兌上兌下 重澤兌 (태상태하 중택태) 兌 ; 기쁠 태 [傳] 兌는 序卦에 巽者는 入也니 入而後說之라 故受之以兌하니 兌者는 說也라하니라 物相入則相說이요 相說則相入이니 兌所以次巽也라. 태는 서괘에 손자는 입야니 입이후열지라. 고수지이태하니 태자는 열야라하니라. 물상입즉상열이요 상열즉상입이니 태소이차손야라. 兌卦는 <序卦傳>에 “巽은 들어감이니, 들어간 뒤에 기뻐하므로 兌卦로 받았으니, 兌는 기뻐함이다.” 하였다. 물건이 서로 들어가면 서로 기뻐하고 서로 기뻐하면 서로 들어가니, 兌卦가 이 때문에 巽卦의 다음이 된 것이다. 兌는 亨하니 利貞하니라. (태는 형하니 이정하니라.) 兌는 亨通하니, 貞함이 이롭다. [傳] 兌는 說也니 說은 致亨之道也라 能說於物하여 物莫不說而與之면 足以致亨이라 然爲說之道는 利於貞正이니 非道求說이면 則爲邪諂而有悔咎라 故戒利貞也라. 태는 열야니 열은 치형지도야라. 능열어물하여 물막불열이여지면 족이치형이라. 연위열지도는 이어정정이니 비도구열이면 즉위사첨이유회구라. 고계이정야라. 兌는 기뻐함이니, 기뻐함은 亨通함을 이루는 길이다. 남을 기쁘게 하여 남이 기뻐하여 더불지 않는 이가 없으면 족히 亨通함을 이룰 수 있다. 그러나 기뻐하는 道는 貞正함이 이로우니, 道가 아닌 것으로 기뻐하기를 구하면 간사함과 아첨함이 되어 뉘우침과 허물이 있다. 그러므로 貞함이 이롭다고 경계한 것이다. 諂 ; 아첨할 첨 [本義] 兌는 說也니 一陰이 進乎二陽之上하니 喜之見乎外也라 其象이 爲澤이니 取其說萬物이요 又取坎水而塞其下流之象이라 卦體剛中而柔外하니 剛中故로 說而亨이요 柔外故로 利於貞이라 蓋說有亨道而其妄說을 不可以不戒라 故其占如此라 又柔外故로 爲說亨하고 剛中故로 利於貞하니 亦一義也라. 태는 열야니 일음이 진호이양지상하니 희지현호외야라. 기상이 위택이니 취기열만물이요 우취감수이색기하류지상이라. 괘체강중이유외하니 강중고로 열이형이요 유외고로 이어정이라. 개열유형도이기망열을 불가이불계라. 고기점여차라. 우유외고로 위열형하고 강중고로 이어정하니 역일의야라. 兌는 기뻐함이니, 한 陰이 두 陽의 위로 나아가니, 기쁨이 外面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 象은 澤이 되니 萬物을 기쁘게 함을 취하였고, 또 坎水가 아래로 흐르는 것을 막는 象을 취하였다. 卦의 體가 剛이 中에 있고 柔가 밖에 있으니, 剛이 中에 있기 때문에 기뻐하고 亨通하며, 柔가 밖에 있기 때문에 貞함이 이로운 것이다. 기뻐함은 亨通할 道가 있으나 망령되이 기뻐함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그 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또 柔가 밖에 있기 때문에 기뻐하고 亨通함이 되고, 剛이 中에 있기 때문에 貞함이 이로우니, 또한 한 뜻이다. 彖曰 兌는 說也니 (단왈 태는 열야니,) <彖傳>에 말하길 “兌는 기뻐함이니, [本義] 釋卦名義라. 석괘명의라. 괘명의 뜻을 해석하였다. 剛中而柔外하여 說以利貞이라 是以順乎天而應乎人하여 說以先民하면 民忌其勞하고 說以犯難하면 民忘其死하나니 說之大 民勸矣哉라. (강중이유외하여 열이이정이라. 