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책읽기11/바람을 가르다/김혜은/샘터/2017
“어, 엄마, 내가 하, 할래.”
나는 엄마 손을 뿌리쳤다.
‘아무리 작은 거라도 내가 스스로 해 보고 싶어. 남들 보기에 좀 이상해 보여도 난 괜찮아.’
이렇게 길게 말하고 싶었지만……. 새삼스럽게 가슴이 답답해지면 눈물이 났다.
“어? 다른 땐 찬우도 혼자 잘하는게? 이런 건 안 도와줘도 되는데?”
용재가 나와 엄마를 번갈아 보며 의아한 얼굴로 말했다. 엄마가 용재를 쌀쌀맞은 표정으로 봤다. ‘네가 뭘 알아?’라고 하는 것 같았다. 용재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나를 봤다. 내 젖은 눈을 본 용재 눈이 커졌다.(20)
“요, 용재 덕분에 처, 처음으로 자전거도 타, 타봤어. 용재는 자, 잘못한 거 없어. 나 좀 다, 다치더라도 치, 친구들하고 같이 해 보고 싶어. 이, 이렇게 조, 조심만 하고 살다간 어, 어른도 모, 못 될 것 같다고!”(34)
---이 동화책에는 3편의 단편이 있다. 표제인 <바람을 가르다>, <천둥번개는 그쳐요>, <해가 서쪽에서 뜬 날>이다. <바람을 가르다>는 찬우의 시점에서 뇌병변 장애를 가진 입장을 생각해 본다. 보호와 자립의 경계는 혼동스럽다. 위험요소로부터 경계하기 위해서는 보호가 절대적이다. 보호에 치중하다보면 자립이 안된다. 용재를 통해 새로운 시점으로 세상을 본다. 엄마도 찬우도 한발짝 성장으로 나아간다. 인물의 설정이 단순하고 간결하다. 사건의 전개는 다소 뻔하지만 좋다.
<천둥번개는 그쳐요>는 가족 돌봄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도 어른이 어린이에게 반 어른의 모습을 요구한다. 해미는 오빠를 위해 참아야 하고 오빠를 돌봐 주어야 하고……. 엄청난 무게감이 가슴을 짓누르겠다. 부모의 고통도 그만큼 크겠다. 사회 구조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우리 사회는 가족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장애인 이동권 확보도 어렵고, 특수학교가 마을에 들어서기도 어려운, 편견이 가득하다. 서연이 엄마로 대표되는 편견은 장애를 입은 아이뿐 아니라 가족 전체에게 덧씌운다. ‘같이 놀지 말라고’. 어른으로서 부끄러운 대목이다.
<해가 서쪽에서 뜬 날>은 선생님의 입장에서 서사가 전개된다. 자폐아를 대하는 태도라기보다 학생을 대하는 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이야기다. 평소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분위기가 풍기고 얼굴마저 험상궂은 마선생은 유빈이를 만나 태도와 차림새, 외모가 변하기 시작한다.
아이를 이해하려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갈등이나 대립이 크게 없이 술술 전개되는 구조, 선생님이 스스로 변화하려는 노력, 우연의 일이 해결의 끈이 되어 가는 서술방식은 조금은 안이한 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