 정신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페르시아의 주전자와 유리잔이 그들의 칼춤에 번득 빛을 발한다. 어디선가 허공을 헤치고 비단 카핏이 날아오는가, 눈앞으로 연신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천년 묵은 알라딘의 향로가 김을 뿜어내듯 연무가 피어오른다. 입에 칼을 물고 춤을 추는 아라비아 여인이 금세라도 나타나 나를 죽음의 광야에서 꺼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찰랑찰랑, 신 칼 흔들던 조부는 어느새 사라지고 무장청년이 놋쇠 잔을 두드려댄다. 나는 두려움을 떨쳐 내려고 이를 앙다문다.
나를 구해 줄 사람이 그 누구라면 어떻단 말인가. 이대로 무장청년의 손에 죽어 황야의 티끌이 될 수는 없지 아니한가. 나는 메마른 입술을 열어 무슨 말인가 해보려고 애쓴다. 그리고 거칠게 손을 내젓는다. 칼끝이 날카로운 바람소리를 낸다. 마치 주전자와 놋쇠 잔을 두드리는 듯 요란한 소리가 귀를 파고든다. 두려움은 혼미 속으로 나를 빠뜨리려고 한다. 멀리서 콩 튀듯 들려오는 총소리가 가물거리는 내 의식의 한 자락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꿈처럼 아득한 저 너머로 조부의 신 칼이 번득이며 허공을 긋는다. '하르방, 날 구해줍서. 한이와 아끈 몰망으로 이들을 잡아갑서' 나는 조부를 향해 부르짖었다. 조부의 얼굴은 꽃감관처럼 꽃을 흔든다. 서천 꽃밭의 갖가지 꽃들이 한꺼번에 나한테로 달려들어 온다. 꽃잎이 흩어진다.
붉고 노란 꽃잎들이 조부의 손에서 휘휘 날린다. 나는 손을 내밀려고 몸을 비틀어댄다. 죽어도 죽지 않는 서천 꽃이 눈앞으로 한소큼 날아든다. '나는 사막의 꽃이 되고 싶지 않아.' 그러나 그 소리는 목젖에 걸려 나오지 않고 캑캑 밭은기침이 되어 허공으로 날아간다. 총소리는 좀 더 가까운 곳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조금만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