시이강호천이응호인하여 열이선민하면 민기기로하고 열이범난하면 민망기사하나니 열지대 민권의재라.) 剛이 中에 있고 柔가 밖에 있어 기뻐하되 貞함이 이롭다. 이 때문에 하늘에 순하고 사람에 應하여 기뻐함으로써 백성에게 솔선하면 백성들이 수고로움을 잊고, 기뻐함으로써 難을 범하면 백성들이 죽음을 잊으니, 기뻐함이 크므로 백성들이 권면된다. [傳] 兌之義는 說也라 一陰이 居二陽之上하니 陰說於陽而爲陽所說也라 陽剛居中하니 中心誠實之象이요 柔爻在外하니 接物和柔之象이라 故爲說而能貞也라 利貞은 說之道宜正也라 卦有剛中之德하니 能貞者也라 說而能貞하니 是以로 上順天理하고 下應人心하니 說道之至正至善者也라 若夫違道以干百姓之譽者는 苟說之道라 違道는 不順天이요 干譽는 非應人이니 苟取一時之說耳니 非君子之正道라 君子之道는 其說於民이 如天地之施하여 感於其心而說服无?이라 故以之先民이면 則民心說隨而忘其勞하고 率之以犯難이면 則民心說服於義而不恤其死라 說道之大하여 民莫不知勸하니 勸은 謂信之而勉力順從이라 人君之道는 以人心說服爲本이라 故聖人이 贊其大하시니라. 태지의는 열야라. 일음이 거이양지상하니 음열어양이위양소열야라. 양강거중하니 중심성실지상요 유효재외하니 접물화유지상이라. 고위열이능정야라. 이정은 열지도의정야라. 괘유강중지덕하니 능정자야라. 열이능정하니 시이로 상순천리하고 하응인심하니 열도지지정지선자야라. 약부위도이간백성지예자는 구열지도라. 위도는 불순천이요 간예는 비응인이니 구취일시지열이니 비군자지정도라. 군자지도는 기열어민이 여천지지시하여 감어기심이열복무역이라. 고이지선민이면 즉민심열수이망기로하고 솔지이범난이면 즉민심열복어의이불휼기사라. 열도지대하여 민막부지권하니 권은 위신지이면력순종이라. 인군지도는 이인심열복위본이라 고성인이 찬기대하시니라. 兌의 뜻은 기뻐함이다. 한 陰이 두 陽의 위에 있으니, 陰은 陽을 좋아하고 陽에게 좋아하는 바가 된다. 陽剛이 中에 거하였으니 中心이 성실한 象이요, 柔爻가 밖에 있으니 남을 대하기를 和柔하게 하는 象이다. 그러므로 기뻐하고 능히 貞한 것이다. ‘利貞’은 기뻐하는 道는 마땅히 正道여야 하는 것이다. 卦에 剛中의 德이 있으니, 貞할 수 있는 자이다. 기뻐하고 貞하니, 이 때문에 위로 天理에 순하고 아래로 人心에 應하는 것이니, 기뻐하는 道에 지극히 바르고 지극히 善한 것이다. 道를 어겨 백성의 칭찬을 구하는 것으로 말하면 구차히 기뻐하는 道이다. 道를 어김은 天理에 순하지 않는 것이요, 칭찬을 구함은 人心에 응함이 아니니, 구차히 한 때의 기뻐함을 취할 뿐이니, 君子의 正道가 아니다. 君子의 道는 백성들을 기쁘게 함이 天地의 베풂과 같아서 그 마음을 감동시켜 기뻐하고 복종하게 하여 싫어함이 없다. 그러므로 이로써 백성들에게 솔선하면 民心이 기뻐하고 따라 그 수고로움을 잊고, 거느려 難을 범하면 民心이 義를 기뻐하고 복종하여 죽음을 걱정하지 않는다. 기뻐하는 道가 커서 백성들이 권면할 줄 모르는 이가 없으니, 勸은 믿고서 힘서 순종함을 이른다. 人君의 道는 人心이 기뻐하여 복종함을 근본으로 삼기 때문에 聖人이 그 큼을 찬미하신 것이다. 干 ; 방패, 구할 간 ? ; 섞을 두, 싫어할 역 [本義] 以卦體로 釋卦辭而極言之라. 이괘체로 석괘사이극언지라. 卦體로 卦辭를 해석하고 極言한 것이다. 