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聖이사악 성당(聖堂)"(St. Isaac's Cathedral)을 보러 간다.
"聖이사악 聖堂"은 외관(外觀)만 보는 것이므로 시간은 그리 많이 소요되지 않을 듯하다.
가는 길에 특이한 등대(燈臺)를 본다.
"로스트랄 등대"(燈臺)(Rostral Column)라고 한다.
하지만 그대로 번역한다면 "해전 기념주"(海戰 紀念柱)라고 해야 할 것이다.
로스트랄 등대(燈臺)(Rostral Column)
"바씰리" 섬의 곳(串)에 세워진 이 등대(燈臺)는 해전(海戰)에서 승리(勝利)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2개의 기념비(紀念碑)라고 한다.
등대(燈臺)을 포함하여 총 높이 32m라고 하며, 중간 중간에 배의 "이물"을 만들어 붙여놨다.
양쪽의 등대(燈臺)아래에는 이곳의 사대 강(江)(볼호프江, 네바江, 드네프르江, 볼가江)의 수호신(守護神) 네명이 조각(彫刻)되어 있다.
이게 바로 "표트르" 大帝의 청동 기마상(靑銅 騎馬像)이란다.
이 역시 차 창을 통해서 구경을 한다.
"예카쩨리나 2世"(女帝)가 자신이 "표트르"大帝의 후계자(後繼者)임을 상기(想起)시키고 "상트페테르부르크" 건설을 기념하기 위해
프랑스의 "팔코네"(Étienne-Maurice Falconet)를 초청(招請)하여 만든 작품(作品)이라고 한다.
이 동상(銅像)은 큰 바위 위에 있는데 말의 뒷발과 말이 밟고 있는 뱀으로만 지탱하고 있다.
이 바위도 사연이 있단다.
무게가 무려 1500t이나 되는 "벼락을 맞은 돌"(Thunder Stone)이라고 한다.
핀란드 만(灣)의 어느 섬에 있는 이 돌을 무려 6개월이나 걸려서 이곳까지 가져왔다고 한다.
Nicolas 1세의 청동기마상(靑銅 騎馬像)과 聖 이사악 聖堂.
버스는 이 "청동 기마상"이 있는 노타리를 한바퀴 돌아 "聖이사악 聖堂"에 근처에 선다.
Nicolas 1세의 청동기마상(靑銅騎馬像).
기마상(騎馬像) 아래에는 네 명의 女人이 있는데 니콜라스 1세(Nicolas 1世)의 딸들이라고 한다.
그들이 각각 들고있는 창, 칼, 거울, 십자가는 지혜, 용기, 아름다움, 믿음을 뜻하는 표식이라고 한다.
이곳의 "이사악" (Isaac)이란 명칭(名稱)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사악" (Isaac)이 아니란다.
"크로아티아"의 "달마시아" 출신(出身)인 "성(聖) 이사악 가우스" 라는 분의 이름에서 가져 왔다고 한다.
이 성당(聖堂)의 기념일(紀念日)인 5월 30일이 "聖 이사악 가우스"의 기념일(紀念日)과 같은 날이라고 한다.
"이사악 성당"의 건축은 알렉산드로1세 때인 1918년부터 시작하여, 그의 조카 알렉산드로 2세 때인 1958년까지
3대에 걸쳐 무려 40년 동안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동원하여 지었다고 한다.
당시에 이곳은 늪지대였기 때문에 "대성당"의 하중을 견디기 위하여 늪 바닥에
24,000여개의 큰 말뚝을 박아 지반(地盤)을 다지는 공사를 먼저 했다고 한다.
동서(東西) 길이 111.2m, 남북(南北) 폭 97.6m, 높이 101.5m,로 1만4천명이 들어가 미사를 볼 수 있다고 한다.
112개의 붉은 화강암의 기둥은 아래층의 것 하나의 무게가 114톤이나 되는
한 개의 돌로 되어 있으며 둘레는 어른 4명이 서로 손을 잡아야 할 정도란다.
위층의 기둥은 하나가 64톤이라고 한다.
내부는 100톤이 넘는 금과 희귀하고 진기한 유럽의 재료와 자국에서 생산되는 공작석 등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건물 지붕(Dome)도 황금(黃金)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2차대전 당시에는 이 돔(Dome)이 비행기에서 보기 쉬워 폭격의 목표(目標)가 되기 때문에 지붕을 검게 칠하여 화를 면했다고 한다.
우측의 종탑(鐘塔).
