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산 지리산종주 산행일지>를 이메일에서 옮겨 여기에 싣습니다
===========================================================
상산회원 여러분께
지난 6.11-6.14 기간 중 있었던 지리산 종주산행일지를 아래와 같이 보내드립니다. 여러 사정으로
진작 보내지 못하고 늦어진 것을 미안스럽게 생각합니다.
본 일지는 분량관계로 2-3부로 나누어 보내드릴 예정이며 오늘은 우선 완성된 제1부를 먼저 보내
드리고 후속편도 정리가 끝나는 대로 잇달아 올려 놓으려고 합니다. 제가 주로 대열의 맨 뒤쪽에
있었기 때문에 선두나 앞쪽에서 있었던 재미난 일/이야기를 적지 못한 게 있을 것이고 기록된 내용
중에도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함께한 산우들의 기탄없는 지적과 보충을 부탁드립니다
첨부하는 사진중 IMG표시가 있는 것은 명인 촬영분이고 0 또는 1로 시작하는 것은 호경, 그리고
나머지는 필자가 찍은 사진입니다
윤신한 드림 (2011년 06월 29일 12시 59분 33초)
============================================================
상산회 지리산 종주산행 일지 (제1부)
*날짜: 2011.6.11(토)-6.14(화)
*행선지: 지리산 (해발 1,915 미터)
*산행경로: 성삼재-노고단-삼도봉-영신봉-연하천 대피소-장터목대피소-천왕봉-장터목-백무동
*참가인원: 14명
*날씨:6/12(흐림), 6/13(흐림-갬), 6/14(맑음)
여행. 학교에 다닐 때나 지금이나 간다는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 밤차로 원행을 떠날
때면 지금도 잔잔한 고동이 물결처럼 밀려온다. 처음 가는 곳은 물론이고 자주 찾는 곳도 그때마다
느낌이 새로운 것은 그 목적지나 우리들 모두 어제와 같지 않기 때문일 게다.
작년에 백두산 원행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지리산 종주얘기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금년 4월초
회장단이 일정을 6월 12/14일로 잡고 참가신청을 받아 4월 말에 인원을 확정한 다음 구체적인 원정
계획수립에 들어갔다. 이번 참가자는 모두 14명(강병서, 권중배, 김상희, 김한주, 김호경, 박세훈,
엄형섭, 윤건수, 윤용국, 이명인, 이정우, 이종원, 한택수, 윤신한)이다.
이번에도 산에서 이틀 밤을 자야 하기 때문에, 모든 장기등반이 그렇듯이 숙소예약이 원행 성공의
관건이었다. 그래서 회장단 등 몇 명이 5월 중순 여의도에서 만나 논의한 끝에 여럿이 <벌떼작전>을
펴기로 하고 5-6명으로 예약조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예약날인 4/27(토)과 4/28(일) 아침10시
우리는 연하천/장터목 대피소에 성공적으로 예약을 마쳤다.
숙소가 정해지자 호경이 취사장비 및 먹거리를 각자에게 배정하고 교통편을 예약하는 것으로 모든
준비가 끝났다. (필자가 지면관계로 한 줄로 <준비가 끝났다고> 쓰고는 있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자질구레한 일을 일일이 직접 해냈을 그의 수고를 생각하면 그저 민망스럽다). 6월11일(일) 저녁10시에
용산역에서 만나 10:45에 구례로 출발하는 기차편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마침내 출발하는 날이 되었다. 가져갈 물품을 꺼내놓고 오랜만에 큰 짐을 꾸리는 재미를 느껴본다.
코펠과 버너, 먹을 것과 옷가지 등을 넣고 보니 제법 무겁기는 하지만 어깨를 지긋이 눌러오는 배낭의
무게가 오히려 편안한 느낌을 준다. 필자는 이번에 참가신청을 한 후 다른 일이 생겨 거의 올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막판에 극적으로 합류할 수 있게 되어 만감이 교차한다. 아직 좀 시간이 남았는데 그냥
기다리기가 뭣해서 일찍 집을 나섰다. 10시가 되기 전에 용산역 대합실에 11명이 모두 도착하였다.
중배, 상희, 형섭은 낮에 구례로 미리 내려갔다고 한다.
<IMG 1248/49 용산역 대합실>
10:45 우리를 태운 기차는 정시에 남쪽으로 출발했다. 밤기차 여행- 참으로 오랜만이다.
