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렌트 ♤ - 주님의 부르심 -
오늘 주님께서는 ‘탈렌트의 비유’로 잘 알려진 말씀을 들려주신다.
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내가 받은 탈렌트는 무엇일까?’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명확한 답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더 많다.
다시 말해서, ‘아하~ 주님께서 내게 주신 탈렌트는 이거였구나!’하고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알맞은 탈렌트를 주셨다고 했는데,
왜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일까?
그 이유는 우리의 눈높이가 너무나 높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받은 탈렌트를 생각할 때,
무언가 뛰어난 능력이나 남들이 지닐 수 없는 독특한 능력을 떠올린다.
물론 그러한 능력도 맞다.
하지만 주님께로부터 받은 탈렌트가 곧 뛰어난 능력,
독특한 능력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다.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탈렌트는 어떤 특정한 능력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모든 ‘은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 각자는 주님께로부터 많은 은총을 받는다.
우리의 1분 1초가 은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은총 안에서 생활한다.
날마다 맞이하는 새로운 하루도
주님의 은총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생각해본다면,
우리 모두는 은총 안에 살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기에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왜 주님께로부터 아무런 능력도 받지 못하였는가?
나는 왜 탈렌트가 없는가?’ 등 여러 가지로 불평해서는 안 된다.
또한, ‘나는 아무런 탈렌트도 못 받았는데,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나
많이 받았는가?’라는 식으로 비교해서도 안 된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은총인 탈렌트를 받았다. 그것도 누구는 더 많이,
누구는 더 적게 받은 것이 아니라 모두 똑같이 받았다.
‘주님께로부터 받은 탈렌트가 모두 똑같다?’
이 말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탈렌트를 어떠한 능력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종들을 불러”라는 말씀 안에서 바라본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이라는 탈렌트를 받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탈렌트를
각자에게 주어진 어떠한 능력이라고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전에 먼저 ‘주님의 부르심’으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우리 각자를 불러주셨다는 확신이 있다면,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능력들이
주님을 위한 특별한 능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서 주인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두 종에게도
주인이 나를 선택해서 불렀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주인이 나를 불렀다는 사실을, 주인의 목소리를 들었던
순간만이 아니라 마음 깊이 새겼던 것이다. 그 결과,
두 종은 주인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나머지 한 명의 종은 그러지 못했다.
그도 주인의 부르심을 받고 응답도 하였지만,
마음 깊이 새기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는 주인이 나를 선택해서 불렀다는 사실을 잊었다.
우리는 주님께서 손수 선택하시어
당신의 제자로 불러주신 사람들이다. 이는 우리 모두
주님께로부터 탈렌트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제는 주님께서 나를 부르셨다는
이 소중한 탈렌트를 마음에 간직해야 한다.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을 잘 간직하고 확신할 때,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능력을 포함해서 우리의 모든 능력들이
주님을 위한 특별한 능력으로 변화할 수 있다.
수원교구
인진교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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