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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12월10일 주일오전설교
성경합독: 이사야26장, 사도행전10장
성경낭독: 시편2:1-12절
설교본문: 사도행전4:19-30절
설교제목: 담대함을 구하는 기도
예배찬송: 찬송381장, 찬송260장, 찬송1장, 찬송357장
시2편 1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4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5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6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7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10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11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행4장 19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21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 22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 23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 24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오 25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26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27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28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29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30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성전을 지키던 권력자들, 유대인 교회지도자들은 사도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금지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옥에 가두면서 위협하였고 부활의 복음 전하는 것을 더 이상 이어하지 못하도록 위협했습니다. 부활의 복음이 증거 되면 될수록 자신들의 약속대로 오신 메시야를 거절하고 배역한 저들의 죄악이 더욱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지금까지 이룩해온 자신들의 아성, 권력, 살림살이와 밥그릇이 위협을 당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격렬하게 반대하였습니다.
사도들을 통해서 드러난 이적의 증거가 부인할 수 없을 만큼 선명했기 때문에 반박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평생 앉은뱅이로 살다가 나음을 받았고,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있는 증인이 시퍼렇게 살아 있었기에 틀렸다고 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위협하면 우물쭈물 뒤로 물러날 것이라고 기대했던 예상은 깨어져 버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강퍅한 마음은 증거 앞에서도 더욱 악화될 뿐이었습니다. 사도들을 놓아주면서도 다시는 복음을 증거 하지 말 것을 반복해서 위협했습니다. 하지만 사도들의 대답은 당당했습니다. 19-23절을 봅시다.
1. 옳은가 판단하라.
19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21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 22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 23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
공회, 곧 교회회의의 결의를 따라 사도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말 것을 결의하고 따를 것을 종용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와 요한은 거절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이 들은 말을 증거 하기 위해 부름 받았고, 그 직무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 곧 교회회의에서 결정한 말을 듣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 가운데 어떤 것을 옳은 것인지 판단하라고 맞대응하며 판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을 가두고 복음 증거를 금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여심의 여지없이 교회를 대표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서 권한을 남용하고 있기 때문에 따를 수 없다고 말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도리어 공회를 책망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직분자들이 당연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마땅한데, 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일을 방해하느냐고 따지고 있습니다. 똑바로 판단하라는 문책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불의를 행하는 공회를 따르는 것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일이 될 터인데, 너희 말을 듣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중 어느 것을 따르는 것이 마땅하냐고 도리어 묻고 있습니다.
20절에서 사도들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입니다. “말하지 않을 수 없다”라는 말은 원문에서는 이중 부정을 만들어 내면서, 따르기를 강하게 거절하는 진술이 됩니다. 교회의 직분자들의 모인인 공회의 말을 듣지 않는 부정은 더 이상 지금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뜻과 길에 대한 표현을 대리하지 않는다는 선언입니다. 약속된 메시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지도자집단이 여전히 회개하고 돌아갈 기회가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있다는 선고이고, 따라서 사도들은 공회의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일탈을 넘어 하나님의 소명에 따르지 않을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사악한 금령 때문에 우리의 입을 다문다면, 우리의 비겁함에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고 침묵함으로써 그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는 두려운 말씀이 주님의 입에서 나오지 않도록 하려면, 우리에게 주어진 합당한 순종으로 우리의 믿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9:16절에서 말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기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우리는 복음의 증거를 방해하는 장애물들과 온갖 방해들과 싸워야 합니다.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로 자녀들이 복음에서 소외되도록 방치하지 않아야 합니다. 순종을 위해서 싸워야 마땅합니다.