象曰 麗澤이 兌니 君子以하여 朋友講習하니라. (상왈 리택이 태니 군자이하여 붕우강습하니라.) <象傳>에 말하길 “붙어 있는 澤이 兌이니, 君子가 보고서 朋友들과 講習한다.” 麗 ; 고울 려, 붙을 리 [傳] 麗澤은 二澤이 相附麗也라 兩澤相麗하여 交相浸潤하니 互有滋益之象이라 故君子觀其象而以朋友講習하나니 朋友講習은 互相益也라 先儒謂天下之可說이 莫若朋友講習이라하니 朋友講習은 固可說之大者나 然當明相益之象이라. 리택은 이택이 상부리야라. 양택상리하여 교상침윤하니 호유자익지상이라. 고군자관기상이이붕우강습하나니 붕우강습은 호상익야라. 선유위천하지가열이 막약붕우강습이라하니 붕우강습은 고가열지대자나 연당명상익지상이라. 麗澤은 두 못이 서로 붙어 있는 것이다. 두 못이 서로 붙어 있어 서로 적셔주니, 서로 滋益함이 있는 象이다. 그러므로 君子가 그 象을 보고서 朋友들과 講習하니, 朋友들과 講習함은 서로 유익하게 하는 것이다. 先儒들이 이르기를 “天下에 기뻐할 만함이 朋友들과 講習하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다.” 하니, 朋友들과 講習함은 진실로 기뻐할 만함이 큰 것이나 마땅히 서로 유익하게 하는 象을 밝혀야 한다. 浸 ; 젖을 침 滋 ; 불어날 자 [本義] 兩澤相麗하여 互相滋益하니 朋友講習이 其象如此하니라. 양택상리하여 호상자익하니 붕우강습이 기상여차하니라. 두 못이 서로 붙어 있어 서로 滋益하니, 朋友들과 講習함이 그 象이 이와 같다. 初九는 和兌니 吉하니라. (초구는 화태니 길하니라.) 初九는 화하여 기뻐함(좋아함)이니, 吉하다. [傳] 初雖陽爻나 居說體而在最下하고 无所係應하니 是能卑下和順以爲說하여 而无所偏私者也라 以和爲說而无所偏私는 說之正也라 陽剛則不卑요 居下則能巽이며 處說則能和요 无應則不偏이니 處說如是라 所以吉也라. 초수양효나 거열체이재최하하고 무소계응하니 시능비하화순이위열하여 이무소편사자야라. 이화위열이무소편사는 열지정야라. 양강즉불비요 거하즉능손이며 처열즉능화요 무응즉불편이니 처열여시라 소이길야라. 初가 비록 陽爻이나 說의 體에 거하고 가장 낮은 자리에 있으며 係應하는 바가 없으니, 이는 몸을 낮추고 和順함으로써 기뻐하여 편벽되고 사사로운 바가 없는 자이다. 和함으로써 기뻐하여 편벽되고 사사로운 바가 없다면 이는 기뻐함의 正道이다. 陽剛은 낮지 않고 아래에 거함은 공손함이며, 기뻐함에 처함은 和함이요 應이 없음은 편벽되지 않음이니, 說에 처하기를 이와 같이 하기 때문에 吉한 것이다. [本義] 以陽爻로 居說體而處最下하고 又无係應이라 故로 其象占如此하니라. 이양효로 거열체이처최하하고 무응계응이라 고로 기상점여차하니라. 陽爻로 說의 體에 거하고 가장 낮은 자리에 처했으며 또 係應이 없기 때문에 그 象과 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和兌之吉은 行未疑也일새라. (상왈 화태지길은 행미의야일새라.) <象傳>에 말하길 “和兌의 吉함은 행함에 의심스러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傳] 有求而和면 則涉於邪諂이어늘 初隨時順處하여 心无所係하니 无所爲也요 以和而已라 是以吉也라 象에 又以其處說在下而非中正이라 故云行未疑也라하니 其行未有可疑는 謂未見其有失也니 若得中正이면 則无是言也리라 說은 以中正爲本이니 爻는 直陳其義하고 象則推而盡之하니라. 