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名山)에 대찰(大刹)'이라고 했던가. 영남알프스에는 그 넓고 깊은 자락에 어울릴 만큼이나 이름난 천년고찰들이 즐비하다. 그 가운데 특히 양산 통도사, 밀양 표충사, 청도 운문사는 영남알프스를 대표하는 3대 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이 이번 주에 걷게 되는 제7코스는 이 가운데 하나인 청도 운문사(雲門寺)를 찾아가는 길이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원들이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양바위 앞 운문천을 건너고 있다. 왼쪽의 암봉은 복호산이다. 운문사 가는 길은 높낮이 없는 쉬운 길 . 그래서 한껏 여유를 부리며 갈 수 있다.
'운문사'라는 이름이 전해주는 '울림'은 결코 간단치 않다. 한 신승이 진흥왕 21년(560년) 대작갑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이 절은 원광법사, 보양국사, 원응국사, 일연 스님 등 우리 역사에 커다란 자취을 남긴 스님들이 머물렀던 곳이다. 또 현재는 국내 최대의 비구니 승가대학이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200여 명의 비구니 학인스님들이 부처님의 법과 진리를 터득하고, 나아가 계도중생의 뜻을 펼치기 위해 일과 공부를 구분짓지 않고 조용히 용맹정진하고 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 교수(전 문화재청장)는 "운문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비구니 학인스님들이다"라고 했다. 오늘날 운문사의 가장 큰 자랑거리로 손꼽히는 것도 바로 이 학인스님들의 새벽 예불 광경이다. 수백 명 스님들이 함께 새벽을 여는 낭랑한 염불소리와 절제된 행동은 '더할 것 없는 경건함' '모자랄 것 없는 장엄함'의 극치다. 그 외에도 운문사가 주는 '울림'은 수없이 많다. 그래서 가슴 떨리는 길이다.
운문사로 가는 제7코스는 평지에 자리 잡은 대가람을 찾아가는 길답게 줄곧 평편하고 쉬운 길이다. 그래도 어쩐지 중간에 실컷 딴청도 부려 보면서 최대한 느리게 걸어보고 싶어지는 길이기도 하다. 급하게 운문사로 가면 정갈하고 평온한 절집의 분위기를 망칠 것 같아서일까.
길을 걷는다는 것은 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 많이 느리지만 그만큼 꼼꼼하게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걷는 길은 그 길이 내뿜는 숨소리를 들으며 가는 '호흡의 길'이요 비로소 '길과 하나 되는 길'이다.
출발지는 제6코스 종착지였던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삼계리마을 칠성가든 앞이다. 배너미계곡 중간에 숨어 있는 나선폭포의 웅장한 모습을 보고 출발지로 되돌아온 후 운문사로 향하게 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코스를 살펴보면 칠성가든~천문사 입구~나선폭포~천문사 입구~성황당~수리덤계곡 입구~통점마을 당산나무~신원 삼거리~방지초등 문명분교 3·18독립운동기념관~양(용)바위~신원 삼거리~운문사 버스터미널~솔바람길~운문사 순이다. 총 길이 14㎞에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 휴식 등을 포함하면 5시간 정도 걸린다.
배너미계곡 기슭에 자리 잡은 나선폭포의 위용.
칠성가든 앞에서 북쪽에 보이는 천문사(天門寺) 입석을 보고 천문사로 향한다. 천문사 방향으로 가면 눈앞에 우뚝 솟은 2개의 뾰족한 암봉이 보이는데 바로 쌍두봉이다. 천문사 일주문 못 미쳐서 '등산로' 표시를 따른다. 잠시 후 하천을 건너지 말고 왼쪽으로 진행하면 천문사 후문이다. 중수 공사가 한창인 천문사를 일별한 후 다시 나와서 왼쪽을 보면 담장 옆으로 길이 보인다. 곧바로 쌍두봉 등산로 갈림길이다. 오른쪽 길을 택해 배너미계곡을 거슬러 오른다. 임도처럼 넓은 계곡길이 호젓하다. 15분쯤 가면 작은 돌무더기가 서너 개 있는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직진하면 배너미재를 넘어 학소대계곡 학심이골 등으로 갈 수 있지만 나선폭포는 오른쪽 길로 5분가량 올라야 있다.