우리가 순종하고 따라야 할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직함을 가지고 있고, 어떤 이력과 이름을 가지고 있는가는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순종하고 따라야 할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어야 합니다. 개인이든 단체나 기관이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질서 지워주신 기관과 권위를 우리는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고, 합당한 권위에 대한 순종은 곧 하나님께서 질서 지워주신 울타리 안에서의 순종의 삶이 됩니다. 그러나 언제나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한 질서에 따름이어야 합니다. 말씀에 위배되는 것은 개인이건, 기관이건, 어떤 빛나는 권위이건 하나님의 말씀보다 위에 두거나 앞세우지 않아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교만한 마음으로 제 멋대로 공회의 법과 규칙을 따르지 못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결정될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수 없다고 답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을 순종하는 것이 옳은가를 판단할 때에 “하나님 앞에서(coram Deo)”라는 말이 나옵니다. 베드로는 아무리 눈 멀었다 하더라도 자신을 하나님 보다 우위에 놓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명시적으로 못 박고 있습니다. 사태가 이렇게 흘러가자 저들은 다시 위협하였습니다. 21절입니다.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
다시 위협했다는 것은 더 위협했다는 말입니다. 사도들에게 공회의 결정을 따르지 않고 계속해서 복음을 전한다면, 사회적이고 법적인 판결에 따른 불이익과 자신들에 의한 무서운 위협에 직면하게 될 것을 경고한 것입니다. 저들은 나름대로의 종교적 판단에 따른 사형권까지 가졌고, 이단으로 정죄할 수도 있었습니다. 모든 물품의 거래와 상업 활동, 지금까지 누렸던 모든 질서 안의 이익에서 떨어져나가는 무서운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는 것으로 위협한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습니다. 저들의 반대는 복음을 저지할 수도, 사도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지도 못했습니다.
악한자들이 분노를 다 삭이지 못하고 광분하여 씩씩거리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밀한 능력으로 재갈 물려진 상태였기에 사도들을 해칠 방도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들을 묶어 놓지 않으셨다면, 사도들의 생명이 보존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복음은 주님의 간섭하심과 돌보심 가운데 사역자들을 남기심으로 이어져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박해로 사도들이 목숨을 잃은 가운데서는 도리어 더욱 강렬히 복음이 전파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앉은뱅이의 나이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40세 즈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평균수명을 생각하면 거의 일생동안 앉은뱅이로 지냈던 사람이 회복되어 그리스도의 교회에 가담하게 되었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40년 동안 줄곧 변함없이 지속되어온 질병의 족쇄, 무서운 관성에서 벗어나게 하셨고 치유로 말끔히 씻어내셨습니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증거와 표적이었던 앉은뱅이는, 공회에서 벌어진 심문의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복음의 표적이 되었을 뿐 아니라 복음이 갇히지 않고 담대히 증거 되어야 할 것과 사도들이 굽힘없이 공회에 증언한 내용의 증인으로 교회 공동체에서도 증인이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동료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그 어떤 계급도 볼 수 없습니다. 교회를 일러 ‘동료’, 곧 ‘친구들의 공동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들에게 권세를 주셨고, 뒤에는 장로들과 집사들을 세워 권위를 실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교회는 서로 의지하는 ‘친구들의 공동체’, 곧 ‘믿음의 동료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가 얼마나 서로를 의지하고 끈끈하게 사랑하는 공동체로 모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공회에서 증언한 이야기를 동료, 곧 공동체로 돌아가서 모두 보고하였습니다. 붙잡히면서부터 심문을 당하고 증언한 모든 과정을 동료들에게 설명해주었습니다. 맹렬한 대적들로부터의 박해와 심문이 따를 것을 예상했고, 서로를 격려하면서 복음의 증인으로 굳게 설 것을 서로 격려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복음을 증언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은 일에 있어 싸움을 예상하고 대비하도록 했습니다. 사도들의 보고를 들은 공동체는 한 마음으로 시편 2편을 기억하였고, 대적의 위협 앞에서 담대함을 주시기를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24-30절을 봅시다.
2. 담대히 전하게 하여 주소서.
24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오 25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26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27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28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29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30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사도들의 보고를 들은 공동체의 반응을 담고 있습니다. 박해와 위협 앞에서도 복음의 증거가 쉬지 않고 전파될 수 있도록 담대함을 주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기도의 내용을 보자면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박해 가운데서 강해지고 권능을 주기기를 구합니다. 교회는 박해를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강하게 박해와 위협을 견딜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구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원수들이 위협하고 사도들을 일시적으로 놓아주었습니다. 이러한 위협 앞에서 사도들은 이 사실을 교회에 말하였고, 이 문제를 놓고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위험에 처했을 때에 두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무섭고 두려운 위협 앞에 설수록 더욱 간절하게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원수들의 강하고 큰 위협 앞에서 교회는 창조주 하나님, 곧 권세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간구하였습니다. 온 세상의 조성과 형성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았음을 고백합니다. 두려운 권세를 가진 이들도 실상 하나님의 권위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해 증언된 시편 2편, 하나님이 세우신 왕인 다윗을 대적한 일을 소환하여 하나님의 세우신 그리스도를 대적한 일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25-28절을 다시 봅시다.
