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 文希 한연희
이른 아침 뜰에 나가면
약지 못한 그녀는
견고하게 줄 치고 사냥 중인
끈적거리는 거미줄을 피할 도리가 없다
있는 힘껏 지었을 가느다란 줄에
파리나 나방, 잠자리면 족한데
하필 거물급이 걸려들어
허물어지는 현장을 어딘가에
숨어 보는 거미가 가년스럽다
찬찬히 살펴봤어야 했는데
덤벙거리는 습관 여전하여
몸부림칠수록 더 말려들어
비끄러맨 다양한 진단명은
거저 생긴 게 아니다
생명이 가득 찬 뜰에 안기려고
너울거리는 통증을 잡아매고
안간힘을 써서 문지방을 넘은 건
한갓 목숨을 부지하려는 건 아니다
발뒤꿈치를 한껏 들고 그녀를 기다리는
생명의 속삭임을 떨쳐버릴 순 없잖은가
한 입으로 두말하는 초로의 여자가
가장 친한 친구라고 속삭이다
다시 못 올 강을 건너자고 뿌리를 뽑는
그녀는 땀구멍을 활짝 열어놓고
풀 무덤 봉분은 점점 높아지고
꽃이 웃고 그녀도 웃고 거미는
또다시 가로세로 줄을 친다
자주 가는 길 / 한연희
서울 방향 자동차전용도로
차량은 기다 서다 기다 서다
이른 아침 차 안은 23도, 차 밖은 34도
도로와 중앙분리대 틈새
강아지풀과 좀씀바귀 무리가 손짓한다
어떠한 형편이든 처할 줄 알아
어떠한 형편이든 자족할 줄 알아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를 담아도
새털처럼 가벼워져
어디든 둥지 트고 모여 사는
그들의 고민은 무엇일까
한낮 폭염에 달궈진 아스팔트
나 살고 너 죽자고 에어컨 사용하는
차량의 행렬이 뿜어내는 매연
이상기후에 가냘픈 몸으로
살아가기 위해 생존전략 짜느라
밤새운 몰골은 아닌지
자꾸만 그들을 쳐다본다
시멘트 틈새 풀도 견디는데
나 살자고 여전히 에어컨 켜고
누더기 육신 수리하러 가는
대학병원 진료시간 늦을까봐
천지에 가득한 허술한 마음
자꾸만 그들에게 쏠린다
장마 / 文希 한연희
먹구름이 우렁우렁
연일 통곡을 한다
틈새 타고 집안에 들어와
받쳐놓은 그릇에 툭툭 장단을 친다
먼 곳에서 오신 손님
턱을 괴고 물끄러미 리듬 타는데
바다에서 솟구치듯 파도 타는
그가 그립다
창조된 실체들이 엉키어
내 맘까지 헤아려 용솟음 치는
환삼덩굴은 성큼성큼 기어가고
그 뒤엔 바랭이가 그다음은 쇠뜨기
그 그다음엔 호박줄기가 바다로 향한다
살아있어야 남은 자가 되어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뻗어나가고
황막한 환경도 견디어 나가기 마련이라고
까마득한 끄트머리에서 번개가 알려줬다
홀로 / 文希 한연희
숲이 뱉어낸 숨을
폐 깊숙이 삼켰다
권태의 골짜기 에워싼
공허는 한결같이 뭉그적거린다
의미 따위 잃어버린
찡그린 마음이 피식 웃다
묵은 햇수만큼 깊게 파인
순간들이 깃털에서 떨어졌다
눈물인지 땀인지 아님
빗 속 영혼인지 모른다
몰라도 괜찮다
은은하게 다 맞이할 테다
삐그덕거리며 시작될 하루
고요한 가운데 혼자 눈을 뜨고
가슴이 하는 소리 따라
여행을 하다 마침표를 찍어도 좋다
첫댓글 원고접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