단일 폭포의 높이로만 따지면 영남알프스의 수많은 폭포 가운데 세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나선폭포는 높이 40m가 넘는 직벽 폭포다. 아직까지 고드름이 폭포에 매달려 있어 이곳은 여전히 겨울이라고 강변하는 듯하다. 2002년 이후 영남 지역의 대표적인 자연 빙벽훈련장으로도 자리매김하고 있다.
◇ 신원천 끼고 도는 낮고 평편한 길에서 여유 만끽
운문사 들머리 마을인 신원리 본동의 흙벽돌 골목길.
다시 천문사 입구 69번 지방도로까지 돌아오는 데는 20분 정도 걸린다. 사실 제7코스는 나선폭포 왕복 구간을 제외하면 운문사 입구까지 대부분의 구간이 아스팔트 도로를 따르게 된다.
69번 지방도를 타고 청도 운문사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수리덤계곡 입구를 지나 10분쯤 가면 왼쪽 산자락에 이름 없는 바위가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3분 후 왼쪽에 알프스펜션이 보이는데 그 앞 신원천 풍경이 빼어나다. 너럭바위와 이름 없는 소(沼)가 사이좋게 어우러져 있다. 수정처럼 맑고 투명한 물은 걷는 이의 가슴 속까지 청량감을 전해준다. 차를 타고 가면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을 풍경이다. 운문면 사무소와 삼계리마을 주민이 봄철 환경정화운동을 펼치며 상춘객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삼계리마을에서 통점마을로 가다가 만난 신원천의 맑은 무명소.
통점마을 회관 앞까지는 15분 정도 걸리는데, 마을 회관 맞은편 목향공방 뒤편에 수백 년 된 키 큰 소나무 예닐곱 그루가 보인다. 18세 때 시집 와서 평생을 살았다는 한 70대 할머니는 "우리 동네 최고 어른"이라며 당산나무를 가리킨다. 그는 또 "이 동네는 아무리 땅을 파도 물이 나오지 않아. 그래서 신원천 물로 생활을 했지. 우물이 없는 마을인 셈이지"라며 마을의 특징을 설명해 준다.
당산나무를 가까이서 본 후 다시 주 도로를 따라가면 왼쪽에 웅장한 암봉이 보인다.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듯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복호산(伏虎山)이다. 차도 우측에 잔디가 곱다. 느릿하게 걷기에는 딱이다. 운문사와 청도읍 방향으로 갈리는 신원삼거리까지는 통점마을에서 25분 걸린다. 운문사는 왼쪽으로 2㎞ 정도 가야 하지만 일단 오른쪽으로 간다. 방지초등 문명분교에 있는 '운문면 3·18독립운동 기념관'에 들르기 위해서다. 1919년3월18일 청도 최초의 현대식 사립학교인 문명학교(현 문명분교) 교직원과 학생, 졸업생들이 주도해서 펼친 청도 운문면 일대 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해 세운 시설이다. 평소 문은 잠겨 있지만 학교 측에 요청하면 기꺼이 문을 열어준다.
◇ 포근한 신원리 흙담 골목 지나 옛 양반 놀이터도 구경
운문사 매표소를 지나면 이 절의 명물인 '솔바람길' 속으로 빨려든다.
기념관을 둘러본 후, 잠시 학생 수 8명뿐인 시골학교 교정에서 우뚝한 복호산을 바라본다. 신선봉으로 불리기도 했던 복호산의 모습이 참으로 웅장하다. 1908년 문명보통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한 이 유서 깊은 학교에 다닌 모든 학생들도 저 웅장한 암봉을 보면서 큰 뜻을 품었으리라.
