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롄의 긴장을 뒤로하고 마주한 문원의 유채백리도는 보정되지 않은 원색의 폭격이었다.
해발 3,000m 고원 분지를 가득 메운 황금빛 물결은 지상의 태양이 통째로 쏟아져 내려와 대지에 눌러앉은 듯한 장관이었다.
이 땅은 아주 오래전부터 '하늘의 영토'였다.
북쪽의 치롄산맥은 흉노어로 '하늘(祁連)'을 뜻한다.
기원전 2세기, 한나라 곽거병이 흉노를 몰아내고 실크로드의 문을 열기 전까지 이곳은 유목민들이 말을 달리던 자유로운 초원이었다.
흥미롭게도 '문원(門源)'이라는 지명 자체가 이 땅의 오랜 정체성을 그대로 품고 있다.
한 무제 시절 이곳을 흐르는 강에 '호문(浩門)'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물길이 산과 산 사이를 마치 문처럼 깊이 파고 흐른다는 뜻이었다고 한다.
원래 표기였던 '미원(亹源)'의 '미(亹)' 자가 너무 복잡해 훗날 같은 소리를 내는 '문(門)'으로 바뀌었을 뿐,
이 땅은 처음부터 '문의 근원'이었던 셈이다.
어제 우리가 지나온 치롄과, 오늘 아무 경계도 없이 펼쳐진 이 황금빛 벌판이 같은 이름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서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전설에 따르면, 삭풍만이 몰아치던 이 거친 고원에 자비로운 선녀가 내려와 자신의 금빛 허리띠를 풀어놓았고,
그 띠가 닿은 곳마다 얼어붙은 땅이 녹아 황금빛 꽃이 피어났다고 한다.
1,300년 전, 당나라 문성공주가 토번으로 시집가던 길에 고향을 그리워하며
흘린 눈물이 이 대지를 적셔 꽃을 피웠다는 애틋한 설화도 전해진다.
두 이야기 모두 다르지만 결국 하나를 말하고 있다,
이 척박한 고원이 품은 색채는 누군가의 슬픔과 자비가 쌓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신화만이 아니다.
실제로 문원은 오래전부터 강羌·토욕혼·티베트·몽골이 뒤섞여 살아온 다민족의 교차로였고,
하서주랑과 하황곡지를 잇는 실크로드 보조 도로가 이 분지를 가로질렀다.
병가필쟁지지(兵家必爭之地), 곧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했다.
송대에 세워진 호문고성(浩門古城)이 지금도 대통하 북안 대지 위에 남아 있고,
청 옹정 3년(1725년)에는 나복장단진의 몽골 반란을 평정한 뒤 서북 방어를 위해 영안고성(永安古城)이 축조되었다.
초원과 물이 풍족해 군마를 기르기에 더없이 좋았던 이 분지는, 그래서 늘 누군가 선을 긋고 지키려 했던 땅이었다.
전망대 주변은 이 찬란한 계절을 놓치지 않으려는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강렬한 원색의 스카프를 휘날리며 황금빛 바다 속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어깨동무를 하고, 가장 환한 미소로 '인생샷'을 남기기 위해 셔터를 누르는 그들의 모습은 꽃보다 더 생동감이 넘쳤다.
어제 우리가 겪었던 그 숨 막히는 통제와 날 선 경계는 이 자유로운 풍경 앞에서 무력하게 흩어졌다.
희박한 공기에 숨이 가빠올 즈음,
나는 힘없이 난간에 기대 서 있는 가이드 경광 씨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번 여정 내내 우리보다 더 많은 일을 짊어져 온 사람이었다.
줘얼산풍경구에서는 어렵게 도착한 현장이 예고 없이 통제되어 일정이 통째로 변겅됐고,
뢰태한묘에서는 휴무라는 잘못된 정보로 혼란을 주었던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 눈치였다.
본인의 잘못도 아닌 통제와 오정보 앞에서,
그는 우리보다 더 고민하고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그 얼굴에 쌓인 피로가 유독 짙어 보였다.
생각해 보면 그 피로는 온전히 그의 몫만은 아니었다.
일정이 어그러질 때마다 대안을 찾는 것은 경광 씨의 일이었지만,
그 대안을 최종적으로 판단하고 일행 앞에서 책임지는 것은 인솔자인 내 몫이었다.
