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벧후 3:8,9)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youtube.com)
미국 한 시골에 독실한 믿음을 가진 한 부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남편은 신앙을 반대하는 사람이였고 때때로 부인의 신앙을 반대하며 주먹질까지 하곤 하였습니다.
그날도 나무를 패던 남편은 성일에 교회에 가길 위해 아침부터 준비하는 부인을 향해 갖은 욕설을 하며 폭언을 하던 남편은 교회가기 위해 나서는 부인의 가방을 빼았아 가방을 열고 안에있는 성경을 꺼내어 나무통위에 놓고 도끼로 절반을 찍어 반으로쪼개진 성경책을 부인에게 주며 당신이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는 성경 나도 좀봅시다 하며 반쪽의 성경을 두텀한 웃통 주머니에 집어넣었습니다.
부인은 반쪽 성경을 들고 교회 가서 남편의 회심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였습니다. 남편은 일을 하다 반쪽 성경이 손에 잡혀 이것이 무엇이기에 그렇게도 소중하게 여길까 반 짤린 성경을 궁금해하며 읽어 보왔습니다.
그곳엔 이러한 이야기가 적혀있습니다
두 아들이 있어 아버지에게 분깃을 나누어 달라 하여 집을 나간 아들이 허랑방탕하며 돈을 다 허비하였다는 이야기에 흥미를 갖게된 남편은 다음장을 읽었습니다. 돈을 낭비한 아들은 그곳에 흉년이 들어 갖은고생을 하다가 결국에는 돼지죽을 먹는 그러한 신세로 떨어진 내용에 그놈 그럼 그렇지 하고 중얼그렸습니다.
그 다음 내용엔 그 아들이 집을 그리워 하며 아버지의 사랑을 생각하며 이제 집으로 돌아가리라 라는 말씀까지 읽고 다음 장을 읽으려니 성경이 짧려 나가고 없었습니다.
부인이 오기를 기다린 남편 부인이 돌아오자 마자 그 성경 절반 나에게 잠시만 좀 빌려줄수 없겠소 하고 말하자 절반의 성경도 잃을까 봐 절대로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성경의 다음 내용이 궁금하여 그러하다는 것을 들은 부인은
성경을 건네주게 되고 남편은 돌아온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 읽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을 읽고 어떻게 되었을까요?
감동적인 아버지의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이며 그 사랑은 당신을 기다리시는 하늘아버지의 사랑이라고 설명하는 아내의 감동에 이끌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그가 읽은 말씀이 어떠한지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눅 15:20~24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 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이런 아버지 좋으신 분입니까?
성경은 우리의 하늘 아버지는 좋으신 분이라고 말 합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우리의 형편을 그대로 가르켜 주고 있음을 보여주고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 집에 있을 때의 모습을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불편함이 있었습니까? 부족함이 있었습니까? 주림이나 헐벗음이 있었습니까?
그의 마음이 아버지의 사랑을 잊지만 않았더라면 언제나 누릴 수 있는 행복이 그의 것이였습니다.
그런 모습은 우리가 죄를 알지 못하던 하나님께서 처음에 세상을 만드실 때의 모습이였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 하고 있습니다.
우린 처음의 세상이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죄가 없었고요, 시기나, 질투가 없었고요, 다툼도 없었고요,
그렇게 많이 일어나는 사고도 없었습니다,
함께 믿음을 가진 형제의 차 사고로 인하여 병원에 갔더니 차 사고 나신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전부 교통사고로 오신 분들입니다.
같은 성도님이 암으로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았는데 그 병동은 전부 암 환자분들이었습니다.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다 암 환자들처럼 보였습니다.
장례식장에 가 보세요. 전부 죽어 나가는 사람들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제가 한번은 대구에 있는 장례식장에 갔던 일이 있습니다.
옆에서 할머니한분이 하도 오열을 하시기에 살펴 보았습니다.
영정이 세 개가 있었습니다.
보니까 아들로 보이는 사진이 있고요. 며느리로 보이는 사진이 있고요.
손주로 보이는 사진이 있었습니다.
한 가족이 교통사고로 다 죽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그 할머니가 오열을 할 수 밖에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그런 세상입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처음에 창조하셨던 세상은 그런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세상에 살고 있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처음 세상에 살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사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게 하시고 우리를 값없이 용서하시고 누구나 믿으면 그 세상에서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믿는 백성들을 데리러 오시겠다고 성경으로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참여하신 우리 모든 분들 다 그나라에 참예하게 되길 소원합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믿기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가 있습니까? 예 이유가 충분히 있습니다.