유구이화면 즉섭어사첨이어늘 초수시순처하여 심무소계하니 무소위야요 이화이이라 시이길야라. 상에 우이기처열재하이비중정이라 고운행미의야라하니 기행미유가의는 위미견기유실야니 약득중정이면 즉무시언야리라. 열은 이중정위본이니 효는 직진기의하고 상즉추이진지하니라. 구하는 것이 있어서 和하면 간사함과 아첨함에 해당되는데, 初九는 때에 따라 순히 처하여 마음에 매인 바가 없으니 위하는 바가 없고 和함으로써 할 뿐이다. 이 때문에 吉한 것이다. <象傳>에 또 기뻐함에 처하고 아랫자리에 있으며 中正이 아니기 때문에 ‘행함에 의심스러울 것이 없다’고 말하였으니, 행함에 의심스러울 것이 없음은 잘못이 있음을 발견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니, 만일 中正을 얻었다면 이러한 말이 없을 것이다. 기뻐함은 中正을 근본으로 삼으니, 爻에는 다만 그 뜻만을 말하였고, <象傳>은 이것을 미루어 극진히 한 것이다. 섭 ; 건널, 들어갈 섭 직 ; 곧을, 다만 직 [本義] 居卦之初하여 其說也正하니 未有所疑也라. 거괘지초하여 기열야정하니 미유소의야라. 卦의 初에 거하여 그 기뻐함이 바르니, 의심스러운 바가 없는 것이다. 九二는 孚兌니 吉하고 悔亡하니라. (구이는 부태니 길하고 회망하니라.) 九二는 믿어 기뻐함이니, 吉하고 뉘우침이 없어진다. [傳] 二承比陰柔하니 陰柔는 小人也니 說之則當有悔라 二는 剛中之德으로 孚信內充하니 雖比小人이나 自守不失이라 君子和而不同하여 說而不失剛中이라 故吉而悔亡이라 非二之剛中이면 則有悔矣니 以自守而亡也라. 이승비음유하니 음유는 소인야니 열지즉당유회라. 이는 강중지덕으로 부신내충하니 수비소인이나 자수부실이라. 군자화이부동하여 열이부실강중이라 고길이회망이라. 비이지강중이면 즉유회의니 이자수이망야라. 二는 陰柔를 받들어 가까이 하니, 陰柔는 小人이니, 小人을 좋아하면 마땅히 뉘우침이 있을 것이다. 二는 剛中의 德으로 孚信이 안에 충만하니, 비록 小人을 가까이 하나 스스로 지키고 잃지 않는다. 君子는 和하고 부화뇌동하지 아니하여 기뻐하면서도 剛中을 잃지 않는다. 그러므로 吉하고 뉘우침이 없어지는 것이다. 二의 剛中이 아니면 뉘우침이 있을 것이니, 스스로 지키기 때문에 없어진 것이다. [本義] 剛中爲孚요 居陰爲悔라 占者以孚而說이면 則吉而悔亡矣리라. 강중위부요 거음위회라. 점자이부이열이면 즉길이회망의리라. 剛中은 성실함이 되고 陰에 거함은 뉘우침이 된다. 占치는 자가 성실함으로써 기뻐하면 吉하고 뉘우침이 없어질 것이다. 象曰 孚兌之吉은 信志也일새라. (상왈 부태지길은 신지야일새라.) <象傳>에 말하길 “孚兌의 吉함은 뜻이 성실하기 때문이다.” [傳] 心之所存이 爲志라 二는 剛實居中하니 孚信이 存於中也라 志存誠信하니 豈至說小人而自失乎아 是以吉也라. 심지소존이 위지라. 이는 강실거중하니 부신이 재어중야라. 지존성신하니 기지열소인이자실호아. 시이길야라.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을 志라 한다. 이는 剛實로 中에 거하였으니, 孚信이 中心에 보존된 것이다. 뜻에 誠信을 보존하니, 어찌 小人을 기뻐하여 스스로 잃음에 이르겠는가. 