25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26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27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28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열방이 분노했다는 말은 ‘마음대로 행동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드러난 뜻을 거절하고 오만하게 자기 뜻을 주장했다는 의미입니다. 시편2편은 다윗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한 고백입니다.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도처에서 일어난 대적들과 훼방으로 약속한 나라를 이룩하기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과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관원들과 백성들이 사울과 그의 가문과 결탁해서 다윗을 죽이려했다는 것을 잘 압니다. 새로운 왕을 얕잡아 보고 경쟁적으로 싸움을 걸어왔다는 것도 압니다. 광분하여 자신을 죽이려 공모했고, 민족들이 갖가지 일을 꾸며 위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스르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일입니다. 원수들의 수많은 위협과 도전 앞에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나라를 견고히 붙잡고 계셨습니다. 그들의 어리석은 봉기와 도전, 모든 소동들이 어리석은 허사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다윗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나라를 예표하기 위해 세워진 나라이며, 주님의 나라를 대적하는 모든 도모 또한 허사가 될 것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들은 모두 먼지처럼 무너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온 세상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분명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온 왕들과 권세들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견고하게 서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메시야 되신 주님의 나라를 반대하고 소동을 일으킨 이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관리들과 헤롯, 본디오 빌라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합세하여 주님을 반대하고 죽여 없애려고 광분하였습니다. 당시의 모든 통치자들이 함께 주님을 없애려고 도모했습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왕을 대적하여 한 마음으로 힘을 모아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시편2편에서 기름부음 받은 다윗에게 대적했듯, 저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적대하였고 죽이기를 모의했고, 실행하였습니다.
28절에서는 악인들의 도모와 박해조차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심을 막아서지 못한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원수들의 광분과 대적으로 빚어진 일들이 도리어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원수들이 공모에 의해서 주님의 나라가 무너지기는커녕 본격적으로 성취되고 흥왕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비밀한 뜻과 경륜을 가지고 작성하신 일들을 이루어가십니다. 우리의 눈으로 볼 때, 온통 악이 무성하고 흥하며 복음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 지리멸렬하고 무너져 끝장나는 듯 보여도 그렇지 않다고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서 겪으셨던 원수들의 거부와 공모, 대적들이 하나님의 계획과 손 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지와 권능을 꺾을 수 있는 인생은 없습니다. 제자들의 눈에 주님께서 체포되시고 끌려 심문을 받으시고, 심판과 정죄 형벌을 받으심으로 주의 나라가 끝장 난 듯 보였지만,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고 뜻이 성취되는 방편으로 삼으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29-30절을 봅시다.
29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30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심문을 받고 돌아와 보고하는 베드로와 요한의 말을 듣고 난 후 교회는 앞으로 전개될 고난과 박해조차도 하나님의 권세와 뜻, 복음이 증거 되고 확장될 일을 막아설 수 없는 것임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기도는 간명했습니다. 고난을 받지 말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물리칠 권능을 구했고, 주님의 복음이 하나님의 뜻대로 확장되게 해 달라고, 담대히 주의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의지하는 모습입니다.
원수들의 위협을 굽어보시기를 구했습니다. 산헤드린의 위협과 도모를 주목하여 보셔서 교회를 해하려하는 저들의 도모와 공모가운데 간섭해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산헤드린을 파괴해 달라거나, 그들의 대적으로 인해서 해를 입지 않게 해달라는 간구가 아닙니다. 교회가 저들의 박해 앞에서도 신실하게 복음을 견지하고 대면하여 설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담대함을 주실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구별할 수 없듯이 그리스도의 몸 되고 지체된 교회의 고난과 주님을 분리할 수 없습니다. 교회의 박해는 곧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박해입니다. 사도들에게 대한 대적과 악행은 곧 주님에 대한 악행입니다. 주님은 자신과 몸 된 교회를 묶으셨습니다. 복음을 위한 삶은 유유자적한 삶이 결코 아닙니다. 평온하고 괴로움이 없는 삶을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떤 곳에서든지 주의 복음이 전파되는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의지하며,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기도였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