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년 역사의 파리 오페라 발레단(Ballet de l’Opéra national de Paris)이 세계 발레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오케스트라로 치면 베를린 필하모닉이나 빈 필하모닉과 비슷하다. 아메리칸 발레시어터(ABT), 영국 로열 발레단,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과 비교해 개별 무용수들의 재능과 군무진의 조직력에서 평가가 갈릴 수는 있지만, 그동안 축적한 브랜드 가치는 독보적이다.
해외 투어 개런티도 가장 비싼 조직이다. 지금껏 내한한 적은 없고, 중화권과 일본은 꾸준히 오간다. 동아시아에서 1주일 간 리허설을 포함해 전막 공연 권리를 구입한다면, 총 제작비는 25억원대에 이른다. 그보다, 금전 협상에 앞서, 투어 후보지의 발레 문화가 성숙한 지를 해당국 프랑스 대사관이나 문화원에 문의하는데, 한국에선 프로모터들이 제대로 교섭도 못하고 퇴짜 맞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 발레단 역사에 처음으로, 단체의 대다수 작품에서 주역을 연기하는 2등급 프르미에 당쇠르(Premier danseur·퍼스트 솔리스트)에 한국인 무용수가 이름을 올렸다. 5일 열린 발레단 연례 승급 콩쿠르에서 박세은(27)은 3등급 쉬제(Sujet·솔리스트)에서 단 한 명의 발레리나를 뽑아 올리는 경연에서 우승했다. 파리 오페라 발레 학교 출신 이외의 극소수에게 개방되는 오디션으로 2011년 여름 준단원으로 들어온 지 5년 만이다. 이제 남은 자리는 1등급 에투알(Etoile·수석 무용수)뿐.
박세은은 국내외 발레계에서 오래전부터 기량과 잠재력을 인정받아왔다. 여러 국제 대회 입상이 화려한 데뷔를 보장하진 않지만, 2007년 로잔 콩쿠르 우승은 메이저 발레단 관계자들이 그의 예술적 성장을 주시하게 된 시작점이었다. 우승 특전으로 뉴욕에서 ABT 산하 컴퍼니를 체험했고, 한국에 돌아와 짧은 국립발레단 재직 기간 동안 김기민(현 마린스키 발레단 프린시펄)과 파트너를 이루기도 했지만, 곧바로 해외 진출을 모색했다.
프로 무용수가 학교(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로 돌아간 것도 파격이었고, 파리 오페라 발레 출신의 김용걸 문하에서 그동안 익숙했던 러시아 바가노바 스타일 이외에 또 다른 방식을 섭렵한 게 결국은 행운의 밀알이 됐다.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정단원 제안을 물리고, 미래가 불확실한 파리 오페라 발레단 준단원을 택한 것도 과감한 결정이었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 입단 이후, 박세은은 세 명의 예술감독을 만났다. 2014년 10월까지 브리지트 르페브르, 2016년 2월까지 벵자멩 밀피에, 현재 오렐리 뒤퐁이 그들이다. 르페브르는 2012년 정단원 오디션 통과를 시작으로, 2013년 1월 카드리유(Quadrille·군무)-코리페(Coryphees·군무 리더)로, 2013년 11월 코리페에서 쉬제로 고속 승급을 공인한 책임자다. 서열이 낮아도 박세은이 느끼기에 자신을 고려하는 캐스팅이 나오던 시기다. 파리 오페라 스타일이 어떤 것이고, 누가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를 관찰하고 자신의 스타일을 조율해나간 시절이라 할 수 있다.
밀피에 시기, 파리 오페라 발레단은 격랑에 휩싸였다. 영화 ‘블랙 스완’의 주인공 나탈리 포트만의 남편으로 더 알려진 밀피에를 바라보는 노장 무용수들의 불편한 시각과 그들을 냉대하는 감독 사이에서 등위 낮은 무용수들이 운신할 여지는 없었다.
밀피에와 함께 하는 크리에이티브 팀에 들어야 캐스팅이 수월하게 나왔고, 컨템포러리 발레에 소질을 보이면 클래식 배역에서 제외되는 현상이 거듭되면서, 박세은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국내에선 2014년 가을 ‘라 수르스’(La source·샘물)의 주역 데뷔가 아시아인 최초의 쾌거라고 했지만, 이미 발레단에는 프랑스 태생의 베트남계 알리스 르나방(Alice Renavand)이 다문화를 상징하는 에투알로 자리 잡은 상태였다.