교문에서 도로를 건너 마을회관 왼쪽 골목길로 들어선 후 '용바우 민박' 표지판이 가리키는 쪽으로 따라가 본다. 흙을 구워 만든 붉은색 흙벽돌과 황토를 적절히 섞어 쌓은 흙돌담길이 전통있는 향촌의 풍모를 자아낸다. 골목 끝 운문천 변에서 건너편 물가 왼쪽 바위가 양반들이 소풍놀이를 즐겼다고 해서 양바위, 또는 용을 닮았다고 해서 용바위로 불리는 바위다. 주변 또 다른 바위에 뿌리내린 소나무가 유난히 눈에 띈다. 차를 타고 운문사를 찾을 때는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절경이다.
다시 골목길을 돌아 나와 신원삼거리에서 복호산 등산로 입구 무덤 아래 불망비(不忘碑)를 보고 운문사로 향한다. 두 그루의 낙락장송을 지나는 데 멀리 정면에는 억산 깨진바위가 눈에 확 들어온다. 주변에 미나리 재배 하우스가 많다. 운문사 버스터미널에서 좀 더 가면 매표소다. 입장료 2000원을 내고 매표소를 통과하면 그 유명한 운문사 송림이 반겨준다. 차도 오른쪽으로 '솔바람길'이라는 이름을 가진 오솔길이 나 있다. 300~400년 된 소나무 수천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사이로 오른쪽 호거대를 타고 넘어온 봄바람이 싱그럽다. 잠시 휴대전화를 꺼 놓아야 할 것 같은 길이다.
◇ 전국적 명성의 운문사 '솔바람길'에도 봄기운 성큼
운문사 극락교와 이목소(離目沼).
솔바람길을 따라 걸으면 어느새 운문사 절 직전 주차장에 닿는다. '호거산 운문사(虎距山 雲門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범종루까지 가는 길 오른쪽은 높지도 낮지도 않아 더욱 정갈한 느낌이 드는 돌담, 왼쪽에는 비구니 학인스님들이 농사짓는 텃밭이다. 길 양옆으로 벚나무가 도열해 있다. 4월 중순이면 소리 없이 핀 벚꽃이 꽃비를 휘뿌릴 것이다. 그런데 이 돌담은 1980년대 초반 비구니학인스님들이 계곡에서 주워 온 돌을 골라서 쌓은 담장으로 알려져 있다. '하루라도 일하지 않으면 먹어서도 안된다'는 가르침을 실천하는 운문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쏟은 땀과 정성이 깃든 담장이다.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 집필을 시작했다는 이 절 범종루를 통과하면 500년 넘은 반송(盤松·천연기념물 제180호)이 우선 반겨준다. 매년 봄 가을로 막걸리 25말을 마신다는 유명한 처진소나무다. 삼월삼짇날(음력 3월3일)에 막걸리 드리는 행사를 볼 수 있다. 7개의 국가지정 보물을 간직하고 있기도 한 절인 탓에 순례객들이 간과한 채 잘 못 보고 지나가는 곳이 있다. 비로전 (오래 된 대웅보전) 서쪽 계곡을 가로지르는 극락교와 그 아래 웅덩이인 이목소다. 사실 운문사에서 무언가를 보겠다는 마음은 욕심이다. 그저 호젓한 분위기에 젖어 본다는 느낌이면 그만이다. 일반인은 건널 수 없는 극락교와 그 아래 이목소는 운문사의 분위기를 만끽하기에 그만인 장소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보양국사와 서해 용왕의 아들 이목에 얽힌 전설을 떠올리면서 남쪽 멀리 우뚝한 운문산을 바라본다. 산과 산 사이로 구름문이 열렸다.
