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모든 부처님이 나온 곳 입니까”
<3> 선사의 행장 ②
담당무준 화상이 임종하시면서 원오극근(圓悟克勤, 1063~1135) 선사를 참례하여 큰일을 성취하도록 하라고 지시하였다. 선사가 선화 4년 임인년, 34세시에 원오 선사를 참례하려고 하였으나 원오 선사는 멀리 장산 땅에 계셨다. 그래서 태평사의 평보륭(平普融) 선사의 회하에 의지하고 있었다.
[강설] 대혜 선사는 담당무준 선사를 참례하여 7년간이나 시봉을 하면서 열심히 정진하였으나 크게 깨달은 바가 없었다. 담당무준 선사도 자신의 임종을 앞두고 원오극근 선사를 소개하였는데 바� 참례하지는 못하였으나 그것이 인연이 되어 뒷날 원오극근 선사의 회하에서 일대사인연을 마치게 되었다.
선화 7년 을사(1125), 선사의 나이 37세시에 비로소 변경 천령사에서 원오극근 선사를 참례할 수 있었다. 겨우 40일이 지난 어느 날 원오 선사가 법당을 열고 법문하였다.
“어떤 스님이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 선사에게 물었다.
‘무엇이 모든 부처님이 나온 곳입니까?’
운문 선사가 말씀하였다.
‘동산이 물 위로 간다’라고 하였는데 천령사의 원오는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나는 그 스님에게 이렇게 말하겠다.”
“훈풍이 남쪽에서 불어오니 집 모퉁이에서 서늘한 기운이 생긴다”라고 하였다.
대혜 선사가 이 말을 듣고는 홀연히 앞뒤가 끊어졌다. 원오선사가 그를 택목당에 살게 하여 시자의 일은 하지 말고 오로지 보림(保任)에만 힘쓰게 하였다.
담당무준 화상 임종하며
원오극근 선사 소개받아
[강설] 드디어 스승 원오 선사를 참례하여 겨우 40일 만에 깨달음을 이루고 보림에 들어가는 경위를 밝혔다. 원오 선사가 이끌어 온 법문은 유명한 운문 선사의 화두 “동산수상행(東山水上行)”이다. “모든 부처님이 나온 곳”을 물었는데 대한 운문 스님의 대답이다.
우선 “동산수상행(東山水上行)”이란 말은 “동쪽 산이 물 위로 간다”라고도 해석하고, “동산의 물이 위로 올라간다”라고도 해석한다. 이러한 해석은 전국 선원의 지대방에서 오랫동안 무수히 천착되던 이야기다. “동산수상행(東山水上行)”도 화두지만 “제불출신처(諸佛出身處)”도 화두다.
아무튼 원오 선사는 “제불출신처(諸佛出身處)”에 대해서 자신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나온 대답이 “훈풍이 남쪽에서 불어오니 집 모퉁이에서 서늘한 기운이 생긴다(薰風自南來 殿角生微凉)”라는 것이다.
이 또한 화두다. 그 뜻을 아는 사람에게는 염화미소도 항다반사지만 뜻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모두가 화두다.
이 말을 들은 대혜 선사는 “앞뒤가 끊어졌다”고 하였는데 여기서 “앞뒤가 끊어졌다”라는 말은 그 말에 아무런 생각도 지어낼 수가 없어서 의식의 흐름이 은산철벽과 같이 되었다는 뜻이리라.
모름지기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 수행자들은 대혜 선사와 같이 조사의 일구에 홀연히 앞뒤가 끊어져서 의식이 은산철벽과 같이 되어야 비로소 참선에 입문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한 시간을 좌선을 하면서 화두가 수십 번씩 왔다 갔다 한다면 미륵부처님이 출현하실 때까지 참구하더라도 헛수고에 불과하다. 대혜 선사의 이와 같은 공부행적이 참선납자에게 훌륭한 본보기가 되기 때문에 서장을 간화선 공부의 제일지침서라고 하는 것이다.
스승인 원오 선사가 소개한 법문의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 선사는 절강성 가흥현 사람인데 속성은 장(張)씨이다. 스님은 17세에 출가하여 교학과 계율에 깊은 지견을 얻었다.
그러나 교학이나 계율이 궁극적인 자신의 본분인 일대사(一大事)를 밝히지 못함을 탄식하고 곧바로 선(禪)의 길로 나아가서, 설봉의존(雪峰義存, 822~908) 선사의 문하에 들어가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이후 스님은 지금의 광동성 유원현 북쪽의 운문산 광태선원(光泰禪院)에서 5가 7종중에 운문종(雲門宗)을 개창하여 크게 종풍을 떨치게 된 선사다. 운문 선사에게서 나온 화두도 적지 않다.
[출처 : 불교신문 2011.10.22]
☞'무비스님의 서장 강설' 목차 바로가기☜
첫댓글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