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들은 아침에 왔다.
일출 무렵에 바람은 잠들었다. 해가 떠오르자 아침 안개는 스러졌다.
보름사리의 북서 밀물이 명량의 멱통에서 소용돌이쳤다.
허연 파도들이 말떼처럼 출렁거리며 목포쪽으로 몰려갔다. 물보라가 날렸다.
진도 동쪽 해안 금날산 묏부리에서 연기가 올랐다. 봉화는 섬의 서쪽 해안을 따라 옮겨 붙었다. 금날산 봉화를 용장산이 받았다. 용장산을 벽파진이 받았고, 벽파진을 망금산이 받았다.
산봉우리들을 건너뛰며 연기는 다가왔다. 물 건너편에서 망금산 봉화 연기는 눈을 찌를 듯이 가까웠다.
삼지원 쪽 망군 한 명이 선착장으로 들이닥쳤다. 망군은 온 몸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땅에 쓰러졌다.
-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적선들이 ..... 명량으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명량으로.....
망군은 머리를 땅에 박고 헐떡거렸다.
...
격군과 사부들은 이미 승선해 있었다.
격군들은 갑판 밑으로 내려가 노를 잡고 대기했다. 사부들은 갑판 위 좌현과 우현에 배치되었다. 수령과 군관들은 선착장에 모여 먼 봉우리들을 따라서 가까이 다가오는 연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망군의 보고가 끝나자 그들의 시선은 일제히 내 얼굴로 쏠렸다.
- 가자. 명량이다. 거기서 적을 맞겠다.
수령들이 배에 올랐다. 나는 대장선에 올랐다. 나는 이물 쪽을 향해 소리쳤다.
- 닻을 들어라.
군관이 복창했다. ..... 닻을 들어라..... 닻을 들어라..... 닻을 들어라..... 군사들이 전선에서 전선으로 고함치며 명령을 전했다.
- 돛을 세워라.
.....돛을 세워라..... 돛을 세워라..... 돛을 세워라.....
적의 주력은 이미 발진했다.
주력이 다가오고 있다면 바다에서의 일들은 길어질 것이었다.
혹은 짧을 수도 있을 것인가. 그러나 아주 짧지는 않을 것이었다.
새벽에 쌀밥과 소금에 절인 배추와 쇠기름 뜬 무국으로 군사들을 먹였다. 연안 읍진들의 군량은 바닥이 났고 백성이 없는 내륙 관아에서 군량은 오지 않았다.
밥이 모자라 그릇마다 수북이 담아주지 못했다. 밥 주걱을 쥔 배식군관들의 팔이 떨렸다. 배마다 찐 고구마와 말린 미역을 실었다. 바다에서 점심을 먹일 수는 없을 것이었다.
찐 고구마로 저녁을 먹인다면 다음날 아침은 대책이 없었다. 밝는 날 아침에, 바다위에서 적의 군량으로 나의 군사를 먹일 수 있을 것인지, 어느 가까운 포구로 군사를 물려서 먹일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먹일 필요가 없을 것인지를 나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 사이에 명량의 물길은 엎차락뒤치락 네번은 바뀔 것이었다.
- 발진하라.
.....발진하라..... 발진하라..... 발진하라..... 명령은 복창으로 퍼져나갔다.
쇠나팔이 세 번 울렸다. 나팔 소리의 꼬리는 허공으로 길게 풀렸다.
느린 점고로 몰아가는 격군장들의 북소리가 들렸다. 노들이 일제히 물 위로 치솟았고 다시 물에 잠겼다.
명량까지는 일렬종대로 나아가서, 거기서 적의 주력 정면에 일자 횡렬진으로 펼칠 것이었다. 중군장 김응함이 선두로 나아갔다. 안위가 뒤따랐다. 나는 대열의 한가운데서 여섯 번째로 나아갔다.
- - - - <중략> - - - -
적들은 더욱 다가왔다. 일자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기다렸다. 적선들에서 함성이 일었다.
적의 제 1열과 제 2열이 합쳐지면서, 양쪽으로 날개를 벌리기 시작했다.
적은 선두가 전투대형으로 바꾸었다.
물은 적의 편이었다. 적은 휩쓸듯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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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훈 칼의노래 중 >
멀리 남녘끝 섬 진도
이곳은 명량해전의 무대인 울돌목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용골수도를 품고 있는 섬입니다.
