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기 빙벽교실 수료기 (글:고정연)
"나만의 산"
최선을 다하고 있는 고정연씨2003년 한 해 동안 나는 대학산악부 소속으로 대단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산에 다녔다. 아직 내 마음 속에 오래전 나의 선배들이 지녔던 ‘나만의 산’ 이라는 의미심장한 상징이랄 것은 없지만, 그래도 동방 구석에서 시간을 때우며 읽었던 산서(山書)를 통해서 과거 산(山)선배님들의 산에 대한 마음을 공유할 수 있었다.
체력과 정신력이 소진하여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나...?’ 회의를 느끼게 했던, 여름날 길었던 장기산행을 마친 뒤, OB 선배님께서 물으셨다.
“너는 너만의 산이 뭐냐?”
솔직한 생각이 나만의 산이랄게 뭐가 있겠습니까? 지금은 너무 힘들고, 그 기암괴석, 경치 좋다는 설악산도 아찔아찔한 기억뿐인데요!! 배고파서 아찔! 무서워서 아찔! 숨차서 아찔! 아찔아찔.....’이런 것뿐이었다.
2003년 3월부터 동계를 마친 2004년 1월 초순까지의 산행을 함에 있어, 나의 산행(워킹, 암?빙벽등반)만족도는 내 안위를 살피며 즐겁게 산행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절대적으로 아니었으므로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바위나 얼음이 무섭다거나 재미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런 것들을 즐길 수 있을 만큼 내 자신을 믿을 수 없었기에 늘 등반이 힘들었다.
과거 서로 들어오겠다고 인원초과의 기록도 있었던 산악부의 명맥은 한해 두해 넘어갈수록 점점 더 희미해져가고 그에 맞춰 개인의 기량이란 것도 아주 우습게 되어가고 있었다.
한낱 동아리가 나에게 있어 큰 의미가 되겠냐마는, 산악부라는 것은 내게 또 다른 매력적인 세계를 보여주고 경험하게 해준 소중한 것이다. 1학년 때는 산행이 있는 날 그저 따라가는 것만이 최선이라 생각되었다. 산행을 잘하든 못하든 빠지지 않고 따라가면 땡!! 이었다. 나에게는 내 목숨조차 내 책임이 아닌 것 같았고, 선배들이 알아서 해주겠지 란 철없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참~ 바위가 정말 재밌구나...’ ‘나도 선배가 되는구나...’ ‘이제 겨울이 되면 빙벽도 하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나의 등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김용기등산학교 홈페이지를 찾았고 12월 초에 등록을 하고 1월 5주 동안 빙벽 교육을 받았다.
첫째날
오늘은 곰바위에서 크랙 펜듀럼 등 실전기술교육을 받는 날이라 의욕이 앞선다. 교장선생님의 탁월한 실남영역으로 아침 7시까지 갔다. 6시 50분쯤에 도착했는데, 나와 비슷한 분위기의 복장을 한 외국인이 먼저 와 있었다. 예비 모임 때 교장선생님께로부터 외국인이 한명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아~! 그 사람이구나~’ 했다. 그때부터 여러 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늘 영어로 고생을 했던 나로서는 그 외국인한테 먼저 인사로 말을 걸어야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참 난감했다. 두.려.웠.다. 결국 이렇게 생각을 하다 10분이 가버렸고, 구세주~~!! 이관종선생님께서 오셨다.
이관종선생님: "Hello, You... 김용기 climbing school~?"
외국인(크리스): “Yeh, 김용기~”
난 외국인이 무서워서 인사도 못했는데...
김영근선배님의 차를 타고 포천에 있는 빙벽 교육장에 도착했다.
