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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달샘 <12> 미술 (2) 예술의 정의‧기준‧장르
이 미술 시리즈를 쉽고 재미있게 쓰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쉽게 쓴다고 해도 최소한의 용어 정리는 해야 한다. 모든 분야가 다 그렇지만, 먼저 용어가 이해되어야 전체 이야기가 재미있고 유익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마 본 미술 시리즈에서 이 글(옹달샘 <12>)이 가장 딱딱한 내용이 될 것 같다. 기본적인 용어 설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글을 정독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재미있을 것이다.
문화(文化)가 없는 것을 원시(原始)라고 한다. 예술(藝術)은 문화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한다. 예술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예술의 정의를 알아본다. 서양에서 말하는 ‘예술(藝術, art)’의 어원은 ‘모방기술(模倣技術)’이라는 뜻의 헬라어 ‘미네티케 테크네(minetike techne)’이고, 라틴어에서는 ‘기술(技術)’이라는 뜻의 ‘아르스(ars)’이다. 즉 ‘예술(藝術)’의 원래 뜻은 ‘기술(技術)‧기능(技能)’이다.
‘예술(藝術)’의 한자 뜻풀이를 보면 서양에서 말하는 의미와 같다. ‘예(藝)’는 ‘심을 예’로서 ‘씨 종(種)’, ‘나무 수(樹)’와 같다. ‘술(術)’은 ‘꾀 술’로서 ‘재주‧기술’을 뜻한다. 즉 ‘예술(藝術)’은 ‘기술을 심는다’라는 의미이다. 또 ‘술(術)’은 ‘길‧수단‧방법’의 뜻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예술(藝術)’을 ‘예도(藝道)’라고도 한다. ‘예도(藝道)’는 ‘예술(藝術)’보다도 더 격을 높인 용어이다. ‘검술(劍術)’을 ‘검도(劍道)’라고 하는 이치와 같다.
옛날에는 ‘예술(藝術, art)’의 정의가 넓은 의미로서 ‘인간의 생산‧제작, 또는 연기(演技) 등의 기술(技術)‧기능(技能)‧재주‧기교(技巧)’였으나, 오늘날에는 ‘예술(藝術, art)’의 정의가 좁은 의미로 ‘미적(美的) 작품을 형성시키는 인간의 창조 활동 및 그 성과’만을 의미한다. 그래서 일반 기술과 구분하여 ‘예술(藝術, art)’을 ‘미적 기술(fine art)’, 즉 ‘미술(美術)’이라고도 하고, 미술을 더 엄밀히 구분하여 ‘상업미술(商業美術, commercial art)’과 ‘순수미술(純粹美術, pure art)’로 나눈다.
그러면 예술의 기준은 무엇인가? 예술(藝術)과 비예술(非藝術)을 무슨 기준으로 구분하는가? 도자기는 예술작품인데, 플라스틱 그릇은 왜 예술작품이 아닌가? ‘예술의 기준’은 고대 그리스 때부터 많이 논의되어 왔다. 전통적인 예술의 기준은 무엇인가? 전통적으로 ‘미(美) 또는 심미적(審美的)인 것’을 예술의 기준으로 삼았다. 미와 심미성(審美性)은 예술작품을 예술작품이 되게 하는 핵심이다. 예를 들어 구체적으로 말하면, 플라스틱 그릇은 미(美)의 목적이 아니라, 실용(實用)을 위해 제작한 것이다. 그러나 도자기는 미의 목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예술작품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도자기가 생활용품이었다고? 어떤 것은 관상용(觀賞用)으로, 어떤 것은 생활용(生活用)으로 만들어졌다. 생활용으로 만들어진 도자기라 할지라도 오랜 세월이 지나 희소성(稀少性)이 높아지면 예술품이 된다. 만일 플라스틱 그릇이 이 세상에 몇 개밖에 없는 날이 오면 그것이 예술품이 될 수도 있다. 또 미술작품은 대체로 기계로 똑같은 것을 상품으로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창조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단 하나가 있는 것이 예술작품이라면, 똑같은 상품이 무수히 있는 것은 예술작품이 아닌 것이다. 이것을 다시 좀 어렵게 말하면 ‘대상(對象)에 대한 표상(表象)’이 전통적인 예술의 기준이다. ‘표상(表象, representation)’이란 '어떤 지각(知覺)이나 기억(記憶)에 의해 의식하는 관념(觀念, idea)이나 심상(心像, image)'이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어떤 대상을 보고 심미안(審美眼)을 따라 아름다움의 아이디어(idea)나 이미지(image)를 표현한다면 그것은 예술작품인 것이다.
