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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8:1-29, 아이성 점령, 22.1.19, 박홍섭 목사
오늘 함께 볼 여호수아 8장은 아이 성을 점령하는 승리의 내용입니다. 이 승리는 2차 공격 때의 이야기이고 그 앞의 7장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여리고에서 얻은 기적적인 승리의 여운과 감격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아이 성 전투의 1차 공격에서 맛본 비참한 패배의 기록입니다. 아간이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고 여호와께 온전히 바쳐야 할 물건에 손을 댄 망령된 일을 행하였기 때문이죠. 하나님은 아간의 범죄를 이스라엘 전체의 범죄로 보았고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하게 하십니다. 이 패배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영적 무기력과 좌절에 빠집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낙담에 빠져 있지 말고 일어나서 스스로 거룩하게 하며, 너희들의 실패의 원인인 나의 언약을 어긴 죄를 제거하라고 하십니다. 이에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제비뽑기를 통해 지목해주신 아간의 범죄를 아골 골짜기에서 돌로 쳐서 죽이고 처리하는 순종의 모습을 보입니다.
7장이 그렇게 끝나고 8장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는 격려의 말씀과 내가 아이 성을 너의 손에 넘겨주겠으니 군사들을 다 거느리고 점령하라는 명령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작전까지 일러주십니다. 무엇이 공동체 안에 드리워진 영적 패배감과 무기력을 깨뜨릴 수 있습니까? 획기적인 프로그램이나 영웅적 인물의 등장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무기력을 깨트릴 수 있습니다.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라고 하시면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믿음으로 이끄신 하나님의 격려의 말씀이 오늘 저녁, 기도하기 위해 모인 저와 여러분에게도 들려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아이 성 전투는 여리고 성 전투와 다른 두 가지의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 주위를 돌았던 여리고와 달리 성 뒤에 매복하여 복병을 두라는 말씀이고, 다른 하나는 여리고 성은 전리품을 가지지 못하게 하셨지만 아이 성은 탈취 물과 가축들을 취하라고 하신 점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지시를 듣고 즉시 일어나서 그 일을 수행합니다. 용사 중에서 3만 명을 뽑아서 밤에 몰래 성읍 뒤에 매복하도록 하고 유인 작전이 시행되면 그곳에서 일어나 아이 성읍을 점령하고 탈취하라고 지시합니다(2-8).
여호수아의 지시를 받은 군사들은 밤에 몰래 침입하여 아이 성 서쪽에 있는 벧엘과 아이 성 사이에 매복합니다. 이곳은 두 지역 사이에는 높은 돌산이 있어서 매복하기에 적절합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을 보낸 후에 본대와 함께 출전해서 성의 북쪽에 진을 치고 백성들 사이에서 잠을 잡니다(9). 아침에 일찍 일어난 여호수아는 백성의 수를 점호하고 장로들과 함께 아이 성을 유인할 정도의 병력만 이끌고 아이 성을 향해 진격합니다. 이때도 5천 명을 매복시키고 나머지 군사들은 북쪽 본 진에 남겨둡니다.