더 가까이 가 봐도 안을 볼 수 없기에 그냥 포기하고 돌아선다.
그런데 돌아가는 버스가 내 맘을 알기라도 한듯 이 성당(聖堂) 앞으로 돌아서 간다.
어차피 안을 못보니 이정도로 만족을 해야 겠다.
"카잔" 聖堂.(Kazan Cathedral)
돌아가다 또 하나의 聖堂을 본다.
"넵스키" 대로(大路) (Nevsky Avenue) 에 있는 "카잔 聖堂"(Kazan Cathedral)이다.
"바로니킨"(A.Varonikhin)이란 건축가(建築家)가 1801년부터 10년에 걸쳐 지어진 聖堂이라고 한다.
정교회(正敎會)의 제단(祭壇)은 서쪽을 향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입구가 "넵스키 대로(大路)"에서 옆으로 바라봐야 한다.
하는 수 없이 "바티칸 聖堂"을 본떠서 길쪽으로 펼쳐진 모습이지만 내부(內部)는 돌아 앉아 있다고 한다.
이제 부지런히 호텔로 돌아간다.
아직 해가 중천이고, 시차적응(時差適應)이 안돼서 한 낮인줄 알지만 우리나라로 생각하면 저녁도 한참 어두울 때이다.
백야(白夜)라는 것을 실감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제2의 도시(都市)인 "상트페테르부르그"는 人口 470萬으로 "모스크바"에서 서북쪽으로 850여km떨어져 있다.
1924년 "레닌"이 죽자 그를 기념하여 이 도시(都市)를 "레닌그라드"(Leningrad)라 불리며 世界 2次大戰을 겪게된다.
어렵게 만들은 이 큰 도시는 "레닌그라드 전투(戰鬪)"라는 인류 역사상(人類 歷史上) 가장 비참한 전쟁(戰爭)을 겪는다.
이 아름다운 도시(都市)에서 독일과 러시아의 800萬名이 무려 900日 동안 처절한 싸움을 벌린 것이다.
오랜 전투(戰鬪)에 보급은 막히고 군인(軍人)은 물론이고 일반인(一般人)도 먹을 것이 없어 아사(餓死)하는 사람이 길에 널비했다고 한다.
6캐럿 다이아반지로 겨우 작은 생선 통조림 하나를 사정을 해서 구했고, 급기야는 혁대와 구두까지 삶아 먹었다고 한다.
나중에는 인육(人肉)까지 먹는 사태까지 벌어지자 군(軍)에서 전투(戰鬪)를 멈추고 이를 단속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런 일들이 일년 이상(一年 以上)을 넘기면 어떤 지옥과 같은 일이 벌어질까,,,,,,
그런데 그 와중에 그냥 지나치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이 도시(都市)에 있는 종자보관소(種子保管所)에서의 일이다.
이 종자보관소(種子保管所)에는 러시아의 모든 식량(穀食)의 곡식 종류(種類)가 연구용(硏究用)으로 저장(貯藏)되어 있었다고 한다.
문을 걸어 잠그고 그걸 조금씩 먹으면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곳의 직원(職員) 모두가 아사(餓死)를 하며 그 종자(種子)들을 지켜 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우리나라 IMF때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그 당시 우리나라의 종묘회사(種苗會社)가 모두 다른 나라에 넘어간 사실을 아는가.
우리가 거의 매일 식탁(食卓)에서 대하는 "청양고추"가 지금은 외국회사(外國會社)에 "로열티"를 줘야 하는 물건이 된 것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위도상 북위 60도에 위치하여 상당히 북쪽에 있지만 대서양의 영향으로 "모스크바"보다 온화하다고 한다.
다만 북극권이 가까운 까닭에 겨울철에는 밤이 길고 여름인 6-7월에는 백야(白夜)가 계속된다고 한다.
1980년대의 개방화가 진전되면서 1991년 러시아어(語)인"상트페테르부르크" 라는 옛 이름을 되찾았단다.
지금은 모든 곳이 평화로워 보이지만 옛날 이곳의 사람들이 얼마나 처절하게 이곳을 지킨 결과인지 알아야 한다.
내일은 새벽같이 일어나 국경을 넘어 "핀란드"로 가야 한다고 한다.
내일 아침은 간단한 도시락이란다.
그러니 오늘 저녁을 든든히 먹어 두란다.
배는 그리 고프지 않는데 해가 중천이니 잠이 안온다.
억지로라도 자야 내일 열심히 구경을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