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부의 원류를 찾아서 "
솥바위 10리 허 3대 국부 생가 탐방
1. 솥바위
왜 이름을 세 개의 별이란 뜻의 삼성(三星)으로 지었을까? 다른 이름도 많이 있는데 여기에는 솥바위 설이 깔려 있다. 경남 의령군과 함안군 경계에는 남강이 흐르고 있고 강의 중간에는 솥단지 모양처럼 생긴 커다란 바위가 있다. 사람 10여명 정도가 바위에 올라 앉을 수 있는 크기이다. 지역사람들은 이 바위를 솥바위(鼎巖)라고 부른다. 물밑으로는 세 개의 다리가 달려 있다.
조선 후기 어느 도사가 남강을 건너면서 이 솥바위를 보고 앞으로 이 근방에서 국부(國富) 3명이 나올 것이다 라는 예언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병철이 태어난 의령군 정곡면 증교리 생가는 이 솥바위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이다. 이병철은 사업을 시작하면서 이 전설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삼성(三星)이라는 작명은 이 솥바위의 세 다리를 상징한 것이다. 일제시대에 이병철은 사업을 시작하면서 구인회, 허정구와 같이 동업을 하였다. 구인회는 LG의 창업자이고 허정구는 GS 집안의 장자로서 현재 GS칼텍스 대표인 허동수의 선친이다. 구인회와 허정구는 똑같이 진주시 지수면이 고향이다. 후일 허씨들은 구씨들에게 사업을 맡기고 자신들은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동업시작 당시에 이 세 사람은 자신들이 전설에 나오는 국부 3인의 주인공으로 생각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 뒤로 함안군 군북면이 고향인 조홍제가 이병철과 동업을 하였는데 결별을 하고 난 뒤에 이름을 효성(曉星)이라고 지었다. 새벽별이란 뜻이다.
LG는 원래 럭키금성의 이니셜이다. 금성(金星)도 역시 별 성(星)이 들어가는 작명이 아닌가. 흥미롭게도 삼성, 금성, 효성, 그리고 GS의 창업자들은 모두 솥바위로부터 직선거리 30리 이내에서 태어났으므로 어렸을 때부터 솥바위 전설을 듣고 자랐을 것이다.
동양에서는 먹을거리가 곧 하늘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식위천(以食爲天)사상이 그것이다. 그래서 밥을 하는 솥(鼎)은 권력을 상징하는 신물(神物)이 되었다.
백성을 굶기면 권력이 아니다. 남강 솥바위 정기를 받아 부자가 된 이들 집안들은 앞으로 가부(家富)가 아니라 국민을 먹여 살리는 국부(國富)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게 예언의 본질이었다고 생각한다.
2. 만우 조홍제
조홍제(趙洪濟.1906년 5월 20일 ~ 1984년 1월 16일)는 경남 함안 군북면에서 태어난 효성그룹을 설립한 대한민국의 기업인이다. 아호는 만우(晩愚). 1906년 5월 20일 경남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 신창마을에서 출생했다. 조부의 훈도로 소년시절을 보냈고, 17세까지 5년 동안 종조부인 서천(西川)선생을 스승으로 섬겼다. 이후 1922년4월에 중앙고등보통학교(中央高等普通學校, 중앙고보)에 입학했다. 중앙고보 재학 중이던 1926년 6.10 만세 운동 당시에 중앙고보 주모자의 한 사람으로 기소되어 옥고를 치렀다. 그 후 일본으로 건너가서 1929년 호세이(法政) 대학의 독일경제학과에 입학하여, 1935년에 졸업했다.
- 사업 활동
1) 군북 시기
1936년에 군북(郡北)금융조합의 조합장으로 피선되어 고향 농민의 지도자로서 활약을 하며, 광복 이전까지 면내에 자작농을 육성하는데 힘쓰는 한편, 1942년에는 군북산업(郡北産業)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1948년에 이병철(李秉喆)과의 공동 출자로 삼성물산공사(三星物産公司)를 창립했다. 1962년9월, 15년간에 걸친 이병철 회장과의 동업 관계를 청산하고, 56세의 나이에 효성물산 주식회사로 독자사업을 시작했다.
2) 효성 그룹
1966년에 나일론 원사를 생산하는 동양나이론을 설립했으며, 한국타이어와 대전피혁(大田皮革)을 인수하는 등 사업을 확장했다. 1970년 한일(韓一)나이론을 인수하여 동양나이론과 합병했다. 1973년에는 동양폴리에스터와 동양염공(東洋染工)을 설립했다. 1975년에는 한영(韓永)공업을 인수하여 효성중공업으로 개편했으며, 원미(元美)섬유, 대성(大成)목재, 효성금속, 효성기계 등으로 사업의 영역을 넓혀갔다. 이후 1970년대 중반부터 효성 그룹은 국내 5대 그룹으로 성장하였다.
