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샤와르 박물관은 9시에 문을 연다. 버스가 일찍 도착해서 20여분의 여유가 있다. 박물관 건물을 돌아가니 널찍한 정원이 있었는데, 몇몇 사람이 꽃밭을 곁에 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인텔리 풍의 한 사람이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내게 말을 걸었다. 박물관 관장인데 사무실로 들어가자고 한다. 행정건물 1층에 있는 관장실 소파에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비서인 듯한 사람은 줄곧 서서 지켜보았다. 그는 세계정세에 밝았고, 특히 남북관계에 대해서 궁금해 했다. 나는 파키스탄이 미국과 전쟁 중인 이란을 편들고 있는 이유를 물었다. 왜 아프가니스탄과는 왜 잘 지내지 못하는지 물었다. 물론 나는 그 이유를 다 알고 있다. 그는 직답하지 않고 자꾸 샛길로 새나갔다. 내가 시계를 가리키며 일어서니 그제야 차를 마시자고 한다. 이런 깍쟁이 같으니라고. 페샤와르 박물관 역시 불교 유물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불두가 수없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힌두교의 부조물도 더러 보인다. 나는 1층을 후딱 둘러보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은 무슬림 문물이었다. 그림과 페르시아어 캘리그라피와 초승달 모양의 단도와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복식들. 규모가 큰 전시실을 갖추고 있으나 특색이 없다. 오늘은 탁실라에 갔다가 수도 이슬라마바드에 입성하는 날이다. 10시 20분 버스가 M1 고속도로에 올라선다. 페샤와르와 수도를 잇는 고속도로다. 버스가 12시 10분 탁실라 톨게이트로 빠진다. 156킬로미터의 도로통행료 요금은 920루피다. 나는 찰나에 빨간 점멸 문자로 찍히는 숫자를 읽었다. 근 이틀간에 걸친 에스코트가 해제되었다. 안전을 책임져준 파키스탄 정부에 감사드린다. 탁실라에 도착했다. 탁실라는 카이버 패스를 넘어 침공해온 페르시아와 알렉산더의 도시였고, 불교문명의 최고 전성기였던 아쇼카 왕의 도시였다. 탁실라는 동서양의 문명이 켜켜이 쌓여있는 도시답게 기원전 6~5세기경 세계 최초로 대학을 설립했다. 철학과 의학과 천문학을 탐구했으니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주요 요소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것이 없다. 탁실라 박물관으로 가는 길 삼거리에서 교통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버스 운전수가 급하게 뛰어내렸다. 경찰관 소매를 붙들고 나무 밑으로 가더니 와이로를 찔러준다. 버스 창가의 눈들이 지금 지켜보고 있다. 운전수는 유유히 돌아와 운전대를 잡더니 경찰관의 태연한 수신호를 받고 출발한다. 그런 악습이 한국에서는 언제쯤 사라졌을까. 비웃지 마라. 불과 30십년 전이다. 박물관은 점심시간이 오후 2시까지여서 먼저 가까이에 있는 ‘다르마라지카’ 유적지로 갔다. 아쇼카 왕이 부처의 사리를 안치하기 세웠다는 거대한 스투파가 유적지의 중심부에 아직도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세기 초 실제 사리가 발굴되어 이웃 탁실라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아쇼카 왕은 기원전 3세기 인도에서 불교를 진흥시킨 왕이었다. 나는 혼자 뒤쳐져서 가는 도중 한국의 탑 연구소 소속 송봉주 연구원을 만났다. 불교의 탑 연구를 위해 혼자서 여행 중이라고 한다. 택시 하루 대절비는 5만원 수준이다. 정세가 불안전한 가운데 탐방이라 안전이 걱정이었다. 도시 간 이동 중 에스코트는 받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는 보리수 큰 나무 아래서 일행들과 합류하여 대화를 이어가다가 헤어졌다. 나는 허물어져 떨어진 벽돌을 보며 ‘폐허’라는 단어에 집착했다. 폐허를 돌아 나오는데, 유적지 입구에 녹색 기운 왕성한 밀밭이 펼쳐져 있다. 박물관 인근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 후 식당 입구 의자에 앉아 거리 풍경을 바라보며 잠시 망중한에 빠졌다. 식당 정원에 꽃이 만발해 있었다. 나는 꽃과 함께 푸른 하늘 아래 맑은 바람을 맞는다. 나는 기대를 가지고 부처님 사리가 봉안되어있는 박물관으로 갔다. 나는 황금 사리 봉안 탑에 경배를 올렸다. 탑은 전체 50센티미터 정도 높이의 가운데쯤에 엄지손톱만한 사각형 사리함을 보관했는데, 그 부분을 유리로 감싸고 있다. 안내판 설명에 따르면, John Hubert Marshall경(1902~1928년 동안 인도 고고학 발굴조사 책임자)은 다르마라지카 스투파 발굴 작업 도중 탑 내부의 예배실 바닥 30센티미터 아래 뒷벽에서 사리함과 카로슈티(kharoshthi) 언어로 쓰인 명문을 동시에 발견했다. 서기 78년에 작성된 명문에는 탁실라 사람 Urasaka가 사리를 보관하고 있다가 다르마라지카 스투파로 옮겨 보관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아쇼카 왕이 사리를 모셨다는 구전과는 다른 기록이다. 일행 한 분이 내게 해설사가 치아 한 개라고 했다며 전해주었다. 안내 글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나는 해설사의 안내를 직접 듣지 못해 아쉬웠다. 인도의 뉴델리에 있는 국립박물관에는 부처의 유골이 봉안되어있다. 유골을 봉안하고 있는 황금 탑은 태국 기증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곳 사리 봉안 탑 역시 태국이 파키스탄과의 수교 70주년을 기념해서 기증했다. 이슬라마바드는 탁실라에서 33킬로미터. 버스는 박물관을 떠나자마자 쏜살같이 달려서 그랜드 이슬라마바드 호텔에 도착했다. 오늘도 성공이다. 해지기 전에 도착했다. 덧붙이는 글. 며칠 전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기행문을 읽는 도중 공간적인 이해가 어려워서 지도를 펼쳐놓고 읽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도를 첨부해주라고 한다. 나는 여행 떠나기 전에 스케치해둔 지도를 사진으로 찍어 첨부하겠노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하도 많이 봐서 지도의 글씨들이 희미해졌으므로 새로 그려야 했다. 그러면서 나는 또 생각했다. 지도를 찾아보는 수고를 들여야 더 꼼꼼히 읽을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래서 대답과는 달리 서비스는 안하기로 마음먹었다. 친구야,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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