왜냐하면 행복 그 자채가 오염되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세상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이 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세상에서 누가 제일 행복할 것인가 물어보았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물어 볼까요? 세상에서 누가 제일 행복한 사람 같습니까?
옆에 계신 장로님 집사님들 눈치 보지 마시고요.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시고 대답한번 해 보시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첫째로는 돈이 많은 자라고 대답했고요. 그 다움은 권력있는 자라고 대답했고요 그 다음 건강한 사람들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들의 말에 조금 동의 하십니까?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돈이 많으면 제일 행복할 것 같습니까?
아니면 돈도 있고 권력도 있고 건강도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그런데요 성경은 진정한 행복을 죄와 관련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죄가 없는 곳에 행복이 있다고. 그럴 거 같습니까?
오늘날 이 세상은 죄로 인해 악으로 기울대로 기울어져 있는 세상임을 말해줍니다.
행복하다고 하지만 불안하고요. 안전하다고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 날 것 같아 초조하고요.
그래서 보험업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암이 걸리니 혹 나도 라는 마음에 암 보험을 들고요.
다치면 어떻하나 해서 상해 보험들고요. 요즘은 치매 보험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간병인 보험도 있다고 하고요.
죽으면 어떡하나 해서 생명보험 들고요.
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운전 종합 보험 외에는 아무 보험을 들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여기까지다 하면 그것을 감사하면서 살자 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며느리를 보고 사돈이 보험을 하니 달라졌습니다.
사돈이 권하니 거절하면 며느리 힘들게 할 것 같아서 권하는 몇 개를 들었는데 당장 혜택을 보았습니다.
상해 보험과 운전자 보험으로 많은 혜택을 본 일이 있어서
아 이래서 보험을 넣는 구나 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어느 곳으로 가도 평안과 안전과 행복이 없어 보이는 세상에 오늘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람의 힘으로 진정한 행복을 이루어낼 수 없는 그러한 세상임을 성경은 말합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둘째 아들이 돼지 먹는 죽으로 연명 하는 그러한 세상 환경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세상에서 진정한 행복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뿐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돼지 우리에서 어떤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래도 먹을 거 넉넉하다고 남 보다 좀 많이 가졌다고. 권력 있다고 돼지 우리에 있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돼지들이라는 이름을 써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죠.
행복한 것 같은데 행복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 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
진정한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아버지 집을 그리워하며 돌아가게 되길 바랍니다.
두 번째로 본문은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함께 교독한 말씀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벧후 3:8,9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 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이 진교를 사랑하시어서 소똥 냄세 나는 소 우리를 이렇게 생명수가 흘러나는 교회로 만드시고 이곳에서 하늘 생명수가 흘러나게 하심을 인하여 감사합시다.
오늘 이 진교에 하늘 문을 열개하신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어 구원하여 영원한 행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나를 사랑하시어 이곳에 교회를 세우시고 나로 하여금 오늘 이 순간 이곳에서 하나님을 찬미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길 바랍니다.
눅가복음 15장에 나오는 그 아들이 집을 나간 후로 아루도 맘 편하게 잠을 자 보지 못한 아버지였습니다.
밤이 되면 온 집안에 불을 밝히고 문마다 열어놓고 기다리시는 아버지였습니다.
행여 아들이 집을 찾지 못할까 봐 집수리도 하지 않았을 것임니다.
집으로 오는 길도 아들이 나갔을 그때 그대로 두었을 것임니다.
왜냐하면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요.
이 모두는 우릴 사랑하시어 우릴 배려하시는 하늘 우리 아버지의 우릴 향하신 사랑을 다는 나타내지 못해도 조금 아주 조금 이해하게 해 줍니다.
평생을 어머니의 가슴에 멍을 들게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불량 청년들과 어울려 나쁜 일을 하다가 교도소를 가게 되었고
중죄인에게 주어진 많은 형량을 살게 되고 교도소 안에서 그는 새로운 삶을 살고자 변화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형량은 감해지고 10여 년의 감옥생활을 접고 석방되어 고향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석방되기 전 아들 때문에 마음 편할 날이 없었던 그의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어머니 불효 아들입니다. 그동안 얼마나 어머니 가슴을 아프게 했는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이제 새로운 마음으로 고향에 돌아가서 어머님께 효도하고 싶지만
어머님께서 저를 용서하여 주실지 저의 마음에 그동안 어머님께 저질렀던 많은 일들이 생각납니다.
