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밤 우리 모임을 아끼시던 정 희경 선생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 소식을 알게 되었다.
그날 밤 아름다운 이야기 같은 꿈을 꾸었다.
내가 아는 두 여인을 묘하게 서로 만나게 하는 꿈이었다.
꿈이 늘 그렇지만 그 사람들은 실제로 내가 아는 사람인지 확실하지도 않았다.
내가 짐작하는 한 친구 정체는 아마도
영국에 살게 된 미국 친구 '디디'가 제일 가깝다 할까?
부모가 비행기 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시고,
남겨진 남매를 돌보기로 한 삼촌이 섬머힐 학교로 조카들을 보내
스코트랜드 글라스고 지방 신문 글쓰며 사는 친구였다.
아들이 중학생이 되어서,
막내 딸이 초등학생일 때,
한창 같이 살다가 아이들 아빠인 미술 선생과 새삼스레 결혼하고,
결혼하니 다르냐는 질문에
"그래도 다르긴 해.." 대답을 하던 친구이다.
입학 시험 볼 때는 미역국 먹지 않는다는 우리 풍습이 재미있다고
내 얼굴을 띄우고 신문에 글을 쓴 적도 있었다.
그런데 꿈에 짝지운 친구는 아랍 계통 사람이었던가?
파키스탄에서 와서 PhD 하고 간 친구는 오히려 디디를 내게 소개한 사람이니
통 현실에 맞지가 않다.
기분좋게 꿈을 깨고는
눈뜨기 전까지는 앞뒤가 잘 맞았는데,
눈을 뜨자 현실에서 아귀가 안 맞는다.
그러다가 생각이 정 선생님에 닿았다.
늘 보고싶고,
궁금하고,
편안하고,
사랑해주시는 선배님이라는,
좋은 꿈꾸는 것을 허용하시는,
그런 분이라는 정 선생님...
바로 이 꿈이
"선생님께서 꾸게 해주신 거구나!"
선생님을 뉴스에서 멀찌감치 본 것이 아니라
가깝게 한 방에서 처음 만난 것이 언젠가?
YWCA 연합회 프로그램 사회문제부 위원회를 하다가
차 마시기 위해 쉬는 시간에
다른 위원회에 참여하셨던 선생님께서
우루루 사람들을 몰고 들어오셨지요.
"이 위원회에 유명한 사람들이 많다면서?" 하시면서...
나중에 말씀해주신 것에 따르면,
선생님 께서는 "잘 생긴 남자를 좋아하신대요"
그래서 잘 생긴 남자와 결혼도 하셨대요.
젊은 시절 두분이 서울 시내를 걸으시는 스냅 사진도 본 적이 있지요.
두 분 다 준수한 모습이었던 걸 인정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내 큰 오빠도 잘생겨 좋아하셨다고,
그러면서 오빠의 정치 견해를 비판하셨던 적이 있었대요.
그 일로 이화여고 가사 선생이셨던
오빠의 처형 박 남길 선생님께 꾸중을 들었다고 하셨지요.
그래서 내게도 관심을 가지게 되셨노라 하셨어요.
미안함을 풀려고...
열심히 참여하셨던 일가 조찬 모임에서 내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선생님이 제 이야길 처음 듣고,
모임 끝나고 식사 자리에 곁에 앉아 관심을 보이신 것이
제대로 만남을 가진 시작이었어요.
선생님께서도 '정신 건강 사회운동'을 하고 싶으셨다고,
몇 차례 Y 실행위원회에 옆자리에 앉으셔서
돈 뭉치를 슬쩍 건네주시곤 하셨지요.
(아직 오만원 권이 없을 때여서 '뭉치'였어요.)
우리 작은 모임이 헤매는 걸 아신 거지요.
소식지를 보내드렸기에 모람들에게 말 거는
내 짤막한 글을 읽으시고는
맛있게 글 쓴다고 부추겨 주셨지요.
이번호 까지 76회 나온 계간지 <니>에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윤 경은 선생님과 두분이 글틀함께지기(자문위원)로 짐을 지고 계십니다.
이런 저런 모임에 좁은 장소라 뭐라하지 않으시고,
같이 참여해주셨고,
바자 모임에 와서 "비싸다"하시면서 그릇 사주셔서,
그 때 판매한 친구인 한 제선이 아직도 감사하고 있지요.
선생님 댁과 별장에 모람들을 초대해 주셔서 마음의 성찬을 베풀어 주시기도 했고,
밥집 밥 먹으며 하는 모임에 오셔서 식사비를 대신 내주시기도 했지요.
선생님 생신에 여러 단체에 큰돈을 주신적이 있는데,
저희도 거기 한 몫 끼어주셨지요.
사람과 사람 사이는
어느 경우나 그 결과 색깔이 다 다르지요.
아직 나는 살아있지만,
살아서나 죽어서나 그 관계는 변함없는 것 같아요.
떠나신분들이 살아있는 내 마음에서 같이 살아계시거든요.
빈소에서 정 선생님 고운 따님이 전해준 말,
"어머니가 그렇게 보고 싶어하셨어요"
"나도요!"
그런데 그 마음 아직도
똑 같아요.
나보다 일곱 해 먼저 태어나셨는데
이제 부터 매해 나이 먹으면 선생님과 나이 차이가 줄어들 거예요.
스물 한 살위 내 오빠보다 이제 나는 더 늙어진 것 같이요.
나보다 늘 어른이셔서 선생님께서 늘 기억해둘 만한 말씀을 해주셨지요.
"늙으면 오라는 데 다 가지 않아도 돼"
하신 것도 그 가운데 하나지만,
아주 아주 기분 좋은 말씀,
제일 잊지 않고 싶은 말씀은
"우리 나라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다섯 사람 가운데 문 은희가 하나야!"
였어요.
그냥 칭찬해주시는 것보다,
"널 좋아해!" 하는 말은
아무에게나 듣기 쉬운 일이 아니지요.
눈 앞에서는 엄지 척하고,
이야기 끝나면 번마다 "좋았어!"하던 친구도
나 없는 데서 나의 앞을 가로 막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게 되곤 합니다.
지금 좋은 관계도 언제 등 돌릴지 모르는 거니까요.
그러니 더더욱 선생님의 마음은
얼굴을 대하지 못하는 처지에 왔어도
튼튼히 살아있다는 걸 믿을 수 있지요.
그 뿐 아니라 내가 더 살아가면서 이제까지 제대로 몰랐던 수준으로
눈이 높아지고,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듣는 귀도 더 넓혀질 거니까요.
그러니 미처 몰랐던 선생님 마음을 더 잘 알게 될 거니까요.
죽을 때까지 바뀌고, 자라고, 영글어갈 거니까요.
하나님 나라에 가서 만나면 "잘 자랐구나" 칭찬받게 애쓸게요.
그렇게 하나님 연장으로 조금 더 살다 갈게요.
선생님!
ㅁㅇ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