이 때문에 吉한 것이다. 六三은 來兌니 凶하니라. (육삼은 래태니 흉하니라.) 六三은 와서 기뻐하니, 凶하다. [傳] 六三은 陰柔不中正之人이니 說不以道者也라 來兌는 就之以求說也라 比於在下之陽하니 枉己非道하여 就以求說하니 所以凶也라 之內 爲來라 上下俱陽이로되 而獨之內者는 以同體而陰性下也일새니 失道下行也라. 육삼은 음유부중정지인이니 열불이도자야라. 래태는 취지이구열야라. 비어재하지양하니 왕기비도하여 취이구열하니 소이흉야라. 지내위래라. 상하구양이로되 이독지내자는 이동체이음성하야일새니 실도하행야라. 六三은 陰柔로 中正하지 못한 사람이니, 기뻐하기를 도리대로 하지 않는 자이다. ‘來兌’는 찾아와서 기뻐함을 구하는 것이다. 아래에 있는 陽과 가까우니, 자기 몸을 굽히고 도리가 아닌 짓을 하여 찾아와서 기뻐함을 구하니, 이 때문에 凶한 것이다. 안으로 옴을 來라 한다. 上下가 모두 陽인데 홀로 안으로 오는 것은 體가 같고 陰의 성질은 아래로 내려오기 때문이니, 道를 잃고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다. [本義] 陰柔不中正으로 爲兌之主하여 上无所應而反來就二陽하여 以求說하니 凶之道也라. 음유부중정으로 위태지주하여 상무소응이반래취이양하여 이구열하니 흉지도야라. 陰柔로 中正하지 못하면서 兌의 체가 되어 위에 應하는 바가 없고 도리어 두 陽에게 찾아와서 기뻐함을 구하니, 흉한 道이다. 象曰 來兌之凶은 位不當也일새라. (상왈 래태지흉은 위부당야일새라.) <象傳>에 말하길 “來兌의 흉함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傳] 自處不中正하고 无與而妄求說하니 所以凶也라. 자첩중정하고 무여이망구열하니 소이흉야라. 自處함이 中正하지 못하고 應與가 없는데도 망령되이 기뻐함을 구하니, 이 때문에 凶한 것이다. 九四는 商兌未寧이니 介疾이면 有喜리라. (구사는 상태미녕이니 개질이면 유희리라.) 九四는 기뻐함을 헤아려 편안하지 못하니, 志操를 지켜 邪惡을 미워하면 기쁜 일이 있으리라. 商 ; 장사, 헤아릴 상 介 ; 끼일, 절개 개 疾 ; 병, 미워할 질 [傳] 四上承中正之五하고 而下比柔邪之三하며 雖剛陽而處非正이라 三은 陰柔니 陽所說也라 故不能決而商度(탁)未寧이니 謂擬議所從而未決하여 未能有定也라 兩間을 謂之介니 分限也라 地之界則加田하니 義乃同也라 故人有節守를 謂之介하니 若介然守正而疾遠邪惡이면 則有喜也라 從五는 正也요 說三은 邪也라 四는 近君之位니 若剛介守正하여 疾遠邪惡이면 將得君以行道하여 福慶及物하리니 爲有喜也라 若四者는 得失이 未有定이요 繫所從耳니라. 사상승중정지오하고 이하비유사지삼하며 수강양이처비정이라. 삼은 음유니 양소열야라. 고불능결이상탁미녕이니 위의의소종이미결하여 미능유정야라. 양간을 위지개니 분한야라. 지지계즉가전하니 의내동야라. 고인유절수를 위지개하니 약개연수정이질원사악이면 즉유희야라. 종오는 정야요 열삼은 사야라. 사는 근군지위니 약강개수정하여 질원사악이면 장득군이행도하여 복경금물하리니 위유희야라. 약사자는 득실이 미유정이요 계소종이니라. 四는 위로 中正의 五를 받들고 아래로 柔邪의 三을 가까이 하였으며, 비록 剛陽이나 처함이 바른 자리가 아니다. 