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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자를 압제하지 말라는 하나님(2296. 2025.3.2. 3.1절 기념주일설교)
출22:20-27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여기 임재하셔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고 말씀으로 만나주시고 있습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힘을 얻는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치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게도 맹위를 떨치던 겨울도 이제는 저만치 멀어져 가고 이젠 완연한 봄이 되었습니다. 이번 주 5일에는 절기상으로 개구리가 동면에서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개구리들이 겨울잠도 편안히 잘 수가 없답니다. 몸보신에 좋다는 낭설 때문에 한겨울 얼음을 깨고서 잠자고 있는 개구리들을 마구 포획을 하여 잡아먹기 때문에 개구리들이 경칩까지 기다리지도 못하고 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3.1절 기념 예배로 드리는 날입니다. 그리고 또 5일부터는 사순절이 시작이 됩니다. 사순절 기간동안에는 경건하게 신앙생활 하시기를 바랍니다. 3.1절이란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아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당할 때에 지금으로부터 106년전 1919년 3.1일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우리 기독교인들이 주동이 되어서 온 나라의 백성들이 분연히 일어나 독립 만세를 부른 날입니다.
대한독립만세--를 삼창 하시겠습니다. --대한독립만세--대한독립만세--대한독립만세
3월1일 삼일절, 7월17일 제헌절, 8월 15일 광복절, 10월 3일 개천절은 우리나라 4대 국경일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국경일이란 국가적인 경사를 축하하기 위해 법으로 만들어진 날로 온 국민이 함께 기념을 하는 뜻 깊은 날인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뜻 깊은 날 중 하나인 삼일절입니다. 삼일절은 빨간 날로 모든 국민이 쉬는 날입니다. 하지만 이날을 단순히 쉬는 날로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고 그날을 뜻 깊게 보내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삼일절은 1919년 3월 1일 정오를 기해 한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며 독립선언서를 발표합니다. 우리민족의 자주독립 선언과 총궐기하여 평화적 시위를 전개한 날입니다. 간절한 마음을 담았던 삼일절국경일로 지정된 것은 1949년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숭고한 자주독립정신을 기억하며 기념하기 위해 지정된 날입니다. 3.1절은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독립만세운동을 펼친지 106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3.1절은 독립을 외치며 자유를 달라고 온 민족이 궐기한 애국운동 기념일입니다. 이 만세운동에 기독교인들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사실입니다.
민족 대표 33인 중에 불교인이 2명, 천도교인이 15명 그리고 16명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이 운동이 전국적으로 빠르게 확산된 이유도 전국에 산재한 교회를 중심으로 펼쳐졌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가장 큰 피해를 본 곳도 교회였습니다. 1919년 10월 장로교 총회 당시 발표에 의하면 3.1운동으로 체포된 사람이 3,851명입니다. 이 중에 2,162명이 고문당한 후에 풀려났으며 41명이 총살이나 사형을 당해 죽었고 6명이 고문을 당하다 죽었고 1,642명이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체포된 3,851가운데 목사와 장로가 134명, 전도사가 202명, 남자교인이 2,162명, 여자 교인이 531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기독교인이 전체 체포된 사람의 78%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절대 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참여한 이유는 나라의 독립과 자유를 위한 기본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만 그 외에도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신사참배를 강요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국가를 위하여 희생된 사람들의 영을 예배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그 영들을 모셔놓은 곳이 신사였는데 조선에도 남산의 조선 신궁을 비롯하여 1년 만에 36개의 신사를 만들고 조선인들에게도 강요했습니다. 또한 일본 천황을 신격화해서 천황이 거주하는 궁성을 향해서 동방요배를 강요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이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또한,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믿음의 간구였습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의 하나님이시고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믿음의 고백이 또한 3.1운동이었습니다. 3.1절에 외쳐졌던 독립만세는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소망이요 하나님께 드려졌던 이 민족의 부르짖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민족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비록 3.1만세 운동은 일본의 무자비한 탄압 속에 실패한 것 같이 보였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이 민족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1945년 일본이 연합국에 패망하므로 우리 대한민국도 그렇게 소망했던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습니다. 3.1독립만세운동은 우리 기독교가 나라를 위하여, 민족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확실하게 하면서 하나님을 잘 섬기고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애국하는 일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붙잡고 늘 기도하고 부르짖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 민족을 사랑하시고 축복하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율법입니다만, 이 말씀에서 하나님은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만을 섬기고 제사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20절‘여호와 외에 다른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자는 멸할지어다’고 말씀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하나님만을 섬기기를 원하시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섬기시기를 축복합니다. 3.1독립운동은 일본의 신사참배와 동방요배를 할 수 없다는 성도들의 믿음에서 나온 신앙운동이었습니다. 이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성도들은 무저항 비폭력으로 독립만세운동을 외쳤습니다.