2 학년 때 정우-택수 등 상대 지리산 원행팀과 함께 서울역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10시간이나 걸려
구례로 내려가던 생각이 난다. 방금 전 일을 깜박하면서도 오래된 일은 어찌 이리 생생하게 기억이
날까? 열차바퀴가 레일의 이음새를 지날 적마다 딸그닥 딸그닥 하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온다.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던 일행은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하나 둘 꿈나라로 들어가고 있다.
<5025/26 구례로 내려가는 기차안>
*********************
제1일: 2011.6.12(일)
잠깐 잠이 들었었나 보다. 눈을 뜨니 새벽 3시다. 곧 구례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있었고 조금 후
열차가 역 구내로 들어섰다. 차에서 내리니 약간 썰렁한 아침 공기가 소매 안으로 들어온다(03:25).
아직은 날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지만 굳이 보지 않아도 나지막할 건물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005/ 구례구역>
역사 마당으로 나오는데 누군가 우리들에게 손을 내민다. 한발 먼저 내려온 중배, 상희 그리고 형섭이다.
어제 오후에 내려와 이곳에서 눈을 붙이고 우리들의 도착시간에 맞춰 마중하러 나온 것이다.
<006 / 새벽참>
일행은 세 사람의 안내로 바로 역 앞에 있는 식당에서 새벽참인지 아침인지 식사를 했다.
시간이 너무 일러서 모두들 입맛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긴 행군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하나같이
잘들 먹었다. 점심에 먹을 김밥을 주문한 후 5대의 택시에 나누어 타고 성삼재(해발 1,090미터)로 올라
가니 아직 5시가 안 되었다.
지금쯤이면 하늘에서 별이 쏟아질 시간인데 오늘은 날이 흐린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긴 오늘
아침까지 남쪽에는 제법 많은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으니 이 정도만 해도 고마운 일이다. 전원이
차에서 내린 것을 확인하고 아까 주문한 김밥을 나눠준 후 일행은 성삼재를 출발했다 (05:00). 택수를
비롯한 몇 사람이 선두에 서고 호경/종원 등이 중간에, 그리고 필자와 세훈이 맨 뒤에서 걷기로 했다.
길이 어둡긴 하지만 손전등을 비추지 않아도 걸을 만하다. 선두는 저 만큼 앞으로 나갔고 세훈과 필자
두 사람이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도로 경계석 안쪽을 따라 걸어간다. 지팡이의 끝이 길바닥에 부딪힐 때
마다 나는 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가른다. 우리에게 아주 미세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음의 귀가 있다면
저 어둠 속에서 우렁찬 자연의 합창이 들려올 것만 같다.
길가 양 옆으로 무언가 희끗희끗한 것이 보인다. 사진기의 플래시 빛으로 살펴보니 층층나무들이 무리를
이루어 흰 꽃을 소담하게 피우고 있다. 날이 밝으면 온 산이 허옇게 장관을 이루겠다. 30분쯤 걷고 나니
날이 훤하게 밝아온다. 성삼재 1.5Km라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6시가 조금 못되어 노고단
대피소(해발 1,255미터)에 도착했다. 오늘은 연하천대피소까지 가기로 되어 있는데 예서부터 그곳까지는
10.9Km로 나와 있다.
06:15 노고단 고개(해발 1,400미터)에 도착했다.
<5048 /노고단 고개>
여기는 높은 지대에 형성된 평원, 바로 고원으로 키가 작은 관목이 땅을 뒤덮고 있다. 뒤에 보이는 봉우리가
노고단(해발 1,507미터)이다.
북서쪽으로는 반야봉(1,732미터)이 여인의 엉덩이 같은 요염한 모습으로 높이 솟아 있다.
<5047 /반야봉>
노고단은 등산로에서 남쪽으로 약간 벗어나 있는데 여기서부터 거리는 왕복 1.4Km이다.
우리는 노고단에 들르지 않고 그 봉우리를 배경으로 기념사진만 찍고는 가던 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06:35). 아침은 이미 밝았지만 하늘은 여전히 흐린 그대로이다. 그래도 비는 올 것 같지 않으니 다행스럽다.
<5054/ 나무 터널길>
고도가 낮아지면서 길은 다시 울창한 삼림 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우리는 끝없는 길을 따라가는대상(隊商)이 된다.