三은 陰柔이니, 陽이 좋아하므로 결단하지 못하고 헤아려 편안하지 못하니, 따를 바를 擬議하여 결단하지 못해서 정함이 있지 못한 것이다. 두 사이를 介라 이르니, 分限이다. 땅의 경계일 경우에는 田字를 가하였으니, 뜻이 바로 이와 같다. 그러므로 사람이 절개와 지킴이 있는 것을 介라 이르니, 만약 介然히 正道를 지켜 邪惡한 자를 미워하고 멀리하면 기쁜 일이 있을 것이다. 五를 따름은 正이요, 三을 좋아함은 邪이다. 四는 君主와 가까운 자리이니, 만일 剛하고 절개 있게 正道를 지켜서 사악한 자를 미워하고 멀리하면 장차 君主의 신임을 얻어 道를 행해서 福慶이 남에게 미칠 것이니, 기쁜 일이 있는 것이다. 四와 같은 자는 득실이 정해짐이 없고 따르는 바에 매어 있다. 擬 ; 헤아릴, 비길 의 [本義] 四上承九五之中正하고 而下比六三之柔邪라 故不能決而商度所說하여 未能有定이라 然質本陽剛이라 故能介然守正而疾惡(오)柔邪也니 如此則有喜矣라 象占如此하니 爲戒深矣로다. 사상승구오지중정하고 이하비육삼지유사라. 고불능결이상탁소열하여 미능유정이라. 연질본양강이라 고능개연수정이질오유사야니 여차즉유희의라. 상점여차하니 위계심의로다. 四는 위로 九五의 中正을 받들고 아래로 六三의 柔邪를 가까이 하였다. 그러므로 결단하지 못하여 기뻐할 상대를 헤아려 정함이 있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質이 본래 陽剛이기 때문에 介然히 正道를 지켜 柔邪를 미워하는 것이니, 이와 같으면 기쁨이 있을 것이다. 象과 占이 이와 같으니, 경계함이 깊도다. 象曰 九四之喜는 有慶也라. (상왈 구사지희는 유경야라.) <象傳>에 말하길 “九四의 기쁨은 慶事가 있는 것이다.” [傳] 所謂喜者는 若守正而君說之면 則得行其剛陽之道而福慶及物也라. 소위희자는 약수정이군열지면 즉득행기강양지도이복경급물야라. 이른바 기쁘다는 것은 만약 正道를 지켜 君主가 좋아하면 剛陽의 道를 행하여 福慶이 남에게 미칠 수 있는 것이다. 九五는 孚于剝이면 有?리라. (구오는 부우박이면 유려리라.) 九五는 剝(양을 해치는 자)을 믿으면 위태로움이 있으리라. 剝 ; 벗길, 깎을 박 ? ; 갈, 화, 위태로울 려 [傳] 九五得尊位而處中正하니 盡說道之善矣로되 而聖人이 復設有?之戒하시니 蓋堯舜之盛으로도 未嘗无戒也하니 戒所當戒而已라 雖聖賢在上이라도 天下에 未嘗无小人이라 然不敢肆其惡也하니 聖人亦說其能勉而革面也라 彼小人者 未嘗不知聖賢之可說也하니 如四凶處堯朝에 隱惡而順命이 是也라 聖人이 非不知其終惡也로되 取其畏罪而强仁耳니 五若誠心信小人之假善爲實善하여 而不知其包藏이면 則危道也라 小人者는 備之不至면 則害於善이니 聖人爲戒之意深矣로다 剝者는 消陽之名이라 陰은 消陽者也니 蓋指上六이라 故孚于剝則危也니 以五 在說之時하여 而密比於上六이라 故爲之戒라 雖舜之聖이라도 且畏巧言令色하시니 安得不戒也리오 說之感人이 易入而可懼也如此니라. 구오득존위이처중정하니 진열도지선의로되 이성인이 부설유려지계하시니 개요순지성으로도 미상무계야하니 계소당계이이라. 수성현재상이라도 천하에 미상무소인이라. 연불감사기악야하니 성인역열기능면이혁면야라. 피소인자는 미상부지성현지가열야하니 여사흉처요조에 은악이순명이 시야라. 