어머님이 저를 용서하신다면 집 앞에 있는 정자나무에 노란 수건을 걸어주셔요. 수건이 있다면 어머님께서 용서하신 줄 믿고 돌아 가겠습니다.
그러나 아직 아들에 대한 슬픔 마음과 걱정된 마음이 있으시다면 그냥 두셔도 어머님을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편지를 보내고 이제 저 산만 돌아가면 마을이 보이고 집 앞 정자나무가 보일 것인데 과연 어머님이 나를 용서하셨을까. 하는 의구심으로 산을 돌아가는 열차 밖으로 그의 눈은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산을 돌아가는 순간 아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마을 앞 정자나무 뿐 아니라 집으로 들어가는 길 양쪽으로 노랑색 수건으로 덮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만난 어머니는 말했습니다.
작은 수건을 걸어 놓으면 아들이 보지 못하고 혹 그냥 지나 칠까 봐 이렇게 우리 집에 있는 노랑색이 모자라 이웃에 빌려다가 이렇게 걸어 놓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아들을 대하는 어머니의 사랑입니까?.
이 세상 사랑 중에 가장 위대한 사랑이 어머니의 사랑이라고들 말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 합니다.
사 49:15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위대한 사랑이 어떤 사랑이라 합니까?
그들은 혹시 잊을 찌라도. 제가 언제 등에 없힌 아들을 자기가 살기 위하여 숲속에 버리고 간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해 드렸죠?
인간의 사랑은 그렇게 연약합니다. 엄마는 젖먹이 자식을 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목숨이 위태롭지 않을 때는 자식 사랑이 제일이지만 자기 목숨이 위태로울 때는 자식을 버리는 것이 사람이랍니다.
그런데 누구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까?
우리 위해 자신을 주신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으로 천년을 하루처럼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위대한 사랑으로 우릴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시길 바랍니다.
“밤마다 문을 열어놓고 마음 졸이시며 나간 자식 돌아 오기만 밤새 기다리신다오”
아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밖에서 기다리시는 그 아버지처럼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길을 잃지 않도록 그냥 지나치지 않도록 마을 앞 대추나무가 아닌 갈보로 높은 언덕 위에 십자가를 세우시고
당신의 찢기우신 몸을 걸어두시고 우릴 향하여 내가 너를 사랑한 증거가 여기 있다고 하십니다.
사랑하시는 성도여 사랑이 그립거던 갈보리 십자가를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길 바랍니다.
내가 아직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난다면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그곳에는 나를 사랑하시는 끊치지 않는 사랑의 증거가 세워져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염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십자가를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그곳에는 죽어도 나를 잊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나를 향한 사랑의 표가 있습니다.
그 사랑 때문에 우리도 믿음 포기하지 못하시는 은혜가 우리 모두와 함께하길 축복합니다.
다음으로 우릴 포기하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만 더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눅 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 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상거가 먼데 이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아직 거리가 먼데라는 말씀이죠?.
아들을 알아볼 거리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아들을 알아 보왔습니다.
이 말씀은 여러 가지 많은 의미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저는 우릴 포기하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밤에는 잠도 오지 않습니다.
아들 걱정에 아들이 불량자라고 남들이 손가락질해도 좋습니다.
돌아올 때까지 아버지는 기다립니다.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 누굴 그렇게 기다리신다는 말씀입니까?
저와 여러분들이 믿는 다고 하면서 돼지 우리에서 그게 자기 집인냥 살아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서 형식이 아니라 진짜로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기다리시도록 하시렵니까?
6000년의 그 기다림이 아버지의 눈을 멀지 않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입으신 우리 성도님들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는 여러분들의 처한 형편들을 다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하늘과 이곳은 거리가 멀지만 하나님께서 모르시는것이 없도록 우리를 아십니다.
상거가 멀지만 하나님 께서는 거리를 문제 삼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며칠도 못참는데 우리 하늘 아버지는 6000년을 참으십니다.
성도님들 어제 주님께서 오셨더면 어찌할 뻔 하셨습니까?
우리는 아이들에게 삼세번까지 용서한다는 말들을 합니다.
주님께서는 삼세번의 삼백 번을 곱한 것보다 더 많은 날들을 우릴 참으셨습니다.
참고 인내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오용하지 주님께 나가게 되길 바랍니다.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어서 읽어 드립니다.
아빠가 뺑소니차에 치어 돌아가신 날부터 딸의 방황은 더욱 심하였습니다.
