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무심히 피어 있는
이름 모를 풀꽃이 때로는
우리들 발길을 멈추게 하듯이
한번쯤은 잊고 있던 나와 마주하라
법정 스님이 쓰신 책 <영혼의 모음> 띠지에 적혀있는 말씀이다. 여기서 모음은 ‘엄마의 음성’이라고 스승은 본문에서 적고 있다. 영혼을 보듬는 어머니 소리는 우리를 품어주고 낳아준 땅이 우리에게 하는 소리이며, 관세음보살, 성모 마리아가 우리를 다독이는 깊은 소리다. 이 책을 지난 6일과 어제 여럿이 모여 돌아가며 한 사람이 한 꼭지씩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소리 내어 읽어나갔다. 첫 꼭지는 ‘살아남은 자’였다.
이 글을 쓰셨을 때가 1972년 서슬 시퍼런 군사정권이 우리 목숨을 쥐고 있을 때였다. 스승이 사시던 봉은사 다래헌 뜰에 연푸름이 수런수런 번지는 봄날. 닭똥을 사다가 둘레에 있는 꽃나무에게 거름을 주려고 땅을 파다가 문득 ‘나는 아직 묻히지 않고 살아남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신다. 둘레에 있는 모든 이웃들은 ‘살아남은 자들’임에 틀림없으나 한 눈 팔다가는 언제 어느 때 목숨을 바칠지 모른다, 생명은 그 자체가 존귀한 목적인데 전쟁이 용서 못할 악인 것은 하나뿐인 목숨을 서로가 아무런 가책도 없이 마구 죽이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자들끼리 더욱 아끼고 보살펴야 할 텐데 잡아먹지 못해 으르렁거리고 있으니 어찌된 노릇인가? 하면서 스승은 가슴을 친다.
살아남은 우리는 채 못 살고 가버린 이웃 몫까지 대신 살아주어야 한다는 대목에서 세월호 희생자들과 네팔 지진 희생자들, 불의에 맞서다 유명을 달리한 이들 그리고 여리고 서툴러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스러진 이들을 떠올리며 울컥했다. 군사정권을 벗어난지 오래된 요즘도 사람 목숨을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 이런 우리는 대체 누구인가.
한 발 내디뎠으니 다달이 첫째 수요일 오전에는 인천 구월동에서, 둘째 넷째 금요일 오전에는 방배동 오신채가 없는 밥집 ‘마지’에서 법정 스님 책을 한 권 한 권씩 소리 내어 읽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이 어우렁더우렁 읽어나가련다. 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