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산책]『천수경』⑩
지은 죄 살펴 참회하는 예참 경전
‘원본 『천수경』’과 대비해서 볼 때 ‘독송용 『천수경』’이 갖는 특성 중의 하나는 참회의 강조에 있다. ‘원본 『천수경』’에서는 「신묘장구대다라니」 자체가 갖는 참회의 기능 외에 다시 참회 부분을 길게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회게」에서부터 「참회진언」까지는 모두 참회라는 주제 속에 포괄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참회 부분 속에 이참과 사참이 모두 함께 설해져 있음은 앞에서 살펴본 그대로이다. 중국 천태종의 사명지례(四明知禮)는 바로 그러한 점에 주목하면서 그 스스로 『천수안대비심주행법』이라는 저술을 남기고 있었다. 이는 곧 천태학의 입장에서 『천수경』을 해석하고 포용하면서 새롭게 하나의 의례를 만들어서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의례는 일종의 예참(禮懺)의식이라고 평가된다.
예참은 스스로 지은 죄·업장을 직접 그 피해당사자에게 행하는 대신에 부처님께 절을 하면서 행하는 참회법이다. 몸으로는 절을 하고, 입으로는 불·보살의 명호를 외우며, 마음으로 자신이 지은 업장을 참회하는 것이다. 즉 삼밀가지(三密加持)의 수행법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현재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예참의식은 화엄의 보현행원사상에 입각한 『예불대참회문』이다. 부처님 명호를 부르면서 108배의 절을 하도록 규정된 예참의식이다. 관음신앙과 관련한 예참으로는 『관음예참』이 있으나, 현재는 거의 행해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다. 새롭게 『천수경』적 관음신앙에 입각하고 있는 예참의식을 만들어서 행한다면 어떨까?
‘독송용 『천수경』’ 그 자체에서 참회를 강조하고 있으며, 그 중에는 예참으로서 이해할 수 있는 흔적마저 보이고 있는 것 아닌가. 「참제업장십이존불」에서 열 두 분의 부처님 명호가 나오는데, 주목해야 할 것은 “나무참제업장보승장불”에서 “나무참제업장”이라고 하는 부분은 오직 보승장불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모든 부처님 명호 앞에 두루 붙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는 점이다. 다만 독송시에는 생략을 한 것이다. 그렇게 하고 보라. 정히 그 부분은 바로 예참의례에서 보는 것과 동일한 형식이 아닌가.
용감하게, 나는 이러한 ‘독송용 『천수경』’의 참회법에 근거하여 새로운 예참의식문을 만들었다. 「천수예참」이라고 이름하였다. 이미 십 년도 더 전의 일이다. 『한글 불교의식집』(1993)에서 처음으로 발표하였으며, 현재는 『해설로 읽는 우리말 법요집』(민족사, 2000)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천수예참, 천수경 신행의 한 새로운 양식」(『한글과 불교의식』 수록, 1993)이라는 논문을 함께 발표하여 그 제안설명을 갖추어 보기도 했다.
그 구성은 열 가지 범주로 이루어진다. 그 중에 ① 도량을 장엄하는 것과 ②향을 사루고 헌화하는 것 등은 의식을 행하기 전에 준비되어야 할 부분이다. ③소청(召請)에서는 ‘독송용 『천수경』’의 소청 부분에서 나오는 극락삼존을 청해 모신다. 그런 뒤 ④개경(開經)은 ‘독송용 『천수경』’의 개경(「정구업진언」 ∼「개법장진언」)이고, ⑤송주(誦呪)는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지송하는 것이며, ⑥참회는 ‘독송용 『천수경』’의 참회 부분을 독송하면서 절을 하도록 하였다. 그 중 「참회진언」을 하면서 108배를 하는 것이 ⑦예배가 된다. 그런 뒤 포행(布行)을 하면서 관세음보살 정근을 한다. ⑧염불이다. 그런 뒤, 부처님을 향해서 ⑨참회문을 합송(合誦)한다. 이때 참회문으로 나는 원효의 『대승육정참회』를 번역하여 읽기로 하였다. 그것이 이참과 사참을 둘 다 갖추고 있어서 ‘독송용 『천수경』’의 참회관과 부합하는 것으로 생각되어서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⑩회향발원문을 낭독하고 마친다.
물론, 아직 「천수예참」은 보편적으로 행해지는 수행법으로 정착된 것은 아니다. 나 스스로 인도했던 법회에서 행해 보았을 뿐이다. 그렇지만, 「천수예참」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천수행자(千手行者)의 실천적 모색의 흔적으로 기록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김호성
동국대 교수
[출처 :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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