# 떠나기 전에- 이목소 전설
- 서해 용왕 아들과 보양국사의 우정과 의리 전해져
운문사 경내 극락교 아래 이목소(離目沼)가 있다. 옛날에는 사방 100m가 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큰 연못이었다고 알려진 이 야트막한 웅덩이에는 10세기 중반 운문사를 중창한 보양국사와 서해 용왕의 아들 이목(離目)의 전설이 전해져 온다. 일연 스님이 이 절에서 집필을 시작한 삼국유사에 기록된 이야기다. 보양국사가 중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서해 용왕의 초청으로 용궁을 방문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눈 후 헤어지면서 용왕이 자신의 아들 이목을 데리고 가 달라는 부탁을 하자 보양국사는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용의 모습을 한 이목은 이 연못에서 지내며 스님의 사찰 중창을 도왔다. 그러던 어느 해 심한 가뭄으로 인근 주민들의 기근이 극에 달하자 스님이 이목에게 부탁해 비를 내리게 했다. 그러나 정작 하늘의 천제가 격노한 것이 문제였다. 비를 뿌리는 것은 하늘의 조화인데 감히 바다 용왕의 아들이 이를 거슬렀다는 것이다. 천제는 보양국사에게 사자(使者)를 보내 이목을 벌하려 했다. 보양 스님은 진짜 이목을 툇마루 밑에 숨게 하고 법당 앞의 배나무(梨木)를 가리켰다. 이에 천제의 사자는 배나무에 벼락을 때리고는 하늘로 돌아갔다. 골짜기 연못에 사는 큰 뱀을 일컫는 '이무기'라는 말도 바로 이목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으로 전설같은 이야기다.
# 교통편 & 먹을 곳
- 언양터미널에서 대구행 완행버스 오전 9시에 출발
부산노포동버스터미널에서 언양행 버스는 오전 6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20분 간격 운행. 3200원. 50분 소요. 언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대구행 완행 버스를 타면 삼계리까지 갈 수 있다. 오전 9시, 10시30분 등 하루 5회 출발. 운문령 너머 삼계리 정류소에서 하차하면 된다. 운문사 앞 버스정류소에서 언양행 버스는 오후 2시30분, 5시25분(막차) 등에 있다. 40분 소요. 3000원.
자가용을 이용하려면 경부고속도로 서울산IC에서 내려 언양 경주 방면으로 가다가 언양교차로에서 밀양 석남사 방향 24번 국도로 옮겨 탄다. 덕현교차로에서 우측 석남사 청도 방향으로 빠져나간 후 덕현삼거리에서 청도 방면으로 69번 지방도를 탄다. 운문령을 넘으면 삼계리 칠성가든까지 금방이다.
음식점 겸 찻집도 한 곳 소개한다. 운문사 매표소와 버스정류소 사이에 있는 '어화벗님(054-372-6638)'이다. 사진 작가인 배춘옥 씨가 6년째 운영중인 이 집은 손칼국수와 녹두감자전 등이 맛있다. 다양한 야생화 차와 동동주도 맛볼 수 있다. 2층 모서리 창가 자리는 주변 풍광이 한눈에 들어와 인기 있는 테이블. 배씨가 직접 키운 봄꽃도 예쁘다. 운문사 스님들도 자주 들른다.
# 운문사 터 잡은 호거산은 어디?
- 청도 사학계 "호거대가 바로 호거산"
운문사 매표소 부근에서 바라본 호거대.
둘레길 제7코스의 핵심은 역시 종착지인 천년고찰 운문사(雲門寺)다. 그런데 범종루에 걸려 있는 현판에는 '운문산 운문사'가 아니라 '호거산(虎距山) 운문사'라고 돼 있어 호기심 많은 순례객이 머리를 갸웃거리곤 한다. 공식 지형도 그 어디에도 없는 이름인 호거산. 한자의 뜻 대로만 보면 '호랑이가 걸터앉은 모양의 산'을 가리키는 듯하다.
이 문제를 놓고 그동안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여전히 정확한 답은 없다. 다만 이 문제를 풀기위해 고심하고 공부하다 보면 운문사는 물론 영남알프스 일대를 좀 더 깊이 알아 가는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청도 지역 향토사학계의 의견과 고지도 등에 나타난 호거산의 위치 등을 종합해 간략하게나마 고찰해 본다.