성인이 비주지기종악야로되 취기외죄이강인이니 오약성심신소인지가선위실선하여 이부지기포장이면 즉위도야라 소인자는 비지부지면 즉해어선이니 성인위계지의심의로다. 박자는 소양지명이라. 음은 소양자야니 개지상육이라. 고부우박즉위야니 이오재열지시하여 이밀비어상육이라 고위지계라.. 수순지성이라도 차외교언영색하시니 안득불계야리오. 열지감인이 이입이가구야여차니라. 九五가 尊位를 얻고 中正에 처하였으니, 기뻐하는 道의 善을 다한 자이나 聖人이 다시 위태로움이 있다는 경계를 베푸시니, 堯舜의 성대함으로도 일찍이 경계가 없지 않았으니, 마땅히 경계할 바를 경계할 뿐이다. 비록 聖賢이 윗자리에 있더라도 天下에 일찍이 小人이 없지는 못하다. 그러나 감히 그 惡을 부리지 못하니, 聖人 또한 小人들의 억지로 힘써서 얼굴을 고치는 것을 좋아한다. 저 小人들도 일찍이 聖賢이 기뻐할 만한 것임을 모르지 않으니, 四凶이 堯임금의 조정에 있을 때에 愕을 숨기고 명령에 순종함과 같은 것이 이것이다. 聖人이 그 끝내 惡함을 모르지는 않으나 罪를 두려워하여 억지로 仁을 하는 것을 취할 뿐이니, 五가 만약 誠心으로 小人의 거짓 嬋을 믿어 진실한 善이라고 여겨서 나쁜 마음을 감추고 있는 것을 모른다면 위태로운 道이다. 小人은 대비하기를 지극히 하지 않으면 선을 해치니, 聖人이 경계하신 뜻이 깊다. 剝은 養을 사라지게 하는 이름이다. 陰은 養을 사라지게 하는 자이니, 上六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剝을 믿으면 위태로운 것이니, 五가 기뻐하는 때에 있어 上六과 매우 가깝기 때문에 경계한 것이다. 비록 舜임금 같은 聖人이라도 말을 잘하고 얼굴빛을 좋게 하는 자를 두려워하셨으니, 어찌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기뻐함으로 사람을 혹하게 함이 들어가기 쉬워 두려워할 만함이 이와 같다. 包 ; 쌀 포 令 ; 영, 우두머리, 좋을 령 [本義] 剝은 謂陰이니 能剝陽者也라 九五陽剛中正이나 然當說之時而居尊位하여 密近上六하니 上六은 陰柔로 爲說之主하고 處說之極하니 能妄說以剝陽者也라 故其占이 但戒以信于上六則有危也라. 박은 위음이니 능박양자야라. 구오양강중정이나 연당열지시이거존위하여 밀근상육하니 상육은 음유로 위열지주하고 처열지극하니 능망열이박양자야라. 고기점이 단계이신우상육즉유위야라. 剝은 陰을 이르니, 陽을 소멸시키는 자이다. 九五가 陽剛中正이나 기뻐하는 때를 당하여 尊位에 거해서 上六과 매우 가까우니, 上六은 陰柔로 說의 主體가 되고 說의 極에 처하였으니, 망령되이 기뻐하여 陽을 소멸시키는 자이다. 그러므로 그 占이 다만 上六을 믿으면 위태로움이 있다고 경계한 것이다. 象曰 孚于剝은 位不當也일새라. (상왈 부우박은 위부당야일새라.) <象傳>에 말하길 “剝을 믿음은 자리가 바로 이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傳] 戒孚于剝者는 以五所處之位 正當戒也일새라 密比陰柔하여 有相說之道라 故戒在信之也라. 계부우박자는 이오소처지위 정당계야일새라. 밀비음유하여 유상열지도라 고계재신지야라. 剝을 믿음을 경계한 것은 五의 처한 자리가 바로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音柔를 매우 가까이하여 서로 기뻐하는 道가 있기 때문에 경계함이 믿음에 있는 것이다. 