2015년 가을, 안느 테레사 안무의 4인무를 연습하다 동료의 발굽에 맞아 안면부에 큰 부상을 입은 박세은은 여러 시간 고민한 끝에 밀피에와 면담을 청했다. 감독은 흔쾌히 박세은을 자신의 팀에 합류시키면서 “너는 미래의 에투알이다. 나에게 조금 시간을 달라”고 했지만, 박세은은 같은 멘트가 여러 무용수에게 쓰인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오렐리 뒤퐁 감독, 박세은의 존재감 부각]
지난 2월 밀피에가 급작스럽게 퇴임을 발표했고, 3월 저스틴 펙과 알렉세이 라트만스키의 작품을 묶은 ‘아방 프리미에르’가 가르니에 극장 무대에 올랐다. 당일 현장을 찾은 필자는 객석에 앉은 박세은과 그를 지켜보고 있는 뒤퐁을 볼 수 있었다. 무용수 시절에는 타인에게 친절했지만, 감독 부임 이후엔 우연히 함께 탄 엘리베이터에서도 박세은에게 날씨에 관한 농담만 건네던 뒤퐁이었다.
“뒤퐁은 무용수 시절부터 주변에 말을 아꼈어요. 타인을 대하는 애티튜드에는 포스가 강했고 감독이 된 이후에는 늘 지적인 결단을 내립니다. 지금도 연습실에 클래스를 하러 올 때는 조용한 주역 무용수의 느낌이 물씬하고요. 부담스럽게 감독의 위엄을 드러내지 않아 불편하지 않고, 무엇보다 겸손하며, 생각을 많이 하는 리더입니다.”
그가 뒤퐁의 감독적 역량을 전폭 수용하게 된 계기는 지난 7월, 저스틴 펙의 안무 신작 ‘개와 늑대 사이(Entre Chien et Loup)’에 자신을 캐스팅할 때다. 감독은 자신의 미적 감각을 내세우지 않았고, 무용수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결과적으로 댄서를 빛나게 하는 작품을 통해 박세은 자신도 몰랐던 존재감을 끄집어냈다.
박세은은 “발레 무용수가 가르니에 무대에 오르고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서 활동하는 건 일종의 특권”이라고 말한다. 소속 단체에 대한 자부심은, 자신을 향한 나르시시즘은 줄이고 성향에 맞는 작품에 안착할 수 있도록 돕는 예술 스태프들의 역량에 근거한다.
“아무리 비싸더라도 발란신 작품을 꼭 보셔야 해요. 이 작품은 정말 끝장이거든요”라고 흥분을 전하는 마음에선 여전히 순수함이 전해졌다. 지난해 승급 심사에서 떨어진 박세은을 격려하느라 심사진을 향해 욕설도 마다 않던 동료들에 대한 애정은 다시 발레단에 대한 애착으로 이어졌다.
노조가 어떻게 예술적 리더십을 견제하는지도 절감했다. 수뇌진이 의도하는 방향에서 자신들이 조금이라도 불이익을 받을 부분이 무엇인지 토론하는 노조 회의를 모든 단원들이 기다린다고 했다. 발레단의 지속가능한 발전이 감독 개인의 과업이 아니란 점을 파리 오페라 발레단은 제도적으로 분명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승급 심사를 한 달 앞둔 지난 10월, 박세은을 파리에서 다시 만났다. 연습을 마치고 가르니에 극장을 나온 얼굴에 상처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빠른 속도로 몰아치는 발레 마스터들과 더 높은 수준의 프랑스어 대화를 나누지 못해 스스로를 책망했던 밤들은 지나갔다. 남들보다 일찍 출근했고, 퇴근 시간이 지나도 연습실을 지키는 무용수는 자신 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은퇴한 선배들이 오며가며 슬며시 알려준 ‘원 포인트 레슨’은 고스란히 자산이 됐다. ‘콩쿠르 여제’ ‘강수진 키즈’ 같은 수식어를 넘어서는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DNA를 그렇게 흡수했다.
“아마 가장 오랫동안 쉬제를 이어온 선배가 승급할 것”이라고 빙긋 웃던 박세은이 결국 프르미에에 올랐다. 무용수의 정년은 만 42세까지로, 박세은은 원한다면 2031년까지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 댄서로 머물 수 있다. “레페토를 연습복으로, 토슈즈는 프리드를 쓰는데, 단원들은 20퍼센트 할인되는 게 제일 좋은 점이에요. 지금은 월급에서 세금 제하면 거의 모두 생활비로 쓰고 리셉션 의상도 세일 때 아울렛 쇼핑으로 만족했는데, 이제 조금 나아지겠죠.”
언젠가 에투알이 되면, 지금은 17명 뿐이지만, 달라질 건 배역만이 아니다. “에투알은 급여 외에도 연습과 리허설마다 더 많은 수당이 나옵니다. 디올은 에투알에게만 의상 협찬을 해요. 정당한 차별이라고 생각합니다.”
‘에투알’ 박세은을 볼 날도 이제 머지 않았다. ●
파리 글 한정호 공연칼럼니스트 imbreeze@naver.com, 사진 파리 오페라 발레단
공연예술 월간지 ‘객석’에서 클래식과 무용을 5년간 담당하고 공연기획사 빈체로에서 6년 동안 홍보와 기획을 맡았다. 런던시티대 문화정책 석사 과정중.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