날이 환해지니 지리산의 자랑거리인 갖가지 들꽃이 제각기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흰 철쭉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붉은병꽃이 어느 산의 그것보다 더 선명하다
<5066 /노린재나무 꽃>
이번에는 흰 꽃들이 특히 많이 보인다.
<5059 /잠깐 쉬면서>
그런 길을 40-50분 가량 걸은 뒤 하늘이 열리면서 일행은 숲의 터널 밖으로 나왔다.
뒤돌아보니 지나온 노고단이 정면으로 보인다.
그 자리에서 잠시 숨을 돌린 뒤 다시 30분 뒤에는 노고단 고개를 2Km 지난 헬리포트에 도착했다(07:45).
<5076 /피아골 삼거리 근처 헬리포트>
반야봉이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바라보인다.
선두와 간격이 벌어졌는지 임걸령에 도착한 일행으로부터 궁금해하는 전화가 걸려온다. 논의한 끝에
선두는 계속 전진하여 반야봉을 들리기로 하고 뒤에 남은 7-8명은 나중에 노루목 근처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필자는 지리산에 몇 번 왔었지만 반야봉은 늘 그냥 지나치곤 했다. 그래서 뒤의 일행이 쉬는 사이에
양해를 구하고 계속 전진하여 선두와 함께 반야봉을 오르기로 했다(08:00).
숲속을 혼자 걸어가는데 나무들 사이로 하늘이 열렸다. 구름이 끼어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한데
남쪽으로 높고 낮은 봉우리들이 이리저리 포개어져 환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5077 <봉(峯)자의 기원>
아마도 봉(峯)자의 원형이 바로 저것일 게다. 자연은 저처럼 완벽한 모습으로 스스로를 연출한다.
08:18 피아골 삼거리를 지났다. 지리산 종주산행 도중 위급한 일이 생길 경우 이용할 수 있는 첫 번째 탈출로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임꺽정이 드나들었다는 임걸령(08:25)을 통과했다.
<5081/임걸령>
09:00가 조금 못 되어 노루목 (해발 1,498미터)에서 쉬고 있는 선두를 만나 한주, 명인, 정우와 함께 1Km
떨어진 반야봉으로 올라갔다.
배낭을 맡기고 맨 몸으로 올라서 그런지 네 사람은 약 40분 뒤 반야봉(1,732미터)에 도착했다(09:37).
<5100/5104 반야봉>
반야봉은 높이로만 보면 천왕봉(1,915)을 비롯하여 중봉(1,875), 제석봉(1,806) 그리고 하봉(1,781)
다음으로 지리산의 제5봉이다. 하지만, 그 높이에 관계없이 지리산의 엄연한 제2봉으로 불리며
그 아름다운 모습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오늘 올라와보니 밑에서 바라보이던 둥그런 곡선은 찾을 길 없고 부서진 바위조각이 널려있어
일시에 환상이 깨어지는 기분이다. 예까지 가파른 길을 올라오느라고 힘이 들기도 했겠지만 4사람의
얼굴에 실망(?)한 기운이 역력하다.
<5103/ 에이~ 그게 아니네>
이래서 선인들이 대상을 너무 끝까지 알려 하지 말라고 충고한 것일까?
이곳에 아직 만발한 진달래와 이제 흐드러지기 시작하는 철쭉이 그런 우리의 마음을 달래준다.
<5110/철쭉>
하산하면 친구들에게 이곳 꽃들의 아름다움을 알려 주어야겠다.
반야봉을 거의 다 내려왔을 무렵 밑에서 올라오던 세훈과 중배(?)를 만났다. 우리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은 옆길로 빠져 먼저 삼도봉으로 내려갔다. 노루목으로 내려오니 후미도 이미 도착해있다 (10:00).
합류한 일행은 1 Km 떨어진 삼도봉(1,550미터)으로 향했다.
<5120/23 삼도봉>
이 봉우리는 전북, 전남 및 경남의 3도가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3각뿔 모양으로 된 표지가 설치되어 있다.