이스라엘 군사들이 골짜기를 넘어 침입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아이 성의 왕은 급히 군사들을 이끌고 이스라엘 군사들을 공격합니다. 첫 번째 승리로 인해서 매우 자만해 있었던 아이 성 왕은 성급하게 움직였고 여호수아는 패한 척하며 광야 길로 도망하여 그들을 유인합니다. 아이와 벧엘의 군사들이 모두 유인 작전에 속아 한 사람도 성에 남지 않고 이스라엘을 추격하기 위해 성문을 열고 떠났을 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내가 이 성읍을 너에게 넘겨주겠으니 손에 단창을 잡고 들어서 아이를 가리키라 하십니다. 여호수아가 단창을 들어 아이 성을 가리키는 순간 복병이 일어나 아이 성을 공격하고 점령하여 성읍을 불태웁니다. 이스라엘을 추격하던 아이 성 군사들이 자기 성에서 불이 붙어 연기가 하늘로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광야로 도망가던 이스라엘 군사가 돌아서고 매복해있다가 아이 성을 점령한 이스라엘 군사들도 성을 빠져나와 이스라엘을 추격하던 아이 성 군사들의 후방을 공격하자 이들은 꼼짝없이 앞뒤로 공격을 받아 전멸합니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아이 성 군사들을 모두 죽이고 아이 왕을 사로잡은 후에, 다시 성으로 들어가서 성안에 있는 사람들을 진멸하고 죽입니다. 이날 그렇게 죽은 아이 성의 군사와 백성들이 모두 만 이천 명입니다. 여호수아는 아이 성 주민을 모두 죽일 때까지 그가 잡은 단 창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아말렉 전투에서 모세가 지팡이 잡은 손을 내리지 않았던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이 장면은 전쟁의 승패가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여리고 성과 달리 이번 전쟁에서 얻은 탈취물과 가축들을 이스라엘이 취할 수 있게 하셨고 이들은 아이 왕을 죽이고 아이 성을 불살라 영원한 돌무더기로 만들어버림으로 우상 숭배의 소굴인 가나안 땅에 내려지는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대행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1차 공격에서 실패한 아이 성 전투가 2차 공격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일차 공격의 실패 요인인 아간의 범죄가 처리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범죄는 그냥 도둑질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긴 불순종과 불 신앙의 범죄였습니다. 7:11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겼나니” 7:15에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언약을 어기고 이스라엘 가운데서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이니라” 7장의 실패가 언약을 어긴 불순종이었다면, 8장의 승리 이유는 언약의 말씀에 순종했던 언약의 회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 7장에서는 언약을 어겼을까요? 6:27을 보실까요.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하시니 여호수아의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니라” 여리고 성의 승리로 여호수아의 명성이 온 땅에 퍼졌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여리고 성의 승리가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주신 승리였는데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여리고 성의 승리에 도취 되어 그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쉽게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언약을 어기고 불순종의 죄를 저지른 사람이 아간 하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간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7:1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 했다고 아간의 범죄를 이스라엘 전체의 범죄로 간주했습니다. 단수가 아니라 복수입니다.하나님의 진노도 아간 한 사람이 아니라 이스라엘 자손들 모두에게 아이 성의 패배로 내려졌습니다. 아이 성 일차 공격이 처참한 패배는 단지 아간 한 사람의 범죄 때문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의 불순종과 불신앙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증거는 아이 성을 정탐하고 돌아온 정탐꾼들이 아이 성은 작으니 다 올라갈 필요가 없고 이 삼천 명만 올라가도 된다고 한 보고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여호수아도 그 보고에 동의해서 여호와께 묻지도 않고 그렇게 했습니다. 어떤 의미입니까? 여리고 성의 전투가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거둔 승리임을 잊어버리고 마치 자신들의 능력과 힘으로 거둔 승리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간의 범죄를 처리하는 동시에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교만과 자고를 교정하십니다.
