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8복)의 원리적 이해 (마 5: 3-12)
지금까지 간략하게나마 산상수훈의 8복을 살펴봤습니다.
실로 이는 예수님의 최고의 설교답게 우리 타락한 인간이 본성을 회복해 가는 과정을 너무나 잘 일깨워주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먼저 그 구성을 잘 살펴보면 소생, 장성, 완성이라는 원리적인 3단계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소생급
자신의 문제, 자아의 깨달음, 개성완성
소생 - 심령이 가난한 자= 천국을 소유하는 자(진리를 깨달음으로 인해 천국을 누림)
장성 - 애통하는 자 = 심령의 위로를 받음
완성 - 온유하는 자 = 땅을 기업으로 받음
장성급
관계성 문제, 관계성 완성, 하나님과의 관계(하나님의 심정 체휼)
소생 - 의에 주린 자 = 심령이 은혜스러움(심령이 천국)
장성 - 긍휼히 여기는 자 = 긍휼히 여김을 받음
완성 - 마음이 청결한 자 = 하나님을 만남
완성급
관계 속의 문제, 확대된 관계성 완성, 하나님 대신 사는 삶
소생 - 사랑에 갈급하는 자 = 천국(하나님왕국=천일국)을 창건할 자(임의 추가 함)
장성 - 화평케 하는 자 =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 대신자
완성 -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 = 천국(하나님왕국, 천일국)을 일구는 하나님의 효자요 주인이요 종족왕임.
예수님은 산상설교를 통해 타락한 인간이 타락성을 벗고 본성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하나님왕국=천일국)을 건설하기까지 과정을 말씀하셨다고 봅니다.
먼저 심령의 양식, 즉 진리에 대한 갈급함이 없는 자는 진리를 만날 수 없고 깨우칠 수가 없습니다.
진리에 대한 갈망이 있는 자가 진리를 찾고 깨우치게 될 때 기쁨과 감사함으로 그 귀함도 압니다.
이렇게 진리를 깨우친 자는 타락으로 자신이 죄악 가운데 찌들어 있는 모순된 자임을 깨달았을 때 애통할 수밖에 없겠지요.
스스로가 가장 큰 죄인임을 깨닫고 하늘 앞에 통곡하고 자복하며 회개하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이러한 자가 주변을 바라보게 될 때 아무도 정죄할 자가 없고 정죄할 자는 오직 자신뿐 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 자연히 온유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듯 진리를 깨닫고 심령이 겸손한 자가 되었을 때 본성을 회복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하셨습니다. 원리적 용어로 복귀의 기대(개성 완성한 인간)가 조성됐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복귀의 기대를 쌓은 자가 탕감복귀의 길을 출발합니다.
바로 의에 주린 자입니다. 자신의 염려와 걱정을 넘어서서 상대(다른 타락한 인간)를 걱정하고 염려합니다.
더 나아가 사랑할 수 없었던 자들까지 불쌍히 여기며 사랑할 만큼 성숙된 모습이 되었습니다.
이는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처럼 긍휼의 심령을 가지니 그 눈에 하나님이 보일 수 밖에요.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고 체휼하게 되었다는 뜻이겠죠.
이를 두고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라고 했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고 체휼한 자가 가야 할 길은 어디겠습니까?
당연히 하나님 대신 화목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갈 수밖에요. 하나님의 심정과 사랑을 품고 하나님 대신 구원의 길을 나섭니다.
모두 한 분 하나님의 자녀인 인간들이 타락으로 서로 원수시 하며 반목하는 모습을 보고 참으려야 참을 수 없는 심정의 충동에 의해 그들의 화목을 위해 십자가를 집니다.
그러나 그의 뜻을 모르는 타락한 인간들은 그들의 아집과 교만으로 이러한 의인을 무시하고 핍박하게 됩니다.
하지만 의인은 자신을 핍박하는 자들에 대해 지난날 자신이 하늘 앞에 지은 죄를 탕감시켜주는 자들임을 알기에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끊임없이 그들을 찾아 나섭니다.
이러한 자가 곧 하나님의 아들이요, 천국을 건설할 천국의 주인 아니겠습니까?
이렇듯 산상수훈은 천국을 소유할 자로 시작하여 어떤 과정을 통하여 천국을 완전히 소유하는 주인이 되는지 잘 일깨워주는 예수님의 최고의 가르침이요, 복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타락인간이 이렇게 8단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복귀될 수 있음을 함축하여 말씀해주신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재림주님 말씀과 대별해 볼 때 크게 다른 점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가정을 중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원리에서 주지하신 바와 같이 예수님 말씀의 한계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개성 완성(1, 2, 3 복)에 대한 말씀은 재림주님 말씀과 일치하지만 어디를 봐도 가정 완성에 대한 복음의 말씀은 없습니다.
개성 완성한 인간이 바로 사회 속으로 들어가 천국을 이루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재림주님이 주신 가정맹세와 대비해 보시면 차원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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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제 개인적인 견해로 산상수훈은 8복이 아니라 9복이 되어야 원리적으로 더 합당하다고 여깁니다.
단계별 복을 달리 배열해보겠습니다.
1복: 심령이 가난한 자 4복: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추가: 사랑에 갈급한 자)
2복: 애통하는 자 5복: 긍휼히 여기는 자 7복: 화평케 하는 자
3복: 온유한 자 6복: 마음이 청결한 자 8복: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
이렇게 배열을 하고 보니 1복과 4복이 같은 맥락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나 주리고 목마른 자는 같은 맥락이잖습니까. 두 복 모두 갈급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애통하는 자(2복), 긍휼히 여기는 자(5복)와 화평케 하는 자(7복)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물론 애통하는 자는 자신을 놓고, 긍휼히 여기는 자는 상대를 놓고, 화평케 하는 자는 더 넓은 범위로 확대되었지만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온유한 자, 마음이 청결한 자와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도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여기서도 당연히 급은 높아져 갑니다. 온유한 자는 자신 속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나와 상대와의 관계,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는 더 넓은 관계로 영역이 넓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분석을 해보니 한 복이 모자랍니다.
그래서 저는 그 한 복을 채워봤습니다.
'사랑에 갈급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천국을 이룰 것이다'라고.
심령이 가난한 자도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도 갈급해하는 심령 상태를 말했습니다. 그래서 완성급에도 사랑에 갈급해하는 복을 추가했습니다. 이럼으로써소생 3복, 장성 3복, 완성 3복, 3단계 9복으로 원리형을 완성시켜봤습니다.
이렇게 하고 8복의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라는 것은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천국의 주인이 될 것이다'라고 하면 더 좋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