우선 호거산 위치에 대한 여러 주장들부터 살펴보자. 절의 남쪽에 있는 가장 높은 산인 현재의 운문산(1195m)을 원래의 호거산이라고 하는 주장이 있고, 억산과 범봉 일대를 통틀어 일컫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또 내원암 사리암 청신암 등과 함께 운문사의 4대 부속 암자이면서 운문사 창건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모암(母庵)으로 알려진 북대암이 자리잡은 북동쪽의 복호산(伏虎山·678m)과 지룡산(池龍山 또는 地龍山·659m)을 합쳐서 호거산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운문사 매표소 오른쪽(서쪽) 산등성이 위에 커다란 바위가 얹혀 있는 모습이 보이는 '호거대(일명 장군바위 등선바위 등심바위·516m)' 주변 일대 산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각 주장마다 나름대로의 근거도 있다.
하지만 향토사학계의 해석과 김정호 작 대동여지도 등에 나타난 호거산위치 등을 고려할 때 '호거대=호거산' 설에 좀 더 무게가 실린다. 우선 대동여지도를 살펴보자.그런데 먼저 주목할 것이 바로 대동여지도에 나타난 운문산의 위치다. 고산자 선생은 지동에서 운문산의 위치를 현재의 운문산과 판이한 곳에 표시했다. 가지산과 고헌산 사이 봉우리에서 북쪽으로 뻗은 큰 산줄기 상의 높은 산으로 표시한 것. 즉 현재 문복산의 위치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산에서 서쪽으로 흐른 지능선은 현재의 옹강산 줄기로 보이고 그 맥은 큰 하천 두 개가 합수되는 지점, 즉 현재의 신원천과 운문천이 만나는 운문면 신원리 신원교 인근까지 뻗어 있다. 그런데 바로 이 합수지점 서쪽의 능선상에서 작은 글씨로 호거산을 표시했다. 현재의 운문천 서쪽 자락 능선이다. 또 호거산 표기 지점의 동쪽을 흐르는 운문천 줄기에 '약야계(若耶溪)'가 표시돼 있다. 현재도 운문사 서쪽 하천을 약야계라고 부른다는 점을 감안할 때 결국 고산자 김정호는 호거대 또는 그 주변을 호거산으로 봤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 청도 향토사학회장 겸 경북 향토사학회장인 박윤재 선생도 호거산의 위치를 현재의 호거대라고 단언한다. 박 회장은 "운문사 절 서쪽에 호거산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호거산이라는 이름은 신라 때 원광법사가 중국 유학을 다녀온 후 운문사에서 주석을 할 때 중국 소주의 호구산(虎丘山) 이름에서 음을 따 온 것으로 보인다. '호랑이가 걸터 앉은 모습의 산'을 뜻하는 '호거산'의 의미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원광법사는 중국 유학시절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의 수도였던 소주(蘇州)의 호구산에 들어가 그곳에서 수도하며 평생을 마칠 생각을 한 바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청에 못 이겨 펼친 강론에 청중들이 감화되는 것을 보고 세상에 나가 중생계도를 하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고 전한다. 그만큼 높이 37m의 비록 아주 낮은 언덕 같은 산이지만 호구산은 원광법사에게는 잊을 수 없는 장소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또 하나 현재 운문사 약야계도 소주 호구산과 연관돼 있다. 오왕 합려가 죽은 후 제위에 오른 부차가 아버지의 무덤을 만든 곳이 호구산이고, 부차는 월나라 출신 미녀 서시에게 빠져 결국 패망의 길을 걷는 인물이다. 서시는 호구산에서 오왕 부차와 자주 노닐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약야계'란 범려가 서시를 발견한 절강성 소흥의 아름다운 하천 이름이다. 그 약야계가 운문사 옆 하천의 이름이 됐다. 우연의 일치일까.
사실 '호거대=호거산' 설도 정답이 아닐 수 있다. 김정호 선생도 틀릴 수 있기에. 다만 이런 고찰을 통해 영남알프스 둘레길의 이야기가 더욱 풍요로워 질 수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