그 교정의 방법이 8장의 매복과 복병을 통한 아이 성 공격입니다. 매복과 복병 작전은 통상적으로 약한 군대가 강한 군대를 대응할 때 시도하는 방법입니다.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는 너무나 당당하게 나팔을 불고 언약궤를 앞세워 매일 한 바퀴씩 성을 돌게 하셨던 하나님이 두 번째 아이 성 공격에는 매복하게 하셨습니다. 복병의 방법으로 싸우라 하셨습니다. 8장에 매복과 복병이란 단어가 무려 10번이나 나옵니다. 복병은 땅에 엎드려 있는 상태이고 매복은 땅을 파고 들어가 있는 상태로 둘 다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려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의미입니다. “이 싸움은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하나님의 역사 없이는 도무지 이길 수 없으니 도와주십시오”라는 뜻입니다. “백성이 다 올라갈 필요 없습니다. 이 삼천 명만 올라가도 충분히 이길 수 있습니다”로 반응했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군사 전부를 거느리고 아이로 올라가서 매복하여 복병을 두라고 합니다. 그리고 손에 단 창을 잡고 아이 성을 가리키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들이 얄팍한 머리와 힘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온전히 의지하라는 뜻입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을 때 하나님은 역사하셨습니다. 20절을 보면 매복작전에 속아 성을 잃고 달아나는 아이 성 군대의 상황이 이렇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아이 사람이 뒤를 돌아본즉 그 성읍에 연기가 하늘에 닿은 것이 보이니 이 길로도 저 길로도 도망할 수 없이 되었고 광야로 도망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그 추격하던 자에게로 돌아섰더라” 여기 원문에 있는 중요한 단어 하나가 우리말 번역에는 빠져 있습니다. 원문에는 “그들에게는 이리로도 저리로도 도망갈 수 있는 두 손(יָדַיִם)이 없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두 손’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 8장에 매복과 복병이라는 단어도 많이 반복되지만 ‘손’이라는 단어도 그 못지않게 많이 나옵니다. 8번 나옵니다. 히브리어의 ‘손’은 ‘능력’을 뜻할 때가 많습니다. 일부 영어 성경은(ESV, GNV, KJV, RSV) 아예 20절의 손을 능력(power)으로 번역했습니다.
아이 성 군사들이 이 길로도 저리로도 어디로도 도망갈 능력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아이 성 군사들을 완전한 무능력의 상태에 빠지게 하셨습니다. 반면에 여호수아의 손을 통해서는 역사하셨습니다. 18-19에 손이라는 단어가 4번 나오는데 모두 단수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면 아이 성 정복에 여호수아의 한 손으로 충분하다는 의미입니다. 여호수아의 한 손만으로도 아이 성 모든 군사의 두 손을 무력화하심은 이 전쟁의 승리가 숫자나 작전에 있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우리의 연약한 한 손으로도 적의 광대한 두 손을 무력화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매복과 복병을 통한 낮아짐과 겸손함, 그리고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믿음의 순종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게 하는 유일한 비결이라고 아이 성 전투는 가르쳐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여리고 정복과 아이 성 정복을 너무나 다른 방법으로 허락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 때 때로는 여리고 성 전투처럼 싸워야 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아이 성처럼 대처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천편일률적인 공식은 없습니다. 다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여리고 성을 아이 성처럼 싸워서는 안 됩니다. 아이 성을 여리고 성처럼 싸워서도 안 됩니다. 우리의 경험과 우리의 판단을 의지하거나 과거의 승리에 도취 되어도 안 됩니다. 한 번의 실패로 낙담해서도 안 됩니다. 그때그때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는 영적 지각과 그를 실행하는 겸손하고 담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사는 일이 간단하지 않습니다. 만만하지 않고 쉽지 않습니다. 여리고 성처럼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앞세워 보란 듯이 도는 담대한 믿음도 필요하고 아이 성 전투처럼 철저하게 낮은 마음과 겸손한 자세의 매복과 복병도 필요합니다. 이 둘은 병행되어야 합니다. 담대한 믿음만 있고 겸손한 믿음이 없어도 곤란하고 겸손한 믿음만 있고 담대함이 없다면 그 또한 온전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무모하게 보이지만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여리고 성을 돌아야 하고, 때로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지성과 전략을 사용하면서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여리고 전투에서 손대지 못하게 한 전리품을 아이 성 전투에서는 허락하셨습니다. 여리고 뒤에 아이가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언약을 어기고 욕심으로 하나님께 돌려야 할 물건을 손대었던 아간의 범죄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매정하신 분이 아닙니다. 선하신 분입니다. 아간이 선하신 하나님을 믿고 신뢰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십니다. 현실적인 문제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있어야 할 줄을 아십니다. 나는 지금 필요한데 그 필요가 채워지지 않고 늦어질 때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늦게 주실 때는 이유가 있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이 손도 대지 말라고 명하실 때나 지금은 아니라고 하실 때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기회를 준비해놓으시고 그렇게 하신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