우리나라 바다중에서 물살이 빠르고 거칠기로 유명한 진도 앞바다 용골수도에서 2014년 4월 16일 우리는 300명이 넘는 생떼 같은 소중한 목숨을 잃고 절망에 빠져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현재 희망을 말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러 있습니다.
귀하디 귀한 아이들을 잃었다는 슬픔도 슬픔이지만 도대체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하는지 엄두가 나지 않는 왜곡된 현실이 더욱 우리를 절망하게 합니다.
진리를 말하는 종교와 정의를 부르짖는 신념이 어쩌다가 저렇게 괴물로 변모하여 대한민국의 생명과 양심을 짓누르게 되었는지,
탐욕에 눈먼 권력과 자본 그리고 그곳에 기생하는 부패와 아첨들 속에서 대한민국의 소중한 새싹들이 이토록 무참하게 짓밟혀야 하는지
안타깝고 고통스럽게 죽어갔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마음 편히 잠을 이룰수가 없습니다.
시간이 흘러 사건은 점점 희미해져갈지라도 왜곡되고 부패한 대한민국의 병패는 결코 희미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절망 .. 절망입니다.
1597년 8월 15일 장군은 선조임금으로부터 수군을 해산하고 육군으로 편입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불과 몇 달 전인 4월 1일 사형을 겨우 면하고 백의종군한 장군은 그러나 선조임금에게 다음과 같이 장계를 올립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전선이 남아있습니다. 신이 죽지 않는 한 적들은 감히 저희들을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
스스로 각 고을을 돌아다니며 병력과 병참 보급품을 구해다가 그해 9월 16일 물살이 빠르고 거친 명량해협에서 겨우 12척의 전선으로 300척이 넘는 왜적을 물리치며 단번에 정유재란 전체의 전세를 역전시켜버립니다.
진도의 빠른 물살 용골수도에서 세월호가 침몰하며 우리는 절망에 빠져버렸으나 417년전 진도의 울돌목에서는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위기 앞에 놓인 절망 속에서 빠른 물살을 이용하는 전투를 통해 조선의 희망을 건져 올렸습니다.
세월호 사건과 명량해전은 수백년의 시차를 두고 진도땅 어귀에서 깊은 의미를 주고 받으며 서로 관통하고 있습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전선이 남아 있습니다.>
세월호 사태이후 슬픔 속에만 주저앉아 있는 모습은 옳지 않습니다.
살아남은 이는 역할로서 말을 해야 합니다.
정제되지 않은 증오심 뒤에 숨는 것 또한 바르지 못합니다.
역사를 바로세우지 못하면 우리는 꽃이 되어 떠난 어린 영혼들에게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됩니다.
우리의 할 일은 거센 격량의 역사속에서 단호하고 과감하게 희망을 건져내는 일입니다.
명량해협에서 아침에 몰려드는 적들을 맞이하는 장군의 마음이 양심과 정의가 살아있는 대한민국의 마음입니다.
비록 괴물같은 탐욕과 권력앞에 미약하고 안타까운 존재일지언정 우리들 가슴마다에는 아직 12척의 전선이 남아있으며 정의와 양심이 불타는 열정으로 남아 있습니다.
팽목항을 찾아 어린 아이들의 영혼 앞에 마음 깊은 사과를 해야 합니다.
이곳을 걸으며 우리는 먼저 떠난 어린아이들에게 다시는 이런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합니다.
어디에서든 그곳에 맺혀 있는 한을 풀어내는 일이 가장 자연을 가까이 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울돌목에 들러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해야 합니다.
산자의 몫은 희망에 대한 역할입니다.
자연 속에서 꽃 한송이가 피어날 때 치열한 노력과 부단한 끈기가 필요하듯이 사람 사는 세상에서 희망을 피워낼 때에도 우리의 부단한 노력과 결연한 의지가 필요합니다.
7월 12일 팽목항에 갑니다. 울돌목에 갑니다.
< 세월호 영령의 안타까운 넋을 만나러 우리가 함께 갑니다>
< 아직 남아있는 12척의 전선을 구하러 우리가 함께 갑니다>
글 - 구윤상
진도 팽목항 추모길
출발 일시 : 2014년 7월 12일 (토) 아침 8시 전주 박물관 출발
장소 일정 : 팽목항 바닷가길 추모 도보, 팽목항 추모행사, 진도일원 탐방, 울돌목 경유
참가 인원 : 25명 (선착순, 참가비 1인당 3만원)
** 가족동반 가능하며 25인승 버스를 대절하므로 입금자에 한해 선착순 모집합니다.