밤늦게 들어오는 날수가 부지기수였고 툭하면 짜증을 내며 엄마에게 대
들었습니다.
오늘은 비가 많이 내립니다.
지붕을 손질하지 못하여 내리는 비는 천정을 뚫고 받쳐놓은
세수 대야로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더욱 맘 아프게 들립니다.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네 경찰서라고요.
네 학생이 술이 취해 행패를 부리고 소란을 피우고 있는 것을 잡아 와서
경찰서에 보호하고 있으니 오셔서 대려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딸의 반항은 더욱 심하였습니다.
"예 너 요즘" 하는 말에 딸은 발끈 화를 냅니다.
"나 관섭하지 말란 말이야 나 내 멋대로 살거야 자꾸 귀찮게 하지 말란 말이야"/
딸의 반항이 심하여 가면 갈수록 엄마의 근심은 더욱 깊어만 갔습니다.
비 소리는 더욱 서글프게 들립니다.
오늘은 딸의 생일입니다.
미역국을 끓여놓고 딸이 오기를 기다려도 오지 않는 딸을 기다립니다.
어릴 적의 딸이 생각났습니다.
세상에 모든 것은 다 주어도 바꿀 수 없는 딸 이었습니다.
재롱부리는 어릴 적 모습을 생각하며 업마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며칠 전 하루 종일 장사를 하고 남은 과일을 이고 돌아오는 엄마는 대문간에서
딸을 만났습니다.
엄마를 뒤에 두고 딸은 대문을 열고 대문을 꽝하고 닫았습니다.
따라 들어가려던 엄마는 대문에 맞아 이고 있던 광주리에서 과일이 떨어져 땅에
딩금니다.
"민희야 문좀 열어줘"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었었습니다.
이러 저러한 생각들이 딸을 기다리는 엄마의 마음에 더욱 아픔을 줍니다.
딸이 들어와도 대청 기둥에 기대어 있는 엄마는 잠이 들어 알지 못합니다.
기둥에 기대어 자고 있는 엄마를 보고 그냥 딸은 방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갑니다.
방안 딸의 책상에는 선물 포장과 함께 예쁜 편지지가 접혀 있습니다.
선물 포장을 풀었습니다. 그리고 편지지를 펴 보왔습니다.
또 무슨 잔소리겠지 하며 편지를 편 딸의 눈가엔 눈물이 맺힙니다.
그곳엔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딸 민희야 여기에 있는 이 작은 돌은 6000년이 넘었단다
아마 이 돌이 다시 닳아 없어지는 시간도 그 정도 걸리겠지
그때가 되면 그 돌이 닳아 없어지면 엄만 널 잊게 될지도 몰라
그 안에는 절대로 너를 포기할수 없단다. 민희야 사랑해. 엄마가".
민희는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직 엄마는 기둥에 기대어 잠을 깨지 못하고 있습니다.
방문 여는 소리에 엄마는 깨어 민희 왔구나 미역국이 식었겠다 대워 줄태니
저녁 먹자 암마는 일어섰습니다.
민희는 소리쳤습니다.
엄마 6000년는 너무 길어요 절대로 엄마 나를 포기하지 마셔요.
그날 민희는 새로운 삶을 찾았습니다.
인내하고 기다린 엄마의 6000년사랑이 딸을 구원하였습니다.
사랑하는 귀하신 성도님들 우릴 포기하지 않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릴 포기하지 않으시고 말씀을 보내 우릴 초청합니다.
좋은신 아버지
우릴 기다리시는 아버지
우릴 사랑하여 가장 높은 곳에 우릴 사랑하시는 표적을 자기 몸으로 기를 삼으시고 걸어 놓으신 나의 아버지 그 아버지께서 하늘 문을 열고
우릴 초청하는 초청에 다 응하시길 바랍니다.
둘째 아들을 위해 잔치를 배설하신 아버지처럼 우리의 하늘로 귀향하는 주님 오시는날 우주적 잔치가 우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기다리는 아버지의 사랑의 감동이 아버지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그날 만나는 날을 사모하며 기다리시는 우리 성도들 마음 마음에 가득하길 축북합니다.
기도
하늘에 계시는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릴 사랑하시되 당신의 몸을 우리를 위해 예비하셨고
자원하여 아들이 되시어 우리 대신 당신의 몸을 십자가에 다시고 우릴 구원해 주셨으니 감사드립니다.
그 사랑 저희들 사는 날 동안 잊지 않게 하시고 아버지의 사랑안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릴 사랑하시되 끝없이 사랑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