현지 사정에 밝은 그가 앞에서 길을 열면, 나는 뒤에서 그 선택이 우리 일행에게 무리가 없는지를 가늠하며 따라왔다.
통제로 무산된 일정 앞에서 그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면,
그다음 그것을 받아들이고 다음 걸음을 정하는 것은 내 역할이었다.
말하자면 우리 둘은 같은 짐을 서로 다른 쪽에서 나눠 메고 있었던 셈이다.
"경광 씨, 우리 커피 한 잔 할까요?"
그는 잠시 눈을 크게 뜨더니, 사양하려다 이내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망대 중간을 가로지르는 통로에 아래쪽이 내려다보이는 여러 개의 작은 부스를 만들고 식음료를 파는 곳으로 향했다.
주인은 이가 나간 낡은 머그컵에 정체 불명의 믹스커피 가루를 털어 넣고 김이 펄펄 나는 물을 가져와 부었다.
무려 25위안. 도시의 카페보다 비싼 가격에 헛웃음이 났지만,
이 높이까지 물과 가스를 지고 올라왔을 수고를 생각하며 기꺼이 잔을 들었다.
달콤하고 텁텁한 커피 한 모금이 혀끝에 닿자 고원의 매서운 바람이 비로소 부드럽게 느껴졌다.
경광 씨도 두 손으로 잔을 감싸 쥔 채 말없이 발아래 꽃밭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줘얼산의 통제도, 뢰태한묘의 헤프닝도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굳이 말로 꺼내지 않아도 그 침묵이 대신 전해지길 바랐다.
그리고 그 침묵에는 나 역시 같은 무게를 나눠 지고 있다는, 굳이 확인할 필요 없는 동의도 함께 담겨 있었다.
이가 빠진 컵에 담긴 투박한 위로를 마시며, 나도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이 노란 물결은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다.
이곳은 북방 소유채(小油菜) 재배의 발상지로, 그 역사가 14세기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전해진다.
"문원의 기름이 천하로 흐른다(門源油, 天下流)"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채기름은 오래전부터 이 고원 사람들의 살림을 지탱해 온 근본이었다.
북으로는 냉룡령과 치롄산맥이, 남으로는 대판산이 병풍처럼 둘러싸며 바람을 막아주고,
여름이면 치롄산맥 동쪽 최고봉인 강십카 설산에서 녹아내린 빙하수가 대통하를 이루어 대지를 적신다.
7월 한 달간 꿀벌을 불러 모아 문원 특산 유채꿀을 선사하고,
수확 후에는 식용유의 원료가 되어 지금도 이곳 사람들의 삶을 지탱한다.
여기에 관광객들이 내뿜는 활기와 25위안짜리 커피 한 잔의 부가가치까지 더해져,
척박했던 고원은 이제 풍요를 일구는 '황금 영토'가 되었다.
이 분지에는 회족을 비롯해 한족, 티베트족, 투족, 몽골족, 살라족이 함께 살아간다.
자치현 이름에까지 회족이 새겨진 이 땅에서,
서로 다른 민족과 신앙과 언어가 한 지붕 아래 뒤섞여 온 세월이 어쩌면 눈앞의 유채꽃밭보다 더 오래된 '꽃밭'일지도 모르겠다.
유채꽃밭은 푸른 보리밭의 초록색과 엉켜 거대한 체크무늬 카펫을 짜 올리고 있었다.
인간은 선을 긋고 통제하며 벽을 세우려 하지만, 이 황금빛 생명력은 그 어떤 검문도 없이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들고 있었다.
문원을 떠나오며 백미러 속으로 멀어지는 유채백리도를 바라보았다.
설산의 차가운 눈물로 피어난 황금빛 꽃들,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던 사람들의 잔상,
그리고 그 한복판에서 경광 씨의 지친 어깨에 슬며시 얹어 주었던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온기.
문(門)이라는 이름을 가진 땅에서 나는 오히려 문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세상이 아무리 차갑고 삼엄할지라도,
매년 7월이면 이곳에는 어김없이 지상의 태양이 내려앉을 것이다.
그 꿋꿋한 생명력의 증거를 가슴에 단단히 각인한 채, 나는 다시 여행의 길을 나섰다.
마실정회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