또 하나는, 약한 자를 괴롭혀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21-27절까지에는 당시에 가장 약한 자들이 누구이며 그들에 대하여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약한자는 이방인, 과부, 고아, 그리고 이들을 포함한 가난한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고 해롭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이 말씀을 철저하게 외면하였습니다. 반대로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이 말씀을 믿고 우리가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불쌍히 여길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3.1만세운동을 펼쳤습니다. 하나님은 왜 약한 자를 압제하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1.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누구나 나그네 인생이라고 합니다. 21절 말씀에서 하나님은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그 이유로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구원을 받기 전에 그들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종이 아니라 나그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큰 민족으로 만들기 위해 애굽에 잠시 거주하게 하셨다는 이스라엘의 역사관입니다. 나그네로 400여년을 살다가 때가 되어 하나님은 애굽에서 나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서 독립 국가를 이루어 살게 하셨습니다. 그때 너희들 가운데 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너희들도 애굽에서 나그네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오늘날 OECD 회원국이 되었고 세게 무역 10대국가가 되어 잘 살고 있습니다. 지금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잘 살게 되었는지를 모를 것입니다. 예전에 어려웠던 시절을 모르고 원래 잘 사는 나라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분들도 제가 60년도에 태어났지만 그 시대에도 어려웠습니다. 저보다 먼저 태어나신 분들이 몇분 계시는데 얼마나 어렵게 살았는지도 잘 알 것입니다. 보리 고개가 있고, 먹을 것이 없어서 외국의 원조에 의지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 시절을 기억할 때 우리는 더욱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하고 어려운자들을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은 과거를 기억하는데서 시작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와 같은 사람이었다는 과거를 늘 기억하였습니다. 그런 과거를 기억할 때마다 나를 구원하여 주신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가를 생각하며 더욱 주님께 충성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했던 나를 사랑하고 다시 제자 삼아 주신 은혜를 평생 잊지 않았습니다. 존 뉴턴도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고마워’하면서 과거의 노예 매매상을 하면서 살았던 자신의 과거를 잊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도 과거를 기억하며 주님만을 바라보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앞에 서면 우리가 얼마나 부족했던 사람입니까?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었던 사람입니까? 우리가 얼마나 죄악 속에 살았던 더럽고 추한 사람입니까? 그런 우리를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죄악가운데서 구원하셨고 축복하셨고 의롭게 인 쳐주셨습니다. 과거를 기억하며 우리는 더욱 하나님께 감사하며 충성하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약한 자를 압제하거나 박해하지 않고 도와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듣기 때문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전능하신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내가 열심히 해서 안 된다고 그냥 그것으로 끝나는 것은 최선을 다하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 최선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하여 우리 곁에 계십니다. 우리가 부르짖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도와주시고 해결해주십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이 진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그냥 부르짖었습니다.
일제의 총칼 앞에서 어찌할 수 없었던 우리의 조상들도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도저히 못살겠습니다. 너무 힘듭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다 죽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 어찌하시렵니까? 하나님께 그냥 부르짖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상황이 어렵습니까? 고통스럽습니까? 너무 힘들어서 죽을 지경입니까?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 신앙입니다. 부르짖는 것은 절대 나약한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을 주님도 기뻐하시고 원하십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방법이 없을 때도 부르짖기 바랍니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부르짖기 바랍니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때도 부르짖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부르짖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부르짖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요, 인간의 본성입니다.
