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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 여름 산행기(제 2연화봉 대피소 1박 산행)
일 년 만에 다시 찾은 소백산
하루에도 다녀올 수 있는 길을 굳이
제2연화봉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한 것은
제2연화봉에서 저녁 해를 배웅하고
그믐밤 하늘의 별 빛으로 눈을 씻고
비로봉으로 솟아오르는 붉은 해를 마중하고
연화봉에서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평화로운 긴 능선길을 실컷 걷기 위함이다
죽령휴게소에 차를 홀로 두고
죽령탐방안내소를 지나
제2연화봉 대피소로 향한다
초입의 평탄한 포장길을 걷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
무심한 주인을 밤새워 기다릴 자동차에 대한 미안함
인적없는 길의 호젓함을 즐기려는 순간
여름 한낮의 열기와 내리쬐는 오후의 햇살에 땀으로 흥건히 젖는다
힘들다 싶을 때쯤 나타난 나무 그늘과 때마침 불어오는 산바람이 땀을 식혀주나 잠깐뿐
땡볕 오르막길을 걷다 나무 그늘에서 쉬다를 반복한다
더위 탓인지 길게만 느껴지는 제2연화봉 가는 길,
모처럼 동행인 아이는 힘들다면서도 곧잘 오른다
이윽고 도착한 제2연화봉 대피소,
차가운 바람과 시원한 전망이 반겨주고
저 멀리에는 내일 만날 연화봉과 비로봉이 그 의연한 자태를 뽐낸다
이른 저녁밥을 먹고 바람막이를 걸치고도 추위에 떨며 해넘이를 기다린다 이윽고
구름이 걷히면서 빨간 둥근 해가 나타나서 천천히 내려가다
산머리에 걸리더니 미련 갖는 것이 두려운지 갑자기 빠르게 떨어진다
대지를 달구느라 지친 해는 서산 아래로 완전히 잠기고
서쪽 하늘은 혁명을 꿈꾸는 전사의 가슴처럼 붉게 타오르고
붉은 노을 아래 안개에 덮힌 산 그리메는 한폭의 수묵화다
바쁠 것 없는 그믐달은 아직 떠오를 생각조차 않고
하나 둘 나타나는 별들이 사위어가는 붉은 노을 자락과 임무교대를 하다 이내
어두운 밤하늘을 밝히는 수 많은 별들이 제 자리를 지킨다
차가운 밤바람에 소백산의 여름밤은 깊어만 가고
소백산으로 솟아오를 해를 마중하기 위한 새벽 기상
나뭇닢은 새벽 찬바람에 이슬을 털고
여명에 깨어난 작은 새들은 서로 밤새 안녕을 묻고
부지런한 산객들은 어제 배웅한 해를 기다린다
그 많던 별들은 자리를 비우고 하늘에는 창백한 그믐달만 외로이 떠 있다
첩첩인 산골짜기에는 흰 구름이 피어오르고 동쪽 하늘이 점점 붉어온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빨간 머리를 내미는 아침 해
소백산의 밤새 안부가 궁금한지 빠르게 솟아오르고
차갑게 식었던 소백산은 아침 햇살에 순식간에 데워진다
제2연화봉에서 연화봉으로 가는 길
발아래 산봉우리들은 운해에 뜬 섬들이 되었다
불면으로 하얗게 지샌 지난 밤의 여운인지
가파르지도 않은 길이 힘들게 느껴진다
소백산 천문대 앞을 지나며
대학 1학년을 끝내며 전공을 선택할 때
천문학과냐 수학과냐를 두고 고민하던 때가 떠올라
하마터면 내가 여기서 근무했을 수도 있었다는 객쩍은 생각을 하며 오른 연화봉
일망무제
장엄하게 펼쳐진 초록 바다 저 멀리 비로봉이 보이고
그 위 깊고 푸른 하늘엔 유장하게 흐르는 흰 구름
하얀 눈꽃 없는 소백산, 연분홍 철쭉 없는 소백산도
소백산의 그 장엄함과 그 아름다움을 감출 수는 없어
찡그린 얼굴도 서시의 경국지색을 감추지 못하듯
연화봉에서 제1연화봉을 거쳐 비로봉으로 가는 능선길
깊은 숲속 길을 오르내린다
산나리꽃은 그 붉은 입술로 산객을 환영하고 이름 모를 야생화들은 수줍은 미소로 산객을 반긴다
가파른 나무 데크 길을 오르면 제1연화봉이 나타나고 이어서 천동삼거리로 이어지는 평탄한 길
언제라도 하이디가 요들송을 부르며 나타나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길의 끝이 비로봉이다
길은 평화롭고 바람은 시원하고 야생화는 아름답고 구름은 가끔씩 한여름 낮의 해를 가려주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길
아끼듯 가다 돌아보고 가다 돌아보며 천천히 걸어 도착한 정상, 비로봉
인증샷을 빠트릴 수야 없지
인증샷을 마치고 도시락으로 허기를 채운 후
그냥 내려가려니 아쉬운 마음에 국망봉으로 이어지는
그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능선길을 걷는다
비로봉에서 삼가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른 나무 계단으로 시작하나
키 큰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서 힘들진 않다
지루하게 내려가다 만난 계곡물로 얼굴을 씻고
힘내어 도착한 달밭골, 아이스크림과 음료를 파는 가게가 보인다
반가운 김에 나는 맥주 한 캔을, 아이에게는 아이스크림을 사주려고 문을 여는 순간의 그 실망감
가게는 닫혀 있다
하는 수 없이 계곡 물소리를 따라 걸어 삼가캠핑장에서
이온 음료로 갈증을 달랜 후 택시로 죽령휴게소로 이동한다
죽령휴게소에서 하루 꼬박 홀로 주인을 기다린 자동차와 긴 여정을 마무리한다
2022년 7월 26일
첫댓글 수학선생님 인줄 알았더니 국어선생님이시네 ^*
제가 보기에는 엉터리 글인데 예술하시는 분이 칭찬하시니 맞는 것 같기도 해서 갑자기 헷갈립니다
감사합니다
@조희수 ㅋ 저는 예술가 까진 아니고 쟁이 … 그냥 사진쟁이 입니다 ㅎ
@Youcine감독 사진찍는 일을 즐기는 사진쟁이가 예술가지요
유감독님이 사람들 사진 찍어줄 때 행북해하고 즐거워하는 그 모습을 보았지요
감독님
너무 멋진 분을 영화처럼에 모셨네요
함께함을 감사드립니다
멋진분이 바로 앞집에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