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드 S. 그린필드"(Maude Saxe Greenfield)는 1874년 미국 뉴욕주 "월든"(Walden)에서 출생했다.
1907년 9월 15일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남편 "윌리스"(Willis M Greenfield)과 함께 내한하였다.
내한 이후 그녀는 "정신여학교" 교사로 부임해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경신학교"에서 사역하는 남편의 선교 활동도 도왔다.
그는 1909년 9월 한국의 장례절차에 관하여
"시신의 매장 준비"(Preparation of the body for burial)라는
제목의 논문을 "선교잡지"(KMF)에 발표하기도 했다.
1909년 정신여학교 제5대 교장이던 "헨리 밀러"(Miller, M. Henry)가
안식년으로 귀국하여 정신여학교 제6대 교장으로 취임하였다.
교장 재임 중인 1910년 1월 5일 아들 "그린필드 윌리스"(Willis Saxe Greenfield)를 낳고,
산후 후유증으로 1910년 1월 29일, 출산한지 3주만에 34세의 젊은 나이로
서울에서 별세하여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그의 묘비 위쪽에는
"여성 선교사로서, 한 아내와 어머니로 헌신한 그린필드를 사랑하며 추모한다"는 뜻으로
"IN LOVING MEMORY OF A DEVOTED MISSIONARY WIFE AND MOTHER."
라고 썼고,
아래에는
AND WHOM HI CALLED HE ALSO GLORIFIED. ROM.8:30
"하나님이 그를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또한 영화롭게 하셨다." 라는 말로
로마서 8:30절의 말이다.
"And whom he called, them he also justified, them he also glorified." (Rom. 8:30).
아내를 잃은 "윌리스"(Willis M Greenfield)선교사는 그해 여름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내한하여 대구와 경상도 오지에서 복음 전도에 힘썼다.
그는 경북 북부와 동해안의 낙후된 지역을 직접 찾아다니며 교회를 개척하고 복음을 전했다.
그러나 무리한 전도여행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1914년 선교사직을 내려놓고 귀국했다.
이후 북장로교의 "밀즈" 선교사와 재혼하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 복음을 전하려 했으나, 1917년 사망하여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