추워야 될 겨울이었지만, 계속되었던 푸근한 날씨 때문에 인공 빙장은 얼음이 아주 얇게 붙어있었다. 빙벽에 대한 경험이라고는 가래비 뿐이었거늘(물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가래비도 연습빙벽에 지나지 않는 규모라는...), 포천의 빙장을 보는 순간 그 규모에 조금 실망했다. ‘에 너무 작잖아...’ 열심히 해야겠다 라는 불타오르는 의지보다는 저걸 못하겠어?!, 이런 아주 깜찍한(끔찍한) 생각을 해버렸다. 1시간 뒤... 내 상태를 알면서 아주 후회했다.
처음 도착해서는 간단한 자기소개에 이어 장비에 대한 교육이 있었다.
아이스바일의 세부적인 구조, 빙벽화와 아이젠의 적절한 길이 대비 등등에 대한 이론적인 교육을 받고 개인장비를 착용한 뒤, 인공빙벽 밑으로 갔다. 교장선생님께서 타격법과 기본 동작에 대한 설명을 해주신 후, 시범을 보여주셨다. 오호~ 정말 장난이 아니셨다. 바일도 탁하면 딱 박히고 발도 3박자에 맞춰 타타닥~ 아주 경쾌했다. 너무 쉽게 하셨다. 정말 가벼워 보이셨고, 힘도 하나도 안 들어 보이셨고, 유연하셨다. 너무 쉽게 하셔서 ‘무지 쉬운거구나..’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사실 난, 빙벽의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자유바디란 개념을 듣고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냥 그런 것이 있나보구나. 했다. 그런데 경험이 있는 다른 어른들께서 하시는 말씀이 자유바디라는 것은 아주 획기적인 것이라 하셨다. 처음으로 산악부에서 가래비란 곳에 갔을 때, 가장 기본적인 동작인 X바디도 허우적거리며 했던 나인데, 그 기억은 온데 간데 없고 왠지 선생님처럼 하면 나도 될 것 같단 생각뿐이었다....
타격법은 참으로 어려웠다. 설명을 들어도 몸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피크가 안보일 정도로 깊게 때려 박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잘 걸렸다 싶어도 내가 몸을 의지하면 쑥~하고 빠져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추위에도 불구하고 교장선생님의 시범을 통한 강의는 계속되셨고, 이제는 각자가 톱로핑으로 얼음에 붙을 차례...!
교장선생님의 시범을 보며 ‘오~ 너무 쉽게 하신다...’란 생각을 지니고 있었기에 나도 얼음에서 그러리라 생각했건만... 망했다.
첫 타격도 제대로 못하고 팽팽하게 당겨진 자일에 매달리고 말았던 것이었다...
하루 종일 이랬다. 앞으로가 아득했다.
둘째날
제3기 고정연씨토요일 밤은 참 설렌다. 그리고 긴장된다. 몸에서 엔돌핀이 마구 솟구치는 것 같다.
오늘은 빙벽에서의 확보물 설치와 확보에 대한 개념을 배웠다. 다른 학교 산악부인 내 친구도 그렇고, 선배들도 그랬고, 빙벽은 찍는 것 마다 홀드고, 박으면 확보물이기 때문에 바위보다 안전한 것 같다고 했다. 근데, 난 빙벽이 훨씬 무섭고, 어렵고, 힘들다...
바일이 찍히지 않는데 어떻게 그것들이 다 홀드고, 찍었다 하더라도 언제 깨져 나갈지 모르는 얼음을 어떻게 믿으며, 더군다나 바일을 잘못 휘두르다 떨어뜨리면 무엇을 홀드삼아 올라갈 것이며... 얼음을 처음 시작하는 나에게 있어서는 이 모든 것들이 넘지 못할 산처럼 느껴졌다. 확보물 설치 요령과 이퀄라이징을 통해 좀더 안전하고 강력한 확보 지점을 만든다는 것(특히 이퀄라이징을 할 때 단순히 힘을 각각의 확보물로 분산시켜 그 이점을 이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슬링을 한번 꼬아서 고리를 만들어 한 개의 확보물이 빠지더라도 그에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운 것이 인상 깊었다.)은 당연한 논리였지만, 한번도 그것에 의미를 두고 해본 적이 없어서 그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던 나에게는 좋은 공부였다.