노고단에서 5.5Km를 왔으니 오늘의 목적지인 연하천 대피소는 이제 5Km남짓 남았다. 지금 시간이 10:40
이니 이대로 가면 오후 1-2시면 점심을 숙소에 도착할 판이다. 이제 반야봉은 구름에 싸여 더 이상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서두를 게 없는 우리는 삼도봉을 조금 지난 지점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호경이 점심 먹고 가자고 하니까
S가 반색(?)하며 서울로? 하고 되묻는다. 아마 예까지 오는데 힘들었나 보다. 산행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은
뭐니뭐니해도 식사시간이다. 여러 시간을 걸으면서 땀을 흘리고 나면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이 꿀맛일 수
밖에 없다. 각자 싸온 도시락과 아침에 산 김밥을 먹고 난 일행은 그 자리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039/043/ IMG1265 식사후 낮잠>
필자도 눕자마자 바로 잠이 들어 30여분을 푹 자고 나니 몸이 가뿐하다. 12:00가 조금 못되어 그 자리를 출발했다.
12:30 무렵 뱀사골로 빠지는 삼거리를 통과했다.
<046 뱀사골 삼거리>
<5142 화개재 표지판>
이곳은 화개재인데 예전에는 여기에 장이 서서 경남의 소금, 해산물과 전북의 삼베, 산나물을
교환했다고 한다. 뱀사골은 피아골에 이어 두 번째 탈출로로 이용된다.
중간에서 앉아 쉬는데 이야기 끝에 H가 한 마디 한다. 요즈음 나이 먹고 힘빠지니 부부가 사는 게
남녀간보다는 <인류애(人類愛)적> 관계로 살아간다고….. 멀리 남쪽 하늘이 조금씩 벗어지고 있다.
<5149 /구름이 올라가는 곳>
서 있다. 이제 연하천 대피소가 멀지 않았는데 등산로는 능선과 계곡을 오르내리며 좀처럼 거리를 줄여주지
않는다. 딱딱한 돌길에 점점 무릎관절이 시큼시큼하다는 몇몇 대원들의 얼굴에 피로한 기색이 보인다.
그렇게 1시간 가량 걸어 토끼봉(1,534미터)에 닿으니 연하천 대피소까지 2.4Km 남았다 (13:40).
<5155/토끼봉>
토끼봉에는 물이 없다. 일부 대원들의 물통이 바닥을 드러내었다. 다행히 이제부터는 내려가는
길이고 오르막길은 그리 많지 않다. 혹시 선두그룹에 물이 남아 있을까 하고 발걸음을 조금 빨리
하여 앞으로 나가본다.
선두는 이미 상당히 앞서 갔는지 뒤끝도 보이지 않는다. 이곳에도 흰 꽃들이 많이 보인다. 잘 생긴
노각나무도 보인다. 이정표에 1.4Km가 남았다고 한 게 30분도 넘었는데 200미터밖에 줄지 않았다.
그렇게 앞만 보고 걷다 보니 연하천대피소(1,586미터)로 내려가는 나무계단이 보인다. 대피소 마당
으로 내려서니(15:40) 선두와 함께 내려온 정우가 취사도구를 꺼내놓고 준비를 하고 있다.
선두는 15:20에 도착했다고 한다.
<5165/먼저 도착하여 식사 준비>
필자도 버너와 코펠을 꺼내어 함께 저녁준비를 시작했다. 찌개 등 반찬은 Chef인 정우의 전문분야이니
필자는 밥만 잘 지으면 된다. 뒤에 오는 산우들에게 물을 떠다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후미
전원이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다 (16:00). 이것으로 오늘의 행군은 모두 끝이 났다.
<IMG1268 /이게 뭐지?> <연하천 대피소의 식사>
종원과 호경이 숙소를 배정받는 사이, 우리가 자리잡은 벤치에서는 이른 저녁상을 차렸다. 문제는
밥이었는데 표고가 1,500미터를 넘다 보니 기압이 낮아 밥의 윗부분은 설고 아래는 타서 2층밥이
되고 말았다. 예전에 산에서 배웠던 요령이 이런 때 조금 도움이 되었다.
<050/ 탄 밥에 소주를 붓다>
호경이 피처럼 아끼는 소주를 1잔 달래서 밥에 부어 탄 냄새를 없앤 다음 코펠을 밥이 담긴 채로
뒤집어 놓고 기다렸더니 제대로 뜸이 들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정우가 준비한 찌개와 각자 가져온
밑반찬을 곁들여 먹는 저녁은 거기에 시장하기까지 했으니 맛이 있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었을 게다.
저녁을 먹고 나니 달리 할 일이 없어 마당을 서성이기도 하고 몇몇 사람은 어둠이 내리는 숲속으로
산책을 가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첫날이라 피곤했는지 모두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20:30).
*********************
제1일: 2011.6.12(일)
(다음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