20세기의 현대주의(現代主義, Modernism)의 특징은 다원주의(多元主義, Pluralism)이다. 다원주의란 어떤 원칙이나 목적이 단일하지 않고, 다양함을 인정하는 태도이다. 르네상스 이래 오랫동안 “그림은 이렇게 그리는 것이야”라는 전통적인 예술의 기준을 따랐다. 이것이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이래 고전주의(古典主義, Classicism) 미술, 또는 아카데미(Academy) 미술이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일단(一團)의 화가들이 “그것만이 그림을 그리는 유일한 원칙은 아니야”라고 하면서 반발하며 일어난 것이 인상주의(印象主義, Impressionism) 미술이다. 다시 20세기 초에는 “그렇다면 이렇게 못하라는 법이 어디 있어?”라며 다양한 분파(分派)가 생긴 것이 현대주의(現代主義, Modernism) 미술이다. 그래서 현대 미술은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차근차근 알고 보면 어려울 것도 없다. 이 미술 시리즈는 그런 어려움을 해결해 줄 것이다.
1917년 프랑스의 화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은 남성용 변기를 그대로 <샘(Fountain)>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회에 출품했다. 이로써 전통적인 ‘예술의 기준’은 무너져버린 셈이다. 그렇다고 아무 것이나 예술작품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예술의 기준’은 있다고 본다.
이제 예술의 장르(genre, 종류)를 살펴보자.
예술의 장르를 분류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표상형식에 따라 분류하는 예술의 장르’를 알아본다.
쉽게 말해서 ‘표상’이란 ‘감각기관, 즉 오감{五感) : ① 시각(視覺), ② 청각(聽覺), ③ 후각(嗅覺), ④ 미각(味覺), ⑤ 촉각(觸覺)}을 통해 마음에 그릴 수 있는 물체의 상(象)’이다. 그러한 상(象)을 무슨 감각으로 표현하느냐 하는 것이 ‘표상형식(票象形式)’이다. 그런데 예술 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감각은 주로 시각(視覺)과 청각(聽覺)인데, 시각에 의한 것을 ‘시각예술(視覺藝術, visual art)’, 청각에 의한 것을 ‘청각예술(聽覺藝術, aural art)’이라고 한다. 또 시각예술은 눈으로 보는 형태(形態, form)가 있기 때문에 ‘조형예술(造形藝術, plastic art)’이라고 하고, 청각예술은 귀로 듣는 음률(音律, melody)이 있기 때문에 ‘음악예술(音樂藝術), musical art)’ 또는 ‘뮤즈예술((musische Kunst)’이라고 한다. 또 시각예술은 그 형태가 어떤 공간(空間, space) 속에 있기 때문에 ‘공간예술(空間藝術, space art)’이라고도 하고, 청각예술은 그 음률이 어떤 시간(時間, time) 속에 있기 때문에 ‘시간예술(時間藝術, time art)’이라고도 한다.
‘표상형식에 따라 분류하는 예술의 장르’를 다시 정리하면 ① 시각예술=조형예술=공간예술, ② 청각예술=음악예술=시간예술이다. 앞으로 ① 조형예술, ② 음악예술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겠다.
(1) 조형예술(=시각예술=공간예술)
조형예술에 속하는 것으로는 ① 회화(繪畵, painting, 그림), ② 조소{彫塑, 또는 조각(彫刻), sculpture}, ③ 공예(工藝, crafts, 또는 handicraft), ④ 건축(建築, architecture)’이 있다.
⑤ 사진(寫眞, photograph), ⑥ 서예(書藝, calligraphy)도 조형예술에 넣는다. 그러나 ‘사진’은 회화와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고, 행위자의 창작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기계(카메라)가 영상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논란이 되어 왔다. ‘서예’는 조형성에서 논란이 되어 왔다. 붓으로 쓴 것은 예술이고, 펜으로 쓴 것은 예술이 아닌가 하는 문제도 생긴다. 그러나 어찌됐든 간에 뒤늦게 ‘사진’과 ‘서예’도 예술에 속하게 되었다.
조형예술은 시각(視覺)을 위한 예술이고, 시각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이다. 따라서 조형예술은 물체의 모양, 위치, 색깔, 관계 등을 표현하는 ‘구도(構圖, composition)’, 모양을 특징짓는 ‘형태(形態, form)’, 시간상의 ‘정지(停止, standstill)’, 공간상의 ‘병렬(竝列, parallel)’, 물체의 고유성, 정체성,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색채(色彩, color)’ 등의 특징을 가진다.