3) 기타
이밖에 1959년에 배명학원 이사장, 1976년에는 동양학원 이사장,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부회장 등을 역임하는 등 교육과 사회 활동에도 참여했다. 1971년, 고려대학교에서 기업 발전과 국민 경제의 성장에 기여한 공로로 최우수 경영자상, 1975년11월 제12회 수출의 날에 수출 유공자가 되어 동탑 산업 훈장, 1976년 11월 제13회 수출의 날에 금탑 산업 훈장을 수상했다. 1984년 1월 16일 78세로 별세했다.
3. 연암 구인회
구인회(具仁會, 1907년8월 27일~1969년12월 31일)는 대한민국의 기업인이자 LG그룹의 창립자로 전자 화학 산업의 선구자로 불린다. 호는 연암(蓮庵)이다.
본관은 능성, 호는 연암으로 경남 진주시 지수면 출신이다. 1926년서울의 중앙고등보통학교를 2년 수료하고 귀향해 지수협동조합의 이사로 취임하였는데 이것이 사업가로서의 첫 출발이다.
이후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일제 강점기 말기인 1943년 만석군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대토지 소유자가 되었고 1947년 크림 생산도 시작하였고 1953년 성공하여 락희산업주식회사를 설립했다.
1959년에는 금성사를 창립해 라디오 생산도 시작하였고 이어 전화기, 선풍기 등을 생산하였고 금성사도 치약, 칫솔, 비누 등을 연이어 생산하였다. 한편으로는 부산국제신보 사장이 되었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도 지냈다.
사회 활동에도 주력해 1968년 회갑 기념으로 진주에 연암 도서관을 세웠고 1969년 연암문화재단을 창설하였으나, 문화재단 창설 한 달 만에 폐암으로 사망했다. 이후 그의 뜻을 받들어 금성기업에서는 학자 및 학술지원에 기여한 사회저명인사들을 포상, 장려금 등을 지원하였다.
4. 허정구
(1911년 8월 6일 - 1999년 9월 23일)는 전 삼양통상 명예회장이다. 삼성물산의 초대 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경남 진양에서 태어났다. 1962년 권투협회장, 1970년 프로골프협회장, 1983년 아.태아마골프회의회장을 역임했다. 체육훈장 기린장을 받은 바 있다.
-가족 관계
허정구는 8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 허만정 모친 하위정
2남(동생) 허학구
3남(동생) 허준구(1923년 ~ 2002년)
4남(동생) 허신구(1929년 ~ 현재. GS리테일 명예회장)
5남(동생) 허완구
6남(동생) 허승효
7남(동생) 허승표
8남(동생) 허승조(1950년 ~ 현재. GS리테일 사장)
부인 이행좌
장남 허남각 - 삼양통상 회장
장녀 허영자 - 벽산 그룹 회장 김희철과 결혼
차남 허동수(1943년 ~ 현재. GS칼텍스 회장)
아들 허광수 - 삼양인터네셔널 회장
첫째 딸 허유정, 방준오(방상훈조선일보 대표이사의 아들)의 아내)
김인득 전 벽산 그룹 명예회장과는 사돈지간이다.
5. 이병철
이병철(李秉喆, 1910년2월 12일 - 1987년11월 19일)은 대한민국의 기업인으로 삼성그룹을 창립하였다. 경남의령 출신으로 호는 호암(湖巖)이며, 본관은 경주이다.
-생애
중동중학을 졸업한 후 일본와세다 대학 전문부 정경과에 입학하였다가 1934년 중퇴하였고, 1982년 미국보스턴 대학에서 명예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38년 3만 원의 자본금으로 대구 수동(현 인교동)에 '三星商會(삼성상회)' 라는 간판을 내걸고 사업을 시작하였다. 1951년 부산에서 삼성물산을 세워 무역업을 하면서 1953년~1954년 제일제당과 제일모직을 설립, 제조업에서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사업 영역을 크게 확대해갔으며, 1961년부터 1987년까지 한국경제인협회(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전신) 회장을 역임했다.
1964년, 동양 라디오 및 텔레비전 방송과 1965년, 중앙일보를 창설하여 언론사 경영에 참여하였다. 1969년 삼성전자를 설립하여 삼성그룹 육성의 도약대를 만들었다. 1974년 삼성석유화학·삼성중공업을 설립하여 중화학공업에 진출하였고, 이후 용인자연농원·삼성정밀 등을 설립하였다.
1977년 삼성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이 되었으며, 1982년 삼성반도체통신을 설립하였다. 금탑산업훈장을 비롯하여 세계최고경영인상을 받았다. 저서로 《우리가 잘사는 길》, 《호암자전》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