확보물을 설치하는 것과 설치한 확보물에 내 자신을 맡기는 것 모두 무수히 많은 경험을 통해서만이 비로소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확보를 봐주시던 김계동 강사선생님께서 확보를 팽팽히 봐주고 있으니까 그냥 매달려 앉으라고 하셨지만 쉽사리 몸과 마음이 따라주지 못했다. 죽지 않고, 다치지 않는다는 것, 분명 이해는 하고 있었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접해보는 자세와 상황(얼음에 붙어)이 몸과 맘에 익숙치 못했다.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몸이 받아들일 때까지... 맘 속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때 까지...
또 오늘 특히 내게 인상 깊었던 것은 난 손목걸이로 바일과 내 손목을 꽉 조여놔도 잘못해서 떨어뜨릴까 올라가면서도 노심초사 그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어찌하야.... 교장선생님을 비롯하여~ 강사선생님, 다른 선배님들 대부분이 손목걸이 없이 얼음을 오르셨고, 오히려 손목걸이가 없을 때의 이점을 백분 활용하고 계셨다. 손목걸이를 사용하면 늘 불편한 점이 자일과 팔의 방향이 크로스로 엇갈렸을 때 밸런스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이럴 때 늘 버둥거리며 자일과 무관한 쪽의 바일을 그야말로 얼음 깊숙이 쑤셔 박아 그거 하나만 잡고 불안하게 매달려서 다른 쪽 바일을 빼서 빨리 자세를 바로 잡아야했다. 힘이 두배, 세배는 더 들었다. 크럭스도 아닌 부분에서 내 스스로 크럭스를 만들고 있었다...
셋째날
나에게 큰 자신감을 불어넣어준 중요한 날이었다. 그리고 눈도 많이 내려 아주 기뻤던 날이었다...
그간 별 발전이 없어서 알게 모르게 우울한 기분을 느끼며 가장 하단부의 얼음에 붙었다. 눈이 많이 내려 날씨가 푸근해서였을까... 이전의 피크가 닿기가 무섭게 쩍쩍 갈라져 무기가 되어 떨어지던 얼음이 아니었다. 원하는 데로, 내려치는 데로 잘 박혔다. 타격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난 교육 중에 타격을 제대로 할 수 없어, kicking이니 중심 이동이니.. 이런 것에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우선 보이는 것 중 가장 믿을 수 있는 것이 내가 찍어놓은 바일인데 그 바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으니 주변은 돌아볼 수조차 없었다.
근데 오늘은 뭔가가 달랐다. 타격이 잘 되었다. ^^ 타격이 잘되니 너무 신이 났다. 3지점을 유지하라는 말은 암장을 다닐 때 무지하게 많이 들은 이야기라서 몸을 쉽게 움직일 수 있었다. 내가 믿음직하게 찍어놓은 바일을 중심으로 3지점을 만들고, 대각선 공식을 이용해서 한 발에 체중을 싣고, 좀 더 그 발에 지지력을 실어주기 위해 무릎을 쫙~ 펴고 toe로 섰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다른 발을 상부에 찍고 밸런스를 유지한다. 이걸 머릿속으로 계속 되뇌며 얼음을 올랐다. 버벅거리지 않고 나름대로 매끈하게 올라가서인지 너무 재미있고, 용기가 생겼다. ^^ 교육 시작 후 처음으로 칭찬도 받았다. 오~ 기뻤다.
오늘은 선배님들께도 많은 도움을 받은 날이기도 했다. 금종오 선배님께서는 내가 막내따님과 나이가 같다고 말씀하시면서 자세 교정에 조언을 많이 해 주셨다. 선배님만의 비밀병기 활용법도 귀띔해 주셨다.
