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계보다 이공계가 취업이 더 잘된다는 건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금융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회사들이 이공계 출신을 많이 뽑는다. 인문계 소위 문과는 이과에 비하면 가뭄에 콩 나듯 선발한다. 따라서 공공기관으로 목표로 한다면 이공계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좋다. 실제 연구소에서도 채용공고를 내면 연구직 경쟁률은 2:1 이하인 경우가 많지만, 행정직은 수십대 1, 심지어 100대 1을 넘어설때도 있다. 따라서 공공기관에 취업할 생각이라면 또한 공공기관 합격의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서는 이공계 분야가 아무래도 수월하다.
우리가 대학 전공을 선택할 때 공공기관 취업을 염두에두고 선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아니 없다. 대학 입학시점부터 졸업, 그리고 장래 진출방향까지 치밀하게 조직하고 대학에 들어오는 사람은 없다. 그러한 미래가 대략 정해져 있는 의대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래서 다들 대학 시절을 무대책으로 일관하다가 졸업 즈음이 돼서야 발에 불이 떨어져 서두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빨라야 졸업 1년 전부터 준비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도 1년이라도 미리 준비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양반이다. 짧은 기간이나마 열심히 준비해서 직업을 정하면 다행인데 문제는 그런 고민 없이 졸업시점이 다가오는 때이다. 이 경우 별 생각 없이 취업의 문을 두드리는데 이 지경까지 오면 이미 늦었다. 운 좋게도 단번에 취업이 되어 그럭저럭 먹고 살면 다행인데 문제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경우다.
뒤늦게 자격증 따 놓을 껄, 학점 관리 좀 할 껄, 이공계로 진학할 껄, 하는 후회를 해봐야 이미 늦었다. 특히 대학 전공은 복수전공을 하지 않는 한 바꾸기도 쉽지 않다. 수능을 다시보거나 하면 타 지원자에 비해 나이가 먹어 취업 확률이 현저히 떨어진다. 취업 시장도 결혼 시장과 마찬가지로 적령기가 있기 때문이다.
전공을 바꿀 수 없다면 관련 자격증은 반드시 따 놓아야 한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취업이 1,2년 늦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자격증을 취득하기 바란다. 인문계에서 자격증을 취득한다는 것은 이공계 출신 이상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일전에 한 영화에서 ’역시 사람은 기술이 있어야 해‘라는 말을 듣고 무척이나 공감했다. 자격증도 일종의 기술이다. 세무사 자격증은 세무 기술인 셈이고, 노무사 자격증은 노무 기술이다. 산업안전기사를 따면 안전 기술자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 자격증을 따야 한다. 기술이 있어야 사회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살 수 있듯이 자격증은 이 모두를 견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예전에 굴지의 대기업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자동차회사였다. 자동차회사는 업종으로 분류하면 제조업이다. 제조업 회사는 생산직 인원이 직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자동차 업계는 생산직 인원의 대부분이 남자 직원이다.
당시 대졸 신입 공채를 상·하반기 나누어 각 600명씩 선발했다. 600명 중 인문계 비중이 얼마나 될까? 내가 보기엔 100명이 채 안됐다. 대부분 인력이 이공계였다. 아마 대부분의 제조업 직장은 다른 곳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금융계나 서비스업 쪽은 비이공계 출신들이 많겠지만 제조업 특히 중화학 공업 쪽은 대부분 공학을 전공한 남자 직원이다.
주변 지인과 진로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공부를 좀 하면 의치한약수로 보내고 평타를 치면 이공계 특히 공대로 가라고 권유한다. 인문계 나와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본인만 뛰어나다면 인문계, 이공계 구분이 무엇이 필요하겠냐마는 막상 사회로 나와 보면 그렇지도 않다. 이공계에게 기회가 더 많다.
그럼 공공기관은 어떨까? 공공기관도 이공대 경향성이 뚜렷할까? 공공기관도 종류가 워낙 다양해 천차만별이어서 일정한 경향을 특정하기는 무리수가 따르기는 하지만 공기업 중 가장 인기가 있다는 금융공기업을 제외한 SOC공기업, 에너지 공기업은 이공계 출신들을 정말 많이 뽑는다. 인문계 채용의 수 배에서 수십배씩 된다. 업종 자체가 이공계 출신들을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SOC공기업이나 에너지 공기업으로 가려면 이공계가 아무래도 유리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한국남부발전, 한국서부발전과 같은 발전자회사나 한국수력원자력과 같은 에너지 공기업이 대표적인 예이다.
흔히 이런 말을 한다. 이공계 출신이 인문계 업무는 할 수 있어도 인문계 출신은 이공계 업무를 할 수 없다. 실제 정부출연 연구기관도 박사 출신의 연구자들이 행정 업무의 부서장을 맡고 있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하지만 행정업무 담당자는 연구자들이 하는 업무를 담당할 수 없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일렉 기타 치는 사람이 통기타는 쳐도, 통기타 치는 사람은 일렉 기타 못치는 것과 유사한 원리이다. 그래서 기타를 배우겠다는 사람도 나는 ’일렉 기타‘를 배우라고 권한다. 일렉 기타를 치면 통기타도 쉽게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통기타의 원리가 일렉 기타에 고스란히 포함되어 있으니까. 따라서 이공계 출신이 인문계 업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진실이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우리가 흔히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말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결론적으로 공공기관에 들어가려면 아무래도 인문계보다는 이공계가 유리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것도 어느 기관을 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다. 본인의 상황에 맞춰 전공도 잘 판단해야 한다. 특히 이공계는 자격증 취득이 아주 중요하다. 보통 채용할 때 대규모로 하기 때문에 학위(학사나 석사)와 자격증(기사 등)만 잘 갖추고 있으면 비교적 수월하게 공기업에 입사할 수 있다.
결국 이공대가 유리하다. 인문계 출신들은 인문계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관으로 가는 것이 좋다. 하지만 불행히도 금융공기업을 제외하고는 많이 뽑지도 않을뿐더러 급여 수준이 높지 않다. 또한 이공대 출신이 많은 공공기관은 인문계 출신이 올라갈 수 있는 자리가 별로 많지 않다. 이런 점도 고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