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현상
(Le Phenomenone of Humain)
저자 : 샤르댕(Pierre Theilhard de Chardin, 1881~1955)
카톨릭 신부이자 고생물학자인 샤르댕에 의해 집필된 이 책은 우주론적 진화론적 배경 아래 하나의 현상으로서의 인간을 매우 포괄적으로 서술하면서 과학과 종교, 자연과 역사, 그리고 유물론과 관념론을 융합시키고 있다. 이 책 속에는 물질세계와 정신세계, 과거와 미래, 그리고 다양성과 통일성이라는 3중 종합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20세기 후반을 살아가면서 21세기를 전망하는 인류에게 우주 속에서 인간의 위치와 내일의 방향을 암시해준다.
* 참신한 비전을 제시한 사상가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의 주창자이자 북경원인 발견자의 한 사람인 샤르댕 신부는 신학자이자 자연과학자였다. 그는 생애 동안 지구의 여러 곳의 지층을 파헤치면서 인류의 기원과 진화의 비밀을 탐색하려 했다. 그는 프랑스 중부 오베르슈 지방에서 지질학에 관심이 있는 부농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 자연관찰과 곤충. 식물. 암석 등 채집의 기쁨을 배웠다. 그는 후에 "물질, 더 정확히 물질의 핵심에 반짝이는 어떤 것에 마음이 끌린 것이 6~7살 때의 일이다"라고 회고했다.
그는 10살부터 예수회 학교에서 기숙사생활을 하면서 신학수업을 받아 예수회 교단의 신부로 서품되었다. 여기서 정규과목뿐만 아니라 지질학과 고생물학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도 받았다. 24살에는 카이로 예수회 성가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며, 자연에 대한 관찰과 연구를 계속했다. 특히 1911년 파리 박물관에서 고생물학 및 선사시대 연구가인 마르슬렝 줄의 지도 아래 인류 고생물학의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다. 장기간에 걸친 공동연구를 통해 깊은 우정으로 발전한 이들의 만남은 그의 일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14년 1차대전에 위생병으로 참전하여 전투에서 보여준 용감한 행동으로 훈장을 받기도 했다.
1922년에 소르본 대학에서 자연학 박사학위를 받고, 1923년에 고생물학과 지질학 연구 임무를 띠고 그의 제2의 고향이 된 중국으로 첫번째 파견을 나갔다. 쉴새없는 지질조사와 연구 속에서 '신의 영역'을 집필하여 그리스도인의 태도와 과학자의 태도를 양립시킬 수 있는 종합적 세계관을 모색했다.
1927~1928년 프랑스 체류 이후 에티오피아 지질조사와 주구점의 북경원인 발굴, 그리고 중앙아시아 탐험 등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지질학과 고생물학 연구를 계속했다.
1939년 미국의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인류기원에 관한 심포지엄에서 북경원인 연구결과를 발표한 후 중국으로 귀환했다가 중.일전쟁으로 북경에 6년 동안 유폐되었다. 여기서 그는 그의 필생의 연구주제인 진화와 인간의 미래에 대한 사색과 탐구를 계속하며 그 결과인 '인간현상'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1946년 프랑스로 귀국한 뒤 그는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의 웨너그렌 재단의 인류학 종신연구원으로 여생을 보냈다. 그는 남아프리카 조사연구 여행을 하는 등 정열적인 연구활동을 하던 중 1955년 4월 10일 뉴욕에서 심장마비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그 당시에는 소수의 전문연구자와 친구들 외에는 그의 이름과 사상을 알아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인간의 진화와 미래에 관한 과학적 연구로 그는 교회로부터 소외당했고 순수한 전공서적 외의 저술은 출간이 금지되었다. 그러나 그의 유고는 그의 사후 즉시 각계의 세계적 저명인사들로 구성된 간행위원회에 의해 간행된다. '인간현상'은 지질학. 고생물학 등 자연과학 분야와 철학. 신학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격렬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 우주의 생성과 인간의 진화
이 책은 우주 속에서 인간생명의 과거와 미래를 조망하면서 새로운 인류의 제3문명 윤리를 제시했다. 인간은 마지막 정신적 통일체를 향해 정신적. 사회적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이론으로 유명하다.
이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생명출현 이전'에는 사물의 궁극적이고 기초적인 실재가 내포하고 있는 속성들을 다루고 있다. 이중성. 통일성. 에너지. 조직. 양. 전체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지금 정신계와 물질계로 양분하는 실재의 두 존재양식이 사물의 기본적인 속성 속에 내재된 '내면성'과 '외면성'의 발현이라고 본다.
제2부는 '생명단계'를 다룬다. 물질구조가 어떤 임계점에 이르면 생명의 출현이라는 창조적 진화단계에 이른다. 소미립자 차원의 생명체로부터 복잡한 다세포에 이르기까지 우주진화의 시간축이라는 변화곡선에 따라 생명을 출현시킨다. 물질진화의 1단계는 분할할 수 없는 빛나는 단순성, 곧 시원적 준원자가 있었다. 이것이 돌연히 우주적 압력으로 폭발하면서 무한의 기본소립자(양자. 중성자. 전자. 광자)들로 나타나면서 원자배열에 의한 원소계열이 나타났다.
진화는 가산되는 요소들이 유기적 결합을 가속화하면서 단백질과 핵산의 화학적 중합을 거쳐 생명의 기초재료인 원형질로 생태변화한다. 생명은 다양화하고 유기적으로 복잡해진다. 생명진화의 임계점에서 생각하는 힘인 '의식', 곧 반성적 사유의 능력이 출현한다.