우리의 부르짖음은 하나님께 상달합니다. 사순절 기간에 새벽기도 하십시오. 새벽기도에 나오셔서 하나님께 부르짖음은 때로 허공을 치고 메아리쳐 사라지는 것 같지만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이 새벽기도 하라는 말씀을 들었다는 것은 아직 기회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기회가 있을 때 새벽기도하시고 문제를 내놓으시고 부르짖어 기도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부르짖음은 하나님께 상달합니다. 하나님은 우상과 같은 존재가 아니십니다.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려가서 건져내시는 인격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의 부르짖음을 분명히 듣고 그 근심을 아시고 기꺼이 도와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근심걱정을 맡기시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아무고 눈치 채지 못하는 그 작은 신음소리도 듣고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부르짖어야 합니다. 애굽의 종살이에서 부르짖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셔서 이스라엘을 노예생활의 고통 속에서 해방시켜주셨습니다.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우리 선조들의 부르짖음도 하나님께 상달하였습니다. 혹자는 삼일 독립운동이 실패한 운동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삼일독립운동은 절대 실패한 운동이 아닙니다. 삼일 독립운동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 민족에게 8.15해방이라는 선물을 주신 줄 믿습니다. 삼일운동을 통하여 우리의 독립의지와 독립할 수 있다는 민족의 저력을 확인받았기에 우리는 해방이라는 선물을 받게 된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고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껴지실 때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할 일이 있습니다. 아직도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부르짖으면 주님이 인도하시고 축복하시고 역사하여 주십니다. 우리는 부르짖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 그렇게 능력이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부르짖지 않고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도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께 부르짖는 것이 신앙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오늘은 삼일절 기념 주일입니다. 사순절이 시작되기도 합니다. 사순절은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우리의 부족함을 회개하고 그리스도인의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훈련의 기간이요 연단의 기간이요 영성의 기간입니다. 모두가 어렵다고 합니다. 모두가 고난이라고 합니다. 힘들어죽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환난의 때에 부르짖는 성도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답을 알고 있으면서 답을 스지 않으면 탈락할 수 밖에 없습니다. 22-23절 말씀에서 하나님은 과부와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단어가 ‘반드시’라는 단어입니다.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을 수도, 듣지 않을 수도 있다가 아니라 ‘반드시’들으신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과부와 고아와 같은 이들의 부르짖음을 반드시 듣는다고 하셨을까요?
세상에는 그들의 부르짖음은 듣는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과부와 고아의 부르짖음을 듣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불의한 재판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였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과부의 원한을 풀어달라는 말이 들어오겠습니까? 들은 척도 안합니다. 힘도 없고 돈도 없고 들어줘봐야 아무런 이득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도 힘없는 사람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습니다.
조용히 말을 하면, 들은 척도 안하기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더 자극적으로 더 폭력적으로 자기들의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들어주는 척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들어주지 않기에 하나님이 들어주십니다. 하나님마저 들어주지 않으시면 그들이 억울해서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누구를 의지하며 살아가겠습니까? 사람들은 외면하고 들어주지 않아도 하나님은 약한 자의 기도를 절대 외면하지 않으시고 누구의 기도보다도 더 잘 들어주십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부르짖는 약한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아준 하갈이 나중에는 집에서 쫓겨납니다. 이삭이 젖을 뗄 때쯤에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는 것을 보고 화가 난 사라가 이들을 쫓아내라고 아브라함을 압박합니다. 고민하던 아브라함은 결국 약간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주어 집을 떠나게 합니다. 졸지에 풍부한 집을 떠나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아이들끼리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는데 그 일을 가지고 우리를 쫓아내다니 너무 억울하고 원통하였습니다. 광야에서 방황하던 하갈이 이제 갖고 있던 물이 다 떨어집니다.아들이 목이 바르다고 우는데 줄 물이 없습니다. 이제는 이 광야에서 죽는구나 생각하고 자신도 아들을 바라보며 함께 소리 내어 웁니다. 이때 하나님이 그들의 울음소리를 들으십니다. 하갈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사자는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죽지 않고 살아서 큰 민족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그리고 하갈의 눈을 밝혀 샘물을 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작은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작은 자의 눈물의 부르짖음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은 작은 자를 외면할지 몰라도 하나님은 결코 외면하지 않고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가 살다보면 작은 자가 되고 약한 자가 되어 낙심이 되고 절망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고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낙심하지 마시고 약한 자의 하나님께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재판관은 들어주지 않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실망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압제 당하는 자의 소리를 들으신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눅19:40절‘이 사람들이 소리 지르지 아니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소리 질러야 할 사람을 소리 지르지 못하게 하면 대신 다른 사람들이 소리 지른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약자를 압제하고 억압하면 대신 다른 사람들 이 소리 질러 돕게 만드십니다. 