별 발전 없이 5주가 끝나버리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었는데, 교육 첫날 교장선생님께서
“3주째 쯤 되면 자세가 다들 잡히실 것입니다.” 라고 하신 말씀대로 된 것이다. ^^
서울에서 도착했을 때부터 내리던 눈은 정말 쉬지 않고 거침없이 내렸다. 갈아놓은 아이젠이 빌레이를 볼 때 돌과 흙으로 또 다시 마모될까 걱정이었는데, 눈이 그 걱정마저 다 덮어버렸다. Cool~~~~ 했던 셋째 날 Good~!!
넷째날
수고하셨습니다. 안전!!안전!!빙벽 교실에 참석하기 위해 막차를 타고 가족들보다 먼저 서울에 왔다.
집에 오니 새벽 4시... 짐을 싸고 맘은 포천 교육장이건만, 잠을 한 숨도 못자 컨디션이 엉망이었다. 오용수선배님께서도 밤을 새셨단다... 졸음은 밀려오는데, 운전을 안 한다고 옆에 앉아 잘 수도 없는 상황... 눈을 비비적거리며 안 잘라고 무진 애를 썼것만, 끔뻑끔뻑 졸았던 것 같다.
설날 연휴의 갑작스런 강추위로 얼음이 단단히도 얼었다. 오늘은 경기등반형태로 연습을 할라 하시는지, 꽝꽝 언 얼음 표면에 색 있는 스프레이를 뿌리셨다. 난 사진에서만 본 이 색색의 루트들이 얼음이 얼기 전에 색 테이프를 고정시켜놓고 그 위에 얼음이 얼어서 루트가 만들어지는가 했더니, ㅎㅎ 스프레이를 뿌리는 것이었다. 얼음이 너무 강빙이고 두텁게 얼어 거의 직벽의 형태로 변해 버렸고(그냥 내 느낌때문인가..), 버섯형 얼음들이 튀어나와 있어서 그런지.. 나의 자세는 교육 첫째 날로 뒷걸음질 쳐버렸다. 오~ 완전 의기소침!!!! 지난번의 그 자신감은 모습을 감췄다. 오늘은 한 4번 했을랑가... 얼음을 찍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집에 가는 끝까지 우울했다.
김계동선생님과 인수에이 등반을 마치고 정상에서..
마지막 교육을 했다. 집을 나설 때는 후련할 것만 같았는데, 다 끝나고 나니까 그냥 서글퍼졌다. 뭔가 큰일을 끝내고의 허탈감 같았다. 이 교육을 끝으로 올해 빙벽은 끝이구나 하니까 아쉽고 씁쓸했다.
오늘은 빙벽보다는 어린 사람으로서 산 선배님들, 더 넓게는 나 보다 연배가 높으신 분들께 대한 예절을 배웠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다. 원래 낯도 많이 가리고, 어색한 자리이면 말도 못하는 좀 내성적인 성격이라서 이번 빙벽 교실과 같은 상황은 나에게 있어서 너무나 힘든 경험이기도 했다. 나의 소심한 행동들이 어른들께는 버릇없게 비춰졌을 것 같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서 예의를 배울 수 있었고 특히 김건수선배님의 모습에서 본받을 점이 많았다. 그 선배님의 궂은일에 솔선수범하는 모습은 내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셨다. 다음번에 또 이런 상황이 온다면 지금보다는 더 나은 모습과 태도로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끝으로 알차게 빙벽교육을 마치게 도와주신 김용기 교장 선생님, 이애숙 교무 선생님, 김홍례, 김계동, 차필성 강사님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얼음에 붙었을 때 세심하게 지적해 주신 이관종 선생님께, 금종호 선배님께도 감사드립니다. ^^
차를 타고 오가며 많은 이야기를 해주신 오용수 선배님~ 정말 즐거웠어여~^^ 감사합니다.
좋으신 분들과 동문이란 인연도 맺게 되고, 2004년 시작이 아주 좋은 것 같습니다.
김용기등산학교의 더 큰 발전을 기원하며 수료기를 마치겠습니다. ^^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
제3기 빙벽교실, 고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