제3부는 '사상 곧 생각의 출현'이다. 개체 인간이 점차 인간화해가고, 생물학적으로 인류라는 종이 인간화해가면서 지구의 표면에 정신권이 형성된다. 정신권은 자율적 내면진화를 가속해가면서 현대 서구문명까지 이른다.
제4부는 '생존을 위하여'이다. 반성적 사유능력의 출현은 곧 인간출현을 의미하는데 인간의 사유는 이제 집단화. 거대화해가면서 집단적 초인류를 형성해가고 지구라는 생명체는 우주를 인격화시켜간다. 사랑은 한번 인격화하면서 익어가는 과일처럼 오메가를 지향하는 지구생명의 최고 에너지다. 이어서 인간현상의 보질이 다루어지고, 기독교라는 종교현상의 의미와 진화하는 세계 속에서 악의 문제가 끝까지 진지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 미래의 통합적 세계관 제시
이 책에서 샤르댕은 우주의 생성부터 인간의 출현에 이르기까지 진화의 주요한 과정을 명쾌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는 과학적 연구성과에서 출발하여 공정한 관찰자이면 누구든 받아들일 수 있는 세계관과 인간관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과거의 진화의 발걸음으로 인류의 미래를 예측하고 그 발전을 투시하며 이러한 시야 속에 자리잡고 있는 기독교의 위치를 확인했다. 이 작품을 이해하려면 샤르댕이 이 책 속에서 다루고 있는 근본사상 몇 가지를 파악해보아야 한다.
1. 동적 세계관
첫째는 샤르댕이 이 책에서 보이고 있는 사물과 실재를 보는 눈이다. 이 책은 철저하게 우주 실재 전체를 정적으로 보지 않고 동적으로 본다. 동적으로 보되 동양사상의 우주관처럼 순환반복하는 동적 운동으로 보지 않고, 시간이라는 불가역성을 운동 속에 내포해가는 점진적이고 상향적인 진화과정으로 본다. 진화란 시간곡선상의 앞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의 진보가 아니다. 돌연변화, 상태변화, 비약을 내포한 창조적 진화다. 창조가 진화요, 진화가 창조다.
2. 현상학적 접근
둘째는 이 책의 제목이 암시하듯이 인간이라는 생명출현과 오늘의 인류라는 생명종의 지구상의 삶을 다른 모든 현상들처럼 하나의 현상으로 파악하고, 인간역사. 과학문명. 도덕적. 가치체계. 예술. 종교 등을 포함한 인간의 자기 표현을 철저히 분석하고 서술하는 현상학적 접근방법을 쓴다. 그의 과학적 현상학은 유물론적인 발상이나 관념론적인 사고를 동시에 비판적으로 극복하려고 한다.
3. 의식-복잡화 법칙
셋째, 인간현상을 포함한 거대한 우주의 창조적 진화과정을, 하나의 새로운 존재양식과 존재질서, 그리고 생명현상을 생성해가는 '우주창조'라고 보았다. 그런데 거기에는 부정할 수 없는 하나의 '진화법칙'이 있는데, 그것을 '의식-복잡화 법칙'이라고 부른다. 우주진화는 준원자 단계에서 원자단계로, 원자에서 분자, 분자에서 무기물, 유기물, 세포상의 자가번식하는 분자군, 세포, 개별화하는 다세포, 두뇌를 가진 후생동물.. 진화시간의 화살 끝은 인간의 출현에 와 닿고 인간은 더욱 유기체적으로 사회화되어가면서 의식의 심화를 더해간다.
그에 의하면 사물의 내면성은 아직 정신. 인격이 아닌, 말하자면 정신과 인격과 영의 가능성이요, 그 씨앗이다. 사물의 외면성은 물질의 구조이며, 역학관계이다. 그리고 물질. 신체, 자연이다. 그 양자는 상호 상응한다. 복잡화가 가중될수록 내적으로 수렴하는 집중화도 비례하여 심화되어 가고 생명을 수렴하는 자아통전의 힘은 생각하는 힘을 낳고, 의식. 가치. 문화. 예술. 종교의 영성을 실현시킨다. 우주진화는 맹목적인 자연의 구성물질의 이합집산이 아니라, 정신화와 인격화, 그리고 영화의 과정을 지향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4. 진화의 조건
넷째, 그는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서 그리고 보다 높은 생명차원으로 성숙하기 위해서 진보 또는 진화의 조건을 충분히 숙지해야 한다고 본다. 전지구 인간들의 통일성과 융합성에 대한 자각과 비전, 사라와 선 의지, 완전한 협동을 추구하려는 성숙한 자의식, 신앙과 지식이 진리에 대한 두 가지 길임을 인식하는 종교의 개방성 등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지식의 증대와 사랑의 증대는 인류 미래에 중요한 관건이 된다고 본다.
이상이 샤르댕이 자연과학과 사회학. 심리학 등의 전영역과 인간학의 전범위를 종합하여 과학과 신앙, 우주와 신의 화해를 모색한 웅대한 우주관이다. 그의 관심은 그리스도교의 축원이기도 한 "때가 이르면 신을 그 계획을 시행하며,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재결합하리라(에베소서 1:10)"는 것을 인간현상으로서 다루려 했다.
비록 그에 대한 찬반의 평가가 분분하지만, 샤르댕이 그 안에서 인류의 기원을 캐내고 진화의 비밀을 추적하며, 우주 속에 인류의 문명을 묻고 세계진화에서 신의 존재를 찾아 하나의 통합적 비전을 전달하려는 성자다운 기백과 준엄한 학자의 탐구적 생애는 그를 세기적 예언자적 사상가로 부각시키는 데 별 이론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20세기 전반기에 집필된 이 책은 종합적인 세계관을 모색해야 할 필요가 절실하게 느껴지는 오늘날에 이르러 더욱 많은 감흥과 새로운 직관을 제공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