比 ; 견줄, 가까울 비 [本義] 與履九五同이라. 여리구오동이라. 履卦의 九五爻와 같다. 上六은 引兌라. (상육은 인태라.) 上六은 이끌어 기뻐함이다. [傳] 他卦는 至極則變이로되 兌爲說하니 極則愈說이라 上六은 成說之主요 居說之極하여 說不知已者也라 故說旣極矣로되 又引而長之라 然而不至悔咎는 何也오 曰 方言其說不知已요 未見其所說善惡也며 又下乘九五之中正하여 无所施其邪說일새라 六三則承乘皆非正이라 是以有凶이라. 타괘는 지극즉변이로되 태위열하니 극즉유열이라. 상육은 성열지주요 거열지극하여 열부지이자야라. 고열기극의로되 우인이장지라. 연이부지회구는 하야오. 왈 방언기열부지이요 미견기소열선악야며 우하승구오지중정하여 무소시기사열일새라. 육삼즉승승개비정이라 시이유흉이라. 다른 卦는 극에 이르면 변하나 兌는 기뻐함이 되니, 極에 이르면 더욱 기뻐한다. 上六은 기쁨의 주체가 되고 기뻐함의 極에 처하여 기뻐함을 그칠 줄 모르는 자이다. 그러므로 기뻐함이 이미 지극한데 또 이끌어 伸長하는 것이다. 그러나 뉘우침과 허물에 이르지 않음은 어째서인가? 그 기뻐함을 그칠 줄 모름을 말했을 뿐이요, 기뻐하는 바가 善인가 惡인가를 볼 수 없으며, 또 아래로 九五의 中正을 타고 있어 간사하게 기뻐함을 베풀 곳이 없기 때문이다. 六三은 承과 乘이 모두 正이 아니기 때문에 흉함이 있는 것이다. 愈 ; 나을, 더욱 유 [本義] 上六은 成說之主요 以陰居說之極하여 引下二陽하여 相與爲說이나 而不能必其從也라 故九五當戒요 而此爻엔 不言其吉凶하니라. 상육은 성열지주요 이음거열지극하여 인하이양하여 상여위열이나 이불능필기종야라. 고구오당계요 이차효엔 불언기길흉하니라. 上六은 기쁨의 주체가 되고 陰으로서 기뻐함의 極에 거하여 아래의 두 陽을 이끌어서 서로 기뻐하나 그 따름을 기필할 수 없다. 그러므로 九五는 마땅히 경계하여야 하고 이 爻에는 吉凶을 말하지 않은 것이다. 象曰 上六引兌未光也라. (상왈 상육인태미광야라.) <象傳>에 말하길 “上六이 이끌어 기뻐함은 빛나지 못한다.” [傳] 說旣極矣어늘 又引而長之면 雖說之之心不已하나 而事理已過하여 實无所說이라 事之盛이면 則有光輝로되 旣極而强引之長이면 其无意味甚矣니 豈有光也리오 未는 非必之辭니 象中多用하니 非必能有光輝는 謂不能光也라. 열기극의어늘 우인이장지면 수열지지심불이하나 이사리이과하여 실무소열이라. 사지성이면 즉유광휘로되 기극이강인지장이면 기무의미심의니 기유광야리오. 미는 비필지사니 상중다용하니 비필능유광휘는 위불능광야라. 기뻐함이 이미 지극한데 또 이끌어 신장하면 비록 기뻐하는 마음이 그치지 않으나 事理가 이미 지나쳐 실제로 기뻐할 바가 없다. 일이 성대하면 光輝가 있으나 이미 極에 이르렀는데 억지로 이끌어 伸長하면 의미가 없음이 심하니, 어찌 빛남이 있겠는가. 未는 반드시는 아니라는 말이니, 象 안에 많이 사용하였는바, 반드시 光輝함이 있지 못하다는 것은 빛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
출처: 古稀宴때 드릴 冊(2020.02.07) 원문보기 글쓴이: 신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