내가 소리 지르지 못할 상황이면 누군가가 대신 소리를 질러 준다는 것입니다. 당시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소리 질렀습니까. 그러면 일본은 쫓아다니며 소리 지르지 못하게 감시하고 윽박질렀습니다. 그래서 세상 누구도 우리의 아픔을 몰랐습니다. 모두 소리 지르다 지쳐서 쓰러지고 낙심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안타깝게 여기던 캐나다 프랭크 스코필드 선교사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우리 민족의 참상들을 사진에 담아 외국통신에 전해주었습니다. 우리에게 언로가 막히고 길이 막히니까 하나님이 사람들을 들어 쓰시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은 ‘이 사람들 이 소리 지르지 않으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또 우리들이 소리지를 기운도, 길도 없을 때 대신 소리질러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미국의 윌슨 대통령입니다. 그는 세계 만국평화회의에서 민족자결주의를 선언해 주었습니다. 즉 모든 민족은 자유가 있으며 자족할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지 못하니까 그 사람 이 우리를 대신해서 소리를 질러 준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듣고 세계 여러 나라가 비로소 코리아라는 작은 우리나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이 용기를 얻어서 3·1운동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결국 남의 나라를 침략하고 압제하고 못된 짓을 벌였던 일본이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받고 망하지 않았습니까? 3·1운동은 근대사에 있어서 가장 극적인 시민운동입니다. 몇 사람 안 되는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는데도 세계에 메아리쳐 되돌아온 운동이었습니다.
3.그런 약한 자를 자비롭게 대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25-27절까지에서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이 돈을 꾸거나 옷을 전당잡혔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말씀하십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돈을 꾸어주었을 때에는 이자를 받지 말아야 합니다. 옷을 전당잡았을 때는 해가 지기 전에 그 옷을 돌려주어야 합니다. 당시에 가난한 자들은 옷을 이불로 삼아 밤을 지냈습니다. 낮에는 따뜻해서 옷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밤에 기온이 내려가면 그 옷을 입어야 추위를 이기고 잘 수 있습니다. 그들이 옷이 없어 추위에 떨면서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라고 하면서 나는 자비로운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자비로운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작은 자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십니다.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자비로운 분이시라고 한다면 우리도 자비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눅6:36절에서 주님은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비로운 자가 된다는 말은 그들의 약함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돈을 꾸어 주었으면 이자를 받지 말아야 합니다. 돈이 없어서 꾸었는데 이자를 줄 돈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자를 받지 못한다고 아예 꾸어주지 않는 일이 있어도 안 됩니다. 옷을 전당잡았으면 다시 그 옷을 해가 지기 전에 돌려주어야 합니다. 돈을 갚아야 전당잡은 물건을 돌려주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그러나 자비로운 자는 그 날 밤에 추위에 떨어야 할 자를 생각해야 합니다. 돈을 갚지 못했어도 이불과 같은 옷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106년 전에 가장 약한 자였던 대한민국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우리를 해방시키시고 자유국가로 세우셨습니다. 3.1독립만세운동 기념주일을 맞으면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을 잘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약한 자를 배려하고 도와주며 주님의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생각하며 우리 주위에 연약한 자들, 연약한 국가들을 돌아보기를 다시 한 번 다짐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1운동의 부활정신은 이러한 민족적 죽음에서 깨어나고자 하는 요인이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일본제국주의 집권자가 죽음만을 생산하고 있는 그 모든 진상을 폭로시켜 버리는 것이 3.1운동입니다. 또한 모든 사악한 인위적인 제도와 부패하고 음흉한 체제와 못 되고 악한 이데올로기가 결정적인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 바로 3.1운동의 부활정신입니다.
이제 상주감리교회 성도로서 3.1운동의 정신을 살려서 보다 나은 차원으로 나라의 기초를 다지고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는 정신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속박하는 낡은 체제로부터 벗어나려는 출애굽정신을 살려야 하겠습니다. 또한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자기 책임을 다하는 남은 자의 정신을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보다 나은 시대로 부활하고자 하는 3.1정신을 계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를 위하여 가족을 위하여 전도 대상자를 위하여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부르짖을 때 주님은 응답하시고 축복하시고 은혜를 내려 주실 것입니다. 3.1절 기념예배를 드리면서 우리모두가 아픔을 치유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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