조형예술의 2대 요소는 ① 형태(形態, form), ② 색채(色彩, color)이다. 조형예술 중에서 형태와 색채를 다 중요시하는 것은 회화와 사진이다. 회화(그림)를 예로 들어 보자. 채색을 하지 않은 그림(드로잉화)을 특별히 인정하지만, 채색을 제대로 하지 않은 그림은 그림이라고 할 수 없다. 아무리 형태를 잘 묘사했어도, 채색을 잘못하면 좋은 그림이 되지 못한다. 그러니까 그림을 감상하거나 실기할 때는 형태뿐만 아니라 색채까지 유의해야 한다. 이런 원리를 알아야 그림을 감상 또는 실기가 가능해진다. 조소(조각), 공예, 건축, 서예 같은 것은 형태만 중요시하고, 색채는 그리 중요시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조각인 경우에 대리석이나 청동에 채색을 하지 않는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조각을 보고 “왜 색깔이 저렇게 거무튀튀한지 모르겠네”라고 말한다.
(2) 음악예술(=청각예술=시간예술)
음악예술에 속하는 것으로는 ① 음악(音樂, music), ② 오페라(opera), ③ 뮤지컬(musical), ④ 무용(dance) 등이 있다.
그렇다면 문학(文學), literature)은 어디에 속하는가? 문학은 예술과 다른 분야로 본다. 그러면서도 문학은 예술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래서 문학과 예술을 합쳐서 ‘문예(文藝, literature and art)’라고 한다. ‘문예’는 두 가지 뜻이 있다. ① 문학과 예술, ② 문학예술(예술로서의 문학)이다. 문학을 ‘언어예술(言語藝術, language art)’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그러면 문학은 예술이다. 예술로서의 문학은 공간적이기도 하고 시간적이기도 한데, 시간적인 요소가 더 크기 때문에 ‘시간예술(時間藝術, time art)’로 보기도 한다.
(3) 종합예술
조형예술(=시각예술=공간예술)과 음악예술(=청각예술=시간예술)이 합쳐진 형태의 예술이 있다. ‘신체동작예술(身體動作藝術, body motion art)’인 ‘무용(舞踊, dance)’, ‘연극(演劇, play, 또는 drama)’, ‘오페라(opera)’, ‘뮤지컬(musical)’, ‘영화(映畵, movie)’ 등은 예술의 장르가 다 들어 있다. 이렇게 시간적‧공간적 요소를 다 가지고 있는 예술을 ‘시공간예술(視空間藝術, space-time art)’, 또는 ‘종합예술(綜合藝術, composite arts)’이라고 한다. 오페라, 뮤지컬, 무용 같은 것은 음악예술에 속하기도 하면서도 종합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종합적인 것은 영화이다.
이전에 언급한 적이 있지만, 예술 행위는 ① 감상(소극적 예술 활동), ② 실기(적극적 예술 활동)가 있다. 영화가 종합예술이라고 해서 감상만 하는 것으로는 취미생활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다.
이외에 ‘목적에 따라 분류하는 예술의 장르’, ‘대상관계에 따라 분류하는 예술의 장르’도 있다. 이런 것은 앞으로 필요에 따라 가볍게 언급하면 될 것 같다. 점점 더 쉽고 유익한 글을 쓸 것을 약속한다. [다음 호에 계속 / 2013.10.23.(수). 조귀채]
첫댓글 이제부터 예술을 탐험하는 기분으로 잘 따라가 볼랍니다.
이 글을 감상하고 크게 감동을 받는 분들이 차츰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댓글이 구름같이 달리지 않더라도 힘껏,용기있게,끈기를 가지고 달려가십시오. 잔뜩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할게요. 이 카페 개근상 받을 것 같네요. 오는 11월 마지막 주간 해운대문화회관에서 있는 전시회에 출품할 그림은 놔두고 글 쓰느라 새가 다 빠질 것 같네요!
예술의 용어정리를 조목조목 이해하기 쉽게 정리를 잘해주시니....
머리속에 속~속 들어옵니다요...
작가님의 글솜씨가 대단하십니다....ㅎㅎ
그리고 작가님!
부산 해운대 문화회관 에서 전시회를 하시면....
구경하러 가겠습니다.^**^
잘 이해가 된다니, 그리고 칭찬까지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힘이 되고 애쓴 